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서독으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 회의가 있다고 해서 가 보니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서독으로 갈 비행기가 없다는 거였다. “당초 5만 달러를 주고 20일 동안 미국의 노스웨스트 에어라인 회사에다가 비행기를 빌렸는데 미 의회가 쿠데타로 집권한 한국 군인이 미국 비행기를 이용하면 다른 나라를 자극한다고 갑자기 취소해 버리고 만 거였다. 독일 방문 열흘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백 원장은 그 자리에서 대통령 특사로 임명됐다. 당장 서독으로 날아가 서독 정부에 비행기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최두선" 백 원장은 궁리 끝에 일제강점기 때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제3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내고 물러난 최두선 전 동아일보 사장에게 부탁하여 함께 서독으로 날아갔다. 최 전 동아일보 사장은 독일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었다. 백 원장 일행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訪獨) 일정을 상의하겠다며 뤼브케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노동부 차관을 함께 우린 만났다. 이 자리에서 차마 비행기 이야기를 꺼내려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아서 우린 못하고 만다. 그렇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용기를 내 운을 뗐다. “비행기가 없다. 서독이 잘사는 나라이니 비행기 좀 제공해 주면 안 되겠느냐?” 고, 했다. 다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독일 관료들이 한동안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더니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안 되는 줄 알았다. 떠나기 사흘 전까지 연락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떠나기 직전 비행기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1964년 12월 3일 홍콩을 경유해 서독으로 들어가는 루프트한자 여객기(보잉 707)가 경로를 변경해 서울에 착륙했다. 박 대통령이 그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갔다.” 대통령 전용기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타는 상용 노선에 취항 중이던 비행기에 급히 타게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카이로, 로마,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쾰른 공항까지 무려 28시간이나 걸려 독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해외 경험이 없었는지는 비행기에 동행했던 조선일보 정치부 이자헌 기자의 회고 (‘파독 광부 45년사’)에 잘 나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