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방송대학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논어강의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 공자를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은근히 공자가 위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김용옥은 방송에서 논어의 ‘수리편’에 나오는, 자신이 생각하는 공자의 가장 인간적이면서 스승으로서의 가장 위대한 면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학생들왈(曰): 왜 스승님(공자)은 우리에게 모든 가르침을 다 안가르쳐 주시지? 왜 속시원히 말해 주시지 않고 숨기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공자왈(曰): 내가 너희들(학생들)에게 숨기는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너희들과 더불어 행하면서 가르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게 바로 ‘나’다.
김용옥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진리라는 것은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면 즉 일상의 삶에서 스승과 제자라는 허울 없이 행한 소박한 행동들이이야 말로 공자의 위대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만일 김용옥이 여기까지 말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어떤 스승이라도 제자들과 허울없는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김용옥이 공자와 제자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성경의 베드로와 예수님의 모습과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왈(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왈(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왈(曰):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5~17
즉 김용옥은 ‘공자와 제자’들 그리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모습을 대차비교 시키면서 공자는 가장 가까운 인간적인 모습의 행위 속에 함께한 스승이었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에 반해 예수는 그리스도와 메시아라는 신적인 의미와 권능으로 인간적이기 보단 권위주의적인 주종관계를 이루는 천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점을 나타내면서 깎아 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김용옥은 “여러분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쪽이 과연 더 위대한지 말입니다.”라고 회심의 표정을 지으며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난 사실 김용옥의 이 말을 들으면서 김용옥이 저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을거라 짐작했다.
첫째는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고, 읽었더라도 표면적으로만 읽었을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만일 김용옥이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청중들에게 예수님을 깍아 내리고 싶은 다분히 심리적인 의도가 담긴 발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생각한 그리스도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정치적 메시아 즉 민중해방의 그리스도였다. 원래 메시아라는 단어는 페르시아 고레스 왕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포로로 잡아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하며 고향으로 돌려보낼 때 이스라엘 민족이 고레스 왕에게 ‘메시어’라는 칭호로 붙여 준 것에서 유래한다. 쉽게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아'라는 단어는 원래 단어의 어원이 이방 왕을 칭송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라는 의미에는 다분히 로마로부터의 유대민족 해방의 관점이 들어있는 정치적 메시아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기대와 심리는 엄청나게 부풀고 들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근거를 엿볼 수 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나타 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 16:21~23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분명 예수님은 그전에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옳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그러한 고백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성경에 의하면 베드로는 분명 가장 중요한 고백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정점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죽임을 당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는 것을 통해서도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하다. 스승인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말은 곧 자신이 바라는 메시아상 그리고 그리스도상이 완전히 엇나가는 순간임을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귀신을 쫒아내고 병자를 고치며 배고픈 자들을 기적적으로 먹인 것을 보아 왔으니 말이다.
베드로에 의하면 메시아는 분명 로마식민지로부터 유대민족을 해방해야 하고 민중들에게 배고픈 빵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는 메시아였다. 아마 베드로는 자신의 메시아상이 빗나가는 것을 참기 어려웠거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자신의 스승 예수님을 만류했을 것이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예수님의 베드로에 대한 반응이다. 분명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에 가깝게 옳다고 해놓고선 이제는 자신의 죽음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는 말로 받아 치신다. 아니 세상의 어떤 제자가 스승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의 어떤 스승이 자신의 죽음을 만류하는 제자를 위로하기보단 사탄이라는 가혹한 말로 몰아칠 수 있을까.
설사 제자에 대한 스승의 반응이 냉혹하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베드로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이런 반응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정의'와 '하나님의 정의'를 읽을 수가 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정의에 의하면 예수님은 살아 있어야 할 존재였고 예수님이 생각하는 정의는 민중의 정치적 독립과 현실적 배고픔의 문제보다 죄사함과 구원의 문제로 갈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복음서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전 3번이나 부인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김용옥이 생각하는 것처럼 천박한 주종관계의 입장에서 베드로를 두둔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역사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시기와 질투로 인해 요셉을 팔아버린 형들과 그런 형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과 배신등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말이다. 하나님은 요셉과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배신이라는 온갖 인간들의 죄성이 되는 악한 심리등을 도구로 이용하며 별볼일 없던 야곱의 가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거대한 섭리역사를 만들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는데 아무런 제한과 거리낌 없이 이방적인 언어와 문화 또는 인간의 죄악등을 통해서도 완벽하게 계시하신다. 마찬가지로 베드로가 기대했던 정치적 의미의 그리스도라는 그 고백이후에 마침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용옥이 생각한 베드로와 예수님의 천박한 관계를 거꾸로 뒤집어서 보면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입장이었다.
“베드로야 니가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니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는 정치적 해방의 메시아지만 나는 원래 니가 말하는 그런 메시아가 아닌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할 메시아니라”라고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베드로의 철없는 답변을 통해서 예루살렘 입성의 최종선언문을 찍게 된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오히려 김용옥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대화’ (The greatest conversation)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철없는 제자의 답변을 다그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고 있는 스승의 위대한 모습과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하는 메시아로서의 고독이 담긴 모습을 들여다 볼 수도 있는 ‘위대한 명장면’ (The greatest scene)이기도 하다.
만일 김용옥이 학자로서 또는 신학자로서 성경에 대해 적어도 정직과 솔직함을 지녔다면 예수님이 공자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과 허울 없이 지내면서 종처럼 제자들을 섬긴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요15:13~14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 요13:13~14
김용옥이 논어를 강의하면서 설정한 공자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만 본다면 일면 공자가 훨씬 더 위대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들을 전후관계의 문맥과 성경전체의 맥락에서 본다면 김용옥이야 말로 학자로서 비겁하고 천박하다고 말을 들어야 타당할 것이다. 만일 일반 기독교인이 김용옥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는 무지의 소치일 것이다.
사실 김용옥 선생은 대학자로서 존경할 인물이긴 하다. 그가 한국에서 큰 소리를 치며 동양학을 강의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고전어와 고전학에 누구보다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학자들이 고전학에 있어서 김용옥에 견줄 수 없는 이유는 원문 고전어를 해독하는 능력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김용옥의 성경해석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폭넓고 전체적인 의미에서 제대로 읽는다면 사실상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소위 말하는 깜냥도 되지 않는 가소로운 발언일 뿐이다. 성경은 성경자체가 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신,불신 간의 관점 차이죠.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데.....
솔직히, 이런 자들의 주장이 인터넷에 올려지고 논의 된다는것 자체가 오히려 그들의 원하는 바를 돕는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생각이 조금 틀립니다.^^
사실 믿는자들 중에도 예수님에 대해 본질적으로 깨닫는 자들이 많지 않아요. 특히 요즘 젊은세대들에게 예수의 모습이 종교적, 철학적으로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죠. 그 선두에 김용옥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12명의 사도들이 살았던 시대에 헬라니즘 철학과 소피스트들 그리고 이원론적인 이데아에 대항해서 그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것을 생각하며 역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복음에 대항해 싸우는 쪽과 그것을 지키는 자들의 세계관으로 점철되어 온 것이 사실이죠. 과거의 역사나 오늘의 거울이니까요.^^
별로 관여 해서 좋을게 없을텐데...
환님! 한번 해 보세요. 뭐 뾰족한 수가 있는지...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누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사그편님의 글도 성경의 본질을 드러내는 좋은 글들이 많아요.
호소력과 전달력이 뛰어난 인물 김용옥!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이들이 지식전수를 받지요 복음 방해 작전도 상당히 논리적으로 펼치죠 깜빡 속기좋게 말이예요 그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빛이 더욱 영광스러운것입니다. 가증한 그의 입을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하나님께 있겠지요 우리는 속임당하지않도록 말씀으로 분별하는 형제, 자매 됩시다
아멘~^^
김용욱씨가 처음 부터 의도하고 바라던 것이,...
바로, 여러분 같은 분들이 이러쿵 저러쿵 입에 오르내려 주는것이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서 아주 비열하고 위험한 방법의 터무니없는 무리수를 던졌는데....
그것을 돕겠다고요???
그리고 교회안에 신앙과 상관없이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는거 여러분들은 이제 아셨습니까?
그리고 믿음에 약한분들 중에 혹! 환님이 의도한 바 대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김용옥씨 주장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는것 아닙니까?
환님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엉뚱한 결과를 초래 할수도 있는데.. 상당히 곤란하네요.
방송에서 너무나 잘 도와주는 바람에 왠만하면 다들 알고 있는 것을 이제와서 뭘 세삼스레 그러시는지?
그리고 글(댓글) 올리실때에 왠만하면 편가르기 혹은 이간질 한다는 오해는 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어는 정도 카페와 지기에 대해 아셨을것 같은데.... ㅡㅡ;;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본 카페는 가정(집)교회의 커뮤니티 또는 네트워크 구축 그리고 복음 전파에 온 힘을 집중 하고자 합니다.
때문에 바라보는 목표와 상관없는듯한 토론이나 논쟁은 삼가해 주실것을 회원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에 동의 하실수 없으신 분들은 각기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가심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상처만 남습니다.
다양한 여론이나 계획 그리고 포괄적인 수용은 사실상 저희 카페에서는 기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회원수가 많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 양적 질적 성장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그런 카페와는
근본 차원이 다릅니다.
영양가 없는 것에 힘 뺄 여유와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용욱씨의 주장이 각 입장에 따라서는 상당히 들을만 하다는 그런 쪽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의 주장이나 생각하는 바를 모조리 체크하고 수정하여 모든 사람에게 고루 알려 실족하지 않도록 충분히 설득할수 있습니까? 멀쩡한 사람들 호리는 이단이나 변괴자들이 하나 둘 입니까?
그리고 복음이 논쟁을 통하여 상대를 설득시키는 그런 것인가요?
복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라, 따라서 그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서 오늘도 나타나고 또한 그들을 통하여 전해 집니다.
반론 준비하시기 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사십시요.
그러면 당신을 통하여 나타나고 전해 질것입니다.
밝고 빛나게님 여러번 제가 말씀 드린것 같은데 서로간의 입장이란게 있습니다.
서로간 충분히 이해를 할수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어쨌던 지금은 상당히 서로간 이해를 못하는 쪽으로 보이네요.
유감입니다.
아시는분은 아실텐데..... 제가 전에 예향. 플비.숭사리 카페 회원 이었습니다.
교회개혁, 의식개혁 어쩌고 하면서 별소리 다 해가며.... 정말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그런 카페 역시도 끼리끼리 놀음에.... 참~
지치고 치여서 강퇴도 당하고 또 믿었던 인간들이 꼴보기 싫어서 자진 탈퇴도 하고 그랬었지요.
말씀이 어쩌고 하면서 오만 너스레를 다 떨어도 결국 다 그놈이 그놈이 더군요.
인터넷 카페 너무 크게 의미 두지 마십시요.
저 같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게 아니라면 .....가볍게, 그리고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
그리고 환님께 부탁 드립니다.
더 이상은 김용옥씨 관련 글 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분별해 준답시고 되려 홍보해 주는거 더는 못 보겠습니다.
개 가 짖는것을 가지고 뭔 반박을 한단 말입니까 ?
나중은 어떻게 될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냥 많은 개들 중 한 마리의 똥개 일 뿐입니다.
이런 소리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제가 몇차례 눈치를 드렸는데도 ..... ㅡㅡ;;
바보선생님 아니 형님이라고 부르죠.^^
형님의 그 설정이라는 것이 참으로 애매모호하고 이해가 안 가는거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누가 누구를 편을 가른다는 겁니까. 그리고 제가 언제 김용옥씨와 관련된 글을 올린적이 있었던가요(물로 댓글에서 먼저 언급한 것은 있지만)
게다가 김용옥씨가 복음에 대해 잘못 전하는 것을 올바르게 살펴보고 판단하자는 취지의 글이 어째서 김용옥씨를 도와 준다는 겁니까^^
님의 눈에는 김용옥이 똥개라 하더라도 세상의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만만치가 않아요. 한신대라고 하면 아주 리버럴한 신학대인데 그쪽 교수들도 김용옥씨의 이론에 때론 수긍한답니다.
그럼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이론에 혹하지 않는 사람이 적을거 같습니까.
바보형님이 이 까페에서 기독교와 일반 목사들을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왜 유독 성경에 대해 반성경적인 입장을 보이는 김용옥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자는 입장인지 그 의도가 참으로 불손합니다.
이것은 까페지기님에게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것이지만 복음에 대한 님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냥 제도적 교회만 까고 보자 뭐 이런 심리입니까.
어느까페든 복음과 관련된 글을 적는 것에도 이렇게 눈치를 본다면 님이 추구하는 이까페의 진정성은 무엇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수가 없군요.어디한번 대답해 보시죠
불순한 카페에 더 계시지 마시고 좋은 곳에서 활동하십시요.
교파교회나 목사를 지적하는것은 그나마 혹시~ 하는 마음에서 이고, 김용옥씨 같은 경우는 아예 참견할 수준도 못되기 때문에 근본 관심을 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그를 향해 반론 몇줄 올린다고 현혹될 사람들의 수가 줄것이란 생각에서 그렇게 멋지게 글을 올리셨는지는 몰라도 저는 전혀 동의 할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잘난 신대 교수들 조차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판국에 혹 이라도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더 걱정입니다.
어쨌던 잘 가십시요. 좋은 활동 많이 하시기를 ,,,,,
제가 낄자리 일까마는 식구 몇안되는 곳이라도 한말씀 여쭙고자 합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의학박사가 2,000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병원장이 죽어 가는데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게 과학이고 박사학위 입니다.
돌팍 김용옥이가 교수이고 박사 열개를 가지고 있으며 만담으로 세상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것과 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 비슷한것을 이야기하던 말던 그가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가 우리에겐 중요 합니다. 아니라면 바울이 말한것 처럼 쓰레기에 불과 하니까요...
sebin님의 말씀은 지당합니다,도올은 돌도 아니고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바보선생님의 분별대로 본문글을 오물처리장으로 운반하심이 옳은줄로 아뢰오,,저도 김용옥 글자만 보아도 현기증이
납니다만,,개신교집안에서 자란 그가 ,,사단의 졸개노릇을 하는것을 보면 . 그때 그 목사께서 돌에게 어떻게 가르쳤기에..
--정말 목사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김용옥같은 인물을 키워내도록까지 빈틈없는 수고와 기도와 ?????????
몇명 되지도 않는 카페에 왜들 이렇게 고집들이 센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싸인을 줬건만, 니가 뭐라든 나는 내 갈길 간다,는 식이니 ....
달리 방법이 없네요. 원하시는대로 해 드렸습니다.
어쨌던, 좋은 글로 인해 이런 일도 생길수 있다는... 그런 차원에서 삭제하지 않고 놔 둘 생각입니다.
이해 해 주십시요. 저도 참 보기 싫으네요.
자신의 입지를 세상에 띄우기 위해 누군가를 소위 까야만 하는 사람들은 참 보기 싫고 불쌍하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