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상대를 어린애로 얕잡아 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口 : 입 구
尙 : 오히려 상
乳 : 젖 유
臭 : 냄새 취
[동이어]
황구유취(黃拘乳臭)
유취미간(乳臭未乾)
유취미제(乳臭未除)
유취(乳臭)는 젖 냄새를 뜻한다. 즉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행동이 어리석고 형편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상(尙)은 향할 향(向)에 나눌 팔(八)을 겹쳐 놓은 글자로, 어떤 물체나 공기가 위로 향한다 하여 높이다는 뜻이 되었다.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후, 도처에서 진(秦)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초(楚)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과 항우(項羽)도 반란을 일으켜 초(楚)나라를 재건하고 진(秦)나라를 공격했다.
항우가 최종적으로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을 접수하자 진(秦)나라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16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고, 천하는 항우의 손아귀로 떨어진 듯 보였다.
초패왕 항우는 모사 범증(范增)의 계책에 따라 위험인물인 유방(劉邦)을 중원에서 영원히 쫓아내기 위해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봉하고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해당하는 한중 땅으로 보냈다.
힘이 약한 유방은 한중 땅과 중원 땅의 유일한 통로로 알려진 잔도(棧道)를 불태워 중원으로 다시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한중에 들어간 유방은 한신(韓信)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병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여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수년의 준비 끝에 군사가 강해지자 유방은 잔도를 보수하는 척하여 적의 주의력을 잔도 쪽에 집중시킨 후, 옛길인 진창(陳倉)을 통해 진격하였다.
순식간에 관중 땅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항우의 휘하 제후들을 정벌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항우의 수도 팽성(彭城)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 참조; 암도진창(暗渡陳倉)
하지만 항우의 공격을 받아 팽성의 전투에서 대패하자, 그를 따랐던 제후들이 하나 둘씩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 쪽으로 붙었다. 유방이 이처럼 곤경에 처하게 되자 이번에는 위왕(魏王) 표(豹)가 유방을 배반하고 초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유방은 위나라 사정에 정통한 역이기(酈食其)를 보내 위왕 표를 달랬으나 위표는 역이기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유방은 오만하여 부하들을 무례하게 대하며 신하들을 노비 부리듯 하니 나는 그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지 않소.”
이 말을 전해 들은 유방은 몹시 분노하며 한신, 관영(灌嬰), 조참(曹參)을 시켜 위표를 치려고 하면서 먼저 역이기를 불러 물었다.“위나라의 대장은 누구인가?”“백직(柏直)이라는 자입니다.”
유방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是口尙乳臭 不能當韓信
시구상유취 불능당한신
“이 자는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나서 한신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위나라의 기병대장은 어떤 자인가?”
“풍경(馮敬)이라는 자입니다.”
“이 자는 비록 현명하고 덕이 있다고는 하지만 관영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위나라의 보병대장은 누구인가?”
“항타(項佗)라는 자입니다.”
“이 자는 조참과 비교할 수가 없으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유방은 한신, 관영, 조참을 보내 위표를 공격하였다. 위표는 전투 도중 포로로 잡혔는데, 유방은 그를 죽이지 않고 형양에 남겨 그곳의 수비를 맡겼다.
얼마 후, 항우가 형양의 한나라 군대를 포위하자 유방 휘하의 장군인 주가(周苛)가 “위표는 두 차례나 한나라 왕을 배반하고 항우에게 귀순한 자이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는 위표를 죽여 버렸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와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 나온다. 구상유취는 젖 냄새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뜻의 유취미건(乳臭未乾)이라고도 한다.
▶ 口(구)는 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용례에는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에 풀칠한다는 호구지책(糊口之策),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계구우후(鷄口牛後) 등에 쓰인다.
▶ 尙(상)은 회의문자로 尚(상)의 본자(本字)이다. 八(팔)과 向(향)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숭(崇)이다. 용례로는 받들어 높임을 추상(推尙), 고상한 마음과 뜻을 지상(志尙),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 책을 읽음으로써 옛 현인과 벗한다는 독서상우(讀書尙友), 오히려 때가 이르다는 시기상조(時機尙早), 비단옷을 입고 기운 옷을 덧입는다는 금의상경(錦衣尙褧),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랴는 타상하설(他尙何說), 예의는 서로 왕래하며 교제하는 것을 중히 여긴다는 예상왕래(禮尙往來) 등에 쓰인다.
▶ 乳(유)는 회의문자로 乙(을; 제비)과 孚(부; 낳다, 알을 까다)의 합자(合字)이다. 고대에는 제비가 오는 날 아기를 낳게 해 주는 신에게 빌었는데 여기서 낳다의 뜻에서 전(轉)하여 키우다, 다시 전(轉)하여 키우는 젖의 뜻이 되었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젖을 먹는 어린아이를 유아(乳兒), 제 어미의 젖을 모유(母乳), 제 몸의 젖으로 새끼를 먹여 기름을 포유(哺乳),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 부리가 누런색 새끼같이 아직은 어려서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황구유취(黃口乳臭),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읍아수유(泣兒授乳), 어미 없는 송아지가 젖을 먹기 위해 어미를 찾는다는 고독촉유(孤犢觸乳) 등에 쓰인다.
▶ 臭(취)는 회의문자로 臰(취)의 본자(本字)이다. 自(자; 코를 뜻함)와 犬(견; 개)의 합자(合字)로, 개가 코로 냄새를 맡는 뜻이다. 용례로는 불쾌한 냄새를 악취(惡臭), 좋은 느낌을 주는 냄새를 향취(香臭), 몸의 냄사를 체취(體臭), 아무 빛깔과 냄새가 없음을 무색무취(無色無臭),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컬는 구상유취(口尙乳臭), 남을 어리고 하잘 것 없다고 비웃어 이르는 황구유취(黃口乳臭),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와 같다는 동심지언기취여란(同心之言其臭如蘭),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긴다는 유취만년(遺臭萬年), 절친한 친구 사이를 기취여란(其臭如蘭), 자연의 道는 알기 어려워서 들어도 소리가 없고 맡아도 냄새가 없다는 무성무취(無聲無臭) 등에 쓰인다.
암도진창(暗渡陳倉)
은밀하게 진창(陳倉)을 건너다.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으로 하여금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하도록 한 뒤,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秘本兵法)의 8번째 계책이기도 하다.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도처에서 진(秦)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초(楚)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도 반란을 일으켜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를 찾아 회왕으로 옹립하고 초나라를 재건했다.
변방의 하급 관리인 정장(亭長)에 불과했던 유방(劉邦)도 소규모의 반란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항량에게 가담했다. 얼마 후 항량은 진나라와 싸우다가 전사했고, 항우(項羽)가 실세로 부상했다.
회왕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인 관중(關中) 땅을 먼저 정복하는 사람을 그곳의 왕으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함양에 맨 먼저 당도하여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 낸 사람은 유방이었다.
뒤늦게 당도한 항우가 유방을 치려고 하자, 유방은 살아남기 위해 관중 땅을 항우에게 바쳤다. 관중을 접수함으로써 천하를 쟁패하게 된 항우는 BC206년 서초(西楚)를 건국하고, 스스로 초패왕(楚覇王)이라 칭했다. 이로써 진나라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16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고, 천하는 항우의 손아귀로 떨어진 듯 보였다.
초패왕 항우는 모사 범증(范增)의 계책에 따라 초회왕을 의제(義帝)로 옹립하고 18명의 제후왕을 봉했다. 그리고 역시 범증의 계책에 따라 위험인물인 유방을 중원에서 영원히 쫓아내기 위해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봉하고,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해당하는 한중 땅으로 보냈다.
항우는 또한 유방이 한중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길목에 해당하는 관중 땅을 나누어 진나라에서 투항한 장수인 장한(章邯)을 옹왕(雍王), 사마흔(司馬欣)을 색왕(塞王), 동예(董翳)를 책왕(翟王)으로 각각 봉하고 주둔시킨 다음, 유방을 감시하고 그의 진출을 막으라는 임무를 주었다.
힘이 약한 유방은 항우와 관중에 주둔해 있는 세 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중 땅과 중원 땅의 유일한 통로로 알려진 잔도(棧道)를 불태워 중원으로 다시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물론 이는 모두 장량(張良)의 계책에 따른 것이었다.
잔도를 불태워 버리면 관중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유방에게 장량은 말했다.“관중에 들어가는 길은 잔도 말고도 옛길인 진창이 있습니다.”
잔도란 잔각(棧閣) 또는 각도(閣道)라고도 하는데, 섬서성,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 등 산간 오지의 절벽에 구멍을 뚫어 나무로 다리를 놓아 만든 일종의 도로로서, 당시 서남 지역의 중요 교통로였다.
한중에 들어간 유방은 한신(韓信)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병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여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수년의 준비 끝에 군사가 강해지자 유방은 중원 정벌을 결정하고, 한신에게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한신이 말했다.“천하를 얻으려면 관중으로 다시 들어가 동쪽을 정벌하여 초나라와 한나라가 양립하는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신의 계책은 공공연히 잔도를 보수하여 감시의 눈길을 잔도로 집중시킨 뒤, 실제로는 진창을 통해 나가는 것이었다. 유방은 번쾌(樊噲)와 주발(周勃)에게 1만 군사를 주어 석 달 내로 다리를 보수토록 했다. 물론 다리를 놓는 일은 큰 공사였기 때문에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작전을 변경하여 은밀히 번쾌와 주발을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감독으로 파견했다. 잔도 보수 공사가 계속되자 관중에 주둔하고 있던 장한 등은 몹시 긴장하여 군사를 잔도 쪽에 집중시켰다.
유방과 한신은 번쾌, 주발 등과 수만 명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옛길인 진창을 통해 진격하여 순식간에 관중 땅을 점령했다. 그리고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항우의 휘하 제후들을 정벌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최종적으로는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오는데, 공공연히 잔도를 보수하고 몰래 진창을 통해 관중 땅으로 나갔다(明修棧道 暗渡陳倉)는 이야기에서 암도진창(暗渡陳倉)이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