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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야곱의 생애에 나타나신 하나님/ 창세기 25:23
(설교자: 마경훈목사)
야곱의 생애에 나타나신 하나님(창 25:23) -마경훈목사 - YouTube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네 가지의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①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②나는 누구인가입니다. 타락 이전의 나, 타락 이후의 나 그리고 구원 받은 나를 알아야 합니다. ③나의 구원자는 누구인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④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 네 가지 지식 중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유대인의 조상인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 보겠는데요. 먼저 야곱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과 리브가 사이의 쌍둥이 중 둘째 아들입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형의 장자권을 자기가 차지하고 싶어서 형이 사냥을 한 후에 배가 고플 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살 정도로 영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삭보다는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나이가 많아 늙어서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죽기 전에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두려워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으며 거기서 20년을 지냈습니다. 20년 후에 야곱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에서의 노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을 죽이기 위하여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기도하는 중에 천사를 만났는데 천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입니다. 야곱은 두 명의 부인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 명의 첩 실바와 빌하를 통해서 12명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조상은 야곱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실제적인 조상이라면 나라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세우신 국가의 이름을 야곱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의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왜 그렇게 사용을 했느냐를 홍성건 목사님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갈 때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을 전수 받았고 혈통적으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계보 쪽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또 다른 서자가 있었고 그두라라는 여인을 통해서 얻은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이 이스마엘의 계보 하에 생겨난 민족이 지금의 아랍입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이삭의 아들은 야곱만이 아닙니다. 에서도 있습니다. 에서는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혼혈 민족을 이루었는데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에돔 족속입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이스라엘의 민족은 실제로 야곱의 후손입니다. 야곱의 아들이 12명이었는데 그 12명을 중심으로 하나의 씨족 공동체로부터 출발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12지파에는 레위가 제사장이어서 빠졌고,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갔습니다.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20년간 자식이 없자 이삭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창 25:21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야곱은 이렇게 아버지 이삭의 기도응답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기도응답으로 아내가 임신하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두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얼마나 싸우는지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리브가의 입덧이 너무나 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였습니다. 창 25:23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태중에 있는 두 아이를 통해서 두 민족이 나뉘게 될 것인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어머니 뱃속에 잇을 때에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기도응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위기는 형 에서와의 재회 때였을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훔쳤기 때문에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서 20년을 지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문제는 에서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가족들과 종들과 가축들을 앞서 보낸 후에 자기는 얍복강에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생사가 달린 기도였기 때문에 치열했습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씨름하듯이 힘을 다하여 기도했습니다. 천사가 가야 하는데 야곱이 천사를 놓지 않으니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천사를 놓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야곱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얍복강에서 드린 야곱의 기도가 주는 기도에 관한 교훈이 있습니다.
①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주님 앞에 나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시 50:15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야곱은 환난을 만나니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형에서가 야곱을 죽이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오는데 야곱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하나님의 확성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 나하고 만나자”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②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야곱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③기도는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꿔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졌다. 네가 이겼다”라고 선언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져주신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겠습니까? 하나님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제 두 아들이 어릴 때, 밤에 이불 위에서 저와 아이들이 레슬링을 자주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보다 힘이 좋으니까 프로 레슬링선수들처럼 제가 부웅~ 날아서 아이들을 이단 옆차기로 쓰러드리고 의자를 들어서 아이들 머리를 내리쳤을까요? 아이들을 번쩍 들어서 바닥에다가 내꽂아버렸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져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밀면 저는 “으악~” 하고는 넘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주먹으로 저를 퍽하고 치면 저는 떼굴떼굴 구르면서 “으악~ 사람 살려!”하며 굴렀습니다. 아이들은 힘을 다하여 합니다. 그렇다고 저도 힘을 다하여 아이들과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저를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이기는 것입니다.
④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그 결과 환경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 위하여 달려오고 있는 동안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보는 순간 에서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갑자기 에서의 마음에 야곱을 향한 형제애가 솟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울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에서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손이 움직인 것입니다.
⑤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변화됩니다. 기도하던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기도하던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눅 9:28-29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주님께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셨습니다. 그리고 옷이 희어져서 광채가 났습니다. 29절에 보면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입니다. 진리의 빛입니다. 그 빛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고 자신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생활을 시작하시기를 권면합니다.
“나는 왜 이러지?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 나는 변화 되어야 하는데, 내 삶은 새로워져야 하는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변화되는 것입니다.
⑥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야곱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씨름하듯이 기도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기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겠습니까? 놀라운 것은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는데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야곱의 기도는 간절했던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누리려면 간절하게 부르짖읍시다. 조용기 목사님은 ‘부르짖으라’는 말을 달리기 선수가 골인지점 앞에서 죽도록 뛰는 것으로 설명하셨는데 공감이 갑니다. 800M 선수는 800M를 100M 경주 하듯이 전력을 기울여 뛰어야 합니다. 결승점에 도달하게 되면 숨이 턱에 차고 넘어져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승점에 달할 때 그렇게 목숨을 걸고 뛰지 않으면 일등을 못합니다. 기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는 있는 힘을 다해서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조목사님이 50년 동안 목회를 하셨는데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겠습니까? 목사님 혼자서도 기도하고, 성도들과 더불어도 기도하고, 많은 사람들과도 기도했는데 돌이켜 보니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한 기도마다 이루어졌답니다. 잠잠하게 기도하거나 조용하게 묵상하는 것은 거의 응답받지 못했답니다. 우리 속담에 “우는 애기에게 젖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잠한 아기에게 젖 안줍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울부짖고 외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야곱의 기도의 특징에는 없지만 제가 하나 추가 시키고 싶은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몇 번 예화로 사용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한 자매가 아이를 낳았는데 대머리였습니다. 보통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빠지는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대머리였습니다. 아이가 대머리이니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새벽마다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안수의 능력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어머니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아마 스트레스를 무척 받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머리카락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니 갑자기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다 났습니다. 그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이런 끈질긴 기도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환경도 변화시키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2.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더 부자가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삶을 누리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위아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삭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지극히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철저하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할 때도 반항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보여주실 때가 있는가하면 우리가 지혜롭게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응답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두 아이가 복중에서 서로 싸우니 이삭이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창 25:23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쌍둥이 중에서 형 에서에게 장자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여성스러운 남자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자다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야곱은 이삭처럼 여성스러운 면이 강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를 좋아해서 늘 어머니 곁에서 놀았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서 생활했습니다. 이삭은 그런 야곱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에서는 남자다웠습니다. 진짜 사나이였습니다. 에서는 남자답게 사냥을 즐겼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서 만들어준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이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불러서 자기를 위하여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에서의 별미를 먹고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처럼 변장시켰습니다. 에서가 입던 옷을 입게 하고 팔에는 염소털을 붙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삭이 리브가의 꾀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이삭이 속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어두어졌어도 자식의 목소리를 몰라보겠습니까? 또 야곱이 털이 많은 에서처럼 염소털로 꾸몄지만 그걸 몰라보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몰라보겠습니까? 단 번에 알아보죠! 그런데 이삭은 야곱에게 속았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삭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알아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몰라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경우가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아내가 둘입니다. 레아와 라헬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피신을 해서 일을 하는데 외삼촌이 보니 야곱이 일을 잘합니다. 그래서 라반이 야곱을 붙잡아두기 위하여 야곱과 거래를 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내 조카이지만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없으니 품삯을 정하자”고 합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딸 중에 외모가 아름다운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일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7년을 며칠처럼 여기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7년 후에 야곱이 라반에게 라헬을 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혼인잔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침실에 든 사람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라 못생긴 레아였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자기 곁에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여기서 야곱은 육신적인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레아로 만족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인간적인 생각만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다시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종살이 아닌 종살이를 7년 더 하게 되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지파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여러분! 유다는 레아와 라헬 중에서 누구의 아들이었습니까? 레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레아와 라헬 둘 중에 한 아내를 택하라면 야곱이 누구를 택해야 했을까요? 당연히 레아지요. 레아를 통해서 제사장 지파인 레위도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레아에게 있었는데 야곱은 라헬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좋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짜 성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행 13:36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의 일생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다윗의 인생이 복된 인생이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나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몸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은사와 자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보통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잘먹고 잘사는데 집중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4살 난 어떤 어린이가 상속을 받아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가 그 아이에게 “그 많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사탕을 사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기쁘고 좋은 일인지, 아니면 고작 사탕이나 사 먹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인지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야곱의 일생을 통해서 조명 받은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다 다루려고 준비를 하고보니 두 가지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음 주에 나머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야곱의 생애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말씀드렸습니다.
1.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