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이나 예시에 대공의 난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더라구요.
내용을 한 번 짚고 넘어가봅시당 ^^
768년 신라 혜공왕 때에 대공(大恭)이 그의 동생 대렴(大廉)과 함께 일으킨 반란.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당서(新唐書)》 등의 기록을 종합하여 그 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일길찬(一吉飡) 또는 각간(角干)의 벼슬에 있던 대공이 아찬(阿飡) 벼슬에 있던 그의 동생 대렴과 함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왕궁을 33일 동안이나 포위하였으나 왕군(王軍)이 이를 물리치고 대공의 9족을 죽이고, 그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였다고 한다. 이 대공의 난은 혜공왕 때에 연이어 일어난 귀족들의 반란의 서막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전국이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졌다. 그리하여 왕도와 5도(道)·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지경에 이르러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런 혼란상태는 3년이 지나서야 진정되었는데, 그 결과 상을 받은 자와 죽음을 당한 자도 무수하였다.
신라 중대(中代)의 왕실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 이런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게 된 직적접인 계기는 어린 나이로 즉위한 혜공왕를 대신하여 수렴청정으로 정사를 처리한 어머니 경수태후(景垂太后)의 실정에 있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신라 중대의 전제정치가 그 모순을 드러내 진골(眞骨) 귀족과 다른 귀족들 사이의 알력이 심화됨으로써 심각한 정치적 불안이 야기된 데 있었다고 추측된다. 3년 동안 계속된 이 난으로 왕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혜공왕은 즉위 16년 만에 귀족세력에 의해 죽고, 김양상(金良相)이 즉위하여 선덕왕(宣德王)이 되었다. 이 때부터 무열왕계(武烈王系) 자손의 왕실은 무너지고 내물왕계(奈勿王系) 자손들이 왕위를 차지하였다.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를 신라 중대, 선덕왕 이후의 내물왕계 시대를 신라 하대(下代)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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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라를 상중하대로 분류한 것은
삼국사기에 기준한 거구요.
초기 기출에는 삼국유사의 시대 분류법도 나오는데
그땐 불교식 왕명을 기준으로 시대를 나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