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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슈아께서도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셨다
예슈아께서도 시험으로 고난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받는 우리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고 승리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도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시험에 지면 죄를 짓게 되는데 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 걸까? '시험'은 헬라어로 '인내하도록 하고 훈련시키고 우리를 증명하다'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훈련하고 우리의 폐부를 살피시고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증명하는데 시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험을 거절하기 보다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히2:18, 4:15,16)
2 세가지 시험이 있다. 첫째, 능력행함으로 시험한다
예슈아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신 후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즉, 마음을 정검하고 스스로를 하나님께 증명하기 위해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하셨다. 그리고 배가 심히 고픈 예슈아께 첫번째 시험은 흔한 돌을 명령하여 빵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돌을 빵으로 바꾸는 능력으로 예슈아께서는 죽을 거 같은 허기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슈아께서는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사단은 능력을 행함으로 죽을 거 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본능적인 욕구를 해결해서 마치 생명이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예슈아께서는 속지 않으셨다. 예슈아께서는 능력 행함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이 생명을 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능력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능력 행하는 자를 따르기 쉽다. 마치 그에게 생명이 있을 거 같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분명히 예슈아께서는 생명은 능력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마귀의 시험을 물리쳤다. 능력 행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이다 그러나 그 은사는 나의 위기를 벗어나거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마4:1~4)
3 광야에서 겸손과 순종을 시험받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의 삶을 사는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지키는 지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함으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증명한다면 우린 마침내 생명을 얻고 번성하고 유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우린 능력을 행하여 우리의 고난을 당장에 끝내버리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훈련을 통해 낮아지고 순종을 배우는데 있다. 이처럼 예슈아께서도 광야에서 주리시고 겸손하게 순종에 대해 시험받으셨다. (신8:1~3)
4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
"여호와를 사랑하기에 건져주시고 그분의 이름을 알기에 높이시겠다. 악인들은 보응을 받으나 다윗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으며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모든 길을 지키시겠다. 다윗을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며 사자와 독사,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밟게 하시며 환난 날에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물론 악인에게는 보응하시겠지만 다윗처럼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지켜주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지켜 주실 것이다.(시91:7~15)
5 예루살렘, 시온산은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이다
예루살렘성과 시온산은 여호와의 영원한 거처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모든 통치가 시온산에서 시작된다.(시48:1,2)
6.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슈아를 통치의 시작인 하나님의 집,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말한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거란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나를 지키실 의무가 있고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일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우상 숭배이다. 하나님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 이용하는 것은 자기애에서 나오는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인내하도록 하고 내 뜻대로 그분을 바꾸려 한다면 이것이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다.
(마4:5~7)
7 원망함으로 여호와를 시험하지말라
광야에서 에돔과 싸우지 않으려고 에돔땅을 돌아가야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에돔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돌아갈 필요없이 편안한 여정을 만드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에돔인들이 그들의 땅을 지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험한 길로 돌아가야 했다. 이때 백성의 마음이 상하고 낙담했다. 이들은 모세에게 죽이려고 광야에 데려와서 싫어하는 만나를 먹게 하느냐고 불평했다. 모세에게 원망하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리더쉽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인들의 마음을 바꾸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신 이유는 아직 이들에게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원망할 때 여호와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죽게하셨다.(민21:4~9)
이처럼 자신 안에서 문제를 찾기 보다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고 스스로 멸망하는 길이다. (고전10:9,10)
8 여호와를 시험한 맛사 사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를 원망했다. 물이 없어 원망한 것이 왜 여호와를 시험한 것일까? 여호와를 어떻게 시험했다는 것일까?
백성은 모세에게 왜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죽게하느냐고 원망했다. 영어 성경은 애굽에서 나오게 한 것이 죽이기 위함이냐고 번역하고 있다. 극도로 화가 난 백성은 진심으로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했다.
이들이 시험한 것은 과연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가였다. 그래서 모세를 따라온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이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광야에서 목마르게 하고 만나를 주시고 힘들게 훈련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결국 하나님의 방식을 싫어하고 불평하고 원망함으로 이들이 따르는 분이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맞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모세를 죽이려 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내가 원하는 대로 요구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함으로 내가 하나님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출17:2~7)
9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그의 명령을 삼가 지키라
맛사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했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여호와의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을 받고 전쟁에서 이기며 아름다운 땅을 소유하게 된다. 당장에 마실 물이 없지만 공급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주실 것이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과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두 차이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되어 있는가에 있다. 주시는 것도 주시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린 그저 그분의 뜻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우린 물이 없어 죽는 거 같지만 우리가 정말 죽는 이유는 불순종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 당장 필요한 것이 없어서 죽을 거 같이 힘들 수 있으나 우리가 죽는 것은 불순종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순종과 동일하게 놓고 비유로 말씀하고있다. 물은 당장에 살게 할 수 있으나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은 순종이다.(신6:16~18)
10 마실 물이 없는 고난으로 율례를 가르치셨다
처음에 홍해를 거넌 이스라엘에게 삼일 동안 마실 물이 주어지지 않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셨고 바로 그곳에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순종하는지, 의를 행하는지, 규례를 지키는지를 시험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치료하는 여호와가 되실 것라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 우리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수의 말씀을 준행할 때 여호와께서 치유하시는 것이다. 지금 광야에 있는 우리들도 똑같이 순종을 시험하고 계시다. 속지 말자 나를 살게 하고 치료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좋은 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도와 율례와 규례에 순종함에 있다. (출15:22~26)
11. 72,000명 이상의 천사를 요청하실 수 있었다
예슈아께서는 감람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셨다. 그리고 정말 아버지의 뜻대로 강도처럼 잡혀가게 되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선택했다. 이때 제자 중 하나가 분노하여 칼을 사용했을 때, 예슈아께서는 많은 천사들을 요청할 수 있지만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고난에 순복했음을 이야기 하셨다. (한군단에 6천명정도 되므로 72,000명 이상을 말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야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알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베드로처럼 위기의 때에 넘어질 수 있다. (마26:51~54 마16:23)
12 아버지의 뜻을 선택할 때 천사가 힘을 더하여 굳세게 한다
예슈아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물으셨고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으셨다. 그래서 만약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옮겨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대로 될 것을 스스로에게 선포하셨다.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뜻을 왜 확신하지 못하셨을까? 그리고 항상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일가? 아버지께서 뜻하신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셨다. 육체안에 있다는 것은 영으로 기도하고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예슈아께서도 매일 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말씀을 성취하는 삶을 사셨다. 그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예슈아께서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고 계셨다면 우리가 똑같은 시험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우린 아버지를 볼 수 없고 그분의 뜻을 확신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갖고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시험을 당하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받고 인내를 배우셨으며 순종을 선택하셨다.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기로 결정했을때 천사가 하늘로 부터 내려와서 예슈아를 더욱 굳세게 하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힘쓰고 애써 기도할 수 있게 하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선포할 때 천사들이 파송되고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받고 더욱 굳게 세워질 수 있다. (눅22:42~44)
13 천하 만국의 영광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불법 vs 순종)
예슈아께서 받은 세번째 시험은 천하 만국의 영광이었다.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에 순식간에 데려가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기만 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말했다. 마귀에게 그런 권세가 있을까? 역시 거짓말일까? 마귀가 얻은 권세는 사람들이 불순종함으로 넘겨진 권세들이다. 정사와 권세를 사단이 잡고 있다. 자기들처럼 불순종하는 마귀의 종들에게 그들의 권세를 나누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영광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멸망시키는 것이므로 영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거짓말로 속이고 영생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불법의 방법으로 얻는 세상 권세를 거절하고 오직 여호와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다. 사람은 누구나 영광과 권세를 얻고 성공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신의 백성에게 예슈아의 제사장이 되고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를 위해 우린 순종으로 거룩한 신부가 되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신에게 경배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때 우린 어떤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순종으로 여호와를 따를 것인가? 불순종으로 마귀를 따를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 때 우린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 순종의 사람 참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불법을 따르는지, 순종을 따르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할 때 천사들이 함께 돕고 힘을 더할 것이다. (마4:8~11)
14 다윗도 사단의 말에 설득되었다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일어나 다윗의 마음을 충동했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을 계수하도록 하였고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이유가 되었다. 다윗은 여호와께 큰 죄를 범한 것을 깨닫고 용서를 구했다. 여기서 '충동하다'의 원어는 '찌르다, 자극하다, 유혹하다, (마음을) 움직이다. 설득하다'등의 뜻이다. 사단이 유혹하고 죄를 짓도록 자극했는데 왜 다윗이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그 이유는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모두 물리치셨고 승리하셨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에 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증거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과 같다. (대상21:1~8)
15 시험에 지면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선견자 갓이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세가지 중 하나를 마음대로 택하라고 말한다. 첫째는, 3년 기근 둘째는, 3달동안 전쟁에서 폐하는 것 셋째는, 3일 전염병이다. 당연히 다윗은 3일을 선택했고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었다.
이처럼 우리의 죄악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므로 우린 여호와를 경외하고 죄를 혐오하고 반드시 시험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대상21:9~14)
16 시험에 이기기 위해 전신 갑주를 입어라
마귀의 시험에 능히 대적하고 이기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바울은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전신갑주를 입으면 시험을 당할 때 능히 이기고 설 수 있다.
전신갑주는 진리에 순종함으로 허리띠를 띠고(절제하고) 의로움으로 생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사단의 찌르는 모든 불화살의 말이나 일들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예슈아(구원)로 머리삼고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비진리를 소멸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슈아께서 몸소 보이신 것 처럼 거룩함을 따르는 순종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믿음과 자의적 해석이 아닌 하나님의 유익을 따르는 말씀 해석이다. 왜냐하면 사단도 말씀으로 시험하기 때문이다. 순종과 믿음과 말씀에 대한 바른 관점이 전신 갑주가 되어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기게 할 수 있다. (엡6:11~17)
17 시험에 이기기위해 말씀과 기도로 싸워라
사도 바울은 시험에 이기기 위해 여러 성도를 위해 모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라고 조언하고있다. '항상'은 원어로 '매일 정해진 때나 적당한 때'를 의미한다. 심지어 '적당한 짧은 기간'을 말하고 있다. 또는 '정해진 적당한 때의 모든 시간'을 말한다. 예슈아께서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셨다. 그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여러 성도'는 원어로는 '모든 성도'이다.
또한, 말씀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핍박을 하더라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한다. 심지어 쇠사슬에 매여 감옥에 가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말씀은 맡은 자는 가감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전할 책임이 있고 이것이 교회가 시험에 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는 방법이다.(엡6:18~20)
18 인자로 오셔서 친히 시험을 당하신 예슈아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말씀이 육신이신 예슈아가 되어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로 함께 하셨다. 예슈아의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여기서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부터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예슈아로부터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율법은 진리라고 다윗이 고백했고 계명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에 은혜와 진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께서 인자로 오셔서 순종의 본을 보이시고, 살 수 있도록 양심을 씻어 주시기 때문에 천대에 미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신 것이다. (요1:14,17 시119:142 출20:6)
19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한다
예슈아께서는 세가지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불순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연민의 자기 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불법을 사랑하진 않는지, 내 뜻대로 안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 않는지 등을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깨닫고 회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다. (마4:17)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헌금 계좌: 농협 301 0293 8190 01 레올람토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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