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carpe diem)
요즘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한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별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 남의 일로만 여겨질 뿐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언제 이렇게 칠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나 싶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다.
젊었을 때처럼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때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정사진도 현상해 두었고 내가 묻힐 장소도 물색해 두었다.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하나? 자녀들에게는 어떤 모습의 아버지상을 보여주어야 하나?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노인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오늘을 살고 청년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내일을 꿈꾼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을 살고 있을 따름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 돌아오면
에투루리아(Etruria)의 관습에 따라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화려한 시가행진을 하였단다.
시민들은 도로변에 나와 개선장군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한다.
개선장군은 마치 신으로 숭배 받는 듯 벅찬 감동에 젖는다.
그러나 아무리 영광스러운 인간이라도 신은 아니니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비록 오늘은 당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라는 뜻이 담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비천한 노예가 개선장군의 귓가에 외치게 했다는 것이다
. 라틴어 ‘메멘토’는 기억하라(remember), ‘모리’는 죽는다는 것(to die)을 의미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1930. 1.29∼1993. 4.28)의
귀천(歸天) 역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쓴 시가 아닐까 싶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사 40:6∼7).
우리 인생은 보잘 것 없는 풀과 같고 여러 해를 넘기지 못하는 한 해살이 풀과 같이
짧은 것이 인생이고 인간들이 누리고 있는 부귀와
영광도 꽃이 피면 지듯이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카르페 디엠이란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Flaccus Horatius BC 65 ∼BC8)가
자신의 시 ‘오데즈(Odes)’에서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묻지 마라, 우리가 언제까지 살지
바벨론의 점성술사에게 묻지 말라
주피터가 겨울을 몇 번 더 내 주든 말든
튀렌눔 바다를 막아선 이번 겨울이 끝이든 아니든
현명하게 살아라 오늘 포도주를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내지 마라
말하는 사이에도 우리를 시샘하는 세월은 흘러 간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카르페(Carpe)는 ‘뽑다’를 의미하는 카르포(Carpo)의 명령형이다.
오비디우스(Ovidius BC 43∼17)는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 ‘이용하다’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디엠(Diem)은 ‘날’을 의미하는 디에스(dies)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카르페 디엠은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 Pluck the day)’
‘오늘을 즐겨라’ 는 의미이다.
시저(Gaius Julius Caesar BC100∼BC44)의 뒤를 이어
옥타비아누스 (Gaius Julius Caesar Otavianus Otavianus BC63∼BC14)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며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 고통을 겪은 로마 시민들이 이제는 마음 편히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라고 했단다.
하지만 카르페 디엠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로빈 월리엄스가
열연한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존 키팅선생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목적은 시와 문학, 낭만, 사랑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위해서 우리는 카르페 디엠 곧 오늘을 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
모든 사람들은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대한신보(2020.5.7)에 의하면 90세가 되면 100명중 95명은 저 세상으로 가고
5명만 생존한다고 하니 100세까지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제 나도 마음을 비울 때가 되었다.
지금 욕심을 내서 무엇 하겠는가?
넉넉한 마음으로 운동하면서 마음 편히 살면 될 일이다.
시(詩)도 음미해 보며 문학작품도 읽으며 낭만과 사랑을 즐겨야 될 성 싶다.
교만할 필요도 전혀 없다.
잘 났다고 뽐낼 일도 아니다. 조금 더 잘 산다고 으스댈 일도 아니다.
조금 더 배웠다고 거드름을 피워 무엇하랴?
오늘도 나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묻혀야 할 자리를 생각하며
좀 더 겸손해지고 싶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까르페 디엠(Carpe Diem)을 마음속에 간직하련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그러므로 사는 동안 오늘이라는 시간을 의미있고
유익하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오지 않는 오늘을 행복하게 즐기는 생활을 해야 하리라.
오늘 하루의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분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2022. 4. 30)
출처 : https://cafe.daum.net/angoleunbitessay/axzY/1966?q=%EC%B9%B4%EB%A5%B4%ED%8E%98+%EB%94%94%EC%97%A0&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