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대출합니다
유계자
겉표지가 낡아 덜렁거린다
풀로 붙이고 표지를 싸매고 첫 장을 열었다
훅 풍겨오는 곰팡내 책 비듬이 떨어진다
까실까실한 글자들로 들어차
손끝이 찔려 바로 돌려줄까 고민하다
이왕 빌렸으니 꼼꼼히 읽기로 했다
한쪽이 허물어져 침을 묻혀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미 서슬 퍼런 문장들은 녹이 슬고
고단한 제목들도 코 고는 사족이다
빛나던 경칩의 장식은 떨어져 나가고
꼭지를 놓친 복숭아처럼 물러져 있다
침대맡에서 책을 읽다가
힘이 빠진 저녁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수십 년 버무려진 이야기를 한 달에 끝낼 수 없어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았더니
도서 대출 칸에
둘째 동서가 기록되었다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모든 것은 변하고, 생성-변화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의 ‘만물의 유전법칙’을 통하여 영원한 진리(실체)를 부정했지만,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생성과 변화의 논리적 가능성마저도 부정하고, 영원한 진리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열정적으로 옹호했다고 할 수가 있다. 화살은 쏘아도 화살은 순간 순간 정지해 있다는 것이고, 토끼가 한 걸음을 움직이면 거북이도 한 걸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토끼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제논의 역설’이 가장 고약한 것은 ‘유일 신’과 ‘만물의 영장’을 부르짖으며 타자의 주체성을 빼앗고 짓밟아버린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 전체의 역사를 볼 때 영원한 진리는 단 하나뿐이고, 그것이 곧바로 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는 단 하나뿐이고 영원한 진리라고 할 수가 있듯이,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만인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책은 고전이고, 이 고전의 세계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최초의 아버지도 영원히 살아 있고, 최초의 어머니도 영원히 살아 있다. 모든 신전과 사원과 기념관은 천의 얼굴을 가진 ‘종족의 신’(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을 접견하는 장소이며, 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너무나도 거룩하고 성스러운 지혜는 전인류의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전의 세계는 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처럼 사상과 이론의 무대에서 새로운 진리를 창출해낸 세계이며, 옛세대가 신세대의 멱살을 움켜쥐고 인도해 가는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오래 묵을수록 참다운 진리의 맛이 되살아나고, 가장 오래되고 희귀할수록 그 진리의 빛은 온 세상을 다 밝혀준다. 이에 반하여, 신간서적, 즉, 잡서의 세계는 신세대가 옛세대의 멱살을 움켜쥐고 목을 비틀어버리는 세계이며, 영원한 진리는 없고 수많은 진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유계자 시인의 [어머니를 대출합니다]는 ‘만물의 유전법칙’에 충실한 잡서의 세계이며, 그토록 아름답고 훌륭했던 신간서적이 그동안의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폐기처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겉표지가 낡아 덜렁”거리는 잡서(시어머니)를 “풀로 붙이고 표지를 싸매고 첫 장을 열었”더니, “풍겨오는 곰팡내”와 함께, “책(살) 비듬이 떨어진다.” 잡서는 “까실까실한 글자들로” 가득차 있었고, 손끝을 찔러 곧바로 돌려줄까----큰형님 댁으로 돌려보낼까----고민을 해보았지만, 이왕 빌렸으니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꼼꼼히 읽기----시어머니를 잘 모시기----로 했던 것이다. 한쪽은 허물어져 침을 묻혀도 잘 넘어가지 않는 잡서, 이미 서슬 퍼런 문장들도 녹이 슬고 “고단한 제목들도 코 고는 사족”에 불과한 잡서, “빛나던 경칩의 장식은 떨어져 나가고/ 꼭지를 놓친 복숭아처럼 물러”터진 잡서, “수십년 동안 버무려진 이야기를 한 달에 끝낼 수 없어/ 다시 제자리에 꽃아 놓았더니/ 도서 대출 칸에/ 둘째 동서가 기록”되어 있었던 낡고 헐은 잡서----.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고(괴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인다. 돌려막기는 미봉책이고 악순환이며, 이 돌려막기로는 그 어떤 부채도 해결할 수가 없다. 잡서는 시어머니이고, 시어머니는 낡고 헐은 책이며, 이 시어머니를 비싼 금리로 대출해갈 이 세상의 현모양처는 없다.
유계자 시인의 [어머니를 대출합니다]는 시어머니를 낡고 헐은 잡서로 변용시킨 시이며, 고부간의 갈등이 아닌 ‘인생무상의 진수’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시어머니는 이 세상의 삶의 목표와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시어머니이며, 산다는 것 자체가 죄이고 재앙이 된 노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제법 근엄하고 아름답던 시어머니의 그 서슬 퍼런 삶의 철학과 윤리도 다 없어지고, 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살아오던 용기도 다 사라지고 없다. 낡고 헐은 겉표지, 그 서슬 퍼런 문장과 고단한 제목도 다 사라진 책, 그토록 아름답고 빛나던 경칩의 장식도 다 떨어지고 복숭아처럼 짓물러 터진 책----. 시어머니는 낡고 낡은 책이며, 그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다 잃어버린 책이고, 따라서 책의 가치보다는 폐기물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잡서에 지나지 않는다.
젊음은 아름답고 늙음은 추하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산송장의 사회이며, ‘만물의 유전법칙’에 반하는 반자연적이고 반생물학적인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간접화법이 가능한 세계이며, 과거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최고급의 무기였다고 할 수가 있다. 유계자 시인은 그의 [어머니를 대출합니다]라는 시를 통하여 시어머니를 책으로 변용시키고, 그 늙고 병든 시어머니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시어머니를 책으로 변용시켰으니 그 은유와 환유의 세계, 그 수사학의 세계를 일반 독자들이 잘 알 수가 없고, 표면적으로는 낡고 헐은 책을 조롱하고 비판했으니,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곱지 않은 시선을 완화하거나 은폐시킬 수도 있다. 천하 제일의 거짓말쟁이며, 이성의 간계는 더없이 교활하고 사악하다.
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는 고전의 세계이며, 고전의 세계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이에 반하여, 오늘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잡서의 세계이며, 잡서의 세계는 영원한 진리가 실종된 세계이다. 유계자 시인의 [어머니를 대출합니다]는 ‘충효사상(돌려막기)의 빚잔치’이며, 부채상환능력이 없는 며느리의 절규라고 할 수가 있다.
하루바삐 인간 70, ‘인간 수명제’, 즉, ‘존엄사 제도’를 실시하여 ‘삶의 공포’와 ‘죽음의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리 노인들을 구제해주기를 바란다.
전국의 모든 요양원과 요양병원들을 다 해체하고, 푸르고 젊은,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는 비용보다 퇴직 이후 죽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인간 존엄사 제도’가 채택되면 이 ‘낙천주의 사상가’ ‘반경환’이가 제일 먼저 신청할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삶과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