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대령(砲大領)
천 승 세
모서리 하나 성한 곳 없이 죄다 깨지고 부러져서는 회색빛으로 색이 바랜 거무튀튀한 옻칠 안에서 뿌연 횟가루가 솟는 낡은 밥상 하나. 그 밥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장난감 야포(野砲). 그 뒤로, 서글거리는 눈 아래 형언 못할 그 무서운 악담들이 금방 쏟아져 나올 듯한 유독 두꺼운 입술을, 이를 갈아댈 때처럼 밭두덕이 지도록 꼬옥 문 포대령의 사진이 서 있다. 그리고 벽에 걸린 너절한 포대령의 헌 옷가지들과 눈물로 얼룩진 초췌한 나의 얼굴을 담고 있는 반쪽 난 거울!
헌 이불보를 뜯어 병풍처럼 둘러친 그 속에 누워 도시 믿기지 않게 포대령은 일절 말이 없고 예의 도구들이 포대령이 살다 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의 전부다.
기껏 보름 남짓한 세월이었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차라리 기구(崎嶇)한 운명의 여인 그것에 비교해야 할 포대령과의 생활이 바로 어젯밤, 정말 어처구니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
그토록 염원했던 지겨운 생활로부터의 해방이, 어떻든 일단 이룩된 지금, 반생을 통해 적어도 눈물에만큼은 지극히 인색했던 나의 눈이 아낌없는 눈물을 쏟노라 눈초리 짓물리는 듯한 통증 속에서 떤다. 그것은 지극한 슬픔 속에서 자연 분출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심오한 비극의 의식을 애써 떨쳐버리려고 노력할 때 처하게 되는 감당 못할 허탈 속을 솟구치는 것이다.
“가이새끼들! 보라우! 내가 시시하게 죽어 넘어디나 말야! 쫓기구서라므니 밀리구서라므니 해개지구 시시하게 뻗나보라우! 젊어 요절도 없구 늙어 자연사도 없어! 이 김달봉이에겐 오직 전사만 있을 뿐이야! 하사! 내 말 알가서?”
천만 년 살 것 같던 포대령이 죽었다. 아니, 피가래가 끓던 포대령의 마지막 가쁜 목소리는 끝내 전사(戰死)라고 우겨댔다.
김달봉(金達峰)이라는 이름은 숫제 팽개쳐버리고 그를 안다는 사람들이면 모두 포대령(砲大領)이라 불렀다. 포탄으로 살다가 포탄으로 다져졌고, 끝내 포탄 속의 전사가 아니면 그의 죽음이 없다는 이 해괴한 역설이, 오히려 합당한 귀결이 될 정도로, 과연 그는 생김새부터가 갈데없는 포탄이다.
송충이가 하품하듯, 숱도 많은 눈썹은 눈꼬리를 지나기 바쁘게 관자놀이를 향하여 치켜세웠고, 눈깔사탕처럼 뺑 뚫려버린 크나큰 눈에 늘쌍 일렁이는 섬광, 유독 두꺼운 입술을 숫제 덮어버리고 돋은 무성한 수염 밑으로 아예 귀찮아 생기다 말아버린 목덜미― 예의 이런 것들을 조화시키는 전체의 몸뚱이는 일 미터 오십팔이라는 한계 속에서 메주 주물듯 다져져버렸다. 젓가락 같은 뼈대 젖혀놓고 살덩이가 제아무리 비계인들, 체중 칠십 킬로라는 둔중한 장갑(裝甲)이 재건체조를 한답시고 펄쩍펄쩍 뛸 때는, 포구(砲口)를 떠나는 포탄처럼 이나 그처럼 날쌜 수가 없다.
이런 모양의 포대령을 내가 제대한 후로 처음 본 것은 꼭 보름 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오갈 데 없는 나의 허탈이 엿가락처럼 기진한 보행을 명동의 한적 한 다방 한구석 에다 끝낼 때였다.
그저 모른 체했어야 했을 상식이 지극한 예절로 둔갑해버린 손간, 나와 포대령의 생활은 오랜 기일을 두고 진행돼온 언약이나 이행하듯 쉽게 그 순간 속에서 매듭지어진 것이다.
낡은 선풍기의 열기 같은 바람을 통째로 받으며 느긋이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허술한 사복 차림의 사람을 알아차린 나는 우선 놀랐다.
연대장 김달봉 대령 ―폭약 냄새가 어지간히 코에 밴 사람이면 말단 사병에서 장교에 이르기까지 포대령을 모르고선 포병이 아니다. 그만큼 부대의 소속 여하를 막론하고 포대령은 포병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대포가 있는 곳에 포대령이 있었고 포대령이 있는 곳에 폭약 냄새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전속되기까지 한 달 남짓 포대령을 겪었지만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독특한 체구 때문이었다.
취직이라든가 하는 강렬한 생활의식이 포대령과 연관되어 날렵한 타산으로 거센 충동질을 했을 때 초라한 나는 때가 찌들은 태피터* 손가방을 공손히 사타구니 앞에다 받쳐 들고 이미 포대령의 좌석을 향해 걷고 있었다.
막상 포대령의 앞좌석에 겨우 궁둥이를 걸치고 났을 때 나의 등줄로는 예감했던 대로 선뜩 식은땀이 솟았다.
아무리 성의를 가지고 뜯어봐야 결코 정상적인 얼굴이 될 수 없는 무서운 포대령의 얼굴에서 지금 내가 행사하려는 어설픈 타산의 애교 따위는 도통 통할 수 없다는 확신을 읽었고 아부라면 숫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질색인 포대령이 그 유명한 뜀박질 두탄(頭彈)으로 턱주가리가 으깨지도록 한 방 받아댈 것만 같은 불안이 솟는 것이다.
포대령은 웬만해서 손찌검이나 발길질 따위로 부하들을 때리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통칭 재건체조라고 불리우는 두탄으로 어지간히 비위가 틀렸다 하면 으레 삭신 눅처지도록 받아넘겼다. 부동자세로 세워놓곤 바로 그 아래 딱 버티고 선 채 정확한 조준만 끝나면 이내 “가이새끼! 너 정 죽어봐야 알간?” 하는 앙칼진 욕설을 신호로 짤막한 양팔을 오리 날개처럼 퍼덕이며 상대의 턱주가리를 향해 펄쩍 뛰어오른다. 으레 한 방이면 상대는 반송장이 되기 마련이었고 포대령은 그때마다 꼭 단서를 붙였다. 지극히 태연하게.
“너희들 말야, 맞았다구 섭섭해할 것 없어! 송충이만 떨어져두 대포구 탄약이구 죄 팽가티구 놀래 도망치는 양놈식으론 남북통일 다 틀리는 게야! 기합이 없으면 군기는 웰루 잡디? 보병 이 빨갱이 한 놈 죽이는 시간에 포병은 일개 중대도 전멸시킬 수 있단 말야! 터지구 밟히구 포병은 억세게 커야 하는 거다! 인삼 녹용 먹었다구 생각하라우, 알갓디? 그럼 좋아서!”
꽤는 긴 말인데도 그때마다 이 단서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했다.
의기 등등 마땅히 포진지를 누비고 다녀야 할 이 시간에, 초라한 사복 차림으로, 더구나 명동 복판에서 고물 선풍기의 훈김을 받으며 졸고 있는 포대령 에게 의혹이라기보단 어떤 불길한 상상마저 제멋대로 솟았다. 군인은 전선에, 지휘관은 전장(戰場)에 있어야 한다고 항상 포성 같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던 그가 이제야 새삼스럽게 육군본부 보직 따위를 얻어 서울 복판에 건재할 리는 만무했다.
여하튼 이 자리에서 다시 철수해야 한다는 시급한 생각이 들어 내가 막 좌석에서 궁둥이를 떼었을 때 공교롭게도 포대령이 눈을 떴다.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아니 서 있다기보단 대변을 보고 난 뒤 마지막 항문을 닦을 때 같은 자세의 나를 섬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얼굴엔 표정 하나 없다.
멋쩍게 뒤통수만 긁적거리던 나는 어떠한 동요에도 체념한다는 각오를 내심 다짐하며 힘없이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얼마 동안 그저 묵묵히 나를 주시하고 앉았던 포대령이 타이르듯 조용하게 엉뚱한 말을 뱉었다.
“어설프게 앉긴 뭘 앉아? 다른 데 가보라우! 나에겐 값진 거라곤 하나도 없어.”
“……”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망설이고 앉았는 나에게 실실 웃음기까지 띠우며 포대령은 좀 언성을 높였다.
“똥까이 같은 새끼! 임마 도둑질을 할려면 뱃땅이나 두둑이 개지구 하라우! 가라고 할 때 얼른 가는 게 상책이야. 너 정 알 갈 텐. 엉?”
일순에 좀도둑으로 둔갑해버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분통이 치솟았으나 어찌 생각하면 차라리 잘됐다 싶어 어색한 동작을 시작하려는데, 이 비참한 나의 철수를 방해하는 조건이 문득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우측 좌석의 집요한 관찰들―순간 언제나 나약한 나의 본성은 드디어 목멘 하소를 울부짖다시피 하고 만 것이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연대장님!”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포대령의 퉁방울 같은 눈이 바싹 나의 안면으로 근접해 왔다.
“뭬라구? 너 뭬라 해서?”
“……절대, 절대 그런 것이……도둑이 아니라고…….”
“뭬라고? 연대장님?”
“네! 오중대 삼포대에 있었습니다! 그때 연대장님을……”
순간 포대령의 얼굴은 비참하리만큼 일그러지면서 수치감을 느낄 때처럼 주위를 휘이 둘러봤다. 어울리지 않게 긴 한숨을 청승스레 뱉고 나더니 지극한 허탈을 달래기라도 하듯 성냥개비를 분질러선 톡톡 연신 튕겨댔다. 몇 번이고 그 짓을 하고 있는 포대령의 이마에서 가쁜 맥박이 뛰었다. 지극한 고뇌를 씹을 때처럼 끄떡끄떡 자위의 고갯짓을 해댔다.
뭔가 야릇한 동요, 메스꺼운 인내에 송골송골 비지땀이 솟고 있던 나는 일단 상식적인 절차부터 밟고 봤다.
“연대장님 어떻게 서울엘…… 휴가중이신가요?”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고 앉아 있던 포대령은 나의 인사에는 아랑곳없이 대뜸 허탈하게 내뱉었다.
“너도 시시한 민간이가? 엉?”
한동안 영문을 몰라 망설이던 나는 잠시 후 포대령의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보다도 우선 궁금한 건 너도라는 단서였다.
“……네. 제대했습니다. 연대장님께서도?…….”
대답 대신 길고 후끈한 포대령의 한숨이 나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연신 티테이블을 탕탕 내려찍고 있던 포대령은 하마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해댔다. 그 하품은 생리적인 것이라기보단 어색한 감정을 견제하는 작위적인 방법으로 연발됐다.
포대령이 일단 현역(現役)은 아니라는 예측이 확고해지자 나의 정신은 점점 몽롱한 의혹 속을 방황했다. 정확한 나의 상식으론 포대를 떠나서 살 수 있는 포대령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도오타! 군기가 쑥밭이구나!”
쩌렁쩌렁 울리는 포대령의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든 나는 무의식 중에 대담하게 담배를 빨아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흠칫 놀랐다. 포대령의 집요한 시선은 실연기를 내뿜고 있는 담배에다 오기스러운 불만을 못 박고 있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무심중에 그만…….”
황망히 담뱃불을 비벼 끄고 있는 나의 손을 포대령의 우악스러운 손이 덥석 붙잡더니 이내 그 손으로 내 이마를 두어 번 쥐어박아댔다.
“이 새끼 이거 엉망이구나. 임마! 군인에게도 무심중에라는 말이 이서? 정 무심중에 하고 싶거든 국군의 맹서를 외우는 거야 임마! 알가서?”
“…… 네! 알았습니다!”
“우하하하一 좋아서! 돼서! 너 현역 시에 계급과 직책은 뭬여서?”
“하사였습니다! 관측이었구요.”
“뭬라구? 관측? 기기 도오타! 십 문의 야포보다 한 사람의 정예 관측병을 포대는 원하는 게야, 돼서! 너 전사할 때까지 나와 고락을 함께할래? 어드 래?”
“연대장님 영광입니다!”
기껏 메모지에 적힌 이름들을 찾아 하루하루 신세를 져야 하는 나의 형편에 포대령의 이 같은 제의는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운 것이었다.
감격에 넘쳐 떨려 나오기까지 한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포대령은 나의 손목을 끌고 일어섰다.
“가자우. 어데 한번 같이 살아보자우.”
나는 좌우로 뒤뚱거리는 포대령의 둔중한 엉덩이 한 두어 발치 뒤의 거리에서 풀이 죽어 걸었다. 우선 숙식 문제가 해결됐다는 지극한 안도감을 경솔하게 표면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쥐꼬리만한 자존심의 긍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이유는 야릇한 불안 의식이었다.
이미 제대를 한 나의 입장에선 ‘전사’라든가, ‘군기’라든가 하는 군대 용어엔 어지간히 멀미가 난 것들이어서 포대령의 완고한 군인 정신과 군대 생활의 집념이 나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때의 철저한 구속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안이 요행이라면 요행일 수 있는 지금 그렇게 시급한 고민일 수는 없었다. 어떻든 나는 포대령을 따라 금호동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포대령은 시종 말이 없었다. 단지 두 가지 확약을 나로부터 받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첫째로 포대령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어느 누구에게든지 자기의 거소를 알려서는 안된다는 것 두 가지였고 나는 이 두 가지의 약속을 꼭 이행하겠다고 과감한 선서를 하고만 것이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십 여 분이나 치올라야 하는 산꼭대기에 포대령의 거소는 있었다. 데적데적 기워놓은 듯한 보루가미를 지붕이랍시고 얹고 있는 블록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그나마 셋방이었다. 가마니 쪽을 들치고 역한 냄새가 풍기는 방 안으로 들어선 포대령은 망설이고 서 있는 나에게 버럭 악을 써댔다.
“관측병! 뭘 어덩거리구 이서? 빨리 안 들어오면 기합이다 임마!”
후끈거리는 등줄로 오싹 찬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방 안으로 다이빙을 하다시피 한 나의 등을 포대령은 자랑스럽게 텅텅 두드려주면서 호탕하게 읏어댔다.
“우하하ㅡ돼서! 돼서! 육이오사변 같으면 귀관의 동작은 훈장감이다. 대체로 양호함! 본관은 심히 만족하다!”
겨우 일어나 정좌한 나의 시야 속으로 투명돼오는 방 안의 정경은 너무나 의외였다. 의외라기보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 쪽이 더 가까웠다.
포대를 떠난 오늘의 포대령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연대장을 지냈던 포대령의 생활은 너무나도 비참했고 초라했다. 하긴 청빈한 장교로 소문이 쩡쩡 울렸던 그였지만 고학생 자취방만도 못한 이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을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뭘 그리 깊게 관측하나? 마아 냄새도 나구 좀 디더분할 께야. 기리티만 명동 똥간나들이 풍기는 시시한 향수 냄새보다는 훨씬 더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향기라는 것쯤 알아두라우.”
포대령은 장난감 야포를 연신 쓰다듬으며 허탈하게 내뱉었다. 이내 장난감 야포의 포구에다 쩝쩝 입을 맞춰대고 나선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활기에 찼다.
“사변 당시 원주 포격 기맥혔디! 보병들은 이미 싸울 기력도 없이 지쳤댔구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건 포병대뿐이여서! 자그마치 총 이개 사단 병력으로 진격하는 되놈들을 돌대가리 구드릿시는 집중 포격만 고집해서! 김달봉이 고집이 결국 이겼구 내 작전이 맥혀들었대서! 사대대 야포 육십 문을 동서남북으로 분산 포진시켜 먼저 서쪽 포대가 적의 대갈통을 후렸디. 동강이 난 진격부대가 예상대로 계곡으로 몰려들어서! 남쪽 포대가 또 때려서! 패주하는 적을 동쪽부대가 박살 냈디! 제일 통쾌했던 건 북쪽 포대의 포격이어서! 드디어 탄약을 만재한 주력 약 삼천 명이 견디다 못해 계곡의 굴곡부로 튀어나와서! 북쪽 포대는 한 방 손실 없이 전탄 명중으로 휘갈겨대서! 포병이면 누구나 꿈에서도 그려보는 교사(交射)가 완전무결하게 실현됐구 되놈은 전멸했디! 후우―지금 김달봉이는 뭐야 뭐·…‥ 싸앙―”
포대령은 가슴에 안은 장난감 야포를 들어 눈앞에 세우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한 포대령의 모습은 갈데없는 광인의 행동 그것이었다.
“그게 다 누구 덕이어서? 당시 한국 포병의 말단 장교 김달봉이의 작전 건의였다는 걸 누가 알아주간? 너만 보면 미친다 미치가서!”
뭐라 한마디쯤 위로라도 하고 싶었던 나는 이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면서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뚫어질 듯 장난감 야포를 응시하고 있는 포대령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액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액체가 속눈썹에 걸리면서 영롱한 방울로 맺힐 때 포대령은 벌떡 일어섰다.
“싸앙― 시시허게 뭬가 눈 속으로 들어가서! 뭬야 이거·…‥ 이거 뭬가 티겁게 굴디?…….”
포대령은 애꿎은 눈두덕만 대고 문질러댔다. 그것은 분명히 눈물이었다. 그 눈물을 보이기 싫어 한사코 딴청을 부리고 서 있는 그의 등이 숨길 수 없는 충격에 들먹거렸다. 포대령의 충혈된 눈이 나를 돌아다봤다.
“하사! 본관이 귀대할 때까지 말끔히 청소 끝낼 것! 그카구 밥 맛있게 지어노라우! 이걸루 장 봐올 것!”
포대령은 일금 삼십 원을 휙 내던지고는 총총 방문(방문이래야 가마니쪽)을 나갔다.
벽에 걸린 반쪽짜리 거울이 넋 빠진 듯 멍청하게 앉아 있는 나의 상반신을 담고 있다. 집에 돌아온다면 그만이지 ‘귀대’는 또 뭔가. 나의 입에서 불안으로 반죽된 매운 한숨이 샜다.
포대령과의 생활은 현역 시절보다도 더 엄격하고 고된 군대 규율로 일관했다. 그의 감정에 따라 나의 호칭은 귀관, 하사, 이 새끼, 가이새끼 등 제멋대로 변했다. 그가 귀가할 때나 외출시엔 거수경례로 맞이하고 전송해야 했고 취침 전엔 반드시 부동자세로 그날의 총보고를 해야 했다.
포대령의 일과는 그가 나에게 강요하는 번잡스러운 것에 비해 극히 단조로운 것이었다. 외출하는 날은 열두시가 다 돼서야 술에 인사불성 대취해서 들어왔다. 웬만큼 주정이 끝났다 하면 나에게 들려준 사변 당시의 자기 무용담을 그대로 들려달라고 해 지극한 자위를 삼았다.
외출을 않는 날은 장난감 야포를 품고 앉아 건너편 채석장에서 터지는 다이너마이트 소리를 언제까지고 듣는 것이었다. 이때의 포대령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으레 뭐가 눈으로 들어갔다고 비벼대는 통에 눈두덕은 불이 났다. 그리고 못살도록 나를 들볶는 것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포대령과의 생활 이후 처음으로 나는 그에게 항거했었다. 결과는 내가 두탄 세례를 받고 넉장거리*로 퍼졌지만 그날 그의 발작적인 행위에서 우연히도 나는 포대령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을 들으며 처절하게 얼굴이 일그러지던 포대령이 불현듯 벌떡 일어나서는 실성한 사람처럼 마당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문득 내 앞에 이른 그는 느닷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차렷!”
기겁해서 부동자세를 취한 나를 포대령은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하사! 무슨 이유인 줄 알가서?”
“전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뭬라구? 몰라? 정 모르가서?”
“네 !”
“이 새끼 맛 좀 보간? 사병의 머리칼 길이도 몰라?”
“그건 알고 있습니다!”
“기린데 네 머리가 뭬야? 당장 이발소로 구보해서라므니 머리칼을 티구 오라우! 구보 시작!”
“……”
“어? 너 왜 불복하디? 정 안 가가서? 엉?”
“못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제대한 몸입니다!”
“임마! 너 항명죄가 어떤 건 줄 모르나? 구보 시작! 구보!”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오늘루 그만두겠습니다!”
“가이새끼! 두고 보니까니 이 새끼가 이거…… 탈영하겠다는 게야?”
“탈영이 아니라 그냥 나가는 겁니다! 저는 제대했습니다!”
순간 포대령의 얼굴 위로 착잡한 경련이 일었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단 감당 못할 설움 같은 것이었다.
“뭬라구…… 뭬라구·…… 똥가이새끼! 진급 못하는 상관이라구 모독하는 게야? 앙? 이 새끼 나두 말야 제대루만 굴었어두 몇 년 전에 진급해때서! 뭬라구…… 뭬가 어드래…… 이 새끼야! 저 포성을 들어보라우! 영내야! 여긴 분명히 영내야 이 새끼야! 김달봉이 옆에서 포성만 울리면 어디든지 영내야 임마! 김달봉이 포탄에 몇만 명 괴뢰군이 쓰러딘 줄 아니? 엉? 김달봉이가 대포를 떠나본 적 있어서? 네가 봐때서 엉? 엉?”
포대령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의 턱주가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가이새끼! 너 정 죽어야 알간? 내가 밀려난 줄 아니? 내가 팽가티구 나왔다! 그래, 어드래서? 어드래서? 싸앙―”
포대령은 가냘픈 나의 멱살을 움켜쥐곤 턱주가리를 연신 받아넘겼다. 막무가내 항거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기회 봐서 도망치더라도 우선은 무조건 빌고 봐야 했다. 성난 야수처럼 도시 진정할 줄을 모르는 포대령에게 반항해봐야 결국은 대싸리* 같은 내 몸만 요절이 날 것이고 그의 분노는 더욱더 열을 더해갈 게 뻔했다.
“잘, 잘못됐습니다. 연대장님 !”
나의 입에서 가쁜 하소가 터지자 그제야 포대령은 멱살을 풀곤 황소숨을 씨근덕 몰아쉬며 한 발 물러섰다.
“임마! 정식으로 하라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거수경례를 붙여대며 크게 소리쳤다.
“잘못됐습니다! 용서해주십 쇼!”
“좋아서!”
나를 따라 힘 있게도 거수경례를 받고 난 포대령은 다가와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언제 그랬더냔 표정으로 말했다.
“하사! 다 인삼 녹용 먹었다구 생각하라우! 항명 불복을 해서야 되가서? 알았디?”
내심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멸시의 조소를 그에게 보내고 있던 나의 가슴속에서 뭉클뭉클 솟는 게 있었다. 포대령의 진지한 시선은 상관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는 게 아니었고 뭔가 애절한 하소와 동감의 요구를 절실하게 절규하고 있는 것이었다.
포대령의 분노는 곧 인정의 황막한 단절 속에다 끈을 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설정한 가정 세계에다 절대적인 자위로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대 사회에 대한 끈질긴 ˙집념이 그의 생명을 휴지시키는 한 지극한 우연에서 얻어진 하찮은 나나 채석장의 폭음 따위도 그에게 있어서는 필연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이발소로 향했고 지켜 서선 나의 거동을 살피는 포대령에게 후회 없는 동정을 쏟았었다.
그날 이후 포대령과의 생활에 어떤 변혁을 바랐던 나의 기대는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조금도 변함없는 방법 속에서 나를 필요로 할 뿐이었다.
이 시간이면 어떻든 어정저려야 하는 약속된 곡예가 메스꺼웁다못해 따분했다. 조금 지나면 곤드레만드레 취한 포대령이 나타날 것이고 나는 거수경례로 그의 귀대를 환영해야 했다. 좀더 진지한 거수경례는 없는 것일까.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이행되는 나의 충성은 그때마다 더한 망집의 고뇌 속으로 그를 몰아넣는 것인 줄도 모른다.
사실 요즈음 들어 나의 고민은 좀더 인간적인 것으로 발전한 셈이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릴 때나 개울가에서 세탁을 하고 있을 때, ‘식모 아줌마’라고 놀려대는 동네 꼬마들의 합창에 감당할 수 없도록 치솟던 분노 따위의 수치감은, 이제 포대령의 과감한 인간적 재기를 갈구하는 집요한 관심으로 변한 것이다.
“시시하게 뒈졌을래면 벌써 백 번은 더 뒈졌디! 수의 입구서라므니 시시하게 관 속에나 자빠져야 하는 죽엄이래면 수턴 번두 뒈졌데서! 썅― 나의 끝장은 전사야 전사! 온 몸뚱이가 박살나서라므니 형체가 없어두 조국이 태극기 한 장만 덮어주면 되는 거야! 그카면 김달봉인 천국에 가는 게지 뭬 바랠 게 또 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포대령은 이랬다.
‘포대령이여 궐기합시다요! 그 용기로 좀, 달리 살아봅시다요!’
힘껏 쥐어보는 주먹 안으로노 질긴 땀이 솟는데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크나큰 고함이 터졌다.
“임마! 보초병 태도가 뭬 그래? 새끼이 형편없구나 이거―”
벌써 숫구멍 골막하게 취기가 오른 포대령이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로 나의 가슴을 꾹 찔러댔다. 이마가 아플 정도로 나의 거수경례는 충성의 숨 가쁜 반사작용을 했다.
“수고하십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상 무우!”
“뭬라구? 수고? 우하하하―”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연신 대소하던 포대령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더니만 이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새끼! 이거 뭐 도통 쑥밭이라니까니! 임마, 여기가 신병 훈련소인 줄 아니? 그따위 서툰 보고가 어디서? 넌 하사야 하사. 군대밥 그만큼 처먹었으면 임마 포성이 울리는 전선하구 후방 훈련소하군 구별해야 될 께 아니가서? 엉? 어드래?”
“……”
“대답해보라우! 빨리 임마!”
“전 여기가 전선이 아니라구 생각합니다! 금호동입니다!”
“뭬라구? 이 새끼 벌통이 나야 알갓나 이거…… 왜 전선이 아니야? 포성이 터디구 가차 없는 포격이 진지를 후리는데두 새끼야 전선이 아니면 뭬란 말이야? 너 영창 보내야 알갓니 엉?”
“그건…… 그건 포성도 포격도 아니고 채석장 다이너마이트 폭음입니다. 연대장님!”
“이 새끼 이거 정 정신이 돌았디 이거…… 제대하고프면 곱게 굴라우! 꾀병 부린다구 의병 제대가 될 줄 아니? 후방에서 간나들 사타구니나 핥다가 전선에 오니깐 아주 돌아버린 보양인데 정 죽어봐야 알가서?”
포대령은 비틀걸음으로 다가와서 내 귓바퀴를 맵싸게 잡아 비틀어대고 나선 푹 마당에 고꾸라져버렸다. 얼얼한 귓바퀴를 한두 번 문질러대곤 애꿎은 손바닥만 비비적거리다보니 문득 쨍 콧날이 울었다. 포대령이 부스수 일어나 앉았다.
“가이새끼들……이 김 달봉이를 시시하게 생각들 하겠디이……
진급 안된 것에 불만을 품구서라므니 제대를 했다구 말야…… 흥! 별이 탐나서 이러는 건 아냐…… 김달봉이는 벌써 별이었어야 해서, 벌써 몇 년째야 몇 년째…… 싸앙一 도오타아 도아·…‥ 난 포병이야! 전사할 때까지 대한민국의 포병이야…… 새끼들! 내 뭐 영 떠난 줄 알간? 체에! 기런데 새끼들이 송별금쪼로 동냥해준 거 다 썼는데 이거 막연한데?…….”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앞뒤 안 맞는 소리를 연신 중얼대던 포대령이 의미심장하게 나를 불렀다.
“하사! 하사!”
“네 !”
“그런데 말야 너 나한테 딱 한 가지 궁금한 거 없어? 그건 왜 안 묻디?”
“뭘 말씀입니까?”
“내 나이쯤 되면 자식 대여섯 마리하구 계집년 하나쯤 있을 게 아니가서! 새끼! 너 네 멋대루 생각한 거 좀 들려줘보라우! 유행가식으루 뭬 있을 게 아나?”
사실 제일로 궁금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바싹 대드는 걸 포대령은 제일 질색으로 여긴다는 상식을 알고 있는 이상 하는 수 없이 엉뚱한 뒷덜미부터 만져봐야 했다.
“월남하실 때 부인과 이별하셨나요? 아니면…….”
“아니면 뭬야? 우하하하一 우하하하― 새끼 갈데없이 유행가 짓누나. 임마 뒈저라 뒈저! 그런 해골루 관측 도오타! 너 같은 가이새끼 전선 관측 시켰다간 포대 쑥밭 되기 망덩이디! 우하하하ㅡ 곡조 좀 붙여보라우. 그 유행가에 말야. 하하하ㅡ”
포대령은 미친 듯 껄껄 웃어대고 나선 하늘을 보고 반듯이 누워버렸다. 그의 가슴이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낙동강 전투 때여서. 워커가 적의 낙동강 도하는 절대 불가능하구 아군 저지선은 철통같다구 떵떵거리였디…… 야음을 타서 적의 이 개 대대의 특공대 병력이 도강에 성공했디. 그때만 해두 다부동 부락민들은 태평이였대서. 적의 공격이란 거의 산발적인 기총 공격이었구 다부동은 국련군 엄호하에 있었으니까니…… 기런데 도강한 괴뢰군들이 국련군 저지선을 돌파해서라므니 아군의 후방 다부동에 돌출한 게야. 적은 계속 도하해 와서. 전선이 이동되는 날엔 마지막이디. 위기여서. 보병이 도하해 오는 적을 공격하며 저지선을 정리하는 동안 드디어 포대가 불을 뿜어대서. 다부동은 쑥밭 됐구 돌출한 적의 선발대는 전멸돼서. ……다부동을 쑥밭 만들던 내 얼굴은 땀인디 눈물인디 웬통 물끼루 떳대서. 왜냐구?…… 더위 때문이었댔나?…… 글쎄…….”
포대령은 는질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나선 눈을 감았다.
“……그때 다부동엔…… 다부동엔·…… 다부동엔 만삭이 다 된 내 에미나이가 있었대서! 끝이였디…… 김달봉이는 포병이 먼저였서! 한 에미나이의 시나이보단 분명 포병이 먼저였디!”
포대령은 어떤 감당할 수 없는 동요에 몸을 떨었다. 몇 번이고 마당을 뱅글뱅글 돌아댔다.
나의 가슴속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게 있었다. 체증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지극한 공감과 애착이 억류될 때 어찔 수 없이 체념되어야 하는 관심의 여력처럼 무거운 것이었다.
연신 엎치락뒤치락거리고 있는 포대령에게 나는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연대장님! 들어가셔서 주무십쇼! 감기 드십니다!”
“뭬라구? 너 뭬라구 해서?”
포대령은 지극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술도 과하셨는데 들어가 주무시라고 했습니다!”
“뭬라구? 감기?”
“네! 이러시면 감기 드십니다!”
“새끼, 이거 정말?”.
순간 나의 볼에서 불벼락이 일었다.
“임마! 너 정 그런 시시한 말 또 할 텐? 이 새끼 이거 김달봉이 넉 사를 모르구선 하는 소리 아냐? 임마, 이래 뵈두 대한민국 포병으로 뼈가죽이 다 굳은 놈이야! 아스피린 공장 데릴사위라구 시시하게 감기 같은 걸 붙잽는단 말야?”
“전 연대장님 건강을 위해서 말했을 뿐입니다!”
“가이새끼! 밸길질루 뱃가죽을 뚫어놓기 전에 썩 꺼디라우! 북극에다 알몸으로 갖다 놔보라우 내가 죽나! 기리구 말야 너 왜 상관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거야? 엉?”
“잘못 됐습니다.”
“그럼! 기리야디! 하사! 내 항상 말하지 않았나, 여기는 전선이라구! 귀관의 정신무장은 솔직히 말해서 십 점두 안돼, 알갔나?”
“네! 주의하겠습니다!”
“돼서! 그래두 귀관이 내 밑으로 온 뒤 많은 진전이 있어 본관은 기분이 도오타! 기리구 영점 일 초 내에 침구 펴놓도록! 돌아가!”
내가 막 황급히 돌아서려는데 포대령 이 다시 불러 세웠다.
“하사!”
“네!”
포대령은 바지 주머니에서 아침에 쓰고 나갔던 등산모를 꺼내 쓰더니
“하사! 어때?”
하며 여태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무심히 바라보던 나의 가슴이 감전당한 듯 찌르르 저려왔다. 하나의 별. 그것은 완구점에 가면 다 있을 성싶은 함석으로 만든 별이었다.
“이 새끼야 전방 사단장이 낚시질 한번 가면 취사반에서 의무반까지 다 현장으로 이동하는 법이야! 기린데 일개 하사가 감히 항명 불복하구 이 새끼! 엉?”
포대령은 심술궂게 툭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등산모 한가운데서 희뿌연 빛을 발하고 있는 장난감 별 하나에 머무르던 나의 시선이 야릇한 한숨을 따라 밤하늘로 향했다. 완구점에서 저 별 하나를 흥정해 등산모에 달고 있던 초라하고 불안한 모습의 포대령이 수없이 깔린 별밭 속에서 외롭게 서 있었다.
내가 거의 가물가물 묘연해지는 의식으로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리자 그제야 포대령은 움켜쥔 나의 멱살을 풀었다.
“이 새끼! 똥 처눌 때 네 사타구니 좀 자세히 살펴보라우! 얼마나 우람하고 거대한 야포가 포신을 세우고 있냐 말야! 사내 뱃땅이 말야. 기리케 옹졸하구 조잡하구 유치해개지구서라므니 너가 포병이야? 엉? 거대한 사내철신에 이 가이새끼야! 넌 군기를 뭬로 보니? 엉? 휴가라면 상관의 허락이 있어야 하구 귀대 일자를 디켜야 하는 게야! 그런 유치한 탈영 방법이 어디서? 임마! 현재는 모든 공간이 영내야! 모든 사람들은 모두 포병이어야 해! 모든 모순은 다 적이야! 생활하는 모든 순간은 치열한 전선이야! 정신 상태가 기리케 돼개지군 넌 개죽음도 못하는 게야! 왜 이유를 못 대나? 왜 정정당당하게 굴디 못해?”
포대령은 게거품을 물고 아직도 성이 안 풀린 듯 노발대발이다.
그의 안면에 처참한 굴욕의 경련이 일었다. 짙은 비애의 그늘이 졌다.
“도오타! 하사! 너, 너마저 정 기리기야? 도오타! 돼서! 썅一 돼서! 너, 너……”
기적 이었다. 포대령이 우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울어대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포대령이 변소에 있는 틈에 때 절은 태피터 가방 하나만 들고 소위 탈영을 시도했었다. 야포 정비가 허술했다는 이유로 구타당한 데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장난감 야포에 들기름질을 안 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결국, 산길 중도에서 나는 포대령에게 덜미를 잡혔고 나의 과감한 탈영은 일단 좌절되고 만 것이다.
포대령이 절규했다.
“하사! 너 분명히 선서했때서? 엉? 나의 전사시까지 고락을 같이 한다구 선서 했때서? 엉?”
벌써 세 시간이 넘도록 포대령은 한 치의 동작도 없이 요지부동했다.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낡은 나무 의자에 기대앉아 폭음이 연발하는 채석장 쪽을 바라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리 형언 못할 비애에 차 있었다.
함석 별을 단 등산모를 눈썹 밑까지 눌러쓰곤 가슴에단 줄줄이 훈장을 달았다. 그런 포대령의 모습은 승승장구의 노장(老將)이 유유하게 전선을 관망하는 것 같기도 했고 패전(敗戰)의 지휘관이 격전의 전선을 뒤로하며 통분을 씹는 것 같기도 했다.
이틀 전 나의 탈영 미수 사건 이후 포대령의 일거일동은 확연하게 예전과 달랐다. 그 악지 세던 그의 성벽이 침묵으로 돌변한 이후 쉽게 말해 결코 정상이 못되었다. 가령 남방셔츠 위에다 줄줄이 매달은 훈장이라든가 일체의 함구라든가 식음의 전폐가 그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연대장님! 식사를 하십쇼! 벌써 이틀째 안 잡수셨습니다!”
포대령은 여전히 채석장에다 섬광이 일렁이는 시선을 못 박은 채 까딱할 줄 몰랐다.
꽝一 꽈앙一 꽝一
숨 돌릴 새 없이 연신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이 터졌다. 폭음은 긴 여운으로 산릉을 퍼져갔다. 폭음이 터질 때마다 그의 눈빛은 살기로 일렁거렸고 지휘봉(지팡이 부러진 것)을 잡은 그의 손은 몇 번이고 경련했다.
“연대장님! 식사하십쇼! 저…….”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포대령은 지휘봉으로 나의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임마!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지 않아서? 누가 뭐래서? 포대장은 나야! 작전은 내가 한단 말야! 어느 가이새끼가 뭐래? 엉?”
나를 쏘아보는 포대령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급기야 그의 전신은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채석장을 바라보며 타는 듯 숨 가쁘게 중얼거렸다.
“적은 우리 포대가 포격으로 침묵된 줄 알구 이서! 집중 포격으로 단숨에 침묵시키자는 게다! 포탄이 동이 날 때 공격하는 게야. 대기하라우! 대기하라우! 홋훗ㅡ 우리를 우회해서 아군 후방에 진출하여 오중대를 치구 전면에서 진격해서라므니 이사단을 포위하려는 게야! 똥가이새끼들! 관측병!”
“네!”
“전선 관측병에게선 아직 적이 진격을 개시했다는 무전이 없었디?”
“……”
“왜 대답이 없어? 이 새끼 너 지금 어느 판국인데 정신 빼구 서 이서 엉?”
“연대장님 진정하십쇼! 적도 없구 진격도 없습니다!”
“뭐가 어드래? 임마 잔소리 말구 빨리 전방 관측병을 부르라우!”
포대령은 간이 타서 내뱉었다.
―꽝 꽝 꽝―
다시 한 번 폭음이 연발했다. 그러자 포대령은 벌떡 일어서더니 목이 터져라 고함을 쳐대는 것이었다.
“전 포대 장탄! 전 포대 장탄! 발사! 발사아―”
포대령은 되는대로 지휘봉을 휘두루며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그의 동요를 따라 가슴의 훈장들이 칠렁대고 시퍼런 심줄들이 가쁜 맥박이 뛰는 모가지에 갈래갈래 가지를 뻗고 돋았다.
연신 채석 장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이 밤하늘로 퍼져갔다.
“임마! 빨리 내 명령을 포대에 하달하라우! 전 포대는 발사하라!”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한동안 한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포대령은 거의 광인이었다.
“뭘 쳐다보구 있는 게야? 빨리 가서 명령하달 안카서?”
“연대장님! 채석장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폭음이래니깐요. 어디에 적이 있습니까? 네? 진격이 어디 있습니까? 적이 없는데 진격이 어떻게 있겠습니까? 연대장님은 피로하셨습니다. 쉬시죠, 네?”
나의 목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격한 감정의 와류 속을 떨려 나왔다. 뜨거운 가슴속에서 연신 설움 같은 불기등이 솟았다.
“빨리 명령을 하달하라우! 이 새끼 불복하면 당장 군재에 회부해 서라므니 목을 자를 테다!”
나는 일단 포대령 앞에서 물러났다. 뒷집 담벽에 기대서며 수없이 머리통을 찧어대봤다. 별다른 충격이 없다.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
야릇한 죄책감이 오한처럼 전신을 엄습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소가 깨물어 뜯은 입술 아이로 샜다. 허탈, 이것인가.
이때였다. 멀리, 점점 멀리 나의 고막에 여운을 남겨주는 소리가 있었다.
“전 포대에一 발사아ㅡ 발사아ㅡ”
포대령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는 절명하는 짐승의 비명처럼 간거르며* 자꾸 멀어졌다.
나는 급히 집 마당으로 나갔다. 역시 포대령은 없었다.
어슴푸레 달빛에 물든 주위를 휘둘러보고 있는 나의 시야에 질주하는 포대령이 멀리 들었다.
포대령은 채석장을 향하여 거침없이 내닫고 있었다.
“ 대장니임一”
나는 포대령을 부르며 산길을 타올랐다. 나는 치달으면서도 생각하였다. 도대체 어떤 애착이 이처럼 짐승 울부짖음 같은 절규를 허용하는가를.
꽝ㅡ 꽝一
진동하는 폭음이 울렸을 때 문득 나는 그 자리에 목석처럼 서버리고 말았다.
희뿌연 흙더미가 연막처럼 산개하는 그 사이를 그대로 뛰어가고 있는 포대령을 공사장의 가설등이 똑똑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꽝一 꽝一
폭음과 함께 치닫던 포대령은 풀썩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잠시 후 채석장 인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시각에 투영되는 동안 나는 몸을 가눌 수 없는 현기증 속에서 일체의 동작을 잃고 있었다. 점점 시야가 또렷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목줄을 타고 숨 가쁠 때에야 나는 정신없이 치달았다.
내가 밀집한 사람들을 비집고 포대령 앞에 쓰러지듯 했을 때 포대령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하사아 ……적, 적은 격퇴됐, 됐디?……”
“연대장님! 연대장님! 네! 전멸됐습니다!”
나는 이미 오열하고 있었다. 접근할 수도 없었던, 아니 쳐다보기도 두려웠던 포대령의 피 엉킨 얼굴에다 나는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수세미 갉듯 비벼대고 있었다.
“……돼서어…… 좋아서어…… 기리구…… 하사아…… 본관은…… 전, 전사다 ……시시하게 뒈졌을래며언…… 백 번도 더 뒈졌대서어……”
나는 포대령의 손을 잡고 뜨겁게 절규했다.
“연대장님! 분명, 분명 전사하셨습니다! 안심 하십쇼!”
“……기리티. 본관은 전, 전사다…… 전사다…… 기리구 이거어.”
포대령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듯 한두 번 눈알을 굴려댔다. 그는 겨우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서는 내 손에 쥐여주는 것이었다.
꼬깃꼬깃 접어진 오백 원짜리 두 장이었다.
“……그거 귀, 귀관의 봉급이다……귀관의……귀관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격랑에 말을 잊고 있다가 내가 다시 그를 봤을 때 포대령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세대』 63호(1968. 10) ; 『포대령』 (한겨레 1986)
천 승 세
천승세(千勝世)는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문화방송 전속작가, 『한국일보』 기자 등을 지냈고,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으로 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점례와 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토착적인 생활 풍속의 세계를 포착하는 사실적인 입담을 통해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주변부의 삶을 다뤄온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포대령」 「혜자의 눈꽃」 「신궁」 「황구의 비명」 「폭염」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