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갱년기에 만난 나의 友達(친구,도모다찌)
-갱년기(명사)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게 마흔살에서 쉰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된다.(중략)
-표준국어대사전
1967년생인 나는 사춘기도 이길수있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크고 높은 파도에 휩쓸려 아직 파도 한 가운데 있다. 50살이 되던 해부터 나의 육체는 ‘갱년기의 정의’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져 ‘신체기능의 저하’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이비인후과, 안과, 내과, 정형외과로 통증과 증상의 원인을 꼭 집어주는 명의를 찾으러 헤메고 다녔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의 진단은 ‘갱년기’ 증상이라고 진단하며, 특별한 처방은 이구동성으로 평생 진리처럼 들었던 기본인 소식, 운동, 처방약 복용이었다.
이 특별한 처방중 2가지는 이미 벌써, 40대부터 내 스스로 처방하여, 일을 하면서도 자투리시간을 내어 수영, 걷기, 에어로빅, 요가, 필라테스 등 거의 모든 운동을 숙제처럼 하면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갱년기의 파도를 피할수 없었다. 이 단어 앞에서 나는 예전의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얕아진 귀에 들리는 대로 좋다는 것들을 따라다니고 구입했다. 만나기만 하면 근사한 화두로 시작해서 각자가 경험한 건강식품홍보로 끝을 마무리하는 극도로 싫어했던 그 만남 속에 내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있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의 말씀에 순종하듯 귀를 완전히 열고, 모든 기억력을 동원해 그 건강 식품들을 입력시켰다. 그러한 내 자신이 낯설었고 싫었지만, 그리라도 해서 시이소처럼 하늘로 치솟고 땅으로 내꽂는 수치들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육체의 무너짐 앞에서 나와 타협하며 적응해나갔다. 남편의 무너짐앞에서 위로하며, 간호하면서 예행연습을 많이 했겠거니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막상, 내 자신의 문제가 되니 ‘예행연습’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갱년기의 의미 -“갱년기의 갱은 ‘다시’ 이외에도 ‘바뀌다’ ‘새로워지다’ ‘고치다’의 뜻을 지니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때의 ‘갱’은 ‘다시’의 의미로 쓰였다고 하기보다는 신체의 흐름이 크게 바뀐다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이해 되는것입니다.-표준국어대사전
Jin 과 Junna는 나의 이 혼돈기중에 나에게로 보내어진 친구들이다. 진은5살, 준나는 7살인 나의 가장 어린 친구들이다. 미국인 아빠 제시와 일본인 엄마 카나 사이에 태어나, 4년전쯤 제시의 ‘한국지사근무 발령’으로 해운대에서 살고 있으며, 부산 국제학교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남편과 나는, 30대 중반인, 제시와 카나가 약혼한 때부터 좋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Jin은 동생이며 6살의 조용한 남자아이이다. 큰 눈에 씩 하고 웃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녔다. Junna는 7살로 진의 누나이며, 에너자이저 건전지 광고에 나가도 될만한 감당할수 없는 활기찬 어린소녀이다.
그들의 외모는 부인할수 없는 일본인이다. 성장하면서 외모가 아빠처럼 웨스턴쪽으로 변할수 있으니 그 또한 기대가 된다.
이 사랑스런 두 아이들과 내가 ‘도모다찌’가 된 것은 작년 여름의 끝 무렵이었다.
관광객이 거의 빠져나간 8월말쯤, 매년 그래왔듯이 파도가 일어서 좋은날은, 나는 장비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작년 여름, 나는 두 아이에게 ‘웨이브보드’ 강습 아닌 강습을 약속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강습에 필요한 장비 ‘웨이브보드’구입을 요청하고, 토요일, 그날을 손꼽아기다렸다.
드디어 약속의 토요일, 웨이브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우리는 파도를 향해나갔다. 내가 시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보드위에 몸을 실어 파도속으로 나아갔다. 수없이 바다의 짠물을 마신 뒤, 제법 몸과 보드가 하나 되어 적당한 크기의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빠른 속도로 실려져 나갈때 아이들은 환호를 질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보드를 들고 바다의 파도를 향해 뛰어 들어갔다. 하루만에, 그들이 ‘웨이브보드’의 맛을 그만, 알아버렸다.
첫 강의후, 우리는 매주 토요일 바다로 뛰어갔다. 이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 아이들은 나를 ‘도모다찌’라고 불렀다.
인생은 때가 있다고들 한다. 공부할 때, 일할 때, 부모가 될 때, 그리고 그런 ‘때’마다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자녀가 없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은 했지만, 아마도 충분한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주위의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은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만날 때마다 손녀, 손자 사진을 꺼내 들고 끝없는 자랑을 하곤 한다, 우리는 지루해 하면서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들의 행복한 수다를 중단 시킬수 없었다.
두 친구를 만난 후 어이없게, 내 자신이 남편앞에서, 지인들앞에서 그 행복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으로 걱정 근심이 사라졌고, 가끔씩, 제시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해 친구들이 좋아하는 ‘소고기전골’을 요리해 대접하면, 그 작은 손과 입으로 맛잇게 먹으면서 ‘오이시이’라고 엄지 척을 하는 그들을 넋잃고 바라보느라면 정말로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내가 ‘할머니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대하지 않은 낯설지만 행복한 경험으로 인해, 나의 갱년기의 증상은 그대로였지만, 느껴지는 고통의 수치는 점점 미미해졌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이름은 그저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가끔씩, 몰래 하는 사랑처럼 ‘할머니 놀이’를 하는 동안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 이름은, 오랜 질고의 삶을 견뎌내고 살아내어야 얻어지는 영광스런 면류관이었다. 그 살아냄과 견뎌냄의 열매로 손자, 손녀의 사랑을 받고 그들을 사랑함으로, 그들의 공허함과 서글픔과 삶에 대한 의문들이 채워지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대견스러운 모습에 자신들의 고통이나 늙어감을 기쁘게, 겸허하게 받아 들일수 있는 것 같았다. 새삼 하나님이 셋팅해 놓으신 인생의 섭리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는 일에 참으로 진심이시다.
나는 어린 두 친구과 놀이를 할때에는 ‘친구’로, 길을 건너갈때와 같이 케어가 필요할때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할머니’로 1인2역 역할을 하면서, 나의 갱년기를 정의처럼 ‘기능의 저하’가 아니라, 의미처럼 ‘신체 흐름이 새로이 바뀜’으로 받아 들일수 있게 되었다. 시력이 나빠져 시야가 흐릿해지면, 대강대강 치우고 살아도 되는 자유, 무릎이 부실해져 빨리 멀리 가지 못하게 되면 그동안 소원했던 근처 길가의 들꽃과 눈 마추고 인사하며 쉬엄쉬엄 가도 되는 자유, 귀가 부실해져 잘 안 들리면 잡다한 세상의 소리보다 진솔한 내면의 소리, 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샬롬’안에 거하며 살수있는 축복된 ‘자유’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흐름의 삶이, 살아온 시간들 보다 더 깊고 풍성 할수 있음을 맛보아 알게 되자 맞서 대항해 싸울려고 입었던 ‘전투복’을 하나씩 하나씩 벗었다.
나를, 순수한 사랑으로 친구로 받아준 진과 준나, 삶의 또 다른 자유함을 맛보아 알게 해준
나의 친구 진과 준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를 ‘할머니’가 아닌 ‘친구’라고 불러줘서 더 예쁜 진과 준나는
나의 도모다찌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내 친구들이 3개의 언어로 내게 묻는다. 여름은 언제 오냐고?
나는 그들의 거실에서 보이는 ‘오륙도’를 가리키며 3개의 언어로 답한다.
“이미, 여름은 저기 보이는 섬에 도착했고 매일 우리를 향해 한발씩, 다가오고 있단다”
우리는 오륙도를 바라보며 얼른 ‘여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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