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에 군입대를 했다
논산 수용연대 에서 할일 없이 빈둥 거렸다
그때는 수용 연대 에서는 신체 검사를 다시 받고
합격을 해야 훈련병이 될수 있기 때문에 할일이
없을때는 그럭저럭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사역병에 걸려서 식당으로 사역을 나가고 있는데
인솔자는 이제 막 작대기 두개를 얹은 일병 이었다
일병이 인솔을 하다가 잠깐 딴청을 피우는 사이에
앞줄으 흩어지고 슬금슬금 도망을 가고 있었다
애때다 싶어 뒷줄에 있던 우리들도 도망을 갔다
팬티만 입고 알몸에 머리를 깍은 사람들 이니
누가 누군지 구분을 할수 없는 입장 이었다
그리고 얼릉 내무반으로 입장을 하면 그만 이다
그렇게 군대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하사관 학교로 차출되어 오랜기간 훈련을 받고
당당한 육군 하사로 복무 하였다
군대 생활을 그런대로 재미 있었다 고 할수 있다
하사 봉급은 7,500원 이었는데 그때 병장은 4,000원을
받고 있었다
4개월 마다 보너스가 나오면 15,000원의 급여를 받는데
그돈은 엄청난 액수 이었다
그돈으로 막걸리 회식도 어쩌다 했고 전우들에게
형같은 입장에서 빵도 사주곤 했었다
어느날
옆 전우가 휴가를 간다고 하기에
휴가 가는길에 우리 엄마께 하얀 목도리를 선물좀 해
드리라고 하면서 부탁을 했더니 엄마께 목도리가
전달 되어 졌다고 했다
엄마께서는 다른집 애들은 군대 가면 용돈 달라고 하는데
우리집 아들은 군대에서 선물도 보내 온다고
동네 아줌마들께 자랑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육군 하사는 내무 반장을 겸하기도 하는데
나도 내무반장을 맡아서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 했다
(나의 기준임을 말씀 드린다)
어느 여름날 우리 중대는 전방으로 모두 훈련을 나가고
우리 소대에 나와 포반이 남아 있었다
한달여 가량 내가 우리 중대에 대장이 되어
2~30 여명 전우들을 관리 하고 있었는데
아침이면 점호 소리 높고 아침 청소는 중대 전역을
깨끗히 잘 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에 의해 진행 되는
훈련도 잘 하고 있다고 대대장님 께서 C.P에서
내려다 보시고는 중대원들이 모두 복귀한 다음
휴가를 보내 주셨었다
그러다
임기가 되어 개구리 복장으로 갈아 입고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후에 전우들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중대장님 께서 장군이 되신후 지기 아들 결혼식을 한다고
초청장을 보내셨기에 참석을 했더니
그때의 소대장 들이 모두 왔더라
그들과 함께 술을 너무 많이 먹고 대리 운전으로
집으로 귀가를 할수 있었다
70살이 넘어
젊어서 군대 생활을 할때를 회상해 봤다
그런데 가끔 입대를 하는 꿈을 꾸곤 하는데
나는 제대를 했는데 왜 다시 입대를 하는가를
고민 하다가 잠을 깨곤 한다
군대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남자란 군대 이야기가 시작 되면 영웅이 되어
끝없이 이야기 줄거리를 전개 할수 있어서 좋다
병장의 봉급이 2백민원이 될것 이라 하는데
그리고 휴식 시간에는 핸드폰으로 집에 통화도 한다고 하던데
군대가 이랴도 되는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것 같다
군대는
남자들이 당연히 다녀 와야 하는곳 이고
그곳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 내며
그를 근간으로 해서 사회생활 잘 할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는곳이 아닐까?
사나이로 태어 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
이라는 군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열심히 훈련 받고
단체 생활에 규율과 윤리를 배우고 익히는 수련의 장
그게 군대를 통하여 이뤄 진다면
어지러운 이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육군 하사 휴가를 명 받았읍니다
육군 하사 전역을 면 받았읍니다 ....벡마....
그때를 생각해 보는 오늘 이다.
나는 백마부대 출신 이다
첫댓글 남자들 군대 얘기 나오면
끝이 없다고들 하는데~~ㅋㅋㅋ
요즘 감기 몸살 오래 갑니다
나도 3월말 한주간을 내내
고생 했네요 병원가서 링거 맞고
겨우 살아 났었네요~~
이젠 쌍화탕 한 병 먹고 낫던
때하고는 다르더라구요
속히 회복 되시길 바랍니다~~
나 보다 고참이넹
난 11월 병력 기행 19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