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 **[북한은 왜?] WHY? 북한! 시작합니다. NK뉴스의 장기 연재 시리즈
http://cafe.daum.net/hanryulove/5Qxi/17194
2018-01-11
최근 남북관계 변화의 흐름 속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북한 정치, 경제와 관련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소위 ‘북한 전문가’들이 TV에 등장해 연일 북한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북한을 직접 방문한 진천규 기자의 방북사진들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유엔과 미국이 주도한 대북제재 속에서 북한은 어떻게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하고 려명거리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나라든 그 나라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국부터 시작해 그 흘러온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해방과 분단, 북한 정부의 건립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분단 이후 정부 수립, 사회주의 체제의 건설, 사상의 정립, 경제난과 고난의 행군, 핵무력 개발까지 이어지는 북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현재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2018년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은 곧 머지않은 현실로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 가시화될 때 통일국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결국 발자국을 내딛고 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곧 다가올 한반도 통일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내고자 합니다.
다음주부터 매주 2회(화, 금)를 목표로 총 100여편, 1년 정도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구독과 관심, 의견 부탁드립니다.
[예상목차]
1. 북한에서 친일파 어떻게 청산되었을까?
– 친일청산 과정
①편 http://nktoday.kr/?p=15268
②편 http://nktoday.kr/?p=15281
③편 http://nktoday.kr/?p=15294
④편 http://nktoday.kr/?p=15314
2. 북한은 광복을 ‘쟁취한 것’으로 본다?
–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
①편 http://nktoday.kr/?p=15330
②편 http://nktoday.kr/?p=15354
③편 http://nktoday.kr/?p=15356
④편 http://nktoday.kr/?p=15355
⑤편 http://nktoday.kr/?p=15357
⑥편 http://nktoday.kr/?p=15358
⑦편 http://nktoday.kr/?p=15428
3. 통일되면 북한에서 내 조상의 땅을 찾아올 수 있을까?
– 단 26일만에 진행된 토지개혁
①편 http://nktoday.kr/?p=15448
②편 http://nktoday.kr/?p=15449
③편 http://nktoday.kr/?p=15450
④편 http://nktoday.kr/?p=15452
⑤편 http://nktoday.kr/?p=15453
⑥편 http://nktoday.kr/?p=15469
⑦편 http://nktoday.kr/?p=15470
⑧편 http://nktoday.kr/?p=15471
4. 할배, 할매들이 우리 말을 읽는 순간.
– 해방 후 4년만에 완성된 문맹퇴치사업
①편 http://nktoday.kr/?p=15530
②편 http://nktoday.kr/?p=15539
③편 http://nktoday.kr/?p=15573
④편 http://nktoday.kr/?p=15576
⑤편 http://nktoday.kr/?p=15559
5. 북한에서는 언제부터 연차유급휴가가 도입되었을까?
– 노동자들과 사무원을 위한 노동법령 제정과 그 의미
①편 http://nktoday.kr/?p=15586
②편 http://nktoday.kr/?p=15602
③편 http://nktoday.kr/?p=15622
④편 http://nktoday.kr/?p=15643
⑤편 http://nktoday.kr/?p=15653
⑥편 http://nktoday.kr/?p=15659
⑦편 http://nktoday.kr/?p=15664
6. 북한에서 성매매를 없앴다고?
– 남녀평등권법령 제정과 그 의미
①편 http://nktoday.kr/?p=15724
②편 http://nktoday.kr/?p=15730
③편 http://nktoday.kr/?p=15768
④편 http://nktoday.kr/?p=15774
⑤편 http://nktoday.kr/?p=15782
⑥편 http://nktoday.kr/?p=15781
7. 국가 수립, 그리고 조선노동당 건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 건설 과정
<정부 수립>
①편 http://nktoday.kr/?p=15830
②편 http://nktoday.kr/?p=15832
③편 http://nktoday.kr/?p=15841
④편 http://nktoday.kr/?p=15843
⑤편 http://nktoday.kr/?p=15916
⑥편 http://nktoday.kr/?p=15842
⑦편 http://nktoday.kr/?p=15840
⑧편 http://nktoday.kr/?p=15864
⑨편 http://nktoday.kr/?p=15868
⑩편 http://nktoday.kr/?p=15866
⑪편 http://nktoday.kr/?p=15873
⑫편 http://nktoday.kr/?p=15974
<당 건설>
8. 북한은 왜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를까?
– 1950~1953 The Korean War
9. 북한의 모든 농사꾼은 협동농장원?
– 북한의 협동농장 건설
10. 소련이 북한 중공업 발전을 막았다고?
– 중공업 우선 농업 경공업 동시발전 노선
11. 과거에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았다?
– 천리마 운동과 경제변화
12.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
– 중국군 철군, 쿠바미사일위기, 그리고 병진노선
13.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야? 공산주의 국가야?
– 사상, 기술, 문화 3대 혁명
14. 북한에 세금이 없다는 거 사실?
–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배급제 전면실시
15. 북한, 세뇌하는 거 맞지?
– 북한의 사상 정립
16. 탁아소가 없으면 공장 개업이 불가능하다고?
– 북한의 육아, 보육시스템 구축
17. 북한에는 왜 랩이 없어?
– 북한의 문학예술
18. 세계에서 가장 큰 탑, 개선문, 경기장 모두 북한에 있다?
– 80년대 북한의 건축 열풍
19. 북한 거리에 있는 구호들이 '불편하다'?
– 북한의 선전선동 시스템 구축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
21. 북한은 왜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을까?
– 북미핵대결, 평화협정 체결
22. 북한에 갔더니 산에 나무가 너무 없던데….
– 고난의 행군
23. 북한, 독재 맞잖아. 그렇지?
– 북한의 수령시스템 구축
24. 무역을 못하고 고립되면 망하는 거 아닐까?
– 유엔제재와 병진노선
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북한은 왜?] 남과 북의 공산당, 독자적으로 운영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북한에는 공산당이 없다. 미국 언론에서 이 지역을 언급할 때마다 '공산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왔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 안나 루이스 스트롱, "북한, 1947년 여름"
세계에 공산주의 국가도 없지만 공산당이 없는 나라도 흔치 않다.
그 중 한국과 북한 모두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는 공산당이 아닌 조선노동당이 있을 뿐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음에도 왜 공산당이 없는 것일까?
그 비밀은 조선노동당 창립과 합당에 있다.
북한은 2차례의 합당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조선노동당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 북한 국가 수립에 이어 조선노동당 창립·합당 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 참고자료
도홍렬, '북한 농촌사회의 변혁과정', 국사관논총 27집
북한용어사전 – '조선인민혁명'군, 중앙일보통일문화연구소
북한정보포털 – '조선노동당', 통일부
'만주 항일무장투쟁 중국사에 포함 움직임, 남북 역사학계의 공동대응 절실', 민족21, 2005.11.01
임영태, '북한의 토지개혁과 제반 민주개혁 ③ – 토지개혁과 제반 민주개혁', 통일뉴스, 2000.12.30
이종석,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북조선로동당으로의 '합동'에 관한 연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기광서, '북로당의 창설 : 한반도 공산주의 권력의 중심 탄생', 한국역사연구회
"<조선노동당 60년>①'건설'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 연합뉴스, 2005.10.06
"북한의 10월은 '노동당의 달'…각종 黨 기념일 몰려", 연합뉴스, 2013.10.08.
국가와 당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⑫
2. 조선노동당의 건설
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으로 시작된 조선노동당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공산당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수도 서울에서는 국내에 있었던 사회주의자들이 1928년 해산된 조선공산당 재건을 추진했다.
8월 15일 밤 서울 종로구 장안빌딩에서 리영, 정백 등 몇몇의 사회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 재건을 선포한다. (장안파) 한편 이들과 다른 세력이었던 박헌영, 이승엽 등 사회주의자들은 8월 20일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화요파)
결국 해방 직후 수도 서울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단결해서 조선공산당을 건설하지 못한 셈이다.그리고 장안파, 화요파 모두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전국 공산주의자들을 집결시키는 전국대표자대회, 전국대의원대회 등을 소집하지 않았다. 결국 소수 몇 명이 모여서 '당중앙'을 승인한 꼴이 되고야 만 것이다.
이런 현황에서 한반도까지 분단되어 서울에서 재건된 조선공산당이 남북 사회주의자들을 모두 묶어세울 수 없었다. 이후에도 박헌영 계열은 전국대표자대회, 전국대의원대회 등을 소집하지 못했다.
이런 현황에서 북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독자적인 흐름이 형성되었다.
각 지방마다 지역 당 위원회가 꾸려지면서 10월에는 38선 이북 지역의 당 위원회들의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우선 평양에서는 8월 17일 현준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평남지구위원회를 출범되었다.
현준혁은 조국광복회와 연계를 맺고 평양과 평안남도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였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김재갑이 중심이 되어 조선공산당평안북도위원회가 출범했다.
함경남도의 경우 8월 16일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된 송성관을 중심으로 '함경남도공산주의자협의회'가 결성되었고 주녕하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홍원지부'가, 원산에서 리주하 중심으로 조선공산당함경남도지구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함경북도에서는 김채룡이 조선공산당함경북도위원회를, 황해도에서는 김덕영과 송봉욱이 조선공산당해주지구위원회를 건설했다.
조선인민혁명군 출신들도 평안북도에 최용건·김일·서철, 함경남도에 전창철·석산·이용호, 함경북도에 최현·오진우·허봉학·최충길, 황해도에 박성철·김경석·박용술, 강원도에 임춘추 등이 파견되어 지역 위원회 건설을 도왔다.
이렇게 각 지역마다 지역위원회들이 건설되어 가는 가운데 1945년 10월 10일 김일성 주석은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를 개최해서 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을 모두 집결시키게 된다.
이 대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분단의 특수한 현실을 인정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따로 건설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분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정치노선확립 조직확대 강화에 관한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결정서는 현 단계 혁명의 성격을 부르주아(자본주의)민주주의혁명으로 보았으며 토지문제를 기본과업으로 설정하고 친일파를 제외한 국내 전체 '인민전선'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당이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공장, 광산, 기업소, 농장 등 기층 생산단위에 당세포(말단조직)를 꾸리는 것과 각계각층에서의 당의 외곽대중단체를 결성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결정서에 따라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1945년 12월 이북지역 노동자들의 조직인 북조선직업동맹이 출범했고 북조선직업동맹은 1년 후 북한 전체 노동자 43만 명 중 38만 명을 포괄하게 된다.
1945년 11월 북조선 여성동맹이 출범해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청년들의 조직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청년동맹이란 이름으로 출범했는데 김일성 주석의 제안에 따라 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으로 확대되었다.
민청은 훗날 150만 명의 회원을 가진 가장 규모 있는 사회단체로, 당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단체가 되었다.
1946년 1월 31일에는 북조선농민동맹이 창설되어 10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1945년 11월 25일 평양문화인직업동맹, 1946년 4월 북조선인민교원직업동맹 등이 꾸려졌다.
이렇게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대중단체들의 건설에 적극 지지·지원함으로써 대중들의 정치활동을 보장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당원확대사업을 활발히 벌이면서 10월 당시 몇 백 명 수준이었던 당원들이 2개월 만에 4,530명으로 늘어난다.
이들 중 30%는 노동자, 34% 농민, 36%는 지식인·상인 등으로 당 내 다양한 계급계층이 망라되어 있었다.
공산당 당원들은 당세포 활동을 통해 대중단체를 비롯해 공장, 농장 등의 생산활동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당 지도부는 누가 이끌었을까?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건설되면서 처음에는 제1비서에 김용범, 제2비서에 오기섭 등이 자리를 맡으면서 주로 국내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당을 주도했다. 그러나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민환영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인지도는 급속히 상승하게 된다.
그리하여 12월 17~1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북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한편 남북의 다른 상황에 따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점점 서울 중앙과의 형식적 소속관계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자성을 갖고 한반도 이북지역에서 활동해나갔다.
1946년 5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북조선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