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방담小心放膽에 대하여
성선경의 해설 「감정의 파장波長과 시어의 전이轉移」를 읽고
평론이라 하든, 비평이라 하든, 대개 Criticism이라는 관문을 거치게 되는 어떤 글월의 가치와 선악善惡·시비是非·미추美醜 등을 분석하여 논하는 것에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 그리고 평론도 하나의 작품이되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의 대상이 되는 작품, 곧 글월의 우수성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쓰면 될까?
새해에 접어들어 박기원의 시집 『마추픽추에서 온 엽서』(수우당, 2023)를 받았다. 그 해설에는 「감정의 파장波長과 시어의 전이轉移」라는 성선경의 글이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라는 기준으로 실려 있다. 시집의 해설은 하나의 평설 형태일지라도, 때로는 평론에 가깝다. 그래서 특히 시인들은 시집을 펴내면서 부록의 형태로서 본문 끝에 ‘해설’을 붙이곤 한다. 그 이유는 어떤 평론가로부터 자신의 작품이 문학적 평가를 받고 싶어서일 게다. 대개 해설이든 평설이든 일정한 양식이 없이 작품에 대한 문학성을 언급하면서, 그 글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중심축이 있다며 글쓰기에 대한 해설의 기준으로서 곧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명나라 구곤호 선생은 ‛작문요결’에서 이것을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란 두 단어로 요약을 했다. 소심은 ‘디테일은 섬세하라’는 말이고 방담은 ‘스케일은 담대하라’는 말이다. … “방담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것이 아니다. … 멋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면 절도가 없고 방탕해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 소심은 꼭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본 것이 광대한 뒤라야 능히 세세한 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심은 방담한 곳을 통해 수습되고 방담은 소심한 곳을 통해 확충된다.”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이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첫째, 구곤호가 ‘작문요결’을 지었는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가?
둘째, ‘작문요결’ 또는 다른 이름에서 ‘소심’과 ‘방담’이란 말로써 제대로 서술되었는가?
일단 구곤호를 통하여 “글쓰기의 방법은 다만 이 두 가지 실마리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한 이 말은 9년 전에, 적어도 7년 전에 처음 쓴 다음의 글을 읽고서 따온 것이라 본다.
대담적가설大膽的假設 소심적구증小心的求證 … 소심한 구증 없는 대담한 가설은 황당한 소리가 되고 만다. 명나라 구곤호瞿昆湖가 쓴 <작문요결作文要訣>을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글쓰기의 방법은 다만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란 두 가지 실마리에 달려 있다. 이때 소심은 꼭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아등바등 붙드는 것이라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활발한 의사를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방담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것이 아니다. 만약 멋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면 절도가 없고 방탕해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본 것이 광대한 뒤라야 능히 세세한 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심은 방담한 곳을 통해 수습되고 방담은 소심한 곳을 통해 확충된다. 선배의 글은 대충 보면 우주를 포괄한 듯 드넓어도 찬찬히 점검해보면 글자마다 하나도 어김없이 꼭 맞아떨어진다.[作文之法, 只有小心放膽二端. 小心非矜持把捉之謂也. 若以為矜持把捉, 則便與鳶飛魚躍, 意思相妨矣. 放膽非任情恣肆之謂也. 若以為任情恣肆, 則踰閑蕩檢, 無所不至矣. 所見擴大而後, 能入細也. 小心只從放膽處收拾, 放膽只從小心處擴充. 前輩文字, 縱觀之, 則包籠宇宙, 細檢之, 則字字對針.]
시원스런 생각은 꼼꼼한 논증을 통해 입증하려면 소심방담해야 한다. 꼼꼼함 없이 통만 커도 안 되고, 따지기만 할 뿐 큰 시야가 없어도 못 쓴다.
사실 확인의 셋째로서 이 글의 앞에서 호적胡適(1891~1962)의 “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을 학술적 글쓰기의 핵심어로 내세워 ‘假設’과 ‘求證’을 통섭統攝해야 함을 ‘大膽’과 ‘小心’으로 강조했는데, 이 “小心·放膽”이란 말이 “명나라 구곤호”의 말과 무슨 뜻,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假設가설은 실제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치고서 얽고 엮는다.”라는 것이며, 글자가 비슷한 논리학에서 쓰는 “假說가설은 가정假定과 같으며,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론 체계를 연역하기 위하여 설정한 가정이며, 이로부터 이론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검증되면, 가설의 위치를 벗어나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당한 진리가 된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학문연구의 표준을 제시한 아주 모범 된 말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좋은 글의 요체는 디테일과 스케일의 균형에 있다,고 옮겨” 말하고, “신춘문예 당선작을 뽑을 때 어김없이 거론되는 말”이라 했으리라.
그러나 정작 ‘구곤호’가 한 말이 전자의 ‘假設’일까? 구곤호(1507~1569)는 본명이 ‘景淳경순’, 자는 ‘師道사도’, 호가 ‘昆湖곤호’이며, 직례直隸 상숙현常熟縣 사람이고, 학자요 정치가였다. 그의 저작에는 《瞿文懿制敕稿구문의제칙고》1권, 《制科集제과집》4권, 《詩文集시문집》16권은 있지만, 이 시기의 인물의 주요 저술은 『欽定四庫全書흠정사고전서』나 『冊府元龜책부원구』에 있을 법도 한데 《작문요결》이란 책이름은 없다. 있다면 제목이 다를 것이다.
또 여기서 글쓰기 방법의 인용 글에서 ‘小心’에 대한 경계의 말로서 원문의 “小心非矜持把捉之謂也. … 意思相妨矣.”은 황종희黃宗羲(1610~1695)의 『明儒學案명유학안』(권26)에 그대로 나오는 글이며, 다른 사람들도 이를 인용하기도 한다. 다만 그 뒤의 통큰 생각을 하라는 “放膽 …”은 다른 글에서 찾아야 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삼연집三淵集』에 다음의 글이 있다.
글월이라 함은 방담放膽과 소심小心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학문을 함에도 어찌 늘 방담하되 더더욱 다시 소심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손사막孫思邈(581~682)이 말하기를, ‘膽’, 곧 담력은 크게 가지되 ‘心’, 곧 마음가짐은 섬세해야 한다. 주자朱子(1130~1200)는 소학小學에서 적었는데, 또 일찍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짝이 되는 것에도 거시적 안목이 있고, 미시적 안목이 있는데, 대개 그때그때 뜻이 맞아야 한다. 참으로 이와 같은 경우는 지금 천만 명을 알고서는 내가 가는 곳마다 큰 용기가 나지만, 깊은 못에 다다른 듯이, 살얼음판을 밟는 듯이 두려워하며 조심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면, 내가 이로써 천 길 벼랑처럼 우뚝하다 하고, 이로써 맹자와 주자를 따라간다면 어찌 외딴 보루가 쉽게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의 좋지 못한 점을 말했다가 마땅히 뒤에 닥칠 문제를 어떻게 하겠는가. 이에 맹자의 공손한 말씨에는 때를 보아 진정으로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이며, 주자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결같이 방담한 논리라는 것은 이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지어 성현聖賢의 작용과 옛 선비들의 나아가 벼슬하는 일과 물러나 집에 있는 일, 또는 의견을 말하는 일과 침묵을 지키는 일이나, 간략하여 밝혀지지 않은 것에도 널리 보려면 후학들은 미심쩍으면 제쳐두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이른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문제[議論]를 어찌 감히 속일 수 있겠는가. 무릇 정명도程明道(1032~1085)의 조례를 사양하지 않고, 정이천程伊川(1033~1107)의 행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것은 그 은미한 뜻이 있다. 보잘것없이 고집스레 주장함을 용납하지 않으나, 이보다 회곡晦谷은 처음에 담력의 크기로는 정이천은 정명도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한 글자에도 우뚝 높으니, 이것은 정이천이 아직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주자는 아직 옛사람의 일을 평론[尙論]하지 않은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로 사람들에게 놀랍고 두렵게 하는데, 봄바람 속에 대문 바깥에 한 자나 쌓인 눈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주광정朱光庭(1037~1094)은 두 아들 유游·양楊과 함께 한꺼번에 직접 배운 기상을 각각 적었을 따름이다. 처음에 감히 차등을 두어 구별하지 않아서 그랬는데, 지금은 망설이다가도 자유자재로 다루어 쓰며, 이미 그 문장의 뜻을 즐기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세월이 빨리도 흘러가니, 드디어 소중히 여기고, 엄중히 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부드럽게 할 뜻이 있으면, 정명도의 지위도 무척 낮을 따름이니, 얼마나 더 미안한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이 원문의 “膽欲大而心欲小”란 말이 오히려 글쓰기의 핵심이 되며, 호적이 말했던 “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과 맥을 같이 하되, 앞의 『작문요결』 속 “小心放膽二端”과도 같다.
이 “방담放膽과 소심小心”은 비평에서 으뜸으로 언급되어야 할 기준임에는 분명하다. 요즘의 시작법에 어법과 비유법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문학성을 높이는 형상화라는 기법도, 특히 낯설게 하기나 비틀기라는 기교도 이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大膽假設 小心求證”이란 말이 ‘的’ 하나의 차이인데, 그 뜻은 “Hypothesize boldly, while prove it carefully.”이며, 전혀 다른 사람 “胡適호적”이 실험주의實驗主義에서 제기했다. 여기에 “大膽假設的思想”과 “小心求證的方法”이 제시된 것이다.
1919년 실험주의의 거장 존 듀이(John Dewey) 밑에서 공부한 호적은 보수적이고 경직된 세계에 진정으로 계몽적인 ‘대담한 가설, 신중한 검증’의 학문적 방법을 제안했으며, 미래 세대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오늘날에 미친다.
1919년에 그[호적]는 ‘대담한 가설, 신중한 검증’의 학문적 방법을 제시한 뒤로 이 방법을 평생 적용하고 추진했다.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홍루몽》·《수호전》·《서유기》 등의 소설과 《수경주》와 같은 고대 서적을 연구했으며, 그 목적의 하나는 그의 연구 방법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학문적 방법을 주창한 것에 대해 그는 1958년 대만 각지에서 강연할 때까지 여전히 ‘대담한 가설, 신중한 검증’의 방법을 옹호했다. 1940년대 중국의 저명한 철학자인 허린의 관찰에 따르면, 호적이 주창한 실험주의는 ‘5.4 운동 전후 10년 동안 중국의 전체 이데올로기 분야를 지배했다.’라고 한다.
결국, 호적이 1919년에야 존 듀이(1859~1952)에게서 학문의 연구 방법을 배우고 나서 ‘대담한 가설, 신중한 검증’을 제안한 것이므로, 그 전에 1500년대 중엽에 구곤호의 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역시 “小心”은 ‘신중한/꼼꼼한/미시적/구체적’의 뜻으로 쓰였다.
그렇다면 정민의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실린 “소심방담小心放膽”의 이름으로 그 글을 알게 된 경위가 적혀 있는데, “몇 해 전 대만 중앙연구원의 후쓰胡適 기념관을 찾았다. 그곳 기념품점에서 후쓰의 친필엽서를 몇 장 구입했다.”라고 했으며, 그 엽서에 “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어서 구곤호의 글 <작문요결作文要訣>을 소개했는데 과연 서로 연관 있는 말일까? “소심방담은 대담적가설(大膽的假設), 소심적구증(小心的求證)을 줄인 말로서 대담한 가설과 꼼꼼한 논증(구증)을 하라는 의미이다.”라고, 원문으로 구곤호의 글이 제시된 한문의 ‘小心放膽’은 또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면 한 문장에 ‘[소심방담]=[대담저가설]+[소심적구증]’이라는 말인지 확인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아니다.
우선 『作文要訣작문요결』(上下卷2冊)(迷花書室藏, 明治11)이란 책이름은 나카네 키요시中根淑(1839~1913)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때는 그의 사후로 초판 1936년이다. 여기에 “緖言三則”을 비롯하여 상권에서 “漢文ノ論”, “文章ハ熟成ヲ貴ブ論” 등을, 하권에서 “作文速成ノ法”으로 “篇法·章法·句法·字法” 등등을 말했지만, 내용에서도 ‘글쓰기의 방법[作文要訣]’이란 핵심이 되는 ‘小心·放膽’이란 말은 나오지 않으며, 다른 글에서도 없다.
그러니 사실 “구곤호의 작문요결”은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볼 때 구곤호는 ‘小心·放膽’이란 말을 썼을지라도 “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이나, “大膽假設 小心求證”이란 말은 학문의 연구 방법으로서 호적胡適의 말에서 비로소 찾을, 알 수 있다.
물론 ‘小心’과 ‘放膽’이란 말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남송 때의 사방득謝枋得(1226~1289)의 『문장궤범文章軌範』에 “放膽文”과 “小心文”이 나오는데, 본래는 관리 등용 시험에 참고서로써 모범이 될만한 문장을 모은 것인데, 글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서 모범으로 삼아야 할 “방담문放膽文”과 “소심문小心文”으로 따로따로 존재한다. 곧 『문장궤범』 권1에 “放膽文 侯字集”, 권2에 “放膽文 王字集”과 권3에 “小心文 將字集”, 권4에 “小心文 相字集”, 권5에 “小心文 有字集”, 권6에 “小心文 種字集”, 권7에 “小心文 乎字集”이며, 여기에 나오는 “放膽文”에는 한유韓愈(768~824)·류종완柳宗完(773~819)·구양수歐陽修(1007~1072)의 글이, “小心文”에는 소순蘇洵(1009~1066)·소식蘇軾(1037~1101)·한유·호전胡銓(1102~1180)·구양수·류종완·왕안석王安石(1021~1086)·제갈량諸葛亮(181~234)·원결元結(723~772)·범중엄范仲淹(989~1052)·리구李覯(1009~1059) 등의 69편의 글이 있다. 물론 한 사람의 글에서도 “放膽文·小心文” 두 가지 다 있으며, 문장마다 비평·주석·권점을 달아 놓은 책이다.
그러므로 “방담放膽·소심小心”과 “大膽的假設·小心的求證”은 사실 서로 다르다.
전자는 아예 『문장궤범』에서 “방담문放膽文”으로 제시된 설명의 글에는 다음과 같다.
후자집侯字集은 무릇 글을 배울 때에 처음에는 대담하고 나중에는 신중해야 하며,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까지, 저속한 것에서 우아한 것까지,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까지, 호탕한 것에서 순수한 것까지, 이 텍스트는 모두 굵은 가지와 큰 잎사귀처럼 자잘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짓고, 예의에 바탕을 두고, 세상일에 익숙하고, 인간 감정에 부합해야 한다. 처음 글을 배우는 자들이 이를 익히면, 흉금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뜻을 널리 펼치되, 다만 글이 쉬운 점만 보고, 글이 어려운 점을 보지 않으면, 반드시 수준 높은 탁월한 논설을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거나, 붓끝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문장 따위를 거침없이 짓게 된다.
왕자집王字集 : 여러 가지를 들추어내어 비난하며 공격하는 글은 비록 말소리와 얼굴빛이 근엄하고, 날카로운 칼끝을 드러낼지라도, 기력이 크고 힘차며, 세찬 불꽃이 오래도록 길어 이를 읽는 것에 만족스럽고 상쾌하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이를 익히면 반드시 글월에 뛰어나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과거를 준비하며 중간 벼슬아치도 마땅히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이처럼 방담문의 본보기에 익숙해야 한다고 했으니, 이것은 “대담적가설”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 『문장궤범』에서 “소심문小心文”으로 제시된 설명의 글에는 다음과 같다.
장자집將字集은 논의 과정에서 세련되고 절제되어, 문체는 생동감 있고 우아하며, 억누르거나 높임[抑揚]·갑자기 꺾음[頓挫]·사로잡거나 놓아줌[擒縱]이 있다. 과거를 준비[塲屋]하고, 일정한 법식의 문장의 이론에는 마땅히 이러한 글쓰기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먼저 ‘후자집侯字集’과 ‘왕자집王字集’의 두 가지를 외우고 나면 글쓰기에 지장이 없으니, 편리하게 마땅히 이것을 읽어야 한다.
상자집相字集 문장은 옛날에 사람의 마음을 얻고[得道] 논리를 강하게 고집[理強]하여서 맑고 밝으며 공정하고 의젓한 마음으로 아름답고도 과감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신을 표현했으며, 글씨에 드러난 힘은 천하무적이고, 세찬 불꽃은 하늘을 밝히며,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이를 익히면 경전과 교리를 짓고, 문서를 지을 수 있어 반드시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떨칠 것이다.
유자집有字集 : 이 텍스트[集]는 모두 엄격하고 간결한 글월이다. 시험장[塲屋] 안에 해시계[시간]는 한정되어 있으니, 솜씨가 좋기는 하지만 더딘 것은 일을 서둘러서 어설프고 서투름만 같지 못하다. 논문의 끝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시험관들도 반드시 이를 비범한 사람으로 다룰 것이다.
종자집種字集 : 이 텍스트는 뛰어난 재능과 학식과 지식의 세 가지가 있으며, 세상의 가르침에 대해 많이 논의된다. 옛날에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말이 영원토록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니, 이와 같을 수야 있겠는가. 섭수심葉水心(1150~1223)이 말하기를, 문장은 세상의 가르침에 부족하다면 비록 교묘할지라도 무익할 것이며, 사람들은 이 텍스트에 익숙한다면, 학문이 나아가고 식견도 나아가서 재능도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호자집乎字集 : 한문공[韓愈]·소동파의 글은 모두 장자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며, 이 텍스트는 장자와 함께 나란히 달리며 앞을 다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심문” 5편은 “소심적구증”과는 전혀 다르며, ‘방담문’과 ‘소심문’이 따로따로 존재하므로 하나의 학습·연구 방법은 아니며, 그런 형태의 훌륭한 본받을 문장이 있음을 제시한 것이지, 결론으로 제시된 “시원스러운 생각을 꼼꼼한 논증을 통해 입증하려면 소심방담해야 한다.”라는 학문연구 태도. 말하자면 논문작성법을 지적한 적은 아니다.
반면에 후자의 “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은 가장 엄격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문학, 정치 및 학문에 대한 것이며, 호적이 처음으로 대담한 가설을 세워서 꼼꼼하게 세심한 검증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글월인데, 특히 학술적 방법에 적용되며, 하나의 논문작성법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말로서야 공통적으로 글자와 뜻이 같은 “放膽·小心”이지만, 전자는 『문장궤범』이라는 여럿을 담은 그릇이고, 후자는 『작문묘결作文妙訣』이라는 하나의 내용물의 서술 요령이므로, 그 글의 형식과 방법이 전혀 달라 같은 맥락에서 풀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그러므로 ‘디테일과 스케일의 균형에 있다’는 ‘좋은 글’ 뿌리는 구곤호의 글이 아니라 호적의 글이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며, 구곤호의 그 원문을 확인해 보았다. 출처의 이름은 책의 이름으로 “作文要訣작문요결”이 아니라, 그 필사된 책은 『讀書譜독서보』 (卷1)에 있는 글의 제목 “作文妙訣작문묘결”이며, “萬曆癸丑春”이니 1613년이므로 꽤 오래된 글인데, 현존 사료가 언제 필사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책에 구곤호의 글은 모두 네 편이 실렸는데, “靜養工夫정양공부, 潛心墨卷잠심묵권, 作文妙訣작문묘결三條삼조, 文寫胸中문사흉중”의 세 번째 글 앞부분[一條] <작문묘결作文妙訣>이다. 앞에 인용된 그 원문을 확인하여, 필자가 새롭게 번역하고, 파란색은 빠진 부분을 채운 것이다. 물론 이 ‘소심방담’은 ‘방담문’과 ‘소심문’으로 따로 있는 것이지, “소심한 구증 없는 대담한 가설은 황당한 소리가 되고 만다”라는 결론적 해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作文之法, 只有小心放膽二端. 小心非矜持把捉之謂也. 若以為矜持把捉, 則便與鳶飛魚躍, 意思相妨矣. 放膽非任情恣肆之謂也. 若以為任情恣肆, 則踰閑蕩檢, 無所不至矣. 盖人之心体, 愈檢束則愈脫洒, 何也. 事事無失, 而後脫然無碍也. 愈舒展則愈精微, 何也. 所見擴大而後, 能入細也. 小心只從放膽處收拾, 放膽只從小心處擴充. 非二事, 亦非有二時也. 故前輩文字, 縱觀之, 則包籠宇宙, 細檢之, 則字字對針. 統閱之, 則貫串古今, 析觀之, 則絲絲入糹扣 , 此寔理也.
[글쓰기의 방법은 다만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란 두 가지 실마리에 달려 있다. 소심은 자랑스럽게 여기어 아등바등 붙들어 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자랑스럽게 여기어 아등바등 붙잡고 있는 것이라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역동적 생각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방담은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면 법도가 없고 방탕해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대개 사람의 몸과 마음은 잡도리하며 다잡을수록 소탈해진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어야 잘못될 것이 없다. 더 펼쳐 늘일수록 학문이 더 깊고 미묘해지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보았던 것이 확대된 뒤에야 세밀한 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심은 단지 방담을 따라서 수습되고, 방담은 단지 소심을 따라서 확충된다. 이것은 두 가지가 아니고, 또 두 번 있는 것도 아니므로, 선배의 문장은 이를 자유롭게 살펴보면 드넓은 우주를 포괄한 듯 이를 빈틈없이 조사해보면 글자마다 꼭 들어맞는다. 이렇게 이들을 모두 읽으면 옛날과 지금이 일관되며, 이들을 분석하여 보면 한 글자도 짜임새에서 벗어나지 않아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방법이다.]
-끝-
[작은文學 제60호 (작은문학사, 2023.4), 173~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