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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호 한맥문학에 게재된 수필입니다.
수필 엿장수 가위
一 松 韓 吉 洙
엿장수 가위는 쓸모도 많다. 쟁 쟁 쟁그랑 쟁그랑 치는 가위는 내가 여기 왔다는 신호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흥이 나면 제멋에 겨워 쟁그랑 거리며 노는 악기도 된다. 그뿐 아니라 제1주요한 기능은 엿장수 가위를 자(尺)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금시초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부처님 얼굴에 살이 찌고 안 찌고는 석수石手쟁이의 손에 달렸고 사 먹으려는 엿 길이의 길고 짧음은 엿장수의 가위에 달렸다.
시골 마을에 엿장수가 가위를 쟁그랑 쟁쟁치고 나타나면 온 마을의 개구쟁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제 집으로 달려간다. 집안에 있는 고무신발 떨어진 것, 아니면 삼베 걸레 떨어 진 것. 양은그릇 구멍 난 것, 그래도 모아 놓은 것이 없을 때는 숟가락을 부러트려서라도 가지고 나와서 엿하고 물물 교환하여 먹는다. 이때 엿장수의 가위가 요술을 부린다. 어느 때는 좀 넉넉하게 잘라주고 어떤 때는 엿장수 가위가 부부싸움을 하고 왔는지 아주 옹색하여 한입에 쏙 들어가 버릴 정도로 야박하게 자른다. 이 가위가 막걸리에 취했는지 제멋대로 춤을 추며 개구쟁이들을 울린다.
이와 같이 제멋대로 인 엿장수의 가위 같은 망나니 짓거리, 엿장수가 제 맘대로 재단하는 것과 같은 행정처분이나 규정, 법을 다루는 곳이 있어 이 기회에 이들을 고발하려고 한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하고 작곡까지 한 “새마을 노래”의 일부이다.
이 당시 가난에 찌든 농촌을 개혁하여 어떻게 하든 잘 살게 하겠다는 것이 국정과제요, 시정목표施政目標이었다.
필자가 1977년 성동구청의 주택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는데 성수동에서 밭갈이 하는 한 농부가 초가지붕을 개량하겠다는 신청을 해왔다. 내용을 검토해 보니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초가지붕개량사업을 [새마을 필승사업]이라 하여 서울시에서 구간 경쟁을 붙여 모두가 큰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역점사업으로써 1가구당 30만원(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00만원 정도)씩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독려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근무 중 일 때에는 새마을 필승사업도 아니고 지원금도 없어졌으나 초가지붕 개량사업은 계속 중이었다. 그 당시의 뚝섬은 이곳저곳에 공장들이 몇 군데 있었고 대부분이 무밭과 호박밭이 전부이어서 농부들의 집이라고 해야 흙벽에 볏 집으로 된 이엉을 올린 초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초가집은 초가라고 하지만 제때에 이엉을 올리지 아니하여 지붕이 새니까 비닐도 얹고 어떤 집은 지붕일부에 슬레이트를 얹은 짜깁기 지붕이어서 지붕을 뜯으면 벽이 무너지기에 시멘트 블록이나 시멘벽돌로 다시 벽을 쌓아야 했는데 초가지붕개량사업이라는 것은 이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어느 날 감사원에서 건축과의 건축 업무에 대하여 감사가 나왔는데 현장에 나가서 위법건물을 조사한다고 다니더니 큰집 잔치에 만만한 작은 집 돼지가 죽었다. 하필이면 초가지붕 개량사업 현장에 가서 이를 목격하고서는 무허가 건물을 짓도록 방조했다며 필자에게 확인서를 쓰라고 몰아붙였다. 초가지붕 개량사업에 대한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지원금까지 보조하면서 적극 지원했던 사업이었으나 이 건은 단 한 푼의 공공예산이 투입되지 아니한 것만도 다행한 사업이다. 외국에서 오는 VIP들이 워커 힐에 왕래하는 가시거리에 위치한 보기흉한 초가를 개량하라고 [새마을 노래]에도 있듯이 초가지붕 개량은 국가에서 장려하여야 할 사업이 아니냐고 해명을 해도 마이동풍이요, 소귀에 경 읽기로 듣지 않았다. 결국에는 감사원에서 서울시로 필자와 담당계장 그리고 직원까지 징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감사원은 저간의 사정을 모르니까 그렇다고 처도 서울시에서는 지난해 까지만 해도 각 구에 할당을 해 가면서 초가를 개량하라고 경쟁까지 붙여 독촉했으니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징계위원회에 참석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자료까지 제출하고 왔으니 잘 되려니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사원의 요구에 겁을 먹었던지 명태껍질로 눈을 가린 엿장수 가위로 담당 직원은 감봉, 필자에게는 견책처분을 내렸다.
너무나 억울해서 총무처의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내어 이의 부당함을 호소했으나 어느 심사위원이 말하기를 우리보다도 내용을 잘 아는 서울시에서 한 처분인데 내용을 잘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똑같은 엿장수 가위를 들여대고 있었으니 필자의 주장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어서 너무나 억울하게 당하고 말았다.
다음은 필자가 1981년 서울시 지하철운영사업소에서 총무계장에 보임되어 1만 여명이나 되는 현업직원들에 대한 인사업무를 담당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하철 건설이 연장됨에 따라 부분개통을 자주 하였다. 우리 과에서는 영업을 담당하는 역무원, 차량을 운행하는 승무원. 이에 따른 전기와 통신을 담당하는 전기원, 통신원, 차량의 점검과 수리를 담당하는 검수원, 철로의 점검과 이의 정비를 담당하는 보선원, 건물이나 시설의 점검과 보수를 담당하는 공무소 직원 등 여러 분야의 기능직원을 채용하여 교육시켜 현장에 배치하는 역할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1문제가 되는 것은 영업을 담당하는 역무원의 채용과 승진이 문제이었다. 부분개통으로 10개역이 새로 생겼다고 할 때에 역장 1명씩 10명, 교대로 근무하는 부 역장인 조역 2명씩 20명, 그리고 주임급인 지도원이 2명씩 20명 등 50명의 간부가 필요할 뿐 아니라 업무에 숙달된 고참 직원을 고루 섞어서 배치하여야 하는 등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중에도 소위 간부라고 하는 50명을 기존 근무 직원 중에서 승진시켜 임용하여야 하는데 말이 그렇지 이 업무는 어려운 난제 중 난제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계로 간부들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어서 승진시킬 자원이 부족하여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다행히 철도청에서 일반직 6급으로 시골에서 역장을 하다가 서울이라는 매력에 이끌렸는지 신규 공채로 기능직 9등급이나 8등급으로 채용된 직원이 있었고 일반직 7급 조역이나 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자들도 이런 케이스로 입소한 자가 여러 명 있었다.
기능직 전 직원에 대한 서열관리를 위하여 6월말이나 12월말에 경력평정과 근무성적평정을 실시하여 서열명부를 만든다. 이 명부에 의하여 상위 직에 공석이 있을 때 승진시켜 빈자리를 메운다. 이때에 간부급은 보직발령을 한다. 그런데 승진규정에는 직급별로 다르지만 대략 2-3년 정도 최저 승진소요연수 라는 것이 있다. 또한 경력평정규정에는 공무원이나 유사한 전 경력이 있는 자는 경력 평정을 할 때에 전 경력을 포함하여 소요연수를 계산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철도청에서 일반직 6급 역장을 하다가 그만 두고 우리시의 지하철운영사업소에 9등급으로 입소한자가 있는데 상위등급에 공석이 있을 때 이 사람이 우리시에 입소한 경력이 2년이 못되었어도 철도청에서 9급으로 근무했던 2년의 경력을 인정해서 평정을 하여 8등급으로 승진시켜주라는 규정이다. 그런데 또 지하철의 연장개통으로 상위 직에 공석이 생길 경우 철도청의 8급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음으로 이 자를 승진소요연수를 채운 걸로 인정하여 또 경력평정을 실시하여 7등급으로 승진을 시켜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역무 행정을 제대로 운영이 되도록 조치해 왔었다.
그런데 1983년 난데없이 서울시 감사과에서 감사가 나왔다.
이들이 인사업무를 감사하다가 갑자기 대어大漁를 낚았다고 쾌재를 불렀다. 경력평정규정의 규정은 전 경력을 1회만 인정해 주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여러 번 전 경력을 인정하여 승진시키는 인사의 난맥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업무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관계규정을 제대로 준수했다고 주장을 해도 마이동풍이었다.
그러더니 이사관인 소장에게는 견책, 과장에게는 감봉 1월, 필자에게는 감봉 3개월, 담당자에게는 해임처분이 내려왔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을 수시로 부분 개통하여 편의를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여기에 대비하는 직원들의 과중한 업무는 대단하다. 이 업무를 수행하느라 시달리는 직원들의 고통과 노고는 필설로는 표현을 못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우아한 자태는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지만 눈에 안 보이는 물밑에 있는 발의 물갈퀴는 얼마나 피곤하게 노를 젓고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며칠씩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산처럼 쌓여있는 업무와 씨름하느라 애를 쓰다가 코피가 터지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서 링거를 맞고 나오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피 터지게 노력한 직원의 노고는 전연 모른다. 물밑에서 고생하는 직원에게 고맙다. 수고했다고 위로하고 표창이나 훈장은 못 줄망정 해임이라니 이건 어느 나라에서 사용하는 못된 가위냐 이 말이다. 이것은 행정도 아니고 막가는 고장 난 가위질이었다.
하도 억울해서 총무처에 소청을 내고 고등법원에 행정심판도 요구했으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초록은 동색인지 전연 이 가련한 사람들의 호소나 정당한 주장을 귀담아 듣지를 않고 이성을 잃은 엿장수 가위로만 재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법원에 항고하였으나 예의 대법원의 그 수작인 김 빼기 작전 즉 지쳐서 스스로 넘어져서 포기하라는 전법으로 마냥 틀어쥐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해임된 자는 오랫동안 집안에서 봉급을 땡전 한 푼 받지도 못하고 칩거하게 되고 감봉 받은 자는 봉급도 2/3만 받으면서 각종 평정을 제대로 받지를 못하니 승진도 못하고 형편없는 음지구석으로 쫓겨 다니며 쥐구멍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만에 대법원하고 총무처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총무처에서 경력평정규정을 개정하여 <공무원 중 전 경력이 있는 자는 1회에 한하여 전 경력을 인정한다.>라고 아주 못을 박는 개정을 하였다. 이렇게 되고 나니 그때서야 대법원에서 때는 됐다 하고서 한다는 말씀 <총무처에서 전 경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개정한 걸로 봐서 원고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명예를 회복했으나 6급 담당자는 직장에 복귀하여 종합운동장인가에서 근무를 하는데 그 쇼크로 병원에 입원하였다기에 우리들이 연판장을 돌려 금 일 봉을 전달한 일이 있었다. 억울하게 당한 일이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기에 일찍 타계하였으니 어느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엿장수의 가위를 휘두르는 감사과라 할지라도 일정한 내규가 있어야 한다. 1만 여명의 인사를 취급하는 기관에 행정직도 아닌 임업직 6급 직원이 실무자로 나와서 대어를 낚았다고 큰소리치며 맘대로 잣대를 휘둘렀으나 결과는 그게 아니라는 판명이 났음으로 이 자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전연 그런 조치가 없었으니 엿장수의 잘못된 가위의 위력은 끝까지 지저분했다.
또한 필자 등은 그간의 심적인 고통과 여러 가지 빼앗긴 권리를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하는지 엿장수 가위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당하는 사람만 억울한 일이요, 만사휴의萬事休矣이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고장 난 가위를 들여대어 대어를 낚았다고 큰소리치며 선량한 공직자를 골탕 먹인 자에게는 응분의 책임을 물었어야 마땅한데도 고슴도치 제 새끼 예쁘다고 끝까지 감싸고 있었다.
필자는 33년을 공직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였다. 이때 퇴직급여가 나오는데 일시불로 찾던가 아니면 연금으로 찾던지 택일을 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필자는 8년은 일시불로 찾고 나머지 25년을 연금으로 신청하였다. 그랬더니 연금관리공단에서 증서가 나왔는데 재직공무원 보수의 65%를 지급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이 증서는 공공증서로서 확정력이 있다. 그 외에 연금은 재직자의 보수인상에 따라 연금도 인상하는 보수연동제를 적용한다고 되어있으니 필자와 공단간의 약속사항이요, 일종의 계약사항이었다.
그 뒤로 이 약속이 잘 이행되어 왔었는데 정치 9단인 만고의 김대중 슨상님께서 대통령이 되더니 술수를 써서 기 히 잘 먹고 있는 밥그릇을 빼앗아서 쭈그러트리고 앞으로는 당초 약속한대로 담아주지를 않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한 밤중에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게 저질러 버렸다. 즉 1999년 12월 31일 그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예년에 야당이 하던 짓과 똑같이 여당과 무언가 의견이 상치되니 협치를 않겠다고 장외투쟁을 한다며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이때 몸이 바짝 단 여당이 무 꼬리를 흔들며 당근을 준다고 야당을 유인했는데 야당 총무는 당근꼬리라는 것이 무 꼬리가 아닌지 살펴봐야 되는데 야밤중에 손으로 더듬어 보고는 무 꼬리에 속아서 탄생시킨 것이 있었으니 이른바 민생법안이라는 것이다.
시급한 민생법안만 몇 건 통과시켜 주면 야당이 요구하는 몫을 조금 들어주겠다는 흥정으로 시급한 몇 건의 민생법안이 국회를 통과되었다.
그런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시급한 민생법이라고 속여서 한꺼번에 통과 시키는 방망이에 끼워 넣음으로써 노후에 힘없고 경제력이 없는 늙은 퇴직자들이 오로지 연금에 의지하고 살고 있었는데 먹던 밥그릇을 빼앗아가고 작은 공기 밥그릇을 내밀어 퇴직공무원들을 울렸다.
이것은 퇴직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이 아니고 개악하는 처사이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지금까지는 재직자의 보수에 연동하여 재직자의 급여가 5% 인상되면 연금도 5%오르도록 한 법에 의해서 증서까지 교부하여 잘 시행해 오고 있었는데 이 규정을 난데없이 전년도의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적용하도록 바꿔버렸다.
문제는 이 법이 시행할 때에 재직하고 있던 공무원들이 퇴직하는 시점부터 법을 적용하는 것이 정도인데도 이미 퇴직하여 연금을 잘 받고 있는 선의의 수급자들에게 소급적용하여 기득권을 박탈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엄연한 헌법위반이었다.
자정인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쉬쉬하면서 전격적으로 통과시킨 이 법을 어떻게 인지한 친구가 있었다. 서울시청에서 정년퇴임한 7사람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심신을 단련하고자 山水會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서병각 회원이 어디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우리 몇 사람이 헌법재판에 조예가 있는 변호사를 어렵게 찾아내어 강남으로 그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변호사가 내용을 파악하더니 “이건 기득권 침해로서 엄연한 헌법위반이다. 한번 일을 해 보자. 그런데 보수는 착수금으로 1.000만원을 받겠다. 그리고 헌법소원을 내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필요하다.” 고 하여 우리들은 이때부터 필사의 노력을 전개했다. 우선 참가비로 10만원씩을 받기로 하고 100명의 동조자를 구하기로 했다.
회원이 1만 여명이나 되는 거대조직인 서울시 시우회를 찾아가서 협조를 구하고 각 구별로 조직된 시우회 구회를 찾아가기도 하였으며 중앙부처 퇴직자들의 모임인 체성회 감우회 행정동우회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재향군인회 등을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이들 단체에서는 긴가민가하여 처음에는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어렵게 끌어 모은 103명의 인적사항과 착수금 1.030만원을 변호사에게 전달하여 소송기일이 도과되기 전에 변호사가 서류를 작성하여 마침내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러고 나자 중앙부처 퇴직자들도 뒤를 이어 소원을 제기하려고 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버스가 지나가 버린 뒤인지라 소 제기할 자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큰 조직들이 우리가 제기한 소송에 보조참가자로 들어왔기에 점점 소원을 제기하는 조직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기에 헌법재판소에서도 만만하게 다룰 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위를 잃어버렸는지 굼뜨기만 하는 헌법재판소이었다. 작금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재판관 숫자가 모자라는데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도 판결하더니 그 당시의 헌법재판소의 처사는 정말 눈뜨고는 봐 줄 수 없는 느림보중에서도 나무늘보 이상의 게으름을 피우는 가위이었다. 우리의 소원서류는 캐비닛에 깊이 처박아두고 낮잠을 자거나 먼 산을 바라보고 부지하세월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장장 2년하고도 6개월, 이제는 신물이 났다.
헌법재판소와 정부 간에 물밑거래가 있었는지 마침내 정부에서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귀 거리 코 거리식의 연금법 개정안을 내놓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법이라는 것이 <재직공무원의 보수 인상률과 소비자 물가지수의 차이가 2%이상일 때에는 3년마다 이를 조정할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꼼수이었다. 마지못해서 하는 숙제인 냥 게으름뱅이가 내놓은 것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었다. 몇 년이 흘렀어도 조정 한번 한 일이 없는 사문서死文書이었다. 그나마 다음에 있었던 공무원연금법 개정 시에 이 조항마저 슬그머니 삭제해 버렸다. 자! 이렇게 되면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격이 되었다. 아니! 도루묵이 되었다. 우리가 죽을 둥 살 둥 온 힘을 다한 결과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장난도 아니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자들의 머릿속이 참으로 한심했다. 이것은 눈치 보기 9단인 엿장수 가위이기에 헌법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개가 물어가 버렸다.
2015년 5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또 공무원연금법에 손을 댔다. 이 연금법이라는 법은 만지면 만질수록 마이더스 왕의 손처럼 만지는 것 마다 황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못되게 개악의 구렁텅이로 굴러가고 있는 특색이 있다. 이 번에 개악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연금 지급액의 인상은 5년간 동결한다, 연금 지급액 일부정지에 포함하지 아니했던 부동산 소득을 포함한다. 재직공무원의 보수 인상률과 소비자 물가지수의 차이가 2%이상일 때에는 3년마다 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한다.>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개악된 연금법도 이미 연금을 지급받고 있던 퇴직자에게 직격탄이 되는 법조항으로서 엄연히 기득권을 침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헌법을 위반하는 처사를 또 저질렀는데도 누구하나 나서서 이의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군인연금법은 개정하지 않는다. 고 했는데 이것도 형평성을 잃는 처사이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있다. 설마 누가 해 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행위이거나 남의 불에 게 잡으려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어 꼼짝하기를 싫어하고 있는 사이에 법은 시행되어 2016. 1. 1.부터 적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공직자 출신이라고 하면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이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엿장수 가위를 휘둘러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아니한다.
연금이란 공무원들이 재직 시에 기금의 50%를 공직자가 부담하고 사용자가 50%를 부담하여 조성한 기금을 운영하여 그 과실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 보면 제 닭 잡아먹기 식이 되어 공무원들이 재직 시에 자기가 납부한 기여금만 받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런 모순을 그냥 두고만 볼 것인지.
이제 우리 山水會員들도 옛날의 그 기백이나 용기가 저상되어 누가 잘못된 가위로 장난질을 해도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수많은 못된 엿장수의 가위에 당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그 잘못된 놀음에 순치되어 맞아도 아픈 줄도 모르고 지내는 처지가 되었다.
아! 많이 아팠던 옛날이여! 그 날뛰며 생동했던 기백이여!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자의적으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엿장수의 가위여 이제는 가라! 아니! 망가져 버려라.
2017년 7월호 한맥문학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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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