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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나는 그렇게 하마고..
구봉. 추천 2 조회 483 24.10.11 14:16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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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0.11 16:11

    첫댓글
    할머니 사랑의 깊은 골짜기를
    아직도 품에 담고 계시어,
    기일에 즈음하여
    할머니가 생각 나시네요.

    세상 굽이굽이 인간사에 접하며,
    좋았던 일은 아내와 함께,
    슬펐던 일은 할머니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요.

    무지하게 덥던 그날은 가고 없고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 왔지요.

    이런 저런 생각 접으시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좋은 생각 많이 하셔요.ㅎ




  • 작성자 24.10.14 16:36

    이제 적잖은 연식에도 여즉 마마보이를 벗어
    나질 못하니 껍질만 어른입니다
    옛날 생각은 이쯤서 접고 코에 숨이 끊어지는
    그날, 제게 이 한시간도 남지않은 그 순간에
    억울치않도록 오늘에 집중해야겠습니다

  • 24.10.11 17:17

    참 많은 추억을 다 꿰고 사시네요.
    하긴 할머니의 사랑이 깊었기에 그런 거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 24.10.14 16:43

    한때 시대의 화두였던 '머시 중헌디'를 깨닫지
    못하고 할머니가 저의 집안으로 시집올 때 온
    벼락맞은 낡은 궤짝을 아직도 끌어안고 있습
    니다.. 국운융성과 민족중흥의 진취적 기상은
    간 곳이 없습니다ㅎ

  • 24.10.11 21:55

    저는 방학 때 마다 들리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외할머니가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던데... 태어나고 자라면서 늘 함께해주신, 아낌없이 사랑해주시던 할머님 기억은 얼마나 깊고 넓을까요...

  • 작성자 24.10.14 16:50

    이미 외할머니가 된 고향의 제 국민학교 동기
    여생도들은 방학때 손자 외손자들이 올까 걱정
    이랍디다마는 늙은 그 가스나들의 고충도 이해
    는 되나.. 우리 소시적 외할매도 그런 심정이었
    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합니다요ㅎ

  • 24.10.11 22:29

    저도 할머니 사랑 엄청 많이 받았어요.
    할머니 자식이라고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두 분였는데 제가 장녀였거든요.
    딸이 없던 할머니는 저를 딸처럼 생각하셨구요. 저도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어요.
    구봉 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할머니 생각 참
    많이 나네요.
    무덥기만 하던 여름도 지나갔고 이제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래요.
    잊지않고 수필방 찾아주셔서 넘나
    반가워요^^



  • 작성자 24.10.14 16:57

    아들과 사이가 별로인 제 친구놈은 기이하게도
    손자손녀는 죽을동살동 좋아 끼는데 미친 놈아
    욕하면, 니도 손자 보면 안다 이놈아라고 손자
    없는 제게 약을 올립니다
    새끼의 새끼, 한대를 내린 사랑은 그런것일런지요..

  • 24.10.11 23:04

    눈물을 흘리면서 글을 읽습니다.
    할머니의 그 따뜻한 사랑이
    구봉 님은 얼마나 그립겠습니까.
    세파에 시달릴 때마다
    생각나실 할머니.
    어제가 할머니 기일이었으니
    더 할머니 생각이 간절하시겠습니다.

    저도 외손자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 주면서 속으로 중얼대곤 합니다.
    나 죽으면 영정사진은 네가 들어다오.

    구봉 님,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24.10.15 10:30

    단언컨대, 그 외손자는 칠십고희가 되어도 지금의
    포근한 외할머니의 품을 본능적으로 기억할 겁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게 감성과 영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 보상도 바라지않던 할머니의 내리사랑 덕분에
    제가 이만큼이라도 세상을 살아냅니다

  • 24.10.12 12:06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셨군요. 자주찾아뵙지 못하였지만 ᆢ그 당시 열심히 일한 댓가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올랐으니 아마도 할머니도 모두 이해하셨겠죠?

  • 작성자 24.10.15 10:33

    우리의 선배들이 당대에 이 민족의 밥세끼를
    해결하고자 열심히 실아낸 결과가 오늘날 이
    정도라도 바깥에서 대접을 받음은 여행 경험
    많으신 푸른비님이 더 실감하실 것이지요
    며칠전 노벨상 소식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요..

  • 24.10.14 14:36


    구봉산이란 산이 있었군요

    방바닥에 떨어진 눈물로
    물 글씨를 썼다는 장면이
    상상이 가고

    할머니께서
    자근자근거려 가루가되도록
    씹어 멕여줬다 밤
    글이 가을입니다 ㆍ

    글 잘 쓰시는 구봉의 계절이
    왔습니다
    건필하십시요ㆍ



  • 24.10.14 14:39


    참고로
    오늘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나는
    눈물 흘러본 적 없이 컸던 것같아요

    남진의 가슴아프게ㅡ가
    가슴으로 와 닿을 땐
    30대 중반이었나 싶어요 ㅎ

  • 작성자 24.10.15 10:39

    읍내를 둘러싼 높낮이 가지런한 봉우리 아홉의
    산인데 제 영혼의 자궁이지요, 그 아래서 고려
    이후 수백년 삶을 이어온 인간이란 동물의 부스
    러기 하나가 세파속의 누추한 저이고요..
    실로 댓글 빙자 문후가 아니었음에 민망타는~

  • 작성자 24.10.15 10:46

    @윤슬하여 1980년대초 부산에 가라오케가 막
    도입기쯤 출장길에 따라간 요상한 분위기에서
    얼떨결에 부른 가슴 아프게가 지금껏 이 사내의
    18번임에 반가워합니다
    4분여의 노래 한곡이 주는 여운은 진리입니다

  • 24.10.15 10:48


    오ㅡ그래요!
    목포의 눈물 18번하고
    꼭 한 번 불러보이십더

    이쁜 수님과 함께 ㅎ

  • 24.10.15 10:50


    아홉구비 구봉산이
    영혼의 자궁이라니

    이 곳
    강진에 있는
    음의 기운이 세다는 골짜기에
    옴천사ㅡ라는 절이 있습니다

    거기도
    가 보입시더 ㅎ

  • 24.10.17 14:43

    어제 이 글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참 빗으로 곱게 빗어 넘겨 쪽 진 머리 고우셨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스물이 갓 되었을 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산소에 모셔두고 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다른 아들(아이들)은 몰라도 니는 꼭 할매 산소 자주 찾아 뵈어라. 할매 아니었으면 니는 죽었다."
    알고 있었어요. 워낙 약하게 태어나 다섯 살을 못 넘긴다 했었는데.
    그 시절 산으로 약초 캐고 뱀. 토끼 잡는 사냥꾼에게 부탁해 잡히는 토끼는 모조리 사서 할머니꺼서 저 고아서 먹였다고,
    학교 입학 전 까지 늘 할머니 등에 업혀 지냈던 기억이 있으니....
    돌아가시기 전 뇌졸증으로 반신이 불편한 몸으로 앉아 계셔도 방안 티끌 하나 눈에 띌 때 마다 주우시고.
    동몽선습 외우시던 곱디 고왔던 할머니.
    아버지 말씀 실천 못했어~~~라며 잠들었는데.
    추워지기 전에 언니와 함께 다녀와야 겠습니다.

  • 작성자 24.10.19 13:52 새글

    손녀를 위해 야생 산토끼를 끌어모으신 할머니
    의 정성이 이 가을날을 따스하게해줍니다
    그 내리사랑의 원형을 우리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런지요.. 그 덕분에 오늘의 커쇼님은 누구
    보다 위풍당당하심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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