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제가 끝을 본(?) 글입니다..
다 쓰고 나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읽어주시구여.. 비평 마구마구 해주세요..
세상은 때론 알수 없는 이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언제나 진한 색안경을 끼어야하는 내게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기에 안경을 사용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마음에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슴에 하나 둘 보이지 않는 색안경을 끼는 것은 아닐까..?
나도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보이지 않던 길이 지금 내게는 보인다.
그때는 도저히 갈수 없어 보이던 그 길도 지금.. 완전히 눈이 멀어버린 지금은 보이는 것이다.
내게 항상 먼저 말을 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서 한번도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왠지 아주 아담하고
편안할 것 같은 커피숍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갈때마다 늘 포근하고 훈훈 했으며 커피향이
아주 맛있게 가게를 애워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나는 생각했다.
이 곳은 아주 추운 겨울날에도 사람들의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어 녹여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듯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 받았으며
그녀가 손수 만들어 피워두던 커피향이 가득한 향초를 좋아했고 또한 가지고 싶어했다.
그녀도 선듯 다음에 올때 만들어주겠노라며 장담을 하곤 했는데..
그녀의 말이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건내는 말이 아닌 것이 정말로 정성껏 만들어 두었다가
찾는 손님이 있을땐 예쁜 말들과 함께 주저없이 꺼내주곤 했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커피향이 그득한 향초는 내가 그녀를 잘 모를 그때에도.. 지금도 늘 나의 집 한구석에서 그빛을 빛내고 있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 아래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나를 인간 조동혁으로 먼저 인식하기 전에 이미 장애인의 한 사람.. 장님이라고 기억하기 일쑤였기에
처음에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앞을 볼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않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기에 보이는 이들보다 더 잘 할수 있는 일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곤 한다.
"나는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그게 문제가 되나요?" 처음 이 말을 해준것 또한 그녀였다..
"이분은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어떳다는 거죠?" 라고 그녀가 날 위해 말해준 것이었다.
언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옆에 어떤 여자분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내가 층수를 누르지 않자 조심스레 말했다.
"몇층 가세요?" 라고.. 나는 "8층이요" 하고 대답했고 그 여자는 "예.." 하고 예쁘게 대답하고는 8층 눌러주는 듯했다.
대강 20대 중반 정도 되보이는 목소리에.. 은은한 커피향이 어우러진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대강 짐작할 뿐이었다.
얼마 정도 갔을까.. 여자는 내게 "쌍꺼풀 수술하셨죠?" 하고는 그냥하는 농담인지
아님 내가 장님인걸 알고 놀리는 것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날 보는듯한 시선도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색안경을 벗었고 여자는 나를 보았을 것이다. 여자는 놀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내게 던진 말이 농담이었든 조롱이었든 여자는 내 행동에 당황하거나 겁을 먹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도 아니랄 것이 왠 남자가 갑자기 말도 아닌 행동으로 "나는 장님이요" 하는 꼴이었으니
당황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내게
"저는 10층 사는 언니 집에 가요.. 여기 사세요?" 하고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저도 여기 살았던 적이 있었어요.. 아주 예전에.. "하고는 말 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왠지 여리고 슬프게 들렸으며 눈이 보이기만 한다면 그녀의 어깨가 어디쯤 있는지만 이라도
알 수 있었다면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을 정도로 서글픈 어조였다. 야속하게도 그때쯤 엘리베이터 문이 열였다.
여자는 내게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하고 다시 힘을 실어 이야기 했고.. 나는 "예..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날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여자가 그녀였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뒤 그녀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게 된날은 새로 출판하게 될 책에 대해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후배 녀석과
만난 그 날이었다. 녀석과 나는 대학 시절 선후배로 녀석이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서 매년 내 시집이 나온다는 이유로
인연의 줄이 끊어지지 않고 질기게 이어온 사이다. 사실 대학때부터 조금씩 내 시력이 멀어지고 있었고..
아주 눈을 잃어버린 대학4년 때부터는 사람들도 친구들도 나의 처지를 안타깝고 측은해 했을뿐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거나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채 등을 돌렸다.
그래서인지 내겐 이 녀석이 부럽기도 하고 또 가끔 하는 짓이 조금 얄밉기도 하지만
내게 몇 안되는 친구들 중에 가장 가깝고도 나를 제일 잘 이해해주려고 애쓰는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날 석한이와의 만남을 위해 이른 오후부터 법석을 떨며 외출 준비를 하던 내게 녀석이 한시간도 전에 집으로 찾아왔다.
"형! 형 옷입는거 봐주려고 일찍 왔지.." 하며 찾아온 석환이의 밝은 미소를 보지 못한것이 마냥 아쉽기만 했다.
"임마! 나 혼자서도 옷 잘입어.." 하며 괜한 말을 해버리긴 했지만 내가 녀석의 깊은 마음을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석한은 내게 오랜만에 바람을 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때 녀석이 뭔가 일 이외에 내게 하고픈 말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석한은 내게 우리가 학교 다닐때랑은 길이며 건물이 많이 변했다고..
건물이나 시설은 좋아졌어도 그때가 지금보다 마음만은 더 부자였다고 연신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사실 내게 실명이라는 검은 안개가 드리워 졌을때도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쯤.. 어떠느냐고
괜한 거드름을 피우곤 했었는데.. 그때는 두눈 멀쩡히 뜨고도 못보는 것들이 더 많았기에..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장담하는 지금..
내가 그냥 흘려버리듯 보며 느꼈던 세상의 그림은 내 어디에도 남아있질 않다.
내가 다녔던 학교나.. 내가 걸었을 법한 어느 길이나..
하물며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조차 나는 기억해 내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은 어디쯤이며 어디서 우회전을 하고 어디서 좌회전을 해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를 나는 잘 몰랐던 것이다.
녀석은 괜시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쓸대없이 나열하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입운동 그만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해봐.. 너 무슨 문제 있어?"
녀석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분명 내가 그렇게 말했을때 녀석은 얼굴을 붉혔거나
아님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조차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마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같다.
언젠가 녀석은 내게 남에게 자신의 표정을 감춘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감추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상대에게 이해시키는게 더 쉬울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남의 표정을 읽지는 못하지만 목소리만으로 숨소리 그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이다.
녀석은 뜻밖에도 편안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김나영이라는 예쁜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결혼을 자꾸 미루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김나영은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예쁘고 아주 능력있는 여자라고 그는 늘 칭찬하곤 했었다.
실제로 몇번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싹싹하고 예의 있었으며 무엇보다 목소리와 말투가 굉장히 매력있었다.
나는 그녀가 결혼하면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데.. 직장 생활을.. 그러니까 일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그녀는 한달이 넘는 날들을 결혼 이후에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직장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랐다고 했다. 그리곤 약속을 재차 확인하며 쐬기를 박더라는 것이다.
이유는 일이 아니라..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것 같다고 말했다.
뜻밖이었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놀랄 이유가 없거니와 녀석이 일이 더 진행된 다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은 것이 첨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한다. 사랑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을 따름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라야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말했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내가 너라면 나는 나영씨.. 그냥 놔줄꺼야..
세상엔 숨길 수 없는 세가지가 있는거 알지..? 그건 바로 가난과 기침..그리고 사랑이야..
너와 사랑에 빠졌을때도 나영씨는 그 사랑을 감출 수는 없었을꺼야.. 지금 다른 사람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야..
감출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겠지.. 그땐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다.. 그게 단순한 방황이었다면 말이야..
하지만 나영씨 마음에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리잡은 지금 니가 다시 나영씨 마음을 돌린다해도 예전과는 많이 다를꺼야..
너 그거 감당할 수 있어? 차라리 잊는 편이 훨씬 쉬울꺼야.. "
나는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또박또박 한단어 한단어에 힘을 주어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게 반론을 제기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녀석은 아직 어린가 보다.
아니 아직은 순수한 것일까.. ? 우정이란 때로 길과 같으니 자주 지나가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 문구.. 우정도 사랑도 처음 시작되는 시점은 같은 곳일 것이다.
이둘 모두 길과 같아서 자주 드나들지 않으면 곳 마음도 떠난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떠나면 그 상대방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그 상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 사랑도 때에따라 변할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이혼을 하는 부부가 왜 생기며
연예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왜 빈번히 싸움을 하느냐고 반론했다.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다툴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 못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건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하나의 포장이며 그건 정말 비열한 것이다.
나는 되물었다. "너 살면서 나영씨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안생길꺼 같아?
지금도 그렇고 결혼을 한 후에도 그렇고 사람 감정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거야..
지금 나영씨가 변했다고 욕할 필요없어.. 살다보면 더 좋은 사람..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그렇지 않다고 장담하지마.. 너도 결혼해서 애 낳고 살다가도 다른 사람 찾아 떠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구.. "
여기까지 말하자 나도 녀석이 안되보이기도 하고 내가 너무 현실적인 말만 구구장창 설명해 놓은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봄 햇살이지만 은근히 따갑기까지 한것 같았다.
잠시후 갑자기 날씨가 흐려져 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분명 처음엔 햇살에 얼굴이 따뜻하다 못해 따가움 마저 느꼈는데 지금은 왠지 차가웠다.
녀석은 조용한 곳에 가서 일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 집 근처에서 예쁜 까페를 봐두었는데 그리로 가자고 했다.
난 어차피 보지도 못하는데 까페가 이쁘면 어떻구 다쓰러져가는 허름한 곳이면 어떻겠냐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했다. 녀석은 무안했는지 너털 웃음만 짓고 있었고
나는 모카향이 짙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덧붙여 말했다.
오후 4시를 알리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착한 까페는 입구부터 커피향이 아주 은은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안은 더할 나위없이 포근했으며 따뜻했다.
낯익은 목소리가 "어서오세요~" 하고 들려왔으나 나는 그 낯익은 목소의 주인공을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차를 시켰고 마주 앉아 이야길 했다.
분명 마주 앉아 있었겠지만 난 녀석의 얼굴을 정확하게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일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주 쯤 출판사로 직접 찾아가겠노라고 약속을 한뒤
우리는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녀석은 내게 형은 왜 시만 쓰냐고 물어왔다.
나는 시밖에 쓸줄 아는 게 없어서라고 말했다. 녀석은 웃었고 내 시를 읽고 있으면 왠지 눈물이 날때가 있다고 말했다.
난 나중엔 소설책을 써보고 싶노라고 말했다. 지금 쓰면 되질 않느냐고 녀석이 물어왔다.
나는 나중에.. 라고 이야기 했다. 나중에.. 라고..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느꼈을때 뒤에서 아까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석한이 아니니? "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여자가 물어오자 녀석이 상당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영? 한서영 맞지?" 여자는 처음 들어올때부터 긴가민가 했었는데 왜 아는척 안했냐며 뾰루퉁한 목소리를 냈다.
녀석은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며 더 예뻐졌다고 너무 오랜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녀석은 내게 자기가 대학교때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나도 몇번 본적이 있을꺼라며 한서영이라는 이름이 혹시 기억 안나냐고 물었다.
내가 3학년.. 그리고 녀석과 그녀가 신입생때의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눈이 반이상 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못보게 될꺼라면
지금부터 안보이는 연습을 하자고 거이 눈을 감다시피 하고 다닐때였다.
녀석은 나를 학교 선배라고 소개했고 그녀에게도 나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어렴풋이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녀는 당시 도시공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나와 녀석은 건축 디자인과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 못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직했다.
그녀는 한학기만 다니다가 휴학을 해버렸고 나는 학교를 밥먹듯이 빠지기가 일수였기에
우리가 마주칠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그녀는 우리에게 왜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갖지 않았냐고 물어왔다.
나야 눈이 보이지않아 디자인을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이 왜 출판사에 입사했는지는 나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답할 이유를 못 느껴 말을 아끼고 있었고 녀석은 어찌어찌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둘러대는 듯 했다.
사실 우리 나라 교육 현실이라는 것이 초중고등학교도 그렇지만 대학교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배우는건
껍대기 일뿐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건 얼마되지 않는다고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며 교육현실까지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운 듯 그들은 술을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피곤했지만 그러자고 했다. 자리는 옮긴후 그녀가 내게 했던 첫마디는 "선배님.. 참 잘생기셨어요..
안경 벗으면 더 멋있겠네.. " 였다. 나는 당황했고 녀석은 헛기침만 할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장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조용히 안경을 벗었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았다. 물론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는 왜 휴학했냐고.. 휴학하고 뭐했냐는 녀석의 질문에 한참을 생각한 후 말을 이었다.
사실은 고등학교때부터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쯤 그 사람과 헤어졌고
그래서 잠깐 쉬려던 것이 너무 오래 쉰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마도 씁씁한 표정으로 멋적은 웃음을 지었을것이 틀림 없었다.
한참뒤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녀석에게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물었고
녀석은 그술집에 처음간 나를 위해 이야기를 멈추고 나를 부축해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약간 술이 취한 취객이 지나가다 나를 보았을 것이고 그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내게 장님주제에 어디 이런 곳에 와 술을 마시냐며 시비를 걸었고
녀석은 "왜 이러세요.. " 하고 점잖게 그를 저지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해서 막말을 해대자 그녀가 말했다.
"이분은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어떳다는 거죠?" 그녀가 말하자 요란스럽던 주변이 조용해졌고
그녀는 독선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세상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이분은 그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일 뿐이라구요.. 최소한 이분은 남의 약점을 빌미삼아 모욕을 주는
댁같은 사람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분이시죠. 뭐 더 할말 있으세요? "
여기까지 말하자 남자는 얼굴이 빨개져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다시 앉았고 그녀는 내게 술먹으면 개라는 말이 있는데
개가 짖는다고 해서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며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녀석과 함께 화장실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그녀는 처음 나를 보았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내가 눈이 보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를뿐 애써 감출 필요가 없음을 처음 만남때부터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가끔 가게로 놀러 오세요.." 라고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때 난 그말이 진심임을 알리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지.. 하고 여길 뿐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였다.
출판사에 들러 일을 마치고 친구 녀석이 하는 레코드샵에 들러 CD를 고르고 있었다.
친구 녀석이 운영하는 레코드샵은 녀석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녀석의 할아버지때 부터 지금 3대째 물려 받아 운영하는 꾀 큰 규모의 가게였다.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이곳엔 너무 오래되어 찾는 이가 드문 희귀한 음반부터
골동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낡은 LPG판까지 없는게 없어 내놓으라는 음악 매니아들은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난 이곳에서 다른 어떤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찾곤 하는데
낡은 음반들에서 묻어나는 사람들의 냄새가 내게는 어떤 고급 향수에서의 향보다 그윽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녀석과 옛이야기를 나누며 10여장의 CD를 골라 막 계산을 하려는데 낯익은 향기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친구 녀석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앨범 구했는데..
워낙 오래된거라 음질은 조금 떨어지네요.. 어떻게 지금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녀는 곧 나를 발견했으리라.. "네.. 그러죠.. 어?"그리고 그녀는 내 오른쪽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선배님.." 하고 나를 불렀다. 친구 녀석은 "두분이 아는 사이예요? 서영씨.. 수현이랑 어떻게 알아요?" 하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난 괜이 얼굴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애써 숨기며 "나 대학때 학교 후배야.." 라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중단이 되었고 친구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그녀가 부탁했다는
낡은 LPG판을 조심스레 틀어놓았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의 무슨 곡인지 전혀 감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음악은 아주 편안했으며
중간중간 판이 튀는 소리가 왠지 더 정감있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녀가 말했다. "음악이란건 판이 이렇게 낡아도 그 감동이나 느낌만은 낡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참 이상하죠..? "
그녀의 말의 어조는 차분했으며 아주 안정감 있었다.
나는 언듯 이 가게에서 느끼던 어떤 알 수 없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그녀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차를 타러 가면서도.. 또 택시 안에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않았다.
나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으나 그 시간이 지루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그녀는 차를 한잔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흥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녀의 가게로 향하면서 그녀는 내의 팔을 잡아 부축해 주었는데.. 사실 익숙한 길이었기에 부축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지 않았다. 아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더 솔찍히 말하자면 그녀의 호의가 마냥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10여분의 거리를 걸으면서
잠시나마 그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거니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그저 이름과 사는 곳, 나이, 직업따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았으나 그것이 어색하진 않았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도 나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남들이 놀라워하는 것에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았으며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주제 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서로에 대해 조금의 경계심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녀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어느새 우리는 '선배'와 '서영씨'라는 호칭을 버리고 '오빠'와 '서영아'라는 새로운 호칭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지 한달쯤 지날 무렵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서영이었다.. 그녀는 가게로 놀러오라고 했다.
날씨가 너무 좋다며 들뜬 목소리로 '수현 오빠... '라는 호칭이 서슴없이 수화기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오빠라는 호칭을 쓰면서도 꼭 존댓말을 하곤했다.
존댓말하니까 별로 안 친해 보인다고 말을 놓으라고까지 이야기를 했는데도
그녀는 "안되요.. 오빠.. 말을 놓으면 나야 편하지.. 오빠두 편할꺼구.. 근데 난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고 싶은 사람한테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아요.. 편해지고 친해지면 긴장이 풀어져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라도
오빠한테 기어 오를꺼라구요.. 막말로 내가 오빠한테 맞먹으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나두 그건 싫구..
그러니까 내 맘대로 하게 해줘요.. 네? " 하고 말했다. 사실 나는 맞먹어두 상관없었다.
그만큼 좋았으니까.. 그녀와 나 사이에 조그만 벽이 있었다면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게 존댓말을 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했지만 사실 난 아주 작은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내가 그 점을 지적하면
그녀는 곧 토라진 듯한 목소리를 내곤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는 최대한 빨리 외출 준비를 했다.
샤워를 했고 손질할 머리도 없이 짧은 머리카락을 빗으로 넘겨가며 드라이를 했다.
향수도 뿌려보았다. 사실 난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빨리 하느라고 했는데도 그녀의 전화를 받은지도
벌써 2시간이 지났나 보다.. 뻐꾸기 시계가 두번째 울고 있는걸 들으니 말이다.
나는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 넘어질 뻔도 했다. 나는 최대한 서둘러 온티를 내지않으려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문을 열자 "오빠.. 생각보다 빨리 왔네..?" 라고 그녀가 말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사실 약속이 있어 나가려고 했는데 그 약속이 취소되어 빨리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내게 메뉴에 새로 추가될 차가 있는데 한번 마셔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창가끝 자리에서 따뜻한 늦은 봄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그렇게 향기가 좋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여름이 오겠지..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휴가때는 어디로 놀러나 갈까..? 하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머~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고..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아이에게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아이는 훌쩍이던 눈물을 애써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 순간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해 보았다.
엄마라니..?
나는 멍하니 다시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녀는 아이에게 "샘물아.. 이리와 엄마가 안아줄께.. "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말다툼을 했는데 친구들이 제편을 안들어 주었다는 것 이었다.
그녀는 왜 말다툼을 했는지를 물었고 내가 듣기에도 그녀의 딸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렸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그녀의 딸아이가 서있음직한 곳을 향해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들이 내가 향한 쪽을 향해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딸아이에게 그건 네 생각이 틀렸으니 서운해 하지 말고 내일 유치원에 가면 먼저 화해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강요나 꾸짖음이 없었느나 상당히 엄하게 들렸으며 평소와 어휘도 조금 달라보였다.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다 달래 놓은 후에야 내가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것이다.
여자보다 아름답고 강한 것.. 그녀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내 발 앞에 서있음이 느껴졌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샘물아..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하고.. "라고 말했으며
아이는 "안녕하세요.. 정샘물이예요.. " 하고 수줍게 말했다. 아마도 아이는 그녀를 쏙 빼닮았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말을 해보았다.
"그래.. 샘물이.. 몇살이야..? 이제 다 울었어?" 하고 물어보자 아이는 수줍게.. "네.."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에이~ 우리 샘물이 그게 뭐야? 씩씩하게 대답해야지 '네.. 이제 안 울어요!' 이렇게!! "
나는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해가고 있었으며 그녀의 그런 모습에 큰소리로 웃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하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이는 이내 <난 한서영의 딸 정샘물입니다..> 라고 말하듯 큰 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저는요 6살이구요.. 하늘 유치원 파랑새반이예요.." 나는 하하~하고 웃으며 귀여워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샘물아.. 엄마는 아저씨랑 할 얘기가 있거든.. 엄마가 뭐라구 그랬지? 어른들 말씀하실때는.. ?" 하고
그녀가 묻자 "끼어들지 말고 혼자 방에가서 놀아요.." 아이가 대답했다. "샘물이 오늘 피아노 가는 날이지?
자~ 이제 어떻게 해야될까? " 다시 그녀가 묻자 아이는 "손씻구 옷 갈아입구 가방 챙겨서
은주 언니한테 학원까지 데려다 달래요.. " 나는 아이의 대답에 의아해 물었다.
"은주가 누구야? 그리구 학원은 니가 데려다 줘야지.. 아니야? " 그러자 아이가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아니예요.. 샘물이는 은주 언니랑 학원가야해요.. 엄마는 지금 바쁘니까요.. 아저씨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
나는 당황했고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있을 법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주는 우리 아르바이트생이구.. 내가 손님 계셔서 바쁠때는 언니랑 학원가라구 가르쳤거든..
그리구 샘물아.. 아저씨는 엄마 친구야.. "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그렇구나.. 엄마 있다봐..
나 옷갈아 입구 올꼐요.. 아저씨두요.."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나는 "집이 어딘데.. 혼자 보내두 돼?" 라고 걱정하듯 물었고
그녀는 가게 바로 옆이 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내 딸이예요.." 하고 고백하듯 말했다. "미리 말못해서 미안해요.. 오빠.. "
나는 미안해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더 미안해졌다.
"미안할꺼 없어.. 애가 참 귀엽다.. 너 많이 닮았나봐? 구김도 없고 밝고.. 아~ 나도 저런 딸 하나 있었음.. 좋겠다.. "
그녀는 내게 무엇이 그렇게도 미안했던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사정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내가 아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무거워져 갔고 나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10여분이 지났을까..? 그녀는 '후훗~' 하고 웃었고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더 크게 웃었고 나는 왜 웃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나 괜찮아요 오빠~ 오빠 얼굴 굳어있으니까 디게 귀엽다.. 지금 내가 조용하니까 걱정되서 그런거죠? 그쵸?" 라고
밝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으응.. "하고 조금은 어눌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연신 말을 되풀이 했다. 그녀의 그런 행동에 나는 그녀가 전혀 괜찮치 않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걷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말이다...
그녀에게 딸 아이가 있음을 알게된 후 얼마간이 지났을때 나는 그녀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은주씨에게서
몇일 후가 그녀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생일은 5월 17일이었다.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녀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나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때의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선 나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 몇일 전부터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아프지 않았다.
아침마다 나의 집을 드나드시는 어머니께 부탁드려 생일 케익과 와인 그리고 약간의 꽃을 준비해 달라고 했고
그녀의 생일날 아침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모든 준비를 해주시고 집을 나서섰다.
나는 내가 썼던 시집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한권을 준비했고 그녀만을 위한 편지 한장을 조심스레 써 내려갔다.
무슨말을 해야 할지 어떤 글를 써야할지 난감했으나 나는 아주 짧지만 진심어린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몇년 동안 쓰지않던 피아노를 만져보았다. 나는 내가 눈을 감고도 잘 할 수 있는 두가지의 일을 모두
그녀를 위해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로는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곡으로 정해졌다.
나는 꾀병을 부리며 그녀의 전화마저 꺼려가며 이틀 동안 그 곡을 연습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5월 17일이 되었다. 우선 어머니께서 나가신 후 준비한 곡을 한번 더 연습해 보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몸이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집에 좀 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거절할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많이 아파요.. 오빠? 나 금방 갈께요.."하곤 급히 전화를 끊었고
나는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거실의 생일 상앞에 초 두개를 피웠으며 거실의 커튼을 닫고는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에서 그녀가 오기만을 두근거리는 심장을 향해.. "진정해.. 떨꺼 없잖아.. " 하고 진정시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방의 문은 열어두었으며 현관문도 걸어 놓지 않았다.
모든 일은 나의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문꼬리를 돌려보았을 것이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대답이 없자 그녀는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몰아쉬며 집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놀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피아노 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노래가 중간쯤으로 접어 들었을때 나는 내 뒤에 그녀가 와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노래를 마쳤을때 그녀는 한 손으로 지긋이 나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 "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늘을 계획하며 한번도 그녀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나라는 인간보다는 확실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의 겉모습이 어떤지 나는 전혀 짐작조차 할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가 나약해 보이는 외모에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여자라고 늘 상상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지금 27살이고 아이가 7살이니 그녀는 20살때 아이를 낳아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키워내고 있는 아름다운 엄마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세상으로 부터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강한척 씩씩한척 하며
힘들게 견디어온 그런 가여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고 자신의 생일을 잊고 산지 오래되었다고도 말했다.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생겨 너무나도 좋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인 것에 감사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너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인 것에 감사해.. 울게 해서 미안해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나는 울고 있는 너를 볼 수가 없구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어..
해줄수 있는게 별로 없다.. 미안..' 나는 그녀를 만난 후 곧잘 씁쓸한 기분을 맛보게 되었음을 그날 알게 되었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자 거실로 나와 생일 케익에 초를 꽂고 불을 붙여 생일을 축하했다.
준비한 책과 편지를 건내자 그녀가 말했다. "편지.. 읽어봐도 되요? " 나는 조금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집에가서 읽어.. "하고 수줍게 말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그녀가 또 울며 내게 전화를 했다.
편지를 읽고 그녀는 내게 또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중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겉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살면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꺼야..
하지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만나기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더라..
속은 들여다 볼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처음에 눈이 안보이게 됐을때는 세상을 참 많이 원망하게 되더라..
근데 지금은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거.. 그말 뜻 이제는 알것도 같어..
난 널 볼순 없지만 네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거 알수 있을꺼 같아.
그래서 내가 눈을 잃은것에 대해서 조금은 감사해.. 너라는 사람을 알게 해줬으니까..
너무 늦게 만났고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무 큰걸 잃고 받은 선물이라 네가 더 소중해..
하지만 미련따위는 없어..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길 빈다.
네가 행복하길 빈다면 이러면 안돼겠지만 우선 지금은 내가 행복해야겠어..
네가 떠나고 싶을땐 떠나도 좋아.. 지금 내가 부족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꺼야..
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침표가 없어.. 그 마침표가 나였으면 한다...]
그날 이후 나는 감히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부터 샘물이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도 그녀도 몹시 당황했으나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니 그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녀는 가끔 집으로 찾아와 음식을 해주었고 어떤 날은 어머니와 함께 김치를 담근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샘물이를 어쩜 나보다도 더 사랑하시는 듯했고 그녀에게 늘 고맙다고 말시하곤 했다.
어느새 그녀는 나와 내 주위 모든 것들에 모두 적응하고 있었고 우리는 한 가족이 된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나는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그녀를 만난지도 한해가 지나고 있을때였다.
그녀는 내게 가족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왠지 우울한 목소리고 집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는 친 언니가 한명있고 언니는 결혼을 해서 나와 같은 아파트 10층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중학교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녀가 휴학을 하고 집과 연락을 끊을 무렵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물었다. "오빤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요?" 처음에 난 어리둥절 했으나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들어났다. 만난지 1년이나 지났으며 물어볼 법도 한데
왜 샘물이 아빠에 관해 암런 말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과거란 그저 흘러버린 물 같은 거라 샘물이 아빠가 누구든 그녀의 과거가 어떳든 상관없다고 했다.
지금 샘물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샘물이 아빠는 그 누구도 아닌 조동혁이고
앞으로 샘물이는 정샘물이 아니라 조샘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나이기에 내가 알고 살아야 할 것들은 지금 그 두가지 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뜻밖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샘물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고등학교때 수학 선생님이라고 했고 지금은 자신의 형부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야기는 간단했으나 그녀가 그 동안 안고 살았던 큰 짐이기도 했을 것이다.
내겐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가 대학에 입학했을때 임신을 했고 그는 그녀를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을 등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기 위해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고 했다.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고 했을때 남자는 그녀에게 미쳤느냐고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떠나며 그녀는 독하게 마음을 다져먹고 또 다졌으리라..
그렇게 그녀가 아이를 낳을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얼마후
그녀의 언니는 한 남자를 만나 그에게 위한을 찾으며 사랑을 키워갔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그가 바로 샘물이의 아버지였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녀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맘이 쓰라림을 느꼈다.
식초를 쌩으로 들이 마셔 온몸이 쏴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닌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사랑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했다. 아이는 사랑하나 아이의 아빠는 증오한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안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나는 그녀가 가여워졌다.
그녀는 내게 자기를 동정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동정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그저 처음부터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나는 되물었다.. 나를 동정하냐고..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다음에.. 오랜 시간이 흐른뒤 영혼이 육체로 부터 빠져나와 어딘지 모를 여행을 떠나야할때
내 영혼을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울 정도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서슴없이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아니 꼭 데려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모질지도 못한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다.
그 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는 아니였지만 친구들과 친지들의 축하 속에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행복하리라 믿었지만 믿음은 깨어지고 말았다. 믿음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샘물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지금은 2학년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내게는 오래.. 아주 오래 행복하게 살다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그러면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아이를.. 아니 우리 아이를 낳다 그렇게 멀고 먼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아들이었고.. 나는 지금 그녀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며 키워가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커피향들과 사람들과 세상의 공기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