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살 때 한 번은 길에서 우연히 처음 이민왔을 때 영어학교에서 가르치던 선생을 10년만에 만났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에게 영어를 배웠다.”라고 하자 뜻밖에도 “기억하고 말고.”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그 동안 수 백 명의 이민자들을 가르쳤을 터인데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뜨악하고 있는데 "지금도 좌빨이냐?"고 농담까지 던져서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하니까 여 선생이 “잔디깍기.......” 하길레 “아~! 생각이 난다.”라고 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내가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들이 잔디 깎기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있는데 그 돈이면 아프리카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매우 농촌스런(?)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호주 방송에서는 한국에서는 보도가 잘 안되어 자세히 알지 못했던 제 3 세계의 상황의 보도가 많다. 아마도 그들의 굶주림이 TV에서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영어 선생은 아마 내가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내가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를 그 선생이 10년이 지나고도 기억을 하고 있을까?
극단적인 반공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는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 요즘 윤 군에게서 보는 것처럼 반공과 자유를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세력의 뿌리는 해방 직후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쓴 맛을 본 월남한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공산주의는 사탄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으며, 기독교 구원 사상과 선민의식은 한국이 세계 반공 전선 최전방에 서서 사탄을 물리칠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허황된 원리와 결합됐다.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괴물', '악마', '붉은 용' 등으로 묘사했다.
그런 분위기는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전두환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거의 그대로 지속되었고 그 동안 생긴 대형 교회는 현재까지 한국의 집권 여당과 보수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든든한 표밭이자 기둥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