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에 대하여 / 최지안
생강나무 꽃 봄볕에 졸고 있는 물가
잠을 자듯 죽은 고양이
연분홍 리본 목에 두른
옆으로 누워 네 발 가지런히 한 방향으로 둔
한때 내 발도 한쪽으로 향했던 적이 있었다
거칠던 뒤꿈치 들키고 싶지 않은 날들
바람이 물결을 밟자 하늘이 통째로 흔들렸다
윤슬이 술렁이고 무늬는 계속 흐트러졌다
파랗게 날이 좋았다
죽은 고양이가 나를 따라왔다
밥을 먹을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내 옆에 누웠다
네발 가지런히 한쪽으로 향한 생각
고양이는 화장실 세면대 옆에도 누웠다가
내 침대까지 따라와 머리맡에 누웠다
강아지처럼 며칠을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지분거리기도 했다가 물어뜯기도 하는 말
분홍리본을 맨 고양이 사진 전단지
찾아주면 후사하겠다는 손 글씨 간곡한 필체를 말아쥐었다
고양이는 제 맘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습성이 있지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말
사람은 제 맘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법이지
최근에 중얼댄 혼잣말
만지면 갈고리처럼 걸리는 말은
껄끄러워 여기저기 걸리기도 하지
민들레가 노랗게 웃고
길게 드리운 해의 끝자락이 싸늘했다
집을 나간 고양이를 찾습니다
나를 뛰쳐나간 나를 찾습니다
어떤 문장 하나 목에 걸린 며칠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주인이 죽은 고양이를 찾은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아르코 선정작
* 최지안 (수필가. 시인)
2021년 남구만 신인문학상 수상
수필집 『행복해지고싶은날 팬케이크를 굽는다』, 『비로소 나는 누군가의 저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