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벚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 신정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있다
성체조배 하러 가는 길
온몸에 황금을 칠한 어둠 속에서 찢긴 잠의 절단면을 걷고 있던 사람 하나가 벚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에겐 그 벚나무 어딘가에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던 것이다
셀 수 없는 꽃잎이 되려고
그가 걸어 들어간 벚나무 아래서
내 안에 내리고 있는 새벽 빗소리를 들었다
질 나쁜 종이에 연필심 긁히는 소리
전국의 벚꽃 개화 시기가 조금씩 달랐던 건 사람들이 집을 떠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가로수로 서 있을 사람
혹여 누군가 활과 화살을 만들기 위해 이 나무를 베어 낸다 할지라도
바람에 흩날리는 우수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던 화려한 시절
짧아서 아름다웠던 생
바구니를 메고 있는 새벽이 벚나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파란,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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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민 시인
1961년 전북 전주 출생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티벳 만행』 『나이지리아의 모자』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의자를 두고 내렸다』 외.
2020년 최계락문학상, 2022년 지리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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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후 벚꽃들이 거의 떨어졌다. 봄날은 간다.
시인은 이제 ‘사람이 벚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꽃잎이 가는 시간은 시인의 시구처럼 ‘질 나쁜 종이에 연필심 긁히는 소리’가 들릴 듯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벚꽃 개화시기가 다른 건 사람들이 집을 떠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라니!
좋은 시는 이렇듯 다르게 쓰고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구의 기후 변화로 올해는 벚꽃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랐다.
이제 곧 초록이 거리를 차지할 것이다.
꽃잎 때문에 검어졌던 벚나무도 차츰 회색을 띠고 있다.
- 성윤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