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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개발 독재? K2 전차·원전 수출은 박정희 '중화학 선언'의 열매"
조선일보
[김윤덕이 만난 사람] 박정희의 '마지막 비서관' 김광모
김광모 전 청와대 비서관은 "박정희 최고의 업적은 새마을운동도, 고속도로도 아니다. 중화학공업화로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기초를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입력 2024.07.08. 00:06업데이트 2024.07.08. 07:06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7/08/WDMRKYMD3JEETO6FHZUFEPJF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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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중화학공업 정책의 산증인인 김광모 전 청와대 비서관이 6월 17일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관련 자료와 문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대부분 대통령기록관과 서울대 한국사회과학자료원에 기증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망백(望百)의 노인은 매일 아침 휠체어를 타고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간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의 구십 생애 중 “가장 바빴으나 찬란했던” 1970년대를 기록하는 중이다.
1971년부터 8년 동안 그는 청와대 중화학 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 오원철과 함께 박정희의 손발이 되어 방위산업, 중화학공업, 원자핵 개발을 기획하고 실행한 인물이다. “나는 ‘했다고 한다’가 아니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그는 “K2전차와 원전 수출, 반도체 산업의 번창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위에서 탄생한 것인데도 MZ세대는 박정희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아 서글프다”고 했다.
핵무장론과 ‘대왕고래’ 탐사로 소란한 요즘, 박정희 핵 개발과 원유 시추 사업의 전말을 알고 있는 ‘마지막 비서관’ 김광모를 만났다. 그는 “박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알리고 죽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했다.
◇ 박정희의 손과 발로 뛴 8년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관련서를 이미 여러 권 출간하셨다. 왜 또 글을 쓰시나.
“써도 써도 모자란다는 생각에…. 책을 내도 사람들이 읽지 않으니 요즘은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서 카톡으로 배달한다. 카톡이란 놈이 참 신통하다. 원고지, 볼펜이 따로 없어도 되니 나 같은 늙은이에겐 아주 제격이다(웃음).”
-첫 책은 자비로 출간했더라.
“1988년 낸 ‘한국의 산업 발전과 중화학공업화 정책’이다. 박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중화학 정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한 게 안타까워 그간의 자료와 문서, 현장 경험을 토대로 기술한 것이다. 그런데 출판해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탓일까?
“신군부는 박정희 죽이기에 몰두했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유신 개발 독재의 산물이라며 저평가했다.”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은 왜 중요한가?
“박정희 최고의 업적은 새마을운동도, 고속도로도 아니다. 중화학공업화로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기초를 만든 것이다. 중화학이 뭔가. 철강, 기계, 조선, 석유화학, 전자 등 모든 산업의 기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지만 반도체도, AI 산업도 중화학의 토대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시작은 방위산업이었더라.
“1960년대 1·2차 경제개발 계획을 성공시켜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청와대 습격 사건, 울진삼척 지구 침투 사건 등 북한이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닉슨 독트린’과 함께 미국이 주한 미군 사단 하나를 철수하겠다는 통보를 해오자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오원철 수석이 이때 등장하는 건가?
“방위산업 추진 지시에 경제기획원은 주물선·특수강·중기계·조선소 등 4대 핵 공장 건설 계획을 세웠는데, 1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자 대통령이 크게 실망했다. 그때 서울대 공대 출신인 오원철 당시 상공부 광공전 차관보가 기막힌 대안을 마련해 왔다. 어떤 병기(兵器)도 분해하면 부품이 되는 것이니,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4대 핵 공장을 짓는 대신 부품 공장과 조립 공장을 설립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병기를 양산할 수 있다고 보고한 것이다. 바로 다음 날 오원철은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 나는 중화학 및 방위산업 기획관으로 발령이 났다.”
-’공업 구조 개편’도 이때부터 시작되나?
“1971년 말부터 병기를 시제(試製)하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철강, 특수강, 화공약품 같은 원자재가 없으니 한계에 부닥쳤다. 오죽하면 청계천 고물 상가에 버려진 병기를 주워다 만들었겠나. 병기를 생산하려면 원자재를 만드는 중화학 공장과 정밀 가공 기술 인력이 필수라는 걸 절감하고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개편하는 일에 착수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손발이 되어 중화학공업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김광모 전 비서관이 창원기계단지 설립 계획안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 /김윤덕 기자
◇ 대통령 단상으로 날아간 파편
-미국은 박정희의 방위산업, 중화학 선언에 반대했다던데.
“방위산업을 하려는 박정희의 의도와 역량을 의심해서 무기 제조 기술은커녕 설계 도면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국방과학연구소는 최종 제품을 분해한 뒤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마침내 창원 기계단지에서 기본 병기를 양산하고 유도 무기와 핵 개발까지 논의하게 되자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이 창원 단지를 시찰했고, 한국의 방위산업이 공산권 수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판단에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이 중단된다.”
-병기 시사(試射) 때의 일화가 흥미롭더라.
“모든 시사에 참석할 만큼 박 대통령은 방위산업을 어린애 돌보듯 키웠다. 한번은 대전차 지뢰를 선보이는 날이었는데, 탱크 밑에 지뢰를 넣고 폭파했더니 그 파편이 대통령 단상으로 날아가 난리가 났다. 아찔한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지뢰 유력이 대단하구나. 계속해!’ 하며 칭찬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지뢰가 터지지 않을까 봐 두 개를 설치했다가 너무 세게 폭발한 거였다(웃음).”
-박정희의 중화학공업이 유신 개발 독재의 산물이란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유신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유신으로 인해 안정된 정권이 보장됐기 때문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중화학공업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박정희의 장기 집권은 개인 치부가 아니라 그가 즐겨 쓰던 휘호대로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나는 믿는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도 따른다.
“중화학공업은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대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으려고 해서 박통이 일일이 달래고 설득했다. 설득도 안 되면 행정명령으로 지시해 맡겼을 정도다. 조선소만 해도 건설업으로 성공한 현대를 지명했는데 정주영 회장이 못 한다고 버티자 대통령이 호통을 치셨다. 부품 생산과 가공 공장은 중소기업체들에 맡겨, 이 시기 중소기업 육성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현대중공업 제공
◇ 신군부의 박정희 죽이기
-박정희의 핵 개발은 거의 완성 단계에서 포기했다던데.
“1972년 9월 박통이 오원철 수석에게 핵 개발 계획을 지시했다. 오 수석은 원자력연구소 윤용구 소장, 핵 개발을 전공한 현경호 부소장과 회의한 뒤 극비리에 플루토늄탄을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프랑스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과 도면을 획득했는데, 이를 안 미국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고리 원전 2호기 차관을 중지하겠다고 통보해 중단됐다. (핵 개발이) 완성 단계도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잘 알지 못하면서 회고록에 그렇게 쓰더라.”
-그래도 박정희가 비밀리에 핵 개발을 지속했다고 하더라.
“공식적으로는 포기했다고 선언했지만, 핵연료공단은 기술 개발을 이어갔다. 그러나 박정희 서거 후 신군부가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핵 개발 관련 기관들을 모두 없애고 연구 인력도 퇴출시켰다. 국방과학연구소 인력을 반으로 줄이고 원자력연구소를 에너지연구소로 축소시키면서 기술이 크게 퇴보했다.”
-김진명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핵 물리학자로 등장하는 이휘소 박사가 서울대 화공과 동기라던데?
“뛰어난 학생이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세계적인 과학자였지만 박정희 지시로 핵을 개발하다 CIA에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는 핵 개발과는 상관없는 소립자 물리학자였다. 박 대통령이 이휘소에게 친서를 보낸 적도 없다. 김진명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요즘 나오는 핵무장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안도 없으면서 정치인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당장 누가 핵 개발을 주도할 것이며, 핵실험은 또 어디에서 할 건가.”
-6개월 내 핵을 가질 수 있다고도 한다.
“허무맹랑한 말들이다. 핵을 개발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동해 석유 탐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원유 시추 실패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1960년대 유공의 합작 회사였던 걸프 오일이 서해안 지역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미국 해양연구소의 에머리 보고서를 보여주면서 상공부에 대륙붕 개발 신청을 했다. 정부는 걸프오일, 텍사코, 셸 등 세 회사에 조광권을 주고 여섯 광구에서 원유 시추를 했다. 비용은 전액 시추자 부담이고 원유가 나오면 반씩 나누기로 한 조건이라 재정적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 ‘드라이(징후 없음)’로 판정 났다. 일본과 분쟁지역인 7광구에서도 원유는 나오지 않았다.”
-상공부 석유화학과장을 지냈고, 대한석유공사에서도 근무하셨더라. 윤 정부의 동해 석유 탐사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
“석유 240억배럴이 있을 가능성이 20%라면 당연히 시추해야 한다. 부존 가능성 판단을 누가 어떻게 했는지가 관건인데, 나는 액트지오가 어떤 회사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이 걱정된다. 박정희 때와 달리 국가 재정 부담이 큰 사업인데, 원유가 나오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박정희 대통령도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우리도 석유국가가 됐다’고 발표했는데,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그해 박 대통령이 진해로 휴가를 가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기자가 석유 탐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돌발 질문을 하자, 당황한 대통령이 ‘원유는 있는데 경제성이 없어 포기했다’고 얼버무리셨다(웃음). 기대를 엄청 했는데 원유가 없다는 최종 결과에 대통령이 가장 크게 실망하셨다.”
지난 6월 3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현안 관련 국정 브리핑을 보고 있는 사람들. 이날 동해 심해 석유 탐사 계획이 발표됐다. 2024.6.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尹 주위에 검사보다 과학자 많아야
-가까이서 본 박정희는 어떤 사람이었나?
“보고서에 깨알같이 메모하며 공부를 많이 하는 대통령이었다. 외강(外剛)이 몸에 배었으나 실은 내유(內柔)의 인사였다. 독일 함보른 광산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들과 함께 울던 장면, 방산 현장에서 순직한 이석표 비서관을 꼭 살려내라며 울던 모습이 생생하다.”
-8년간 청와대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다던데.
“김정렴 실장의 ‘청와대 공무원 수칙’이었다. 명함도 못 만들게 하고, 대통령과 사진도 못 찍게 했으며,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게 했다(웃음). 모범공무훈장인 청조근정훈장 받은 것을 최고 영예로 느끼며 살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강직하지만 포용이 없는 정치 스타일로 일관하다 무너진 게 안타깝다. 나는 그가 전자공학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올해는 중화학 선언 51년, 산업단지 60년이다.
“제조업 없이, 중화학 없이 첨단 산업도 없다. 자동차 부품 업체 없이 차세대 전기차를 만들 수 없고, 원전 방산 업체 없이 K원전·K방산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반도체의 실리콘은 누가 만들 것인가. IMF 외환위기도 중화학 제품의 수출로 이겨냈다.”
-윤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방위산업, 항공산업, 원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과학자와 기술자가 대우받고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한국 중화학공업의 일등 공신은 박정희의 기술 인력 양성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주위에 검사보다 과학자가 많아야 한다.”
-왜 그렇게 박정희에게 ‘진심’인가?
“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그만한 지도자, 애국자가 없었다.”
☞김광모
1933년 경남 김해 출생. 부산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57년 상공부 화학과에 들어가 호남비료, 대한석유공사를 거쳐 상공부 석유화학과장으로 일했다. 1971년 청와대 경제2수석실에서 방위산업과 중화학, 핵개발 관련 실무를 맡았다. 삼성엔지니어링 대표, 삼성그룹 고문을 지냈다. ‘중화학 공업에 박정희의 혼이 살아 있다’ 등의 저서를 펴냈다.
김윤덕 기자
2024.07.08 00:44:42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영광이 내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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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2:38:03
인류의 발전은 지성과 기술의 발전이었다. 앞으로도 그렇다. 따라서 올바른 정치가는 인류의 지성과 신기술이 개발되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박정희의 위대함은 그 길을 뚫고 만들기 위함이었고 그걸 방해하는 걸기적거리는 쓰레기들을 치우기위해 좀 과격한 빗자루 정치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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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3:08:03
독재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업적을 무시하는 좌ㅃ음해선동 방식은 딱 북 김가네가 해온 방식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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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5:59:25
"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틀렸다. 5000만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5000년 가난을 물리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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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06:36
박정희는 독재자가 아니라 책임감이 넘치는 가부장적 리더였다. 반면 김영삼 김대중은 정권욕만 가득한 정치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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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3:45:49
먹고 입을 것이 없어 당장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때에도 후진국 무상지원금. 차관들을 당장 필요한 소비재 경공업이 아닌 이 조그만 땅떵어리 위에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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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54:04
민족중흥의 위대한 설계자요 실천가인 박정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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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16:30
말 해서 뭐하나 우리 국가산업 경제의 오늘이 있게 한 원초적 바탕 근간 뿌리가 다 박통의 영혼에서 나온 게 아닌가 종북 굴종 주사파들은 나라 곳간 비우는 데만 혈안인 거와 극명한 비교가 된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지금도 전국민 25만원 퍼준다고 난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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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41:40
아 일생을 내 민족과 조국을 위해 바친 박정희 대통령!!!! 그대는 정녕 5000년 민족사의 최고의 영울이었다.. 대한민국을 강국으로 우뚝서게 한 토대를 모두 마련하고 후진국 한국을 강국으로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대통령을 하늘이 낳아 대한민국에 기적을 선사했다..이런 대통령은 앞으로도 영원히 보기 힘들 것이다... 모두 감사해야 할 영원한 영웅이자 혁명가 !! 전세계를 통틀어 20세기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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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48:06
맞습니다.대한민국의 중화학공업은 박정희의 광양,울산등에 세운 제철공장과 대전에 세운 산업연구단지가 큰힘이되고 뿌리가 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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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47:15
지금 정국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통치자가 필요하다. 종북좌파 정당인 민주당과 소속 의원 대부분이 종북좌파들이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는 말리 이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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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20:50
신군부의 박정희 지우기가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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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5:34:17
남미나 동남아시아를 보면 진정한 독립투사.민주투사.인권투사는 국민을 배부르게, 공부하게 해준, 풍요로움이다. 그 많은 투사 보유국들 여적도 배고픔에 투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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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53:07
박정희 도 싱가포르 이광요 처럼 종신 대통령으로 계셨으면 한국은 지금 G5 일것이다 ~ 지금도 한국은 한국식 민주주가 필요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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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02:39
쿠테타 유신! 쿠테타하고 유신해야 나라가 산다. 사람이 산다. 기업이 산다. 국민이 산다. 쿠테타(舊態打)라. 썩어 빠진 舊態를 打파 하는 것이 쿠테타이다. 유신(維新)이라. paradigm(維)을 새롭게(新) 하는 것이 유신이다. 이승만이 만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을 박정희가 쿠테타하고 유신하여 진정한 자유밑주주의 시장경제의 잘 묵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하늘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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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6:33:39
맞습니다 근대산업의 결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의 결실입니다 운동권 정치인 들 먹고 똥만 싸는 좌파들은 그런 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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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24:28
김여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이것들이 국가파괴 파산시키고 현재의 부채공화국 전라민국 남로당 국가로 전락시킨 주범들때문에 현재 2030까지도 전교조 민노총때문에 국가민족 정기가 쇠퇴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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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5:42:48
주위사람 관리도 대통령의 능력이자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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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39:10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을 폄훼하고 왜곡해도 그는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역사 속에 진정한 애국애족 대통령이었다는 각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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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35:55
유신은 독재가 아니다, 이재명이 독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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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45:41
김광모 어르신 고맙습니다 훌륭한 참모가 계셨기에 오늘의 원저느K2 등 방산수출을 할 수 있겠된 것 아닙니까? 어르신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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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46:44
누가 뭐래도 박통은 레전드다. 국무총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대통령은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 만큼 중요한데, 학연, 지연등등의 병폐로 지도자를 뽑는것보면 한국이 이정도 사는게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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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28:12
이 나라의 國富의 터를 닦은 이런 朴統을 부정하며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二重處身의 達人들...아부지이죄명黨 의원들, 曺구기 의원O들.....朴統의 大業을 繼承하려는 尹統 당신은 최소한 罪명이하고 曺구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當身은 물론이고 이 나라의 장래도 없소...재임 中에 전부 淸掃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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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29:07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발전된 한국의 원동력은 박정희가 이룬 기초에서 이룬것이다 너무나 고마운 박정희 그립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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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58:53
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그만한 지도자, 애국자가 없었다. 마지막 문장에 울컥했습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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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50:38
문X앙의 이승만 박정희 죽이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이다. 바보같이 좌파를 따르면 그 결과는 종말이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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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59:13
#박정희대통령 존경합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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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34:37
누가 뭐라해도 박정희는 대한민국에 영웅 이다,별에 별O들히 다 뭐라해도 이나라를 이만큼 살수 있게 만들어 놓은것은 오직 박정희 뿐이다,그때 기초를 잘다져 놓아기 때문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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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26:59
오늘날 새겨들을 것들이 참 많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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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23:33
체 지금 정치 인들 박대통령 궁댕이도 못따라가 지금 정치인들 알겄냐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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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01:26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영혼이 되 살아 났으면 하는 바램도 해봅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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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15:59
이 석표 비서관 아들이 이공계 인재로 성장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소하여 같이 근무한바 있습니다 ㆍ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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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45:30
요즘 세상 이 온통 kkk 하는 그 뿌리,,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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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50:03
유신 개발 독재!!! 한단어 한마디...다 악의와 증오로 가득한 소위...민주인권진보타령하던 속 붉고 수구적이며 도심으로 가득한 더불어이리류들의 조작왜곡의 똥같은 구호일뿐이다!! 썩어 문드러진 기득권과 폭력이 난무하는 조직폭력배들이 활보하던 그시대 상황에서 이나라! 가난한 국민! 핍절한 국민! 무지렁이같은 국민들을 보고 눈물흘리는 사랑의 심정으로 기존의 어떤 수단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그 엄혹하고 암흑의 시대에 혁명의 결단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도 좋다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내렸던 결단의 메스이며 청산의 메스였고 썩어문드러진 암덩어리를 제거해야만했던 절박함의 메스였던것이다!! 그때 기디ㅣㅣ중과 김영삼류들의 마치 조직폭력배의 근사한 우두머리처럼 활보하며 경부고속도로에 드러 누우며 변화에 처절히 훼방을 놓았었지!!! 그런그들의 합작물이 IMF였다는거 잊으셨나!! 박정희는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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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34:31
가난한 국민을 위해 국가를위해 경제를 살린 위대한 업적에 존경해마지 않는다 국민을위해 변치않는 리더십을 본받자 재명이는 무조건 사리사욕을탐하는자 마나님을우해 격노한 그런자 우리의 미래는 어떤가?국가에 모토가 무엇일까 그립다 못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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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22:56
기자는 카톡을 어떻게 받을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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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38:39
브라운 장관이 창원공단을 둘러보고 주한미군 철수 중단을 결정했다는 일화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공업화된 국가가 공산권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후 동유럽을 소련에 넘겼는데 그 중 체코를 넘긴 것에 나중 큰 후회를 했다.체코의 기계공업은 소련의 무기생산에 큰 도움을 줬고 자유세계가 큰 위협에 직면했다.애그뉴 부통령은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당시 대기업들은 조선,전자 등을 하라는 박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정주영도 몇번 검토를 하다가 못하겠다고 했다.그러자 박대통령은 정주영에게 "이렇게 대통령이 도와주겠다는데 못하느냐"고 닥달했다.삼성전자도 박대통령이 김종필을 이병철에게 보내 전자산업을 하라고 독려해서 만들었다.재벌들을 밀어부쳐서 중화학공업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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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36:07
아시아의 별, 아시아 최고의 영도자 , 개발도상국의 표본이 된 영도자 , 어쩌면 전무 후무한 세계 최고의 영도자, 그깟 약간의 독재 는 무방하다. 한국의 발전과 중흥으로 이끈 지도자, 또 한가지 중요사실은 더불당 같은 붉은무리를 박멸하여 깨끗한 반공국가를 건설한 영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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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7:33
유신을 겪을 때에는 독재가 심하지 않는가 생각했었는데, 우리 민족의 수준에 보아서 그게 적절한 것이었다.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에 자유민주주의를 심어준 이승만이 제1등이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고, 빈곤에서 탈피하게 해 준 박정희가 그 다음이다. 나머지 운명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남미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부디 내 생애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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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3:35
진정한 애국자중 한분 김광모 이분 생각난다. 지금 날뛰는 종북좌파들 박정희 대통령이 조금 더 하셨다면 괴멸 시킬수있었을거고 경제는 정말 G2 순준에 올라갔을거다 .좌파 대통령이란 자들이 한거 북에 돈 퍼다주고 국내에 간첩들 양성 한거 외에 뭐있나? 라고 나는 묻고싶다 대답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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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7:47:17
구글에 1960 GDP ranking by country 치면 남한이 40위로 뜬다.. 세계 최빈국에서 어쩌구 하는 수식어는 관제 언론들한테 세뇌당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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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41:43
저도 박정희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 법이지요. 대한민국을 진심 사랑하시고, 조국 번영을 위해 노력하셨지만, 그분과 그분을 뒷배 삼아 민주주의를 원하는 분들께 나쁜짓도 많이 한건 사실입니다. 그분의 업적과 잘못된 과거는 분리해서 평가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무조건적인 추종과 무조건적인 비판은 맹종일뿐입니다. 제대로 평가해서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점은 반면교사 삼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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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34:06
인도를 보면 2차 세계대전 후 우리와 같이 독립 후 지금까지 민주주의면서도 후진국으로 있었던 것은 결국 박정희대통령 같은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만으로 국민이 살기 힘든 것은 민주주의는 현 정국 처럼 애국심이라고는 한푼도 없는 범죄자가 사이비 애국자 연연하면서 나라를 흔들기 때문에 발전이 될 수가 없다. 독재도 급이 다르다 나라를 발전시키는데만 몰두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폐단인 "민주주의를 가장한 방해를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독재는 민주주의 보다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박정희대통령은 그 개발독재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였고 영웅이였다. 나라를 부강시키기 위한 수단을 열거 해보면 1.나라 발전을 위한 독재 2. 민주주의 성장(예 인도) 3. 개인을 위한 독재 .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하게도 나라를 위한 독재국가였으니 그게 우리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내려보낸 축복이 였다. 젊은 사람들은 이 글을 숙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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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6:57
북한에는 김일성 우상화, 남한에는 박정희 우상화 ... 그런 식이면 ...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박정희 우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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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2:22
박정희는 개도국의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이다. 그의 혜안이 결국 오늘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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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1:49
어설픈 3류 종북좌파들이 박정희를 끌어 내리려다 보니 정치가 꼬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경제 부흥없는 인권과 환경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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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17:02
그렇지요...박정희만한 지도자,박정희만한 애국자가 없었지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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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13:40
더도 들도 말고 박정희반만큼이라도 하는 대통령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는가 지금의 정치는 나라를 망치기 경쟁하는 인간들만 득실거린다 지하에서 애국선열들이 통곡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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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8:36
박대통령의 산증인 이시네요.하늘이 내리신 우리의 영웅 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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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3:57
나의 영웅!!!!!! 우리의 영웅!!!! 한민족의 영웅!!!!!! 눈물 짓게 하는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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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45:23
나도 박정희종교를 믿습니다/ 문제인아 윤석열아 박대통령도 너희들에게 똥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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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48:46
1961년 당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63달러. 세계에서 꼴찌에서 3번째로 못사는 가난에 찌든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의 주춧돌을 놓은 대통령이 누구였는가????? 오늘날 번영된 대한민국 에서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사는 젊은이들은 그것이 누구때문이었는가를 생각 해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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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47:33
대한민국 나라의 발전에 역행해왔고, 역행하고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해야 한다. 반법치, 반정부, 반안보로 선전선동하며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기생충같은 범죄자들을 사퇴시켜야 한다. 반좌익 분자들이 이 나라에 걸림돌이라본다. 살만하고 배가 부르니 엉뚱한 짓을 하며 정쟁에 몰두하는 인간들이 정말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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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41:50
그동안 공화당의 후예들, 현 국민의 힘 조차 박정희를 입에 담지 못하고 눈치보는 정치인들이 태반이다. 군인이 국회 국방위에서 찍소리 못했다고 지적한 기사를 보았는데, 뉴스 미디어나, 여당 정치인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직도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하던 김대중과 자기 처 비리를 덮으며 자살한 노무현 정신 외치는야당 인사들 보고 여당 정치인들은 무엇이라 말할 것인지 알고싶다. 다들 쪼무라기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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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37:16
애국자는 인기에연연하지않는다. 선동꾼들은 인기를 먹고산다. 세종대왕.이순신장군.박정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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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21:09
중저가제품에서 고가제품으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고가에서 명품으로 만들기는 더 어렵다. 고가에서 다시 저가로 내려가고 있다. 죽창세력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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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9:28
박정희 대통령 유신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독재 안이다, 독재라고 하는 자는 현재 같이 국가 혼란을 야기시키려 입을 막 놀리는 자들과 외국 공보 기관에 방화나 하려고 날뛰는 국사범에게만 독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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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8:52:27
33 년생 닭띠 92세 건강하시네요. 모친이 99세 백수 건강. 일제 말 개성 호수돈 여고 졸업 후 해방 625 전쟁 14후퇴 부산. 3개월 뒤 강화도로 돌아왔지요. 67살 딸과 '흑석 자이아파트' 에서 잘 지내지요. 419와 516은 삶의 한 시대. 나라가 발전해 동사무소에서 노인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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