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함이라고 한다면 별거 있겠냐만은...어느 날, 일을 하다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학습된 무기력과 다시 일어나기의 반복.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 다시 무너지기, 붕괴와 재활.
나는 지난 8년동안 나는 공장에 근무를 했었고, 자신을 찾아 떠나기위해 스위치 끄듯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시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생각하길, '프리랜서로의 삶을 길게 살 수 있겠다' 싶어 인중을 쓱 훔치며 회사를 뒤로 하고 떵떵거렸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계좌에 꽂힌 금액을 보여주며 기고만장했지만, 안일해져가는 처우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잦은 사기를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 회복탄력성은 곤두박질쳤고, '흐름'에 몸을 맡겨 살았다. 또 사기를 당할까봐 퇴사 직후 친구들과의 연을 차츰 끊기 시작했고 급기야 외톨이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지?"
중소기업에 입사한 것도, 대기업에 입사한 것도, 한 해를 시작할 즈음 회사에서 촉구하는 연말정산도, 은행업무도, 음식 만들기도 모두 혼자서 스스로 한 게 없었다. 8년이 되도록 혼자서 무언갈 하려고 한 생각조차 없었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봤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할 일을 하고 고분고분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잘 살아갔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감겨있던 세 번째 눈이 뜨였다.
'기왕 퇴사한 거, 삶을 택한 거, 어디 한 번 해보자.'
보호종료아동으로서 혼자서 '자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없이도 세상에 홀로 살아남고 싶었다. 핸드폰, 월세 등등 각종 최소한의 유지비는 갖고 있는 것이 좋지만, 우선 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헤펐다. lh주택공사에서는 사회적약자 대상으로 주거지를 공급한다고 하지만,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과 보육원에서 받은 교육이 미흡했기에 어떻게 신청하고 공급받는지조차 몰랐다. 진입장벽이 콘크리트벽처럼 두터웠다. 맨땅에 헤딩.
진천에서 퇴사를 하고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때마침 부산에 살고 있는 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동생의 집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lh 사이트를 들어가 이미 주거지를 마련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주거지를 얻는 방법을 갈구했다. 그러나 몇 번의 거절, 알아서 하라는 답장. 그도그럴것이 친구들 또한 나처럼 이곳저곳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했을 것이 뻔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냉랭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lh주택공사에 주거할 공간을 선택해 신청하고 승인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은 총 4개월이다. 게다가 추가 서류 및 법정대리인을 데려가야하는 귀찮은 절차가 있기에 대부분의 보호종료아동은 탈선하거나 포기하고 월세방을 전전하기도 한다.
나는 월세방을 전전하며 살고 있었다. 이 좋은 방법이 있는지도 작년 겨울이 되어서야 겨겨우 알았다. 결국 두 달을 넘어 세 달이 될 때까지 집을 구하지 못했고, 짐을 다시 싸고 떠나야 했다. 단기월세(최소 6개월)를 구할 방법조차 몰라 짐이 꽉꽉 들어찬 차에서 약 일주일을 보냈다. 길거리 생활의 시작이었다.
매일 아침이 되면 편의점에 들러 삼각감밥과 종이팩 음료수하나로 끼니를 때웠고, 핸드폰을 충전하며 집을 알아보았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일기를 쓰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치안걱정도, 괴한이 쫓아올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최고 안보국 대한민국은 방랑자를 위한 최적의 국가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 보았다. 직접 호스텔, 호텔, 모텔, 고시텔 등등을 방문했고 그러다 도착한 곳이 여관이었다. 일주일만에 처음 씻는 기분은 뭐랄까, 새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우울함이 온수로 금방 씻겨져 내렸다. 잠도 잘 왔다. 잠을 잘 때가 되면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아파트 길목으로 들어가 차로 향했다.
그날 밤, 잠을 못자게 도와주는 모기 세마리가 차에 침입했고 나는 손방망이로 눈을 감은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경차 뒷자석에 쪼그려 누운지도 벌써 일주일. 점퍼로 반쯤 덮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름밤은 그 무엇보다 추웠다. 돈은 있는데 집을 구할줄 몰라 길거리 생활하는 꼴이라니. 웃펐다. 모기 날갯짓 소리가 줄어들자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하면 집을 구할 수 있지?
바로 그때, 탁 하고 내게 거금의 빚을 진 원수로 지냈던 친구가 꿈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요즘 단기월세 살고 있어."
단기월세. 그게 있었다. 다음 날 뭘 해야할 지 생각했다. 부동산에 들르면 간단한 일을 일주일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고, 모두 무색해졌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잠에 들려하자 잠이 잘 왔다. 산새소리가 아파트 길목에 퍼졌고,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학부모의 배웅소리가 차를 지나쳤다. 그러다가 똑똑. 누군가가 비좁고 짐밖에 없는 '우리집'에 노크를 했다. 창문을 내리자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아주머니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차를 몰고 찜질방엘 갔다. 마지막 길거리 생활.
딱 그런 감이왔다. 훈제 계란과 라면, 햇반 한 공기는 무엇보다 최고의 식사였다. 찜질방에 오기 전 부동산에 간다는 연락을 했고, 1시 반에 집주인과 계약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되자 부동산에 도착.
비록 구한 집은 작고 비좁고 낮은 4평의 월세방이었지만, 차보단 나았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건 삶을 택한 유일한 길이었고,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이제 글쓰기에 모든 것을 맡기련다. 배움의 길이든 실패의 길이든 어느 길이든 좋다. 글을 쓸 수 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