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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통해 받는 은혜 (엡1:15-19)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중 한 사람이 하이든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어느 날 예술가들이 모여서 고통이 올 때에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토론을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가 생길 때,
또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때,
창작활동에 무기력 감을 느낄 때에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는지를 각자, 각자 비법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럴 때에 나는 친구를 찾아가서 고통을 호소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독한 술을 마시고 잠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고도 했고,
어떤 이는 미움과 증오와 분노가 생길 때에 맞부딪쳐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이야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이때에 하이든이 하는 말이 우리 집에는 작은 기도의 골방이 있습니다.
나는 고통이 올 때면 마음이 외로울 때면 몹시 낙심과 절망에 빠질 때면 바로 이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골방에서 기도하고 나올 때면 마음에 평화를 얻게 되고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기도에는 이렇게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함과 위로와 응답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 생각에 좀 더디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반드시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계획하든지 먼저 기도하는 일을 앞세워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가까이 하십니다.
기도할 때에 길을 찾고 답을 찾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계산과 논리와 과학과 의학을 초월하여 역사 하는 능력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주님은 거듭 반복하시며, 보다 강한 형태로 표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절대적 약속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에 중요한 성서적 인생관“기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기도할 때에 받은 은혜를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17절中)
“기도할 때에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에 제일먼저 기도하는 내용이 바로 지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지식과 지혜는 전혀 다릅니다.
지식은 학문을 통해서 우리가 터득되는 진리라고 한다면
바울이 지금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바로 호크마 입니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은혜입니다.
약2:5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고 또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 하시면서 뱀같이 지혜로워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 지혜가 언제 임했느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지혜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더라는 거예요. 기도할 때 임한 하나님의 지혜,
일찍이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일천 번 제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천 번 제를 드리고 받은 응답이 뭐냐? 그게 바로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통해서 솔로몬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부귀영화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누린 왕이 되었고 또 백성들은 솔로몬 속에 있는 지혜를 보고 솔로몬을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존경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잘 아는 솔로몬의 지혜 중 하나가 어느 날 두 여인이 두 아이를 낳았는데 한 아이는 죽고 한 아이는 살았는데 산 아이가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싸움을 하다가 끝내는 해결하지 못하고 솔로몬 왕 앞에게까지 재판이 의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같으면 무슨 혈액형 검사를 하고 DNA같은 검사를 하면 나오겠지만 그 당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도저히 누구의 자식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때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 내 백성들을 올바르게 공의롭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래 솔로몬은 큰칼을 하나 가져오게 했습니다. 산 아이를 뉘어놓고는 너희들 싸우지 마라 이 아이를 내가 반을 쪼개서 똑같이 나눠 줄 테니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미 내 새끼가 죽은 가짜 어미는 왕이여! 공정한 재판을 하나이다. 반을 쪼개서 내게 주소서 이미 내 새끼가 죽었기 때문에 너도 죽이자는 거예요. 그러나 진짜 어미는 울면서 왕이여! 왕이여! 저 아이는 내 아이입니다. 그러나 저 아이의 생명을 죽이지 마소서 저 아이를 살려서 저 어미 품에서라도 살려 주소서. 그래 가지고 진짜 어머니를 찾아주는 이 놀라운 솔로몬의 지혜, 그래서 백성들이 솔로몬 속에 있는 그 지혜를 보고 솔로몬을 두려워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작은 일 큰일 수많은 일들을 만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이 호크마 분별력 있고 명철한 이 지혜가 정말 필요한 때예요.
성도는 육체의 힘으로 사는 게 아녀요.
지식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요.
그건 지혜예요. 지혜,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힘이에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알고 싶고 그와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려는 저 한없는 축복을 체험하고 싶다면,
날마다 끈덕지게 지혜와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단번에 영원히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리고 목마른 것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지혜가 언제 왔느냐?
기도할 때에, 기도할 때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에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내게 주었다 그랬습니다.
주님은 어려움과 시련과 문제와 환란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발생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결코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고 단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말하니 '이 약속을 올바로 보는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피묻은 제단 뿔을 붙잡고
외로울 때에,
슬플 때에,
답답할 때에,
길이 막혔을 때에, 분노할 때에 여러분 엎드려 주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 주님이 지혜를 주셔서 그 문제를 풀을 수 있는 답을 주시는 겁니다.
왕하19:35에,
히스기야가 앗수르군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열왕기하19장 16-19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예루살렘까지 포위당하자,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대적을 물리쳤다. 히스기야는 위기감에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승리했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눈을 멀게 해서 18만5천 명을 물리쳤고,앗수르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멸하신지라
왕상 18;38에 엘리야는 기도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거짓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에 모두 죽였다.
출14:21에 모세가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동풍을 일으켜서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서 건너게 하셨다.
에4:16에 에스더는 민족의 멸망의 위기 앞에서 3일을 금식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하고 왕 앞에 나갈 때 민족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다.
게8;3-5에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를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에 받아서 하나님의 보좌로 오린다고 했다.
둘째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계시의 정신을 주셨다 그랬습니다(17中)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랬습니다.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이렇게 나타내 보이는 것을 계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보화처럼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도할 때에 이렇게 열어줬다는 거예요.
성도는 늘 하나님의 계시의 이 정신이 임해야 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도 계시의 정신이 임해야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말씀을 들어도 계시의 정신이 임해야 마음에 감동이 오는 거예요.
눅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습니다. 부활한 주님이 곁에 나타났는데 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고 젊은이 혹시라도 예수란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때 주님이 내가 예수라고 말하지 않고 같이 걸어가면서 성경을 풀어주었어요. 성경을 풀어주니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야! 지금 성경을 우리에게 풀어주던 이 분이 예수님이 아니더냐?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성경을 풀어줄 때 이 말은 성경이 열릴 때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그랬어요.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더냐?
하나님의 은혜의 불이 나왔다는 거예요. 뜨거워지지 않았느냐? 계시의 정신이 임하는 거예요.
계시의 정신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17절에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계시의 정신을 주셨다는 거예요.
성경에 이사야가 그러했습니다.
이사야가 어느 날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큰 충격을 받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웃시야 라는 왕이 죽던 해에 충격을 받고 위세 찬란하던 그 왕이 한번 하나님이 손을 떼니까 한순간에 그는 문둥병자가 되었어요.
인생의 허무함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았어요.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서 52년 동안을 왕 노릇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던 웃시야가 나라가 부강해 지고 52년의 복을 주고 났더니 후반기에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천하를 호령하는 내가 저 비실거리는 제사장들이 들어가는 성소에를 못 들어가다니 성소에를, 그래서 신하들이 말리고 제사장들이 울며 말렸건마는 성소에 들어가서 불을 당기고 나오는데 온 몸에 문둥병이 걸려서 그는 쫓겨나 비참하게 죽었어요.
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는 권세를 가졌어도 세상에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듯 해 보여도 하나님이 한번 손을 떼니 까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와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이사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다가 하늘이 열린 하늘을 보게 됩니다. 스랍들이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노래를 합니다. 이 황홀한 하나님을 발견했어요. 이게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의 황홀함 속에 묻혀있던 이사야는 어느 순간 해보다도 더 밝은 빛이 그만 이사야에게로 비춰옵니다.
그 순간에 이사야는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울었습니다. 망하였도다 망하였도다 망하였도다 부정하고 더러운 내가, 내가 거룩한 하나님을 보았도다. 여러분 거룩한 하나님의 빛 앞에 나를 알았다는 거예요. 나를 발견한 거예요.
은혜는 바로 이거예요. 정말 은혜 받은 사람은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습니다. 남을 정죄 할 수가 없습니다. 만가지 은혜를 받은 우리들 용서받은 우리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누구에게 정죄를 하겠어요.
해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 나는 의롭고 거룩한 줄만 알았던 이사야는 너무나도 추하고 더러운 자기를 발견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여러분 참된 은혜는 남의 가슴을 치고 남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을 치면서 여러분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닫고 통회할 줄 아는 것, 이게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에요.
할렐루야! 자기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자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통회 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더니 이사야의 입술에 불을 대면서 네 죄를 사해줬다. 모든 죄를 용서해줬노라고 할 때 이사야의 입술에 단 그 불이 이사야의 가슴을 태우는 겁니다.
이사야의 가슴속에 불이 붙어 가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죄악의 세상 어두운 이 세상에 누구를 보내야 할꼬?
이사야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 시대는 죽음과 사망과 어려운 위험의 시대였지만 그 시대를 향해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가겠나이다. 사명의 불이 붙었어요. 이 은혜의 불이 마음속에서 사명으로 이어 졌던 거예요.
여러분 오늘도 우린 이사야와 같은 사명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명 없이 만들어진 게 한가지도 없어요.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명이 있고
과일나무는 열매맺는 사명이 있고
여기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내며 꽃을 피는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 ?땅에 어찌 사명이 없겠어요?
하나님이 맡겨준 사명 끝까지 잘 감당하세요.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시간이 영원히 머물러 있는 시간이 아니고 젊음이 영원히 머물러 있는 젊음이 아니고 소유가 영원히 내께 아녀요. 우린 관리인이에요. 관리인, 청지기예요. 청지기, 나에게 머물러 있는 동안 그 시간을 잘 사용하고 그 재능을 잘 사용하고 그 소유를 잘 사용할 때 하나님이 사용권의 축복을 주시는 거예요. 이게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계시의 정신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데 있다면 우린 이사야 처럼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빛 가운데 나를 발견하고 내가 이 땅에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명을 바로 발견하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기도할 때 사도 바울은 마음에 눈이 밝아졌다고 고백합니다(18절)
오늘 여기 18절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에 눈을 밝히사” 그랬어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밝히 열어줬다는 거예요. 이 마음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에요. 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성령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 마음의 눈을 밝히 열어줬어요.
창21;14-21 ] 쫓겨나는 하갈과 이스마엘
아브라함은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했을 때 도저히 사라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그 두 모자는 당장 생계가 막막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하자고 하는 대로 그 요구를 다 들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4절 앞부분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을 내보내라고 하실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시고 그 명령을 내리신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스마엘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거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는 이제 하갈과 이스마엘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4절“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16절“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내어 우니”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준 음식과 물을 가지고 정처 없이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떠날 때 가지고 나왔던 물이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꼼짝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그런 자기들의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이스마엘과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하갈은 자기들의 신세가 너무 비참하고 너무 절망적이어서 아주 큰 소리로 통곡하였습니다.
17절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하갈이 그렇게 목 놓아 울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하갈을 위로해주었습니다.
19절“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갈은 그들이 마실 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목 놓아 울었는데, 놀랍게도 그들 바로 곁에 샘물이 있었습니다. 하갈은 그걸 보지 못하고 그렇게 통곡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니까 그들 바로 곁에 있는 샘물이 하갈의 눈에 띄었고 그들은 그 샘물을 마시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죽는 것,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느냐, 열어주지 않으시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살 길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다만 우리가 그 길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게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심으로써 늘 눈이 밝은 상태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바로 곁에 있는 사는 길, 성공하는 길을 발견하시고 그 길로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힘의 원천이 어디 있는가를 고백하고 있다.
시18:1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했다.
사람은 개인도, 교회도, 국가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시대마다 힘의 기준이 다르다.
(1)원시시대의 힘은, 권력이었다. 문리적인 힘이다.
(2)농경시대의 힘은, 경험이다.
(3)산업시대의 힘은, 기술이다. 기술이 지배했다.
(4)자본시대의 힘은, 경영이다.-어떻게 상대의 돈을 합법적으로 내게 옮길까? 이것이 경영의 힘이다.
(5)인터넷 시대의 힘은, 정보다. 지금은 정보 싸움이다. 누가 정보를 빠르고 많이 공유 하느냐가 힘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나님이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힘을 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 지난날 30분 기도했습니까?
1시간으로 늘여봅시다. 1시간 기도했습니까?
2시간으로 늘여보십시오. 2시간 기도했습니까?
3시간 4시간 늘일 수 있다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는 영적 생활에 승리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기도할 때에 내가 말한다.
기도할 때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에 문을 열어주시고,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하늘의 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은혜가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