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 융성을 위한 '바가지 상혼'을 위하여
월드컵,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기사를 본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기록적인 바가지요금으로….', '평소에 얼마 하던 숙박비가 무려 5배나
뛰어….', '프레스센터에서 파는 샌드위치 한 조각에 몇 만원….'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이런 보도들이 행사가 열릴 때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라도 가리지 않는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프랑스, 일본 등 대륙과 국가를 가릴 것도 없이 계속된다. 필자처럼
이런 스포츠 이벤트를 쫓아다니는 '악질적'(?)인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바가지요금'일 만큼
익숙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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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바가지요금'의 무풍지대가 있으니
그건 바로 한국이다. 84년 LA올림픽 이후의 스포츠 이벤트에서 이런
바가지요금 파동이 일지 않았던 대회는 딱 한번, 88 서울올림픽 뿐이었다.
당시 대규모로 조성된 선수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시설은 무료였으며,
기자들의 수용을 위해 아파트를 새로 건설, 저렴한 비용에 제공하기
까지 했다. (지금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올림픽훼밀리아파트가 바로
이런 '올림픽훼밀리'들을 위해 건설된 아파트였다) 외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웠다간 '국운 융성의 기회'(요즘 정치인들이
이 말을 참 많이 쓴다)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반역자로 몰릴 판이었으니.
덕분에
한국을 찾은 외국 취재진들과 관광객들은 연신 '원더풀!'을 외치며 즐거워
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것을 '성공적 대회 개최'라고 착각하며 지금
그런 실수를 다시 한 번 범하려 하고 있다.
왜 이런 국제적 행사
때 마다 '바가지상혼'의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그것은 바로 명확한
'시장논리'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월드컵 같은 대형 행사에서는 숙박시설과 기타 관련
시설 등의 요금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격이 달라지는
술집 메뉴판과 똑같은 논리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한달 내내 계속되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바로 월드컵 아닌가. 오히려 이런 논리를 무시하고
요금을 일정 수위에서 통제하려는 것이 한국이 아직도 자본주의의 기본
명제인 시장논리조차 스스로 왜곡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월드컵이란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월드컵 사상 전무후무할 10개 경기장 신축에만 2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으며, 관련시설 정비에 들어간 간접비용은 얼마나 될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유치과정에서의 비용 지출 또한 당연하다.
그러면
이런 비용들은 어떻게 회수해야 할 것인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출된 신규시장과 고용창출 효과 등 내수진작에 따른 경제적 이익,
한국이란 나라가 월드컵 기간 중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음으로서 얻을
이미지 개선과 이에 따른 경제적 이익, 월드컵 기간 중에 한국을 찾아
직접 지갑을 열 관광객, 기자, 선수단 등의 직접적 이익 등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 두 가지의 간접적
효과는 정부연구기관을 동원에 몇 조원으로 추산하면서도, 실제로 손에
바로 쥘 수 있는 월드컵의 직접적 경제효과인 세 번째 부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나 뚜렷하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설사 우리가 월드컵 사상 초유의 살인적인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그것이 월드컵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월드컵의
성공여부는 월드컵을 운영하기 위한 각종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는지, 월드컵의 사회, 문화, 경제적 효과는 어떠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숙박비가 어땠느냐, 음식값은 적절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 한국을
찾을 외국 손님들에게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적절한 바가지상혼'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서 돈을 쓰기 위해 다른 월드컵처럼 큰맘 먹고
돈을 모았을 외국 축구팬들에게 '한국 가서 횡재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바보짓이다. 필자 역시 98년 프랑스의 경기장에서 3000원짜리 500ml
생수를 아껴먹으며 월드컵의 또 다른 의미를 느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인들의 맘을 상하지 않게 하겠다고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대목을 날려버리는 일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자신의 지갑을 기분 좋게
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따뜻함과 친절함이 아닐까?
'폴란드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
필자가
중학생이던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서울시내 중고등학교마다 국가를 지정해서 그 국가의 경기가 있을 때
가서 응원을 하곤 했다. 그때 필자의 학교에 배정된 국가는 카타르였는데,
난 그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모른체
열심히 깃발을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울산에 캠프를 차린 스페인
대표팀이 김해공항에 도착하자 스페인을 응원하는 '코리안서포터즈'들이
스페인어로 격려 구호를 외친다. 어리둥절한 스페인 선수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어 걸어준다. 버스가
출발해도 어색함은 계속된다. 숙소로 가는 연도에는 동원된 시민들이
태극기와 스페인 국기를 들고 흔든다.
숙소에선 편하게 쉴 수
있을까? 미리부터 기다리던 고적대의 공연이 스페인 선수들을 기다린다.
스페인 선수들이 어색함에 숙소로 바로 들어가버렸지만, 고적대는 텅
빈 공간을 향해 보는 이 없는 공연을 한 뒤 철수한다.
울산을
평양으로 바꾸면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 되지 않는가? 이미 한국에선
80년대에 사라진 풍경이 21세기 첫 월드컵에서, 그것도 우리 땅에서
계속되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일들이 바로 전시행정의
표본이자 한국의 이미지를 왜곡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러나
스페인 선수단 입국과정의 일은 해프닝이라고 처도, 청주에서 있었던
폴란드 선수단 입국과정에서 있었던 일은 해프닝이 아니다. 축구문화에
대한 무지와 더 심하게 말해 한민족의 몸에 밴 사대주의의 전형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법한 일이 있었다.
일부 단체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몇몇 축구팬들이 폴란드대표팀의 입국을 환영하며,
'폴스카 골라!'(이겨라 폴란드!)를 외쳤다는 것인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우리의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꺾어야 할 폴란드
선수들에게 이기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날리는 일. 이건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지나친 친절'이자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포기한 행동이다.
물론
몇몇 붉은 악마 회원들이 'KOR 5 : 0 POL' 등의 종이를 보이는 등 폴란드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심어주기 위한 행동들을 했지만, 거의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외쳤던 '폴스카 골라!'에 묻혀 버렸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폴란드에서 열리는 월드컵, 한국은 폴란드와 같은 조에
소속됐다. 한국선수단이 비장한 각오로 입국하자 100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북을 치며 구호에 맞춰 '이겨라 한국!'을 외친다. 누가 이들을 제정신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폴란드 대표팀의 입국을 보도한 어떤 기사에서도
'폴란드 이겨라!'를 외친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기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환대에 감사한다'고 말한 폴란드 엥겔 감독의
발언은 역으로 '황당했다'는 발언은 아닐까?
몇몇 축구인들은
2002 월드컵조직위원회가 한국의 경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종합경기장에 배정한 것에 대해 '최대로 활용해야 할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잘못된 판단'으로 비난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바로 경기장으로 이어져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축구전용구장의
장점에 비해, 트랙 때문에 소리가 퍼져 버리는 종합운동장은 상대가
부담을 덜 가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 FIFA는 월드컵
티켓이 단일요금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할인제도가 없는 것에
대해 한일 양국에서 이견이 일자 비공식적으로 '월드컵 경기는 어린이와
유아가 가족단위로 입장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월드컵은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누가 전쟁터에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가?'하며 반문했다.
바로 이것이 축구다.
경기장에서의 난동을 막기 위해 우산조차
반입이 되지 않는 월드컵, 이 전쟁터에서 온 국민이 승전보를 올리기를
기대하고 있는 지금, 한국인의 이름으로 '이겨라 폴란드!'를 외치는
것이 과연 '매국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계 스포츠계에서 필요 이상으로 무시당하는 이유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혹시 우리는 지금 월드컵을 그리고 축구를 손님들을
불러 치루는 일종의 잔치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2001년 프랑스에게
0대5의 치욕을 당했던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 0대4로 지고 있을 때
우리 7만 관중들은 놀랍게도 '파도 응원'을 했다. 보통 승기를 대세로
만들기 위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하는 파도응원이 0대4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오자 당시 경기를 생중계하던 프랑스 TF1의 캐스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 한국관중들이 파도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관중들은
0대4의 상황에 만족하고, 이걸 즐기고 있는 건가요?'
'그 친구는
사람은 너무 좋은데 좋기만 해서 문제야….'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자주 한다. 2002년 월드컵을 주최하는 한국의 모습이 오랜 축구문화를
갖고 있는 축구선진국에게 한국이 '너무 착하고 좋기만 해서 무시당하는'
존재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축구는 전투고, 월드컵은 축제가
아닌 포성 없는 전쟁이니까.
글쓴이: 김태호 (전 붉은악마 회장) (200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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