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숲
최연수
숲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풀무질로 소문을 지피지 않아도 용케 찾아온 벌들이 노란 옷 한 벌 걸쳐 입듯 온몸에 꽃가루를 묻혀 나간다. 그새 한 생을 잠근 꽃들은 바닥에 누워있다. 이 고요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먼 유년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영감은 소문난 건강을 유지했다. 마나님은 이미 세상을 등졌지만 장수 복을 타고났는지 몸이 꼬장꼬장한 지팡이였다. 매끼 정해놓은 양만 취하고, 동네 뒷산을 마실 다니듯 오르내리는 일과는 웬만한 노인들은 근접도 못하는 체력이었다. 영감의 하루는 ‘재수 떼기’로 시작되었다. 담요 위에 화투장 몇 줄 깔아놓고, 한 장 한 장 패를 뒤집어 그날의 일진을 살폈다. 매일 거를 수 없는 의식에서 일진 사납다는 괘가 나올 때면 자식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무런 근심 없을 것 같은 영감이었지만 가슴 저 안쪽에 접어둔 고민은 있었는지, 사람들이 빙 둘러앉은 자리에선 조심스레 생각을 꺼내놓았다.
“병치레로 자식들 힘들게 하지들 말어. 정신 줄 놔서 못 볼 꼴 보이지도 말고. 잠자듯 조용히 눈감으면 최고야.”
어린 나와는 달리 어른들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 날 입이 빠른 동네 어른이 영감의 부고를 들고 달려왔다. 아침 기척이 없어 아들이 문을 열자 영감은 벽에 기댄 채 앉아있더라고 했다. 어김없이 바닥엔 화투장이 깔려있었고, 막 패를 뗐는지 한 장은 손에 들려 있었다고 했다. 영감이 손에 잡은 일진은 어떠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특별히 앓지도 않았고 기억이 지워지는 일도 없어 자식들 고생시킬 일 없었던 노인의 마지막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나님과 해후했을 영감, 어쩌면 그 먼 곳에서 하루의 패를 뒤집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버지 잃은 슬픔을 그렁그렁 눈에 담은 자식들은 호상이라는 말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조등이 내걸리고 대문 열어젖힌 너른 마당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영감을 모신 대청마루에선 상복을 갖춰 입은 자식들과 손자들이 정중하게 문상객을 맞았다. 마당엔 천막이 쳐지고 멍석이 깔렸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예의를 갖추느라 엄숙했지만, 편히 가셨다는 말을 서로의 술잔에 부어주었다. 보나마나 좋은 데로 가셨을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무더위 속에서도 아낙들은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음식을 장만해 차려내기에 바빴다. 아이들은 마치 잔칫날처럼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며 쪼르륵 소리 나는 배를 채웠다.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옛날이야기에서처럼, 사람의 최후는 아주 무섭거나 가슴 한쪽을 사정없이 벼리는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 알 수 있었다.
그날, 마당 한켠 몇 그루 무궁화나무가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영감이 심고 영감의 손길로 자라 꽃을 피운 나무들이었다. 담에 제 모습을 흑백으로 복사해놓고 있는 그들은 꽃 하나가 목을 버리면 약속이나 한 듯 다음 목이 떨어졌다. 그러나 제 식솔을 보내면서도 나무들은 여전히 웃음을 매달고 있었다. 영감의 마지막 길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섞여있듯. 슬프지만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조촐하면서도 조용한 무궁화 장례. 서둘러온 저녁이 벌건 육개장 같은 노을을 차려내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매미가 곡비(哭婢)를 자청했다.
오래전 식목일에 무궁화 묘목을 얻어다 아버지께 드렸다. 공원에서 나누어준 묘목들 주인은 나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적임자였다. 언제 자라나 싶었으나 몇 해 지나더니 웬만한 장정 키 몇 배쯤 커졌다. 진딧물이 끼기도 했지만 부지런한 손길에 걱정은 말끔히 씻겼다. 나무들도 아버지 마음을 아는지 정성에 답례를 보내주었다. 몇 해 전 환한 안부를 매달고 첫인사를 전해 왔을 때 감격에 겨운 아버지는 몇 번이고 나무를 쓰다듬어주었다.
“볼수록 정이 드는 나무야. 제 본분 다하는 미더운 사람 같아.”
아버지 말씀을 상기하며 숲의 무궁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다섯 장 꽃잎은 볼륨 있는 몸매를 숨긴 우단 치마 같다. 바람이 불 때면 허벅지를 드러내는 요즘의 시폰치마와는 멀어 보인다. 꽃잎 저 안쪽 발간 속살은 남몰래 감춘 열정, 연노랑 꽃술은 갈 길을 잃은 이에게 방향을 일러주는 횃불이다. 백여 일간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화의 역사는 끈질긴 생명력이다.
나무가 내려놓은 환한 그늘을 내려다본다. 어디에도 상한 흔적이 없다. 꽃잎이 뜯겨나가지도 않았고 구차한 속이 드러나는 험한 꼴도 보이지 않는다. 호상이다. 환하게 하루를 열었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일과를 닫는 무궁화. 열림과 닫힘을 반복하는 무궁무진한 꽃은 세상사 피고 지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넉넉하게 웃어준다. 아직 반쯤만 열고 있는 우듬지의 하얀 호기심은 곧 문을 열어젖혀 세상을 받아들일 것이다.
바닥의 입 오므린 무궁화를 주운 아버지가 나무의 발등에 소복이 얹어주었듯, 숙연하게 바라보던 나도 꽃을 집어 나무 그늘에 놓아준다. 나만의 장례를 눈치 챈 숲은 매미울음이 짙다.
*제2회 우리숲 수필공모전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