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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돈(種豚)
천 승 세
소문은 오십 리 밖 한티말까지 좌악 깔린 뒤였다.
“봉암리 절색 필녀가 실성혔다며? 일손을 벌이먼 손가락 끝에 장이 지져나도록 일매듭 한번 암팡지게 매시라운 필녀가 워쩐 일루 다 돈귀살이 꼈다!”
타는 가뭄 밭골을 뛰는 할미새 오도방정질도 이렇게 수선스럽지는 않으렷다. 용산이 희뿌옇게 빚살을 뿜어을리고 청계산 봉우리 아래로 불덩이 같은 해가 떨어져내릴 때까지 입 달린 사람들은 줄줄이 소문줄을 달고 덩이덩이 뭉쳐 있는 터다.
밭고랑에서 당골질을 내던 장딴지가 터억 논둑만 밟았다 해도, 소 새김질 한숨에 기지개 한번 늘창지게 펼 심간에도 그저 필녀의 실성기 소문에 귀가 얼얼할 지경이매, 석포댁의 애간장은 달달 달아오르다 못해 그만 삭아 밭을 지경이것다.
노인당 마룻바닥에 중의 가랭이만 걸쳤다 해도 젊은것들은 젊은것들 대로 그저 필녀의 돈귀살 타령이고 허연 턱수염발을 하르르 날리며 장기 한판 숨나는 판을 못 참아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앓는 송아지 무릎 세우는 꼴로 억칙스렵게 소문발을 달것다.
“시상 변천지상이 급변허다보니께 별 귀경을 다 혀. 필녀 그아가 워쩐 일루다 괌을 내지르고그려.”
“돈귀살이 껴서나 그타지 안유?”
“만덕이년은 뭣 허능겨. 한 차례 푸닥거리면은 개골창에 빠독만 골라낼 텐디.”
“글씨유.”
석표댁은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쪽이 틀리도록 사래 머리질을 쳐대보지만 마음만 끓는 솥이지 걸음은 그때마다 징 박은 망아지 뒷굽처럼 옴싹없이 굳고 만다.
첩첩 안개로 갇힌 용산 중턱에서 장끼 소리가 숨넘어간다. 깃에 내린 이슬을 터는지 푸드덕푸드덕대는 소리가 희부슴한 하늘로 솟아 펴진다.
“필시 곡절이 유혈 텐디 대체 워떻게 약방문을 써본댜?”
석표댁은 그저 긴긴 한낮이 두렵다. 꽁지발을 딛고는 눈어림에도 안드는 만덕이년 집께를 보노라 우정 모가지를 빼본다. 며느리년 소문줄은 으레 한낮에 다글다글 익것다.
필녀의 잠꼬대 소리는 사뭇 멱창을 딴다. 앙칼지다 못해 씨좁쌀만한 소름도 등줄에 얹히는 터다. 그 바람에 그만 꽃잠을 놓친 석포댁은 아금니틀이 시리도록 끌끌 허를 차대며 끄응 돌아눕는다.
“진장을 칠녀러 것, 사추리로 불밤 털시래기가 떨어졌당가 원! 야밤 중에 믄놈어 괌질이여.”
석포댁은 눈꼬리가 쓰리도륵 꼼잘스러운 물눈꼽을 짜대며 설친 잠을 다시 좇는다.
백일잡이 어린것 잠투새가 이리 사나울까보냐 필녀는 석포댁의 등줄에다 맞대인 펑펑한 등어리에다 가쁜 숨을 얹더니 사지를 이내 중풍잡는 영감처럼 가들가들 떨어댄다. 급기야 또 한 차례 찢어지게 내지른다. 목청 안에서 돌돌 몽치는가 싶은 그 소리는 터져나을 때쯤이면 영락없이 강그라지는 암퇘지 울음 그것이것다.
“이잉ㅡ끌끝. 지집년 잠꼬대가 보탕 속에서 익었다고 이리 드세당가? 워쩐 일루다 힘은 청대 가르게 좋구 얼래발이 씨애비 혼인줄맹끼 억척스럽단 말여.”
등줄을 바싹 움츠리고는 다시 한 번 눈꺼풀을 닫아내리던 석포댁은 그만 푸시시 일어나 앉고 만다. 필녀의 잠꼬대 소리를 잠은 씨도야지가 여물통을 들먹대며 용심을 쓴다. 덩달아 한 주둥이 가득 거품을 문 낌새로 꿀꿀대것다.
“썩을 놈의 도야지새끼까지 맞장단질이네거…… 하매 새로 두 점이나 됐것구만.”
뻐근한 목덜미를 살모사 고사추 올려다보듯 세워 수선스러운 별밭을 올려다보던 석포댁은 마른 하품에다 썰거리 진내를 날리며 토방 안을 휘둘러본다.
허연 달빛만 연기처럼 뿌옇게 들어찬 토방은 먼 밤새 소리에 닿아 적적하다 구 속에서 밤벌레 소리만 또그르또그르 눅눅하게 젖는다.
멍석 위에서는 필녀의 숨길이 노 닳는다. 그 숨소리라는 것이 검불 불질에 무쇠솥 밑창 닳듯 하는데, 두 겹짜리 홑이불은 빨래 짬질할 떼처럼 둘둘 말아 터억 사추리 안에다 껴고는 튼튼한 허벅지 겹다리가 옴싹 못하게 또 한 겹 용골을 틀었다.
홑이불이 허리춤 아래로만 사뭇 밀리는 터라 허옇게 드러난 박살 같은 오진 젖가슴 위에서는 희뿌연 달빚이 몰살처럼 놀것다.
석포댁은 실눈을 내려뜨고 필녀의 젖가슴을 본다. 필녀의 젖가슴이 몇 번 거들거들 디딜방아를 찧는다 싶더니 이내 목젖에 차는 괌질을 무는 성싶다.
석포댁은 또 그 앙칼진 잠꼬대가 터질세라 그새 이슬이 내려 눅눅한 필녀의 젖가슴을 우악스립게 혼들어댄다.
석포댁의 꺼슬대는 손바닥에 필녀의 젖가슴이 와 닿는다. 며느리의 젖가슴은 흠사 잘 빻아 반죽을 치운 찹쌀버무리다. 그렇다 생각하니 벌써 오 년째나 홀몸인 필녀가 못내 안쓰럽다.
필녀는 번뜻 눈을 뜨는가 싶더니 댕겅하게 앉아 있는 삭포댁을 살피다 말고 저고리 앞섶을 암팡지게 조여쥐곤 후닥닥 일어나 앉는다.
“안 지무시고 뭐허세유?”
“윗따메, 말씀 한번 오지고 고맙구먼잉. 잠자리가 오봇혀사 시상 편하게 꿀잠을 자지. 니가 내지르는 소리에 귀창이 곪아 떨어지는디도 잠을 자야? 니는 잠자다가 공자 달통혔능갑다.”
필녀는 제 잠꼬대 소리는 까망게 은 기색이다. 훼훼 고개를 내두르는가 싶더니 엉뚱하게도 애가 탄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지유? 그치유? 저도 잠결에 들었어유.”
석포댁은 걸죽한 콧물을 패앵 풀어치고는 콧날이 간지럽도륵 오진 콧방귀를 뀐다.
“흥!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들었능갑다. 내 귓구멍은 아직도 대낮맹끼로 밝다만 내 귀로는 니 악쓰는 소리배깨 못 들었응께.”
“그류?…… ·참말로 들었는디유…….”
“아, 뭔 소리를?”
“돼지 소리유!”
“우리 씨도야지가 울댜?”
“안유…… 암도야지가유.”
“이잉, 끌끌ㅡ야밤중에 워디서 암도야치가 운댜? 니 참꼬대 소리가 영락없이 암도야지 씹애리는 소리를 내드라. 치이一.”
석포댁은 무슨 일인지 가슴 한구석이 싸아 아려온다. 고춧물을 마셨을 때처렴 맵기도 하고 해소병에 박하수를 넘겼을 때처럼 선뜩하게 오장이 시려오기도 하는 거였다.
“자두지그려. 잠을 오지게 자야 육신이 성혀나지. 농사일은 사태루다 밀려 있는 판에 몸까정 허해지면 워쪄? 보따리 맞잡어 멜 끄나풀 신세도 못 되는 지집년 둘이가 추세우는 살림인디…….”
석포댁은 필녀 몰래 고춧잎이나 마저 다듬어놓으려니 생각하며 우두둑거리는 무릎을 펴고 선다. 업지발가락에 고무신 코가 꿰지기 무섭게 우루루 돼지우리께로 내달아 요동질을 쳐대는 씨도야지의 피둥거리는 등줄을 오지게 쥐어박는다.
“아니, 잠은 안 퍼자고 믄 벼슬을 했다고 야밤중에 지랄이여? 그녀러 지집년 생각은 잠도 안 온당가?”
필녀가 휑 돌아누우며 목에 잠기는 소리다.
“놔두지 그류…… 내처 자겠쥬.”
석포댁은 뒤안 고추더미 앞에 풀석 주저얹으며 곰곰이 생각해보것다. 벌써 여러 날째 필녀의 잠꼬대는 뿔이 돋쳤다. 필시 살이 껴도 단란히 꼈다 싶다.
“앰지발구락에다 녹두알을 얹어놔도 이불 걷을 때까지는 그대로 있었을 거여…… 그렇게도 잠덧이 곱던 애기가 워쩐 일루다 저려! 홑이불은 씨애미 모서리까지 다 뺏어다가는 사추리 안에다 용골을 틀구 그냥 화덕불에 놀랜 짐승맹끼 급하디급한 소리만 때띠 내지르고는…….”
석포댁은 고춧잎을 훑어내리며 달빛에 비끼는 용산을 멀거니 올려다본다. 두어 소쿠리만 훑어내고 나서는 용산 서낭당으로 내달아 명주보쌈이라도 걸어보려니 생각하는 거였다.
석포댁은 인중골이 당기도록 바짝 아랫입술에다 오기를 심는다. 건성으로 끄덕끄덕 해보는 고개짓이지만 석포댁 속마음은 무당 만덕이년 사설이 못내 고깝다.
“잠 못 자는 병은 구귀살이 껴서나 그렇구유, 잠덧 더러운 것은 돈귀살이 껴서 그런 거유. 개귀신 씌우면 눈골이 사백창이 되구유 도야지귀신이 씌우면은 목청이 청대문이 되는 거유 그러니까는 대구 야밤중에 괌질이구 지랄을 떨지유.”
“잠은 억척스립게 잘 퍼자니까는 개귀신이 씰 리 없고잉, 그란디 그놈어 잠꼬대가 탈이란 말여. 아, 그저께 밤에는 필녀 잠꼬대 소리에 놀래서 옆집 주안댁이 속곳바람으로 뛰쳐나왔다잖어? 그 여편네 주둥이가 초랭이 방정도 대낮에 마른 번개질을 칠 판인디 오직혀것어? 새복참에 시암에 나갔드니 나팔꽃 주둥이 벌어지기도 전에 소문이 짜악 깔렸드랑께는. 내 며느리가 실성했다구 말여.”
“아, 그러니까는 하는 소리 아닌게뷰? 눈 따악 감구서나 씨도야지를 없애사 쓴다니 깐유.”
석포댁은 만덕이년 말끝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꼬리가 찢어져라 오기를 뻗치고는 끄응 일어나버리고 만다.
시앗돼지만 꼬박 이 년을 길러내 겨우 마련한 씨돼지다. 씨돼지를 치기 시작한 것은 겨우 석달 전 ― 종자가 좋다고 시오리 밖 현천에서까지 암퇘지를 몰고 와 토방 안이 온통 돼지 괌질 소리로 뜰 때면 처친 어깻죽지가 절로 들썩대는 석포댁이렷다. 어디 그뿐이더냐 암퇘지가 방정 떨어 제 밥로 못 찾아올 때면 석포댁은 닷근은 실히 나간다는 함지박만만 불알통을 털렁대며 거품을 문 씨돼지를 앞세워 몰면서 기둥 같은 아들놈 하나 얻었거니 하는 기분이었다.
논밭 널린 것 합쳐서 얼굴 번듯이 들고 마슬을 돌 정도로 농사꾼 체면 겨우 해보는 석포댁었지만, 그래도 살림에 기름발을 먹여주는 것은 이 씨돼지가 물어다주는 심심찮은 씨값이던 거였다.
씨값 석달을 모아 계를 묻은 것이 장마철에 콩떡잎 솟듯 하는데 이제라고 씨돼지를 없애서는 물 넘는 밥솥에다 간수를 퍼넣는 꼴을 어찌 당하랴도 싶고, 그보다도 우선 며느리 뒷치레를 생각해서라도 씨돼지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 먹는 석포댁이었다.
석포댁은 만덕이년 사설을 건성으로 흘리면서도 필녀가 돈귀살이 꼈다는 데에 이르러는 떨이 보리명석 위에 터진 속곳바람으로 앉은 듯 개운치 않다.
사립 앞에 이르러 석포댁은 귀를 바짝 쫑그리고 선다.
꿀꿀대는 씨돼지의 소리가 잔뜩 성급한 숨줄에 실린 품이 틀림없이 암컷을 본 낌새렷다. 씨돼지의 거품을 뿜는 소리에 섞여 간간이 암컷이 자지러지는 소리도 낸다.
석포댁은 사립을 들어서서 거침없이 토방께로 내달으려다 말고 우뚝 서버리고 만다.
비지거품을 엿물처럼 달고 온 토방 안을 갈고 다녀야 웅당할 씨돼지는 우리에 갇힌 채요. 좀전까지 강그러지는 소리를 내뿜던 암컷은 형체도 없것다.
허망해서 돼지우리께를 넋빼고 바라보던 석포댁은 솔가지 덤불 속에다 몸을 숨기면서 털썩 무릎을 꺾고 만다.
“아니, 아니 쟈가 먼 일이랴?”
석포댁은 별 시겁잖은 꼴도 다 본다 싶다. 돼지우리 앞에 쪼그려 앉은 필녀가 긴 작대기로 씨돼지의 배퉁이께를 꾹꾹 질러대며 심술사납게 내뱉는 말이것다.
“미쳐 날뛰어봐여! 얼라? 얼라? 도망만 다니지 말구 미쳐 날뛰어보라니깐! 어서, 어서! 거품 내물구서 어서 날뛰어봐여! 어서!”
씨돼지는 견디다 못해 화뿔이 돋쳐 우리 안을 뜀질이다. 씨돼지가 잔뜩 성질이 받쳐 꿀꿀대자 필녀는 강그러지는 암컷 소리를 흉내내면서 벌겋게 목덜미를 붉히는 것이렷다.
“쟈가 참말로 돈귀살이 꼈당가? 얼라? 얼라? 자가 워째서 저려?”
석포댁은 어이가 없어 솔가지덤불 속에다 몸뚱이를 묻어버린다. 가슴 속이 갑자기 써늘해온다. 잠결에 내지르는 필녀의 앙칼진 잠꼬대 소리는 바로 저 소리렷다. 석포댁의 머리골이 시끄렵다.
인물로나 일꾼으로나 필녀를 따라갈 계집은 없는 터다. 봉암리 필녀라면 오십 리 밖 한티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청청 푸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도 오 년째를 한결같이 한숨 한자락 청승맞게 내쉬어본 적이 없었고, 일손에 불이 붙었다 하면 해넘는 줄도 몰랐다.
그런 며느리가 만덕이년 말처럼 돈귀살이 껴서 정작 실성했는가 생각하니 석포댁의 머릿속은 씨아 틀린 물레처럼 어지럽다.
석포댁은 선뜻 기척을 하기가 쑥스러워 목젖에 걸리는 헛기침 한가닥을 째앵 쥐어짜놓고 보지만 서리내린 풀섶에서 강그러지는 여치울음만큼 가냘가냘 맥이 없다.
그 짬에 놀란 필녀가 말복 메뚜기 볏섶을 차듯 토방을 차고 일어선다.
“도야지 구정물 주능겨?”
“……안유…… 워찌나 시끄럽게 용을 써서는 간짓대루다 몇 대 쥐알리고 있는 참이유.”
“지집년 생각이 동혀서 지랄을 떠는갑다…… 내가 잘못 들었능가? ……암컷 방정지랄 떠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서 겁붙는가 했었디말로.”
“……암퇘지가 어디 있겠유?……엄니가 헛소리를 들으신게쥬.”
석포댁은 잎도 큰일이다 싶다. 길기도 한 한숨이 절로 새것다. 씨돼지를 부러 울렸던 사람도 며느리였고, 암컷 강그러지는 소리를 내질렀던 사람도 며느리였었는데, 며느리는 상기도 불그레한 얼굴을 빤빤히 쳐들고는 말을 뒤엎고 나선다.
석포댁은 뒤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필녀의 탄탄한 엉덩이에다 눈길을 모은 채 낱낱이 꼽아본다. 필녀가 정말 실성했다면 씨돼지가 씨를 치기 시작한 연후부터렷다.
“두달허고 열아곱 나얄―.”
석포댁은 허망해서 돼지우리께를 벌거니 건너다본다. 필녀 말대로 시끄럽게 용을 써대기는커녕 씨돼지는 늘어진 불알통을 느슨느슨 들먹대며 곤하게 잠이 들었다.
중의 가랭이를 너풀대며 훤칠한 범수가 토방 안으로 들어선다.
범수는 암퇘지롤 몰아붙이면서 난처한 기색이다.
“계시남유…… 기세유?…….”
범수의 카랭대는 소리가 느긋하게 봉창을 넘어 떼구로 방 속으로 떨어진다.
찢긴 문살 새로 토방 안을 내다보던 필녀는 그만 단내나는 숨줄을 목구멍에 걸고 기겁한다.
봉암리에서 손꼽는 상답농사꾼이요 홀애비인 범수여서 필녀에게는 달리 연고가 닿은 적도 없었지만, 암컷을 보자마자 비지거품을 내뿜고 길길이 미쳐 날뛰는 씨돼지를 보면서부터 느닷없는 불기둥을 다는 필녀다.
“워쩐 일이시쥬?”
필녀는 저도 몰래 잔몰살 같은 눈웃음을 건네준다.
“돼지가 씨를 친다기에 듣구 왔쥬…… 아휴 고거 무척 컸네유.”
“벌써 씨를 쳐두 괜찮을까유? 엄니가 안 기셔서 어떡허지유?”
범수는 농사꾼답지 않게 희고 가늘거리는 긴 목덜미롤 엇비슷이 틀며 싱긋 웃는다.
“쥔양반 허락받구 장가들 철은 벌써 지났는데유 뵐. 아유―고거 워쩜 이렇게두 자알 났지유? 사백 근은 실히 나가겠네 고거…… 주인이 우리 빗장을 풀어줘야지 씨도야지 구실을 허쥬. 뭣허고 계시남유?”
범수는 햇빛이 무척 부시고 시리다는 듯이 가늘게 뜬 눈을 파르르 떨어 본다.
필녀는 멈칫거리다 못해 우리 빗장을 벗긴다.― 씨돼지는 사믓 미쳤는가 싶다. 엿물처렴 끈끈한 거품을 반장게 물거품 끓이듯 바글바글 뿜어대며. 단번에 덥썩 암컷을 덮친다. 씨돼지의 크낙한 몸집에 비해 족히 절반은 모자람직한 암컷이 풀썩 앞다리를 꺾고 고꾸라진다.
“이놈 지금이 첫장가 드는 거지유? 맘만 잔뜩 급해가지구서나 정신을 빼는데유 그치유?”
필녀는 가슴속에 덜그렁대는 디딜방아 소리를 듣는다. 귀청 속으로는 물솥이 끓어 범수의 말은 하냥 멀기만 하것다.
“……그런가봐유.……저는 음써두 되것쥬? 볼일도 많구유…….”
필녀는 이때다 싶어 날렵하게 등덜미를 돌린다.
범수의 도리질이 거세다.
“천만에유 우리가 도와줘사 성사가 되유. 즘생들 첫장가는 개만 빼놓고는 죄다 사람 손이 가사해유……이거 좀 붙들어주세유.”
범수는 암컷 주둥이를 새끼줄로 꽁꽁 묶어쥐고는 그 새끼줄 끝을 필녀의 손에 쥐어준다.
“암팡지게 땡겨야 해유. 그래사 씨도야지가 구실을 허지유 암컷이 첫배가 되서나 원칸 오두방정을 떨어야쥬 원.”
필녀는 돌아선 채 자지러지는 암컷의 울음을 듣는다. 진저리를 치며 목덜미를 떨어보는데 손목의 힘이 그만 풀린다.
새끼줄을 놓쳤는가 싶다. 범수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저만치 달아나는 새끼줄을 쥔다. 범수는 다시 필녀의 손목을 꼬옥 잡는다.
“왜 그류?…… 이렇게 꼬옥 쥐어사지유…….”
“아휴우―손에, 손목에 맥이 없는 걸 어떡해유? 아휴우.”
“요렇게…… 요렇게……요렇게.”
범수의 손아귀 속에 잡힌 필녀의 손목이 흥건한 땀줄을 짜대며 바르르 떤다. 삽자루 같은 범수의 우람한 손목도 거들거들 떨어대것다.
필녀는 잠시 후 그만 아찔한 어지러움증을 느낀다. 둥둥 몸뚱이가 떴는가 싶다. 훈이 시린 햇살만 사근지게 녹아나는 허공 위에 힘줄이 불거진 범수의 팔뚝이 가지런히 눕는다. 펄녀가 그 가지런한 팔뚝 위에 실려간다. 사지는 결박을 당한 듯 뼈이음매 마디마디까지 굳고 몸뚱이는 하냥 조여들 뿐이렷다. 검불단에 볼씨가 떨어지는가 싶다. 풀무질 소리가 드세고 전신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꿀벌 떼가 윙윙대는가 싶다. 포개 앉은 까치가 깃을 펴득대며 우짖는가 싶다. 뻐근한 불기둥이 전신에 불을 지피는가 싶고, 필녀는 허리통이 굳는 듯 안타까운 똬아리를 틀며 입 천장이 타는 듯싶다. 토방 안에서 암컷의 앙칼진 울음이 터진다. 따라서 필녀의 목청도 터진다. 목구명 속으로만 솜타래처럼 멍울멍울 뭉쳤던 소리가 봇둑을 밀고 쏟아진다.
필녀는 젖가슴 위로 거센 매질이 떨어진다 싶다. 필녀는 그만 소스라쳐 일어나 앉는다.
“이고, 웬수여! 아니, 그렇게 쥐알려대는 데도 대고 괌질만 펴내지를 건 뭐여? 대체루다 워쩐 일로 니가 이려? 엉, 아니 워째서 하필이면 암돼지 강그러지는 소리만 내지르능겨? 아니, 니 참말로 실성했냐 잉?”
“……꿈을, 꿨능게뷰…… 엄니 죄송혀유! 다신 안 그럴거유…….”
석포댁은 필녀의 어렴상스렵고도 또 깍듯한 말을 들으면서 실성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도 천연덕스러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렷다.
“내가 실성했냐? 실성한 년이 나란 말여?”
이렇게 중얼대는 석포댁은 수선스러운 별발에다 눈길을 모아보지만 석포댁의 눈길도 정신도 한치 빗나간 데가 없것다.
북동편에서 머리통을 틀은 용산 위로부터 쏟아져내린 은하수는 남서편 삿갓봉을 향해 어김없이 댕기처럼 치렁치렁 늘어졌다.
석포댁의 긴 한숨가락이 유독 청승스럽게 멍석 위로 떨어져내리자 필녀는 어느 때보다도 시어머니가 측은해서 견딜 수 없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낮게 중얼거려본다.
“워쩐 일루다 꿈자리가 이리도 생생혀. 그쩍 일이 워쩌면 이렇게도 생시로 뵈는 줄 몰라여!”
오십 리 밖 한티까지 행보하여 용하다는 한방의 약방문은 다 받아다가 보약첩까지 달여 먹여봤지만 필녀의 실성기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터였다.
한방 말이 몸이 허해서 그런다 하기에, 그간 황소처럼 며느리를 부린 것이 가슴에 걸려, 지레 꼽잘스러운 눈물을 짜대며 간을 태웠던 석포댁이것다.
보약첩이 막사발을 내고도 필녀의 실성기가 여전함에 이르러 석포댁은 누구보다도 범수가 섭섭한 거였다.
봄철까지만 하더라도 얼큰한 취기를 얹고는 안달나게 혼인줄을 넣었것다.
“필녀 나 줘유 봉암리 싸악 쓸어봐유. 나만한 홀애비가 워딨유? 안 그류? 농사도 두 집 합허면 원칸 쉬울 거구유. 눈 따악 감고 나 줘유. 보쌈 채루다 누굴 줄려구 그류?”
석포댁은 이런 범수에게 단 한번인들 고개를 내저어본 적은 없었다. 농사꾼으로서야 범수처렴 암팡진 일꾼도 없으려니와 사람됨이 또 한량 없이 수덥해서 제 편에서 중의 가랭이에다 불질을 안 달더라도 석포댁은 은연중 마음을 새겨놓고 있던 터다.
처서 지난 참깨밭처럼 이렇듯 턱 믿었던 범수가 필녀년이 실성했다는 소문이 깔린 뒤로는 낯짝 한번 얼씬 않는다.
석포댁은 몇 날째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범수를 제 발로 찾아나선 참이다.
만덕이년 말처럼 돈귀살이 껴서는 필녀 정신을 옴싹달싹 못 하도록 붙들어 맨 것도 아닐 것이 실성한 계집이 어디 그렇게도 차근차근 일손을 놀릴 수 있겠으며, 잠자리에서 내지르는 돼지 소리만 아니라면 사추리에다 용골을 틀어죄는 잠버릇쯤 석포댁도 몸소 치러봤던 혼한 일이것다.
“다 허전해서 그러능겨. 홀애비늠 버개 안 베구서두 자지만 홀앰씨는 벼개 없이는 못 자는 법여…… 젊으나 젊은것 앞에서 아무리 즘생들이제만 씨를 붙구 허니까는 허리통 기름살이 빠지느라구 잠자리가 그리 드세지는 거구.”
석포댁은 두런두런 혼잣소리를 해대며 안짱다리가 뻐근하도록 치마귀에 바람을 잡는다. 한켠으로 생각하매, 며느리가 정말 실성했다면 그래도 실성기가 저만할 때 개가자리라도 보하둬야 눈을 감기라도 할 것 같은 심사것다.
석포댁은 마침 토방 안에서 콩대를 털고 있는 범수가 눈에 든다. 툇마루가 덜컹거리도록 주저앉는데 눈꼬리는 벌써 때까치 새끼 잃고 화뿔난 꼴이렷다.
“워찌 오셨는게유. 그렇잖아두 한번 찾아뵐려구 했디말로…….”
“찾아뵈? 흥! 믄놈어 발길이 그리 모질당가? 알자리만 치루구 도망질한 뻐꾸기도 그렇진 않을껴.”
석포댁은 포오―한숨을 내뿜는다. 중의 가랭이에서 풍경 소리가 나도록 범수가 보챘던 일을 이제는 내 편에서 공알빠지게 서둘러대는가 싶어 울컥 가슴이 메이는 석포댁이다.
“우리 애기 소문 들었것제? 그래서 몰강스럽게 발길을 자르구…….”
석포댁은 새삼 설움이 치밀어 땟물이 절은 치마폭을 쥐어잡고는 패앵 콧물을 폴어친다. 말문만 트면 금세 갑절은 부어오른 콧망울 속에서 맹맹거리는 투정이 울음에 섞일 판이다.
범수는 실눈을 해가지고 잔뜩 실주름을 잡은 눈꼬리에다 가당찮다는 웃음기마저 얹었다. 발치 밑만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다.
“치이…… 실성은 믄놈어 실성이유…… 무담씨 말들 좋아해서나 탈이여……실성은 누가 실성혀?”
“……?”
“그나저나 필녀 자알 있어유?”
석포댁은 범수의 차근차근 감쳐드는 말투가 너무 뜻밖이어서 도적놈 줄행랑친 중문처럼 동그랗게 입을 벌린 채다.
“왼동네가 다들 우리 애기 실성했다고 벌벌 끓어대는디 자네만 그래도잉……아암―자알 있다마다!”
석포댁은 범수의 손목을 덥썩 움켜쥐고는 한 손목으로는· 눈꼬리께에서 끈적대는 늘축한 눈물을 닦는다.
“이보소 범수! 우리 펄녀 데려갈 맴 없능가? 아조 즉결루다 잘라봐! 워쪄? 어이?”
“……나사 천 만번 좋치않구유!”
“그려?…… 그람 아조 날을 잡세. 외짝들 코맞추는디 떠들썩허게 방을 달 필요도 없구 안 그러?‘
“……혼사야 의당지사 가슬에 치러야지유, 그라고 아무리 홀앰씨 홀애비끼리라두 벼락혼사를 치를 건 뭐남유? 필녀하고라면 나는 좀 떵떵거려봐야 쓰겄유.”
석포댁은 범수가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다시 우르르 무너져내 리는가 싶다.
“……끓는 밥솥허구 혼사는 단김에 불을 지피라 혔는디.”
석포댁은 풀이 죽어 내뱉으면서 흘낏 범수의 얼굴을 살펴본다. 범수는 그저 차분하다.
“차암―복더위에 믄놈어 혼사유 농사 거둬들이구 나서 가슬참에 을려야쥬.”
석포댁은 용산의 흐릿한 허리춤에다 눈길을 떨군 채 또 풀이 죽는다. 일은 기어코 틀리는가 싶것다. 사내놈들 흉중이 다 그러려니 생각하매 필녀의 실성기가 또 가슴속에 맺힌다.
‘넉살도 없는 년! 진작 한번 정신 못 차리게 후려잡던지…… 좋은 서방깜 지년 곁에다 두고는 이 늙은 씨애미가 요로코름 천던꾸러기가 되야혀?“
석포댁은 싸아 하고 맵게 우는 콧날을 쥐고 패앵 콧물을 풀어친다. 그러는데 별안간 돼지 울음이 자지러진다.
“웬녀러 도야지가 저렇게 앙칼지게 처운다?”
석포댁의 귀청 속으로 며느리의 잠꼬대 소리가 들어앉는다.
“저녀러 암컷이 암내가 나서눈 저 지랄 아닌게뷰.”
순간 석포댁의 눈꺼풀이 한겹은 실히 올라붙는가 싶더니 치뜬 사발눈 속으로 야릇한 광채가 일렁이것다.
“그라먼 접을 붙이지그랴 오십 리 밖 한티까정 쩡쩡 소문난 씨도야지를 동네에다 두고 먼 근심이랑가?”
“……글씨유…….”
석포댁은 치마귀에다 신바람을 잡고 휑 사립 밖으로 내닫는다. 그 좋은 씨돼지는 뒀다가 어디에다 써먹을 거냐 그저 씨돼지 네놈이 중매 들어서는 우리 필녀나 범수 양각에다 묻어줘. 비좁은 논길 위에다 질척대는 맨발도장을 찍어대며 석포댁의 치마귀는 당사춤을 춰대고 고무신 한 짝은 벌써 헛딛은 논바닥에다 처박은 지 오래것다.
범수놈 심사가 뻔한 것이렷다. 계집이 없어 실성한 년 업어갈까 보냐. 박정하게 자를 수 없어 가슬로 추근추근 미뤄보는 것이려니 ―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석포댁의 목구멍에서 역한 단내가 후욱 치솟는다.
“내가 씨도야지를 몰고 을 테제만 만약 사람을 시키면 그편에 혼사 기별주어. 가슬은 너무 늦단마시!!”
석포댁은 먼발치의 범수를 향해 목청껏 소리쳐본다. 석포댁은 사립을 들어서자마자 우르르 돼지우리로 치닫는다.
“아가! 아가! 어디 있능겨?”
필녀가 뒤안에서 고춧잎 소쿠리를 이고 돌아 나온다.
“웬일루 그리 급허세유?”
“느닷없이 배창시가 싸아 해옴시리 설사끼가 동혀서나그려.”
석포댁은 부러 아랫배를 움켜쥐고 죽을상을 지어본다.
“저어…… 저어…… 니가 씨도야지 좀 몰고 가사 쓰것다!”
필녀는 시어머니가 허겁대는 꼴이 예사스럽지가 않다. 씨를 내리기 시작한 뒤로 씨돼지 몰이는 석포댁이 도맡아 온 일이 아닌가.
“아휴, 엄니는 믄 말씀을 허시능게유? 지가 워티께 씨도야지를 몰아유? 젊으나 젊은것이 어디로 씨도야지를 몰아유? 엄니도 차암―.”
“아니, 젊다고 씨도야지 한번 못 몰은다냐? 항차 믄소리여? 응당지사 내가 몰고가사 쓸일이제만 싸아하니 뱃속이 틀어서나 이 난리 안여? 몰고 가다가는 이 씨애미가 길바닥에서 물똥을 퍼내질러도 좋단 그 말이여?”
“어디로유?”
“범수네 집!”
“……예에…….”
필녀는 순간 돌처럼 굳는다. 목덜미에서 일기 시작한 불김이 삽시간에 온 얼굴을 벌겋게 태운다.
“놀랠 것이 믓이여!…… 후딱 몰아여!…… 그라고 기별 한자리 듣고 와여. 나헌테 전할 말이 있을껴.”
석포댁은 말을 마치기 무섬게 우리의 빗장을 드윽 뽑는다. 빗장만 뽑으면 미쳐 날뛰는 씨돼지것다.
“저, 저런! 한정놓고 내뺀다 저놈어 도야지! 어서 안 몰구 뭣혀?”
씨돼지가 겅중겅중 사립 밖으로 내닫는다. 씨돼지의 엉뎅이를 좇아가는 필녀의 엉뎅이도 사뭇 보챈다.
장딴지가 당기도록 얼얼한 꺾지발로 선 채 필녀가 몰고 가는 씨돼지를 보다 말고 석포댁은 맥이 풀리는 무릎을 쩌으며 또 꼽잘스러운 눈물을 닦는다.
“이구우 불쌍한 녀연―워쩌자구 실성기는 들어서나! 워쩌자구 돈귀살은 껴서나 지발로 씨도야지를 다믄댜! 워째 진작 안 뒈지구 살아서나 이 꼴을 다 본다아―끌끌끌―.”
별밭이 유목 수선스럽다. 별밭은 남색천에 참깨알이 흩어진 듯 어지럽고 은가락지 같은 달무리가 아흐레 달덩이를 싸고 끈을 조였다.
석포댁은 조심스럽게 며느리의 등줄을 도닥거려본다. 잠도 억척스레 곤히도 들었다.
필녀가 전하는 말도 ‘가슬’이었다. 석포댁은 기어코 일은 틀렸다 싶어 뜬 눈이 밤새 초롱거리는데, 이 밤따라 씨돼지는 기진해서 죽은 듯 늘어졌고, 필녀는 그 앙칼잔 잠꼬대도 잊었다.
一1976년
2016년 12월 2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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