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2.금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230?) 기념일
묵시10,8-11 루카19,45-48
성전정화
<교회공동체는 물론 개인 성전정화가 우선이다>
“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시편119,103)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은 세상맛, 밥맛, 돈맛이 아닌, 말씀맛, 기도맛, 하느님맛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옛 어른의 지혜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성전정화가 우선임을 깨닫게 합니다.
아무리 성전건물이 좋고 화려해도 그 안에 좋은 사람들 공동체가 없으면 헛되고 공허할 뿐입니다.
참 좋은 사람들이 세상의 보물이요 희망입니다.
“내 마음이 삐뚫어지면 세상도 어그러진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나의 마음부터 바꾸어라.”<다산>
바로 사람이, 나 자신의 성전정화가 우선임을 깨우쳐줍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
역시 나부터의 수양이, 수행인 성전정화가 우선임을 밝혀주는 동양의 지혜입니다.
오늘은 3세기 순교한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가톨릭교회 역사교육 차원에서 순교 성녀의 감동적 일화를 공부해 봅시다.
이런 일련의 교육도 우리의 회개와 더불어 각자의 성전정화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제는 뜻밖에도 교황의 교육에 대한 귀한 언급이 많아 나눕니다.
“교회역사는 단지 연대기적 사실로 환원될 수 없다.”
그래서 순교성인들의 감동적 일화를 살펴보며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오늘날 신자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교육의 실패는 미래의 아이들을 탈취해 가는 ‘문화적 집단학살(cultural genocide)이다.”
문화적 집단학살이라 표현이 아주 자극적이지만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그토록 지대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역사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 개탄합니다.
이래서 신자들의 평생교육에 가톨릭교회의 매일미사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습니다.
저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쓰는 강론입니다.
“선교사들은 교회의 사랑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교육에의 열쇠는 학교와 가정간의 좋은 협력에 있다.”
금과옥조의 지혜 가득한 교황의 메시지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보려 합니다.
성녀 체칠리아의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감동적 과정을 살펴봅니다.
성녀의 이름은 ‘천상의 백합’을 뜻합니다.
흔히 성녀는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체칠리아는 로마제국의 명문 귀족의 규수로 어린시절부터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합니다.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강권에 의해 발레리아누스와 결혼하였고
이교도인 그에게 종신동정서약한 사실을 밝혔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리는 성녀의 수호천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은 적극적 협조자로 바뀌었고
마침내 교리를 공부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발레리아누스는 함께 개종한 동생 티부르시우스와 신자생활에 열심하였고
이들 형제의 삶에 감동한 막시모라는 젊은이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 셋은 이교도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거절함으로 같은날 순교합니다.
체칠리아 역시 체포되었으며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밝히고
온갖 회유와 감언이설에도 신앙을 지키다가 모진 고문으로 고통을 겪다가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성녀의 사후, 821년 교황 파스칼 1세가 성녀의 무덤을 열어보니 시신은 썩지 않고
살아 생전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이에 감복한 교황은 정중히 예식을 갖춰 그녀를 성녀로 인정하고
그녀에게 봉헌된 성 체칠리아 대성당의 지하묘소에 안치합니다.
전설적 일화지만 생명보다 강한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더불어
우리의 왜소한 신앙생활에도 큰 자극과 충격이 되니 저절로 성전정화가 되는 느낌입니다.
어느날 갑작스런 신망애信望愛의 성장은 없습니다.
부단한 주님을 향한 신망애의 수행과 더불어 정화되고 튼튼해지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형제들의 성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화두가 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세상을 성화해야할, 세상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청정해야 할 기도의 집인 성전이, 수도원이 속화되어
강도의 소굴이, 영적 조폭들이나 영적 무뢰한들, 영적 사기꾼들의 소굴이 된다면
이보다 큰 재앙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위의 위험에 아랑곳 없이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온 백성은 주님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 주님과 혼연일치의 공동체를 이루니
적대자들도 어쩌지 못합니다.
말그대로 주님께서 교회공동체 형제들의 성전정화에 온힘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새삼 공동체의 성전정화에 날마다 봉헌되는 성체성사 은총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 깨닫습니다.
오늘 묵시록의 요한이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킨 체험을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합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그대로 이뤄지는 사도 요한 개인의 성전정화요 이어 예언하라는 선교사명이 부여됩니다.
흡사 성찬전례중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또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라는
말마디를 연상하게 합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미사은총보다 교회공동체의 성전정화에,
교회의 선교활동에 좋은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복된 성녀 체칠리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과 끊임없이 기도하였도다."(성모의 노래 후렴).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