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간자입니다. 이른바 박쥐라고도 할 수있지만 눈치보는 박쥐는 아닙니다. 오로지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이루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4.10 총선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보수나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 사는 중간자들의 생각을 읽으면 한국의 미래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선거는 보수나 진보 세력만 관심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처럼 중간자적인 세력도 선거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편들거나 비판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당일 저녁 6시가 되기를 정말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예측 판세가 나옵니다. 방송사 카메라들은 여당인 국민의 힘과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관계자들을 비춥니다. 한쪽에는 박수가 한쪽에는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여당은 탄식으로 야당은 박수로 이어집니다. 출구조사를 바탕으로한 예측판세는 야당이 2백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는 의석입니다.
본격적인 개표가 진행됩니다. 이번 선거는 재외거주민 투표와 사전 투표 그리고 본투표 그러니까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재외거주민 투표와 사전투표에서는 현 정권 심판론이 우세하고 본투표에서는 현 정권 옹호론이 상대적으로 우세할 것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무엇을 먼저 개표하느냐에 따라 후보자들의 우세가 왔다 갔다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200석 획득은 아닌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른바 방송 3사가 몇십억을 투입했지만 이번에 사전투표율이 높아 아마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전투표에는 출구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투표를 하니 실제로도 출구조사의 의미가 없지 않는냐는 것이죠.
결과는 민주당은 175석을 획득했고 여당인 국민의 힘은 108석을 차지했습니다. 여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의석은 192석이라는 것입니다.물론 이가운데 여당성향의 당 의석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190석을 야당이 차지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것은 대통령 탄핵을 제외한 국회권력을 장악한 야당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의석입니다.
진보세력들은 200석 이상을 획득해 명실공히 대승을 거두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세력들은 그래도 탄핵저지선은 확보했다는데서 깊은 숨을 내쉬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로 볼 때 야당세력이 정국 운영을 장악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극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분석입니다.
저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이번 선거가 참으로 드라마틱하고 제 인생에 치른 수십번 선거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로 남을 것같습니다. 선거과정에서나 선거에 등장한 이런 저런 에피소드 그리고 다른 선거에 비해 언론과 그 주변 상황을 감안해 내린 내나름의 분석입니다. 언론들의 노골적인 편들기가 기승을 부린 모습도 도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겠다는 단체들의 행동도 과연 그것이 공정한 모습인지 과잉적인 판단인지 삼척동자도 다 알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 조치들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세력에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가 참 절묘하다고 판단합니다. 진보세력은 200석이 넘지 못한 것에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지만 중립적인 관점에서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프랑스대혁명도 예상치 못한 국민들의 대거 참여로 당초 주동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 것 아닙니까. 로드맵에 의한 것이 아니고 생각하지 못한 거대 물결에 휩쓸리다보니 과격해지고 정도를 벗어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내부 분열로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군사독재를 부른 것 아닙니까. 만일 이번에 200석이 넘었다 그러면 아마 지금쯤 엄청난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진보세력들은 빨리 끌어내려라고 난리를 칠 것 아닙니까. 그 시기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내부적 갈등이 또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는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야당 지도부들은 지금 승리에 젖어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며 스스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절묘하다는 것입니다. 총선이 끝난 직후 야당 대표가 공식적을 자당의 승리한 후보들에게 자중할 것을 요구한 것은 아마도 처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겼지만 완승은 아니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3년을 잘 준비해야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촛불혁명으로 갑자기 권력을 잡은후 우왕좌왕했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의지로 읽혀집니다.
이번 선거는 여당에게 많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2년전 대선에서 승리했던 그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이같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침울함속에 자신들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3년 임기가 남았는데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과의 관계는, 그리고 당대표를 누구를 천거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거대 야당과의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동안 강압적인 분위기에 야당과의 협치 이런 것은 해본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또한 의사들과의 관계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골똘히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당을 다시 추스르고 떠난 민심을 다시 회복해 다음 지선과 대선때 다시 도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각오를 다실 수 있는 기회로 만들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번 선거가 참 절묘하고 한국 정치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선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야당의 압승 그리고 여당의 참패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리는냐에 따라 앞으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자칫 승리에 자만할 경우 야당은 혼란만 일으키고 입법 독재를 한다는 국민들의 질책속에 3년후 대선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중하고 국민들의 요구상황 그리고 야당이지만 여당과 협치를 통해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앞장선다면 3년후 대선도 괜찮지 않겠는냐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여당도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다시 돌려놓을 수 있으며 3년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의 가능성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그 지난한 4.10 총선은 막을 내렸습니다. 정말 풀어야할 과제들이 태산같습니다. 경제난에 의정갈등에 국민들의 갈라진 갈등구도를 메워야 하는 과제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여당 혼자서 야당 혼자서 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야당은 자만하지 말고 여당은 위축되지 말고 서로 나서서 힘든 과제를 잘 헤쳐가야만 합니다. 그런 과정속에 국민들의 신뢰가 쌓이고 지지도 높아지고 그래서 다음 지방선거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겠죠. 다시 국민들을 위해 달리는 여당과 야당을 기대해 봅니다.
2024년 4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