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8일 (월) 주님 세례 축일 복음 묵상 (마르 1,7-11) (이근상 신부)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9-11)
세상에 오신 하느님에게 사람들과 인사하는 날, 곧 주님 공현 대축일의 바로 다음날을 교회는 세례 축일로 지낸다. 세례는 공생활의 시작날이라고 하는데, 주님공현과 세례는 참 깊게 닮았다.
먼저, 주님 공현이 제목은 거창하나 실상 궁벽진 시골의 마굿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님 세례는 더 적나라한 가난이다. 죄인들 틈에 끼어서 다를 바 없는 세례를 받는다. 오늘 둘 다 제목만 거창할 뿐, 그 때 그 곳에서야 별게 없다.
물론 별개 있기는 하다. 공현날 동방 저 멀리에서 박사들이 와서 황금, 유향, 몰약을 내 놓았고, 세례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엄청난 이적인 셈인데, 이 이적은 깊게 받아들여야지 얕게 받아들이면 안되는 기적이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사실관계를 따져서 사태의 진행을 파악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 이를테면 동방박사들이 내 놓은 황금의 양이 얼마나 될지, 그게 크게 한밑천 되었을터인데, 당대의 유향과 몰약도 귀족이나 왕들이 쓰던 귀한 물건. 당장 이 물건들의 수량과 진위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바가 아니다. 세례 때 들러온 소리 역시 주위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면 그 순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구름처럼 생겼을터인데... 그런 소란은 없었다. 세례 후 예수께서는 오히려 광야로 물러가셨다. 혼자였다는 말씀. 이야기는 이야기를 담는 이의 삶과 마음에 닿아서 고유한 의미로 새롭게 성장해야 하는 것.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인격적으로 삶의 갈피갈피에서 달리 새롭게 만나야 한다는 말씀.
그러니 공현과 세례 모두 그때 그 예수 그리스도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말씀. 공현과 세례는 예수를 따르는 모든이들이 지금의, 자기의 베들레헴에서 지금의, 자기의 요르단에서 다시 만나야 하는 사건.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cvMhUvfPrM9yaJN4yt5GhnHfXgojmSguPewVCyAjhnaWSRHhmvR21MT6gfHFxTC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