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祗 子曰 丘之禱 久矣 공자께서 병환이 나거늘 자로가 빌기를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병이 낫기 위해 천지신명에게 비는 이치가 있는가?”라고 하시니,
자로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제문(祭文)에 하늘의 천신과 땅의 귀신에게 비는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공구는 천지신명께 빈 지가 오래되었다.”라고 하셨다.
禱謂禱於鬼神 有諸問有此理否 誄者哀死而述其行之辭也 上下謂天地 天曰神 地曰祗 禱者悔過遷善 以祈神之佑也 無其理 則不必禱 旣曰有之 則聖人未嘗有過 無善可遷 其素行 固已合於神明 故曰丘之禱 久矣 又士喪禮 疾病行禱五祀 蓋臣子迫切之至情 有不能自已者 初不請於病者而後禱也 故孔子之於子路 不直拒之 而但告以無所事禱之意 빈다는 것은 귀신에게 비는 것을 말하고, ‘有諸’는 그런 이치가 있는지 여부를 물은 것이다. ‘誄(뢰)’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애통해하면서 그 사람의 행적을 기술한 말이다. 상하는 천지를 말하고, 하늘을 일컬어 神이라 하고, 땅을 일컬어 祗라고 한다. ‘禱’라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선으로 옮겨감으로써 귀신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 그러한 이치가 없다면, 반드시 빌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이치가 있다고 이미 말하였다면, 빌어야 하겠지만, 성인이 일찍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어서 개과천선할 것이 없으며, 그 평소 행동이 본래 이미 신명에 합치되므로, 공자께서 천지신명에 빈 적이 오래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선비의 상례에 따르면, 병이 위중하면 五祀에 기도를 행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신하가 절박하고 지극한 정으로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 아픈 사람에게 청한 이후에 천지신명께 빌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로에 대하여 곧바로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다만 빌기를 일삼을 것이 없다는 뜻을 알려주신 것이다. 厚齋馮氏曰 士有誄 累生時德行以賜之命 則誄周官六辭六曰誄 是也 禱疾亦誄其功德 故謂之誄云 후재풍씨가 말하길, “선비에게는 誄(祭文)가 있으니, 생시의 덕행을 쌓아서 그에게 천명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誄는 周官의 六辭에 여섯을 일컬어 誄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다. 질병에 대하여 비는 것도 역시 그 공덕을 읽었다. 그래서 이를 일컬어 誄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只是引此古語以明有禱之理 非謂欲禱皇天后土也 禱雖臣子之禮 其辭則述君父悔過遷善之意 以解謝鬼神之譴怒 주자가 말하길, “그저 이 옛말을 인용하여 비는 이치가 있음을 밝힌 것일 뿐, 하느님과 땅의 신에게 빌고자 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에 비는 것은 비록 신하의 禮이지만, 그 비는 말은 임금이 잘못을 뉘우치고 善으로 옮겨간다는 뜻을 진술함으로써, 귀신의 꾸짖음과 노함을 풀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聖人與天地合其德 與鬼神合其吉凶 我卽天地鬼神 天地鬼神卽我 何禱之有 朱子曰 自他人言之謂聖人如此可也 聖人之心 豈以此自居 惟味某之禱久矣一句 語意深厚 聖人氣象與天人之分 自求多福之意 可見 누군가 묻기를, “성인께서는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부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이 합치되므로, 내가 곧 천지이자 귀신이며, 천지와 귀신은 곧 나이니, 무슨 빈다는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남이 말하는 입장으로부터 성인께서 이와 같다고 말한다면, 可한 것이지만, 성인의 마음이 어찌 이로써 자처하겠는가? 오직 ‘아무개가 빈 지는 오래되었다’라는 한 구절을 잘 음미해본다면, 그 말의 뜻이 깊고 두터워서, 성인의 기상은 天人의 구분과 더불어 스스로 多福함을 추구한다는 뜻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誄如哀公誄孔子 是也 古誄文之意 蓋曰往者 疾病時嘗禱爾于神祗矣 而卒莫之救 蓋哀其死之辭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誄(弔文)는 애공이 공자에게 조문을 지어준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이다. 옛날 誄文의 뜻은 대체로 ‘예전에 병이 심할 때 일찍이 천지신명께 당신을 위하여 빌었지만,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대체로 그 죽음을 애통해하는 말들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聖人素履無愧 少壯迨老 無非對越神明之時 豈待疾病而後禱哉 所謂禱久矣 乃因子路引禱爾而言 蓋不禱之禱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평소 행하심(素履)에 부끄러움이 없었으니, 젊어서부터 늙음에 이를 때까지 천지신명을 대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러니 어찌 병이 위중해지기를 기다린 후에서야 빌겠는가? 이른바 ‘빈 지가 오래되었다.’는 말은 곧 자로가 ‘당신을 위해 빈다’는 말을 인용함으로 인해 말한 것인데, 대체로 빌지 않는 기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儀禮第十三篇註云 謂門戶竈行中霤 盡孝子之情 五祀博言之 士二祀 曰門曰行 의례 제13편 주석에 이르길, 門, 戶, 竈, 行, 中霤는 효자의 정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5祀(위 門戶 등 다섯 가지 제사)는 넓게 말한 것이고, 士는 2祀(두가지 제사)이니, 門과 行이라 하였다. |
2 | 朱子曰 在臣子則可 在我則不可 聖人也知有此理 故言我不用禱而不責子路之非也 疾病行禱者 臣子之於君父各禱於其所當祭 子路所欲禱 必非淫祀 但不當請耳 주자가 말하길, “신하에게 있어서는 가능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인께서도 이런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빌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로의 잘못을 나무라지는 않으셨던 것이다. 병이 중할 적에 비는 것은 신하가 임금에 대하여 각자 마땅히 제사 드릴 곳에 빌어야만 한다. 그러나 자로가 빌고자 한 바는 반드시 함부로 지내는 제사는 아니었겠지만, 그러나 마땅히 빌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病而與聞乎禱 則是不安其死而諂於鬼神以苟須臾之生 君子豈爲是哉 祈禱卜筮之屬 皆聖人之所作 至於夫子而後 敎人一決諸理而不屑於冥漠不可知之間 其所以建立人極之功 於是而備 병들어서 비는 것에 참여하여 듣는 것은, 바로 자기가 죽는 것을 불안해하며 귀신에게 아첨하여 잠시 목숨을 구차하게 하는 것이니, 군자라면 어찌 이런 짓을 하겠는가? 기도하거나 점치는 등속의 일은 모두 성인들께서 지으신 바였지만, 공자님에 이른 연후에는 이치에서 한번 결단하라고 사람들을 가르쳤고, 어둡고 아득하여 알 수 없는 사이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가르쳤으니, 사람의 원칙을 건립한 공자님의 공이 바로 여기에서 갖추어진 것이다.
問嘗疑集註曰聖人未嘗有過無善可遷 其素行固已合於神明 故曰丘之禱久矣 夫自其論聖人所以無事於禱者 其義固如此 然此一句乃聖人自語也 聖人之意 豈自謂我未嘗有過無善可遷 其素行固已合於神明哉 曰 聖人固有不居其聖時節 又有直截擔當無所推讓時節 如天生德於予 未喪斯文之類 蓋誠有不可掩者 누군가 묻기를, “저는 일찍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집주에서 성인께서는 일찍이 잘못함이 있은 적이 없었고, 옮겨갈 만한 善도 없었으므로, 그 평소의 행실은 본래부터 이미 천지신명에 부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 공구가 기도한 지가 오래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무릇 성인께서 기도함에 일삼음이 없다는 것을 논하는 것에서 본다면, 그 의미는 본래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구절은 오히려 성인께서 스스로 한 말씀이므로, 성인의 뜻은 어찌 ‘나는 일찍이 잘못한 적이 없고, 옮겨갈 만한 善도 없으며, 내 평소의 모든 행동은 본래부터 천지신명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께는 본래 자기의 聖을 자처하지 않으신 시절도 있었고, 또한 곧장 바로 담당해버려서 미루어 사양하는 바가 없는 시절도 있었다. 예컨대 ‘하늘이 나에게 德을 낳아 주셨으니, 이 文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부류와 같은 것으로서, 대체로 진실로 덮어 가릴 수 없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子路請禱而夫子告之以有諸 蓋欲子路深省夫禱之理也 苟知其有是理 則知夫子之何用禱也 而子路未達獨擧誄以爲證 於是從而告之曰 丘之禱久矣 蓋禱者悔過遷善之意 平日之思慮云爲 神之聽之 未嘗斯須離也 一有未順 則逆于神理 是則當禱也 若夫聖人之心 則所謂天且不違 而況於鬼神乎 獨曰丘之禱久矣 辭氣謙厚而所以啓告子路者 亦至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자로가 기도하기를 청하였으나, 공자께서는 ‘그런 게 있는가?’라는 말로써 대답하였다. 대체로 자로가 저 기도하는 이치를 깊이 살펴보기를 바라신 것이었다. 만약 거기에 이러한 이치가 있음을 알았다면, 공자께서 ‘무슨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시는 까닭을 알았을 것임에도, 자로는 이를 알지 못하였고, 단지 誄文(弔文)을 들어서 증거로 삼았으니, 이에 그에 따라 알려주며 말하길, ‘나 공구의 기도는 오래되었다.’고 하셨던 것이다. 대체로 빈다는 것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善하게 변천하겠다는 뜻이다. 평소에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천지신명이 이를 모두 듣고서 잠깐이라도 이를 떠난 적이 일찍이 없었다. 하나라도 순응하지 않는다면, 곧 천지신명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마땅히 빌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무릇 성인의 마음이라면, 소위 ‘하늘도 장차 거스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 그저 ‘나 공구가 기도한 지 오래되었다.’고만 말한 것이니, 그 말하는 기세가 겸손하면서도 중후하고, 그러면서도 자로에게 열어서 알려준 것이 또한 지극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疾病而行禱 乃臣子迫切之至情 在周公猶爲之 然周公則可 武王則不可 子路則可 夫子則不可 領子路之至情 明在己之正理 夫子之心則天地神祗之心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병이 중하여 기도를 행하는 것은 도리어 신하의 절박함에 서 나온 지극한 정성이니, 주공에게 있어서도 오히려 그것을 행하였다. 그러나 주공은 가능하지만, 무왕은 불가한 것이고, 자로는 가능하지만, 공자께서는 불가한 것이다. 자로의 지극한 정성을 거느리고서 자신에게 있는 올바른 이치를 밝히셨으니, 공자님의 마음이라면 곧 천지신명의 마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觀夫子答媚竈之問以爲獲罪於天無所禱也 然則行與天合 禱何所用 在子路爲夫子禱 則可 請於夫子而後禱 則夫子不爲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부엌신에게 예쁘게 보이라는 질문에 답한 것을 살펴보면,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고 여기셨다. 그러한즉 행하는 것이 하늘과 더불어 합치되었다면, 비는 것이 어디에 소용될 것인가? 자로에게 있어서 공자님을 위하여 비는 것은 괜찮지만, 공자님께 청한 후에 빈다고 한다면, 공자께서 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禱自是臣子之至情 無所事禱 自是聖人之素行 不必以夫子之言遂謂禱爲無 亦不必以子路之言直謂禱爲有 要之 鬼神之有無 不必問 但人之素行 自不可失爾 운봉호씨가 말하길, “빈다는 것은 당연히 신하의 지극한 정성이고, 비는 것을 일삼는 바가 없다는 것은 당연히 성인께서 평소 행하시는 것이니, 반드시 공자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침내 기도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고, 또한 반드시 자로의 말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곧장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요컨대, 귀신의 유무는 반드시 물어볼 필요가 없고, 그저 사람이 평소에 행하는 바를 잘못해서는 저절로 안 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