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소서, 주님!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히브 10,1-10; 마르 3,31-35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3.1.24.(화).; 이기우 신부
오늘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걸쳐서 스위스에서 활약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기념일입니다. 그가 살던 당시 유럽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첫째, 종교적으로는 루터와 칼빈으로 인한 교회 분열이 시작된 데다가, 정치적으로는 당시 막 재산을 불리기 시작한 자본가 계층과 손을 잡은 왕실이 절대왕정을 강화시키고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가톨릭을 옹호하던 왕실들과 개신교를 새로이 택한 왕실 간의 대립으로 번지는 바람에 종교적 갈등의 양상을 넘어 서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진영을 이루어 치열한 전투를 치룬 결과 8백만 명이 죽어간 전쟁으로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30년 전쟁’(1618~1648)입니다.
둘째,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유럽 이외에도 다른 대륙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데다가 특히 아시아 대륙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못지않은 오래된 문명과 고등 종교들이 있다는 사실이 1582년 이래 중국에 선교하러 간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알려짐으로써 유럽인들이 유일한 종교로 여겨왔던 가톨릭 신앙의 절대성과 오만했던 유럽 백인들의 자부심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특히 16세기에 이르러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천문학적 발견으로 천동설이 지동설로 교체되면서 우리가 사는 지구도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계시다고 믿어온 하느님 신앙이 상대화되기에 이르게 되자 가톨릭교회의 권위도 추락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합적 혼란상을 정리해 낸 학자가 데카르트(René Descartes)입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확립하고는 가장 확실하다고 여기는 수학에 의해서만 진리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철학의 기준이 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방법서설’(方法序說, 1637)이란 책을 써서 방정식 개념과 미적분 원리, 좌표 개념 등 철학을 위한 수학적 기초를 고안해 내어 대수학(代數學)과 기하학(幾何學)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수학과 철학 분야에서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신학과 종교 분야에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근세의 기초를 닦아놓았습니다.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특히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많은 이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고자 노력했는데, 그 결과물이 ‘방법서설’에 필적하는 ‘신심생활 입문’(Introduction à la vie dévote,1609)입니다.
그는 당시 루터 등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자 열렸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에 기초하면서도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상당하러 오는 신자들의 문제의식이나 상황에서부터 출발하여 스스로 올바른 신앙에 이끌리도록 도와주는 근대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만큼 인격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어서 칼빈주의가 지배하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려 5만여 명의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3백 년 전에 보편적 거룩함의 성소, 즉 모든 이가 자신의 직업과 신분에 따라 신심을 달리 간직해야 하며 이를 통해 거룩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평신도 사도직 영성을 부르짖은 교회학자가 되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그는 이렇게 갈파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를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령하셨다. 하느님은 또한 교회의 살아있는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다른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명하신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신심이 같을 수 없고, 기혼자와 수도자의 신심이 같을 수 없다. 개인들의 능력과 직업과 직무에 맞추어 신심이 각기 다르게 열매를 맺어야 한다. … 진정한 신심은 그 어느 것도 손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사를 완성시킨다. 각자의 직분과 직업과 처지에 따라 하느님께로 향하면 가정의 평화는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며, 사회에서 각자가 맡은 직무는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교회의 직무에 있어서도, 평신도들과 기혼자들에게는 성직자나 수도자들과는 다른 신심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완덕의 생활을 구할 수 있고 이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평신도의 신심이 거룩함 위에 세워지도록 촉구했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혼란스러웠던 중세 유럽 사회에서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안내한 출중한 길잡이였습니다. 근세 유럽의 새벽을 열어젖힌 선각자인 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평신도 신심의 기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자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입니다(히브 10,10). 예수님께서 갈라지고 흩어진 옛 이스라엘 대신에 하느님 백성을 새로이 모으시고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진정한 당신의 가족이라고 선언하셨듯이(마르 3,35) 그도 역시 종교분열로 인해 흩어지고 방황하는 가톨릭 평신도들이 예수님의 가족이 되도록 공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