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향기 / 성혜영
월요일은 고궁이나 박물관은 쉬니까 오늘은 어디로 갈까. 살아 숨 쉬는 기쁨을 확인하러, 만보도 걸을 겸해서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걷고 채우는 기쁨을 알고 나서 어느 곳도 목적지가 될 수 있다. 구경거리가 많은 강남역으로 가자. 그곳은 활기차고 젊음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주 무대인 11번 출구로 나가며 들뜬 분위기에 휩싸인다. 습관적으로 몇 군데 들르는 곳들이 있다. 내 나이 마흔 살 때 좋아하던 나의 공간은 강남역 일대의 어학원. 지금은 카페 서점 극장 등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합세했다. 얼마 안 가니 뭔가 느낌이 서늘하다. 이상한 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추락한 우주선 ‘승리호’란다. 곧 개봉하는 송중기 주연인 영화 ‘승리호’의 광고란다. 처음 보는 공격적인 광고에 놀라 사진을 찍었다. 역시 강남은 강남이다. 그 옆의 스무디킹 집의 간판을 내리느라 동시에 어수선하다. 코로나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우수수 간판을 내린다.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도 우수가 깊어진다.
승리호 날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실감이 나게끔 잘 만들었다. 급변하는 세상에 따라가기가 어지럽다. 반갑진 않지만, 다음은 우주의 시대가 오려는가 보다. 내년엔 민간인 세 명이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여행을 간단다. 티켓값이 무려 600억원이라니...
그룹 BTS도 우주를 노래한다. 야망 방황 꿈을 담은 ‘소우주’라는 곡. 가수 이승윤도 ‘게인주의(GANISM)’에서 ‘헤이 미스터 갤럭시’하며 우주를 노래한다.
‘싱어게인’이란 오디션 프로가 얼마 전에 끝났다. 우승한 가수 이승윤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아니, 적어도 심사위원들과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시점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을 때 시작이 된다. 인디 밴드를 한 30호 이승윤의 음악적 색깔이 좋았다. 그는 허니, 치티 치티뱅뱅,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소우주, 물을 노래했다. ‘소우주’란 곡을 노래하자 나는 방탄소년단의 그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BTS의 소우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인지 비로소 알았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 의미를 둔 노래.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방황하는 외로운 이들에 손을 내미는 듯 가사가 따스하다. 이적의 ‘물’로 우승을 하자 그 노래를 찾아서 되풀이해 들었다. 용산 가족공원을 산책하며 흥얼거리고 다녔다. ‘물 물 물 물 좀 줘요/ 목 목 목 목말라요/ 내 머리가 흠뻑 젖게 해줘요’라고. 딸과 외손자는 래퍼 ‘원슈타인’의 랩을 부르고. 새로운 가수와 노래의 중독성에 빠져 잠시 코로나를 잊는다.
요즘 서점에 가면 앉아서 읽을 공간이 없다. 세 권을 훑어보고 한 권만 사 오는 재미랄까, 이런 재미도 코로나가 야박하게 밀어냈다. 곳곳마다 책상, 의자 등을 없앴다. 궁금한 책은 사서 집에서 볼 수밖에. 이참에 서점 장사나 잘됐으면 좋겠다. 연보랏빛 ‘프리즘’이란 책이 눈길을 끌었다. 성장소설 ‘아몬드’를 쓴 젊은 작가의 새로운 책이다. 프리즘은 손원평 작가의 두 번째 책. 어릴 적 한 번씩은 갖고 놀던 무지갯빛의 프리즘. 프리즘처럼 책도 빛이 났다.
‘프리즘’은 네 사람이 등장하는 연애소설이다. 재인 도원 예진 호계 네 사람이 주인공. 젊은 작가의 책이라선지 슬랩스틱, 녹음실용어 ADR, 힙스터 등의 용어가 낯설다.
주인공 예진과 호계는 SNS 불면증 채팅방에서 만난다. 그들과 재인 도원 ‘네 사람’은 서로 얽혀 그리워하고, 연애한다. 와중에 질퍽거리지 않고 ‘딱 좋은 거리를’ 유지한다. 신선하다.
프리즘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이승윤이나 BTS의 작곡가가 이 책의 마지막 261쪽을 봐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프리즘이란 곡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방탄이나 이승윤이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프리즘 261쪽
은하수와 프리즘의 상관성은 빛나고 신선하다. 젊은이들의 야망 방황 꿈을 담고 있다.
손원평 작가, BTS, 가수 이승윤 등을 떠올려본다. ‘젊은 냄새’에서 ‘젊은 향기’로 이 글의 제목을 바꿨다. 이들에게서 신선하고 달콤한 냄새가 내게 전해진다. 일본어 선생 가츠미가 냄새를 구분해주었다. 몇 년 전 어느 봄날, 공부 가는 길에 가츠미 선생을 만났다. 꽃이 핀 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는 “꽃냄새가 참 좋아요.”하며 말을 건넸다.
냄새의 표현으로 전에 배운 니오이란 단어를 썼다. 선생은 좋은 냄새니까 향기향의 카오(香)리를 쓰면 좋다고 했다. 우린 ‘~~냄새’라고 냄새 앞에 형용사를 붙여서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데, 우리와 그들은 다르다. 그 이후로 좋은 냄새를 맡으면, 향기향의 카오리가 떠오른다. .
손작가, 방탄, 가수 이승윤은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므로, ‘젊은 향기’라는 표현이 옳다.
상실의 시대 코로나에 얻은 새로운 사람들. 그들의 색깔로 내 마음이 차오른다.
‘와카이 카오리’는 젊은 향기란 일본말이다.
열심히 사는 그들의 언저리에서 젊은 향기가 피어오른다.
2021.2
한군산문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