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고 십년, 기다림 속에서는 하루가 여삼추라고 합니다. 십년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보다 문제는 그럼에도 앞이 캄캄하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희망은 생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짧을수록 좋겠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하여 그냥 전진해야만 합니다. 그 속에서 희망이 더욱 가능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다면 희망도 생기지 않습니다. 비록 앞에 보장이 없다 해도 우리는 그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그러한 백성이 있는 나라는 결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 또는 민족이 다른 나라에 정복을 당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복자의 나라에 동화됩니다. 그래서 먼저 있던 나라 또는 민족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정복자의 나라로 귀속되든지 합하여 새로운 나라 또는 민족으로 발전합니다. 세계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외적인 나라와 민족이 있습니다. 잘 아는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를 잃고도 2천 년의 세월을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나라를 세우고 그 민족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나라들 민족들 속에 섞여 살면서도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또한 비슷한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지속적으로 침략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직접 우리나라로 들어와 통치를 한 적도 있습니다. 크게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 역사 속에서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문화를 없애고 자국의 문화로 대치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받을 것을 받기는 하였으나 동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단히 저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들과 하나 되어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우리 땅이니 나가라 하는 식으로 계속 저항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얻는 것도 없이 그냥 내 것 바쳐가며 싸웠습니다. 대를 이어가면서 말이지요.
어머니를 통하여 조선의 피를 받은 것에 대하여 치욕을 느끼며 스스로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게 살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 속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내노라 하는 자리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감독관인 ‘무라야마’와 일본인 경호대장 ‘카이토’의 대결은 그런 배경에서 생깁니다. 같은 적을 상대하지만 서로 경쟁합니다. 더구나 무라야마가 조선인의 피를 가진 것을 빌미로 무시하고 덤벼듭니다. 반대로 무라야마는 그 약점을 이긴 경험으로 카이토를 윽박지릅니다. 그들의 경쟁이 ‘유령’의 활동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호대장이 마련한 함정에도 불구하고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초조해집니다.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이 환영식장 앞에서 저격을 당합니다.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실패작입니다. 아무튼 난리가 났지요. 중국에서만 활동하는 ‘흑색단’이 조선에까지 손을 미치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분명 내부에 첩자가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정보가 어떻게 새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경호대장이 내부 직원들을, 특히 조선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읍니다. 이 속에 있다, 하루의 시간 속에 밝혀라, 그렇지 아니하면 한 사람씩 고문을 행하겠다 합니다. 그 자리에 무라야마도 함께 있습니다. 역시 의심받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분노하게 되지요. 그러나 분명한 증거가 아직은 없습니다. 이 모욕을 반드시 갚으리라 다짐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몇 안 되지만 모두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특히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는 조선인임에도 권력의 최측근이 된 인물로 입심도 남자들 뺨칩니다. 그에 비해 차분하게 일하는 암호문 기록 담당인 ‘박차경은 조용하면서 당찹니다. 두 여자의 대결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일본측 무라야마와 카이토의 대결과 조선측 박차경과 유리코의 대결이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남자와 두 여자의 대결입니다. 일본 쪽에서 그리고 조선 안에서, 묘한 구도입니다. 아무튼 고문당할 위기 속에서 가장 위협을 느낄만한 사람을 카이토가 택하여 혼자 심문합니다. 약점을 잘 알지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원수가 원수 되기도 하고 원수가 친구로 나타납니다. 외딴 호텔 일본군에 포위된 속에서 유령을 찾는 전투가 전개됩니다. 끝에 가서야 유령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야기의 묘미지요. 끝을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속도감이 있고 재미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여인들의 액션도 볼만하고요. 아무튼 나라 사랑과 애국자는 유명인보다는 일반 백성 속에 더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희망은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백성임을 다시 새깁니다. 영화 ‘유령’(Phantom)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