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내두산아리랑
누구나 꿈은 있을것이다. 하지만 꿈이라하여 다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나 또한 아름다운 꿈이 있었지만 번마다 깨고보면 아름다운 추억뿐 진정한 단맛은 없었다. 진정한 단맛이 내 꿈의 결실이였는데…
1997년부터 연해지구를 떠돌면서 외자기업에서도 일해보고 절로 기업도 꾸려보면서 인생학원을 다니게 되였다. 젊음의 열정으로 두려운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배우며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있는 동산을 그려본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꿈도 꾸고 기업의 리더가 되는 꿈도 꾸고 심지어 돈무지를 쌓아놓고 승용차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허황한 꿈도 꾼적이 있다.
나한테는 친구도 많았다. 특히는 술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다 그런것만은 아니다. 2007년 국제경제위기시기에 미국 LA에 비정상적수속으로 제품을 납품하고 인민페 340만을 사기당한적이 있었을 때 나에게 88만이라는 거액의 돈을 빌려주면서 새로운 삶을 걷게한 친구도 있을만큼 진정한 친구도 있었다.
대륙의 방방곡곡 어디에서 돈 벌기 좋다면 어디든 불문하고 떠돌아다녔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알맞는 자리가 없었다. 뒤늦게나마 고향이 그리워졌다. 고향에는 언제나 따스한 기운이 떠돌았고 일을 그릇치고 돌아와도 웃음으로 동정어린 눈길로 반겨주는 부모님과 동네분들이 있었다.
“나는 기업가가 아니다. 나는 농민의 아들이다.”
무작정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따스한 느낌이 다가오는것만 같았다. 이틀이 지나서 내가 고향에 돌아왔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그 익숙한 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 앞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혹시 잘못 찾아온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 확인해봐도 내 고향이였다. 혹시 꿈을 꾸는것이 아닌가 하고 꼬집어보니 아팠다. 역시 꿈은 아니였다.
이것이 웬일인가?
나는 내가 자주다니던 친구집을 찾아갔다. 어릴적에 놀던 집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찾을수가 있었다. 친구를 만날 기쁨에 인기척을 내면서 들어섰더니 70이 훨씬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분이“누구세요?”하며 내다보는것이였다. 얼굴에 주름이 깊숙히 그려졌지만 친구의 어머니만은 틀림없었다.
“어머님 저 발개돌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어머님은 나를 부등켜안고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또 자세히 쳐다보는것이였다. 나의 고향도 이젠 외국바람이 불어서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한족들이 밭을 다룬다며 내 고향을 점령했고 남은 동네분들은 70고령이상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4가구가 살고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글을 쓰는 작가 친구가 장백산아래에 오붓한 조선족동네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보았는데 내가 태여난 고향과는 아주 달리 오직 조선족만 모여서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였다. 연길이나 룡정, 화룡같이 조선족이 많던 곳에도 다 떠나고 한족이 진을 치고 있는 마당에 한족들만 벅적이는 이 고장에 조선족만 모여사는 마을이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는 로인회장과 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는데 이 마을에도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젊은 사람들은 돈을 번답시고 다 외국으로 나가고 년로하신 로인들만 이 고향을 지키고 있으니 하고싶은 일이 태산같은 촌장은 생각뿐이지 할수 있는것이 없었다. 이렇게 작가 친구와 함께 이곳을 수차레를 다녀오면서 아름다운 꿈을 이룰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부에서는 농촌합작사를 지지하며 촌민들의 치부를 지지하는데 젊은사람들은 전부다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갔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만 사는 동네라고 정책은 피해가지 않은것이다. 바로 이곳의 지리적위치와 조선족만 모여산다는 우월한 조건으로 중국소수민족 100대“특색부락”으로 선발된것이다. 이어서 한국의 유명인사 최불암선생이 한국 KBS 인기프로“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여 2014년 10월 9일 175회에 방송되여 국내외 손님들이 찾아들어 조용하던 마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최불암선생이 촬영하던 집과 주변의 여러 집을 세내고 쓰지않아 황페해진 목욕탕과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비가 새고 벽이 떨어지는 촌의 건물하나를 세내여 장백산과 내두산의 우월한 조건에 근거하여 조선민속관광펜션을 운영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우선 세상사람이 우리를 찾기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홈페이지를 내두산촌의 이름을 따서“www.naitoushan.com”으로 신청을 하였다.
우선 고객들이 내두산을 쉽게 찾아오고 편안하게 휴식하며 맛갈스러운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을 준비하며 여행을 다니면서 불편한 면을 고려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촌장과 의논하여 마을분들이 붙이지 않는 터전에 유기농남새를 재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객들이 터밭에서 직접 상추 한포기, 마늘 한쪽, 고추 두어개 뜯어 토종된장에 찍어먹고 새콤새콤한 미나리겉절이에 잘 구워진 삼겹살을 싸서 맛스레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돈은 많이 벌어야 좋은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의 등골을 빼먹으면서까지 번 돈은 항시 가슴 한 구석이 편하지가 않을것 같았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땅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의 것을 하나하나 복귀하면서 조선족민속촌을 꾸려가는것이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이라는것을 깨달게 되였다.
앞으로 우리민족의 문예활동을 이곳에서 열리게 하고 민족의 문화와 언어가 여기에서만이라도 저애없이 소통되며 전 세계 조선민족과 다른 민족이 부담없이 드나들며 부모없어 불쌍한 어린이와 의처가 없는 불쌍한 장애인들도 함께 따뜻하게 사는 삶의 락원을 만드는것이 나의 진정한 꿈이였다.
이젠“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며 믿음을 주며 남을 저주하지 않으며 오직 평화만이 생존하는 꿈을 이루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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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기 위하여
내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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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25 08:5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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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자랑스러운 생각하셧어요.꿈은 이루어 짐니다.
감사합니다. 부자되기님의 응원에 더욱 힘 얻었습니다.
고향에서 이루시는 꿈 아름답습니다.
부족한 점 많은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대의 성공적 사업과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대의 넌픽션 수기를 기대합니다.
저도 최불암 님의 그곳 출영 프로를 봣습니다.
언젠가 한번 찾아가뵙기를 기대해봅니다.
금년에는 처음 시작이라 많은 불편함이 따랐지만 여러분의 동정과 이해하에 금년을 뜻깊게 마무리 했습니다
래년에는 금년에 지은 460평 식당이과 주방이 새롭게 오픈되기에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겁니다.
꼭 찾아주세요 미리 전화 주시고
감사합니다
150-4333-3603
하시는 일 꼭 잘되시기를!!
작은 풀님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성한 수림만 멋지다고 하지만 작은풀님 같은 풀이 수림의 밑부분을 든든하게 지키는걸 모르지요
전 작은풀님이 무성한 수림의 디딤이된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