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센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 승리는 선천적 환경과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를 통해 노력으로 누구나 신분 상승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속에서, 패자로 낙인된 사람들의 분노와 인종적, 민족적, 성적 다양성에 관한 혐오감이 만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미국 보통의 사람들은 ‘기회의 땅, 미국.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다’라는 민주당의 말보다 ‘미국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 승리의 땅 미국, 미국은 위대하다.’라는 공화당 대선 후보의 연설에 더 격려받았고, 열광했다.
2022년 3월, 국민의 힘 후보자의 대통령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 결과는 이전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정권 교체를 위한 선택이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런데, 방송 3사에서 진행된 2022년 대선 성별, 연령별 출구조사 결과(출처: 연합뉴스)에 따르면 20, 30대 투표율에서 남성은 국민의 힘 후보자가,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자 지지율이 더 높았다.
시사IN 김은지 기자의 「20대 남녀 투표, 이 지점에서 극명히 갈렸다 [대선 표심 분석]」기사에 따르면, 한국 리서치에서 만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0대 남성 60% 이상이 ‘한국 남성은 한국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성차별 받고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40% 이상이 ‘이 정당이나 후보가 나를 정치, 사회적으로 배제하려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문항에 더불어민주당과 그 후보를 언급했다. 기사는 이러한 인식이 이전 정부의 ‘인천 국제 공항 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조국 사태’ 등 불공정에 대한 불만과 연결되어있다고 본다.
같은 설문 조사에서 제20대 대선에서 중요하게 여긴 사안 1~3위(중복 선택 가능)에 관해 물어보니, 남녀 모두 1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선택했다. 앞서 센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설명한 2016년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만약 기회를 대학 입학으로 생각한다면,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저 젠더 문제, 불공정에 대한 불만인 것처럼 보이나,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중요 사안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능력주의에서 패자로 낙인된 보통 사람들의 분노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철학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읽고, 배운 내용으로 판단했을 때, 센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성공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 ’때‘에 노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노력과 재능만이 옳다고 믿는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성공이 당연하다는 오만함과 패자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패자에게는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이렇다는 절망과 열등감을 준다. 이는 사회적 연대를 공격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필자는 집에서 쉬고 노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많이 게으른 편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진로에 대한 압박감에 일단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2022년은 작년보다 성실하게 달리고 있다. 달리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끝날까.’, ‘언제까지 노력해야 할까.’, 학업과 일상생활에서 한 과제가 끝나면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인가.’. 이 생각의 끝은 게으름을 합리화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비하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라는 약발 떨어진 격려로 마무리되곤 한다.
성공은 단순히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노력만으로 영향을 줄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발생한다는 말에 어차피 운으로 결정되는 성공을 위해 우리는 왜 노력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필자와 비슷한 회의감에 대해 질문한 학우에게 교수님은 이렇게 답해주셨다.(기억나는 대로 재구성하였다. 실제 말씀과 다를 수 있다) ‘다들 노력하지, 노력하지만, 천명은 어디로 될지 모른다. 그때의 아주 복잡한 조건들의 조화가 노력과 맞아떨어지면 성공하는 거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를 예로 들며 설명해주신 덕분에 회의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승, 패 여부를 노력과 재능으로 얻은 성공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성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며, 능력주의를 기준으로 하는 도덕 판단은 오만과 업신여김, 열등감을 안겨주어 사회를 망가뜨린다.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적 폭정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문제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명망이 추락했다’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인정과 존중’, 우리는 지금 이 격려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문화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성공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가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가장 먼저 부모님부터 형제, 자매, 친구, 선생님 등 수많은 인연의 도움과 영향(운)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은혜를 아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존중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노력을 존중하자. 영화감독 클린트 이스트 우드는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의 노력을 존중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자존감은 자제력을 낳는다. 이 둘을 모두 겸비하면,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
필자는 ‘은혜를 아는 마음’과 결과가 어떻든(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존중’, 이 두 가지를 전 세계 사람들 모두 실천한다면, 능력주의의 폭정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건강한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참고 문헌>
마이클 센델,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2020.12.01., 41~61쪽
첫댓글 제목: '사회적 인정과 존중', 그것은 '은혜를 아는 마음'과 '노력에 대한 존중'의 조화" 입니다...
" ‘은혜를 아는 마음’과 결과가 어떻든(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존중’, 이 두 가지를 전 세계 사람들 모두 실천한다면, 능력주의의 폭정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을 갖든,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건강한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는 "확신"을 실현하려면 우리들 각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체제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결심을 하게 될까요? 가치를 실현하면, 확신이 실현된다는 것은 어쩌면 동어반복일 수도 있어서요.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실천하게끔 할 수 있을까를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뜻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