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왔어요?"
아내가 건내는 책은 영태 형의 책이었다.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가.
내가 아는 유일한 소설가(부부)였다.
그 동안 그들의 모진 고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살아 온 터에, 차라리 소설 출간 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그가 받을 상금 일 억이었다.
가난이 불만은 아니지만 불편하다는 영태형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작가이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이 가난에 고통 받고 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지구 상에 수도 없이 존재하고, 가난한 작가 또한 그 보다 많지는 않지만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좌파나 우파 정치가들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고, 그것을 명분 삼아 권력을 探한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진흙탕 싸움에 끼여드는 것 조차 싫다.
그냥 작가면 작가지 가난한 작가라니......
난, 영태형이 현실적으로 솔직하게 그런 수식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차라리 나 처럼 가난한 사람이었으면 족할 것을.
갑자기 책을 단번에 읽고 싶어졌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그래! 기차를 타자!
정동진 역에서 표를 끊자 눈은 더욱 세차게 내렸다.
파도도 역시 그랬다. 기차가 떠나자 나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가만히 창 밖을 보았다.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기차는 꿈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확인 할 필요도 없었다. 꿈 길이기 때문이었다.
꿈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고 공간과 거리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이 꿈일 뿐이다.
나는 아윈슈타인이 아니더라도 상대성 원리를 체험하고 있었다. 그곳은 시간과 공간이 모두 한 몸이었다. 현실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현재의 시간이고 공간이다.
그것은 꿈속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뻐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부질없다고 말하고 싶다.
지나가면 까마득한 일이었다. 닥치면 슬픈 일이 지나치고 나면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마음들은 내가 아니다. 진정 나는 무엇일까?
그래서 산다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육신과 정신의 교감하는 기간이 생의 시간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진정 살아간다는 것과 진정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삶은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
나는 무엇일까?
나는 기뻐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존재일까?
나는 아프고 병들고 건강한 존재일까?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증산역 휴게실이었다.
정동진에서 증산까지 왔던 것이고 나는 다시 돌아가는 정동진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증산역 바로 앞에서 만화방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영태형이 잠이 까빡 들어 제천역에서 내리지 못해 증산역까지 왔던 적도 있었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였다. 영태형과 친구는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내 옆에 금진항과 아내와 딸들과 영태형과 친구 정현과 증산역 앞에 살았던 친구와 태인이와 모정리와 그녀가 있었다.
어느 새 나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소설책 한권을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꿈 속에서 깨어나니 벌써 정동진 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