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1 승천 대축일
사도 1:1-11/에페 1:15-23/루가 24:44-53
내려옴과 올라감, 물려줌과 물려받음
날씨가 점점 더위지고 있습니다. 지난 달 부활절에 이곳 한옥성당으로 옮겨서 예배할 때만해도 추워서 난방을 틀었는데, 이제는 머지않아 에어컨을 켜야 하는 여름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모든 것이 순환(循環)하는 환경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을 적시면, 이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수증기가 되어 다시 높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됩니다. 또한 우리 인생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다시 저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어찌 보면 순환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순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물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무생물도 어떤 면에선 살아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예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배 때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Creed)중에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라는 구절은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과 루가 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례순서 상 사도행전을 먼저 읽고, 루가 복음을 나중에 읽어서 마치 사도행전이 먼저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사실, 사도행전과 루가 복음은 루가라는 한 사람이 쓴 두 개의 책입니다. 루가는 먼저 루가 복음을 써서 예수님에 대한 행적을 전해주었고, 다음으로 사도행전을 통해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가 전한 선교행적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쓴 순서로 보면, 루가 복음이 먼저이고 사도행전이 그 다음입니다. 마치, 소설가가 한 작품을 쓰고, 그 작품이 호응이 좋자, 속편을 쓴 것 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루가는 복음서를 승천이야기로 끝내고 이어서 두번째 책인 사도행전을 승천이야기로 시작함으로써 예수님 시대와 교회 시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록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셔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와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도행전이 서술하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보호와 은총속에서 그분의 사명을 이어받아 수행하는 예수님의 또 다른 몸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 승천 대축일을 맞아서 저는 여러분과 예수 승천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 중 강림(降臨)과 승천(昇天)은 매우 중요한 핵심 사건입니다. 강림이란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상으로 내려오셔서 인간이 되신 사건입니다. 반대로 승천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임무를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 영광스러운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신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강림과 승천을 통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느님과 하늘로 올라가신 하느님이라는 순환을 계시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순환을 통하여 세상만물을 경영하시듯이, 이러한 법칙을 통해서도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러한 순환법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내려옴(descent)’이 있어야만 했고, 그 내려옴 이란 구유에 태어나셔서 나사렛 여느 집 자식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시고, 겸손히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스스로를 단련하신 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다가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시는 시련의 과정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부활하시여 제자들에게 궁극적 희망을 보여주심으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시고, 마침내 승천이라는 ‘올라감(ascension)’으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려옴과 올라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 있는 하나의 커다란 순환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희망한다면 예수님처럼 내려옴과 올라감이라는 순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건입니다. 만일 내려옴은 싫고, 올라감만 원한다면 그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헛된 환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법칙이자 구원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어짐이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 시대와 교회시대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승천이야기인 것처럼 승천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어짐, 즉 연속성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만 홀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우리가 보고 따를 수 있도록 친히 육체라는 물질이 되시어 구원의 전 과정을 보여주신 다음, 이제 우리에게 그 방법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 길을 걸어가면,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된다고 선포합니다. 승천대축일은 이런 면에서 우리 구원이 도달하려는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며, 우리는 이 날을 경축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길을 따라 영광스럽게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날이기도 합니다. 2000년의 교회역사를 통해 수많은 성인 성녀 그리고 신실하고 선한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이 오르신 그 승천의 신비를 누리신 분들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러한 승천의 교리를 믿기에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하고 모순적인 모습에도 좌절하지 않고, 진리와 선함이 마침내 승리하고 그리하여 예수님이 오르신 그 아름다운 하느님나라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절의 마지막 주일인 승천대축일에 우리는 전례력을 통하여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해서 승천일까지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전 과정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매년 순환하면서 반복하여 기념하고 그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환은 기계가 반복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번 선명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 완성을 향해 조금씩 깨달아 가는 순례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례가 주는 순환주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고, 희망이 점점 간절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깨달을 수록 우리 각자도 그 사랑을 본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는 때가 되면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 영광스럽게 되신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에 올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영광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12사도를 부르셨지만, 그 중 한 명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저버렸듯이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늘에 올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염원과 응답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것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올라감이 아니라 끊임없는 떨어짐입니다. 거기에는 희망도, 믿음도 없는 곳입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상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망을 가질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영광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단지 ‘교회 나오세요’하는 차원이 아닌,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측은하게 여기시고 인간이 되신 그 마음을 갖고, 악인들과 불의한 이들과 순간의 쾌락과 이득에만 눈이 먼 사람들이 회개하고 영원한 기쁨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승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바로 이 사명(mission)을 이어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온 세상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를 세워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