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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와 우리 현대사 40년, 새로운 빨갱이 광주 항쟁 몰이인가?
언제 통일은 이루어질까?
아내와 함께 헌트 영화를 보고 나니 통일이 더욱더 까마득해지는 느낌....
남북(南北)으로 싸움질 시키는데,
더욱 진화되어 한국 사회 균열 현상을 노리는 스크린 작용,
이 영화는 새로운 빨갱이 몰이에 광주 민주화 항쟁까지
묶어서 부정시여기도록 새로운 몰이가 아닌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도 간혹 우리에게 들려오는
중, 고등학교 나쁜 선배들의 후배들 싸움 붙이기,
우리가 앉고 있는 나라적 삶의 정황(Sit im Leben) 문제이다.
학교 환경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일그러진 영웅처럼 선생과 학교가 주도하는 환경,
실제로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사춘기 싸움 기술자들이나
일진 선배들이 주도하는 환경, 이것이 우리가 거쳐 온 학교 환경이다.
그래도 순수하게 자국 중심의 사회적 환경일 때는 이런 학교 환경은
하나의 추억으로 우리네의 사람 살아가고
나라와 사회에 발전으로 이어지는 인간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 사회 자체가 또 다른 힘의 작용이 둘러싸고 도는 삶의 정황일 때, 이 두 환경은 불행한 사춘기 과정으로 내몰아가는 나쁜 힘의 작용이 되어 다음 미래에 암적인 존재들이 배양되는 학교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재침략이 작용되고, 미국의 목적 지향의 아시아 문제에 대한 도구로써 우리 사회가 조명되는 우리네의 삶의 정황(Sit im Le ben) 문제라면, 중, 고등학교의 선후배 환경은 고의적인 폭력성과 깊은 상처로 내모는 인성 파괴가 작용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싸움을 붙이는 못된 선배들의 존재이다. 이놈 저놈 번갈아가며 속임수와 거짓 속삭임으로 점점 분노를 유발한다. 둘 사이에 오해와 분노가 일어나도록 작용하는 감성몰이가 주효된다. 결국, 트잡질과 싸움으로 엉기도록 하여 난투 전이 되게 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엉망진창의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해버리는 것이다.
원한 관계로 멀어지도록 해놓고 마는 좋지 못한 학창시절, 하지만 요즘은 이런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괴롭힘으로써 절망하고 우울감과 비참함으로 결국은 자살에 이르도록 해놓고 만다. 그런데 우리 사회 자체가 바로 이런 수준과 같은 그러한 나라 환경에 처한 것이 우리 현대 삶의 정황(Sit im Leben) 문제이다.
우리 한반도 자체를 여전히 민주주의 공산주의 몰이로 번갈아가며 싸움을 붙이는 아주 못된 힘이 작용되고 있다.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는 환경, 일본은 이를 얼마나 즐기며 물고 늘어나는가? 도대체 이와 같은 환경을 누가 깔아 놓았는가? 국제적인 환경이고, 우리 나라 안에 이런 힘을 수용하고 받드는 부류들이 앞장 서고 있다.
그 힘의 작용(作用)이 이제는 안기부 간첩몰이가 아닌가? 국정원, 안기부 남산은 상징적으로 우리나라를 지키는 정보 기관으로써 정부 핵심 기반이다. 물론 음지에서 활동하고, 나라에 해가 되고 우리 공동체를 해롭게 하는 자들을 잡고자 하는 기관이다보니 문제들이 많이 발생해 왔다. 더욱이 억울하게 당한 국민들이 많이 나왔다.
문제는, 가장 정상의 위치에 어떤 정신의 대상들이 그 위치에 올라서는가? 이에 따라서 가장 일선에서 처리를 하는 명령수행자들이 그 명령에 의해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지른 경우이다. 이런 배경에 의해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이로 희생되고, 정권에 반대자들이란 이유, 혹은 이들 자체적으로 탐욕을 추구함에 있어서 적절한 먹이감과 같은 대상이 되어 표적으로 억울함을 당한 경우들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자체가 미국, 일본 같은 힘의 작용 아래에서 우리나라 정보 기관들이 자신 사회와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악한 짓들을 하는 경우이다. 이것이 역으로 우리사회에 해가 되도록 조명되고, 조절되는 구조적 관계가 또 은밀하게 작용된다는 점이다. 지난 77년 우리 힘으로 해방되지 못하고 남의 힘으로 해방되어 우리 기반 자체가 민주주의란 체제 아래에서 이들의 조명을 받는 상하 관계가 되어 있다는 점, 이는 너무나 합법적인 힘의 배경이자 불합리한 나라 현실 구조이다.
여기에 어떤 인물들이 주요한 정보 기관이나 공권력 기간에 수장이 되는가? 자국 정신이나 애국으로 무장된 정상적인 지도자가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면, 결코! 해가 될 일을 시키거나 자국 국민들이 이용되고 상처 될 일들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힘의 작용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그러한 작용이 우리 사회 기반을 필요로 할 때, 이를 받드는 수장이 그 위치에 세워져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 사회 내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 힘의 작용이 남산 안기부 간첩 몰이이다. 우리 사회 정보부의 가장 핵심이자 중심인 그 위치, 그것도 가장 정상 위치의 1차장과 2차장이 다 우리 정부와 사회에 문제가 있는 대상들이 아닌가? 1차장은 빨갱이로 우리 사회 안에 숨어 있는 1호 대상이고, 2차장은 광주 민주화 항쟁 때, 불만을 갖게 된 군인 출신으로 이 영화가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 둘 다 우리 사회를 전복시키려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전두환은 살아 생전 자신들의 수하들과 조직을 이용하고, 자신들에게 속한 전문가들을 내 세워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북한에서 내려온 600명의 북괴군들에 의해서 주도된 폭도들의 사건으로 내몰려고 했다.
즉,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학생들이 총과 대검에 맞고 찔려서 죽는 모습에 동참하여 막아내려고 한 운동을 북한군의 주도하에 일어난 폭도들의 반역 몰이로 몰려고 얼마나 조작을 하는 짓들을 했는가? 그런데 이번 영화는 아웅산 테러 사건을 북한이 한국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으로 연출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남북으로 갈리어 총칼을 들이대도록 붙이는 지독스럽게 나쁜 작용이다. 지금도 여전히 작용(作用)되는 우리네 나라적 현실 삶의 정황(情況, Sit im Leben) 문제이다. 해방 77년 현대사가 오늘에 이르도록 처음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돌고 있는 우리네의 삶의 정황(Sit im Leben)이다.
도대체, 40년 동안 이런 내용들이 전혀 들려지고 알려지지 않다가 40년이 지나니까 영화를 통해서 풀어놓는데 어떻게 국정원 남산 우리 정부 핵심 위치에 공산주의자 일명 “동림”이고,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불만자가 된 군출신이란 말인가? 거기다가 우리 사회 군 자체가 이상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알리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 안의 정부 주요한 기관 내에 정말, 빨갱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이 터무니 없이 주장하는 것을 이 영화가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는 것인가? 이들은 사실, 자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직자들이고, 나와 같은 자국 중심의 순수한 정신과 나라 전통과 뿌리로 무장되어 있는 순수한 토종 한국인들 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정신의 소유자들로 광주 민주화 항쟁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국민들과 정부내 공직자들을 모두 다 이렇게 북한과 연류되어 있는 빨갱이 몰이로 몰아가는 영화가 아닌가? 이런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무리들이 누구인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해서든 빨갱이로 몰고, 나라와 국민 사이를 대립적 환경으로 몰고자 하는 무리들이 누구인가?
지독스럽게 지저분한 영화이다. 지독스럽게 우리나라 안에 불신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놓는 것과 같다. 지독스럽게 우리 사회 내분을 일이키고 의심을 하도록 그렇게 내모는 영화이다. 이 영화대로라면, 과연 우리 공적 기반 주요한 위치가 정상인가? 공적 기반을 이적자들이 주도하는 곳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떤 기반을 무너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자 하는 자들은, 한 순간에 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잽으로 살짝 살짝 건들듯이 치고 빠지고 하는 타격을 주다가 어느 정도 정신이 빠지고 흐물거려지면 그 때 한 방에 보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나 영화 등으로 조금씩 변화를 가해오다가 큰 것 한 방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이런 길들이기 구조에 놓이는 나라들과 그 국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국 배타적인 환경으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인식되어 온 공직자들과 공적 구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짓들을 은밀하게 한 번 두 번 지속적으로 벌리는 자들은, 우리 사회 속에서 은밀히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공적 구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조작하는 짓이 자행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안기부의 핵심 인물들이 국가 전복을 가져 올 수 있는 인물이었다니! 얼마나 불신하도록 몰아가는가?
아무도 이 영화 감독이 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배우 이정재가 이 영화 감독이 되어 마이크를 잡았다는데, 무엇을 지향하고자 한 것인가?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허구로 잡아서 우리 사회에 내놓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요 몇년 사이에 우리 사회 극우들이나 국힘당이 강조하는 배경이 이런 몰이가 아니었는가? 정부 안에 빨갱이들, 주사파들 조직적으로 군이고, 안기부고 경찰서 어디에든 꽉 차 있다고 우리 공권력 조차도 극단적으로 몰아오고자 하는 자들이 우리 사회 극우 보수와 국힘당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영화로 몰이를 하고자 한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우리 사회 안에 이러한 영상물이 나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가는 고의적인 문화운동이다.
왜냐하면, 이는 일본이 우리 사회를 그렇게 강조하며 주장하는 것과 일맥(一脈)하는 몰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극우 보수 집단들이 우리 국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이런 풍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21세기 들어서면서 이런점에서 우리 사회 영화들은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항일 영화나 드라마들이 스크린을 통해서 일본을 우리와 비교되도록 화려하게 꾸미는 분장으로 연출시키고, 극중의 주인공들이나 지명도가 높은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일본을 억지로 좋은 이미지로 미화 시키고, 이런 한일 관계에서 감미롭게 들리도록 하는 듣기 좋은 소리들을 영상 스크린을 통해서 전해지도록 기획되고 연출이 되도록, 이러한 차원에서 실현된 과거 역사적 사건들이 각색되어서 우리 앞에 살려 내놓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를 향하여 침략의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 아닌가?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세계 속에서 얼마나 우리를 여전히 방해하고 힘들게 몰아오고 있는가?
이는 일본이 여전히 우리를 향해서 다시 77년 전 지배를 했던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어리석은 우리 현대가 너무나 멍청이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바로 일본 중심으로 다가오고 상영되는 영화 몰이이다. 이런 한일 가까워지기 운동을 위해서 일부러 우리 사회 안에 그런 작가들이나 영화계 등의 이런 수요가 은밀히 많이 작용되도록 육성해 놓은 과정이 바로 이런 영화물을 만들어오는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의해서 영상물들이 자기 사회 중심으로 기획되고 연출되기보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자기 사회를 부정하게 하는 경향성이 강하게 작용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과 노력들에 의해서 국민들의 인식이 소리 없이 자국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아직도 우리를 향해서 공격적이고 경시하는 일본을 받아들이는 환경이 조성되어오고 있다.
역사적 산물을 영화로 제작하는데, 자기 발전을 지향하도록 함이 아니다. 과거 실현된 역사적 사건을 현대 사회를 향해서 잘못 된 방향으로 몰아가도록 새롭게 기획된다는 점이다. 혹은 잘못 된 역사나 인물들을 현대 우리 사회 안에 크게 부각되도록 하여 현대 우리 사회 정치와 정부 기반을 부정하도록 하는 배경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들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경계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현대 우리 사회 환경과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문화적 각색을 노리는 운동들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현재 자기사회나 정부에 대해서 의문점들이 생기도록 하고, 불만을 조성하는 그런 노력들이 가미되는 영상매체 운동들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작용들이 우리 사회 얼마든지 널려 있는 대상들과 연계되어서 우리 내부로 하여금 자국을 허물도록 하는 현대적 침략의 의미가 가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 고위직이나 공무원 세계를 믿지 못하도록 그러한 경향의 장르로 몰아가고자 과거 실현 된 역사를 각색하여 내놓는 나라 밖의 힘들이 개입되는 문제이다. 과거 실현 된 역사적 사건과 극중에 나오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현실 국민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영화몰이 되도록 복잡한 현대적 조합에 의한 그 의도성이 우리 사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억울한 장면, 비참한 모습, 그 당대에 잘못된 왕권과 신하들의 부패 카테고리를 오늘 시대 비슷한 정치적 탈선 장면들과 겹치도록 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영화 스크린에 살려서 국민들을 현혹하는 몰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대 영화적 장르는 현대 우리 사회 정부와 정치적 구조의 힘과 전통 사회가 되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파괴적 문화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성공하고 싶은 열정에 의해서 자국과 자국 사회를 팔아먹는 현대판 반역 무리들이란 점이다. 미국 영화계에 진출하고 싶은 욕망들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경계를 해야하고 각성되어 이런 혼란 조성이나 사회 대립과 불신을 조장하는 운동들이 힘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 내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현대적 관점에서 우리 정부의 문제점과 잘못된 부분들을 연결해서 반영되게 함으로써 정부와 지도자,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몰이가 강화되어 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잘못이 많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가? 우리 스스로 이런 잘못을 개혁해 가는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우리사회를 노리는 힘들의 간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여론몰이와 법의 심판이 되는가? 이것은 또 다른 역적들을 만들어 놓는 힘의 작용이 개입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이런 성질은 현대판 고도의 속임수가 작용되는 나라 길들이기 환경 문제이다. 우리 사회 전복을 노리고서 우리 사회 내부 문제를 우리 사회 공략의 재료로 삼아 공략하는 음지의 배경을 만들어가는 현대판 침략 문제인 것이다. 이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우리 법률과 제도로 심판이 가해지는 것과 우리를 노리는 자들의 몰이에 의해서, 그것은 검사들이나 기자들을 장악하여 몰이하는 심판의 문제는 지금처럼 검찰을 정부에 반역하는 교만한 무리들로 만들어놓는다.
이러한 공권력 구조에 의해서 나라 환경이 반복되이 유린되는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영상 매체를 조절하고, 과거 실현 된 역사도 각색되어서 상영되는 그러한 공간이 나오고, 검찰이 자신들 기득권을 위해서 법을 사용하는 그러한 불합리한 나라 구조가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국정원을 이렇게 타켓으로 삼은 것은, 그동안 당해 온 검찰이 이와 같은 환경을 깔아오는 배경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다시 영화 문제의 본 뜻을 다루도록 하자! 가장 많이 반영되는 역사재료는 요즘 뭐니뭐니 해도 우리의 위대한 장군이신 이순신과 관계된 내용들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전, 전제할 강조는 이런 영화물로 인하여 훗날 우리 국민들이 눈을 뜨고 문제점을 알게 되었을 때, 식상해짐으로 우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신 장군이 기피되는 위치로 전락될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 또한 일본이 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앞선다는 점이다.
이순신장군의 전쟁승리와 충성스런 모습은 현대 국민들을 다른 각도에서 몰아가기에 좋은 재료로 삼는다는 것이다. 영화로 과거 역사를 살려놓는데 억울한 죽음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상영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중심으로 적용되는 문화와 예술 운동들은 긍정적이고 진실 된 관점에서 현 우리 사회 발전과 국민들 인식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문화운동, 혹은 국민 정신 강화 운동이나 나라와 사회에 득이 되도록 몰아가는 영화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도에서 각색되는 영화요 드라마가 된다면, 그 지향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장군은 나라와 조선 왕조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을 때, 위대한 장군 한 사람의 전쟁 수행은 그로부터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것이다. 그런데 나쁜 왕조와 신하들의 모함으로 죽는 장면이 크게 부각(浮刻), 이렇게 역사적 사실이 영화로 각색(脚色) 되도록 하여, 순전히 개죽음 당한 것으로 크게 느껴지도록 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이나 작가들의 의도성이 무서운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신분상, 정신상 우리 중심의 인물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고쳐지도록 가미(加味)되는 작업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기획되고 연출되어서 국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건들어놓고 인식에 변화가 생기도록 해놓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살아도 저렇게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는구나! 이런 생각이 강렬하게 필이 되도록 몰아가는 것이 영화의 무서운 점이다. 왜냐하면 스크린으로 지난 실현된 역사를 살려놓으면서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 놓아버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적 관점을 스크린으로 몰아가며, 현대 사회 안에서 사실처럼 되도록 재료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도 그런 스크린 장면들이 지금도 똑같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정부를 봐도, 공적 구조 안에도, 회사 직장을 통한 일상에서도 얼마나 양심대로 나라와 정부, 직장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다른 약자들을 돕고 도움이 되도록 했는데 언제나 억울하게 당하고, 버림받고, 집중적으로 혼자 일을 도맡아 해야하고, 결국 도태되는 사회 풍토가 아닌가?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 공공성과 사회성에 불신을 가하고, 우리 국민성이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예술적 운동들이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그 자체는 결코 무섭지 않다. 재미요, 상업적 사회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무기를 삼아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과거에 실현되었던 일들이 지금도 일상에서 그대로, 혹은 엇비슷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일체 되어 생각하도록 하는 작용의 문제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현대는 어떤 힘이 우리나라와 사회를 주도하는가?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의 삶의 정황(情況, Sit im Leben)문제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찰, 군인, 검사, 국정원 직원들로 하여금 변질되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순수한 마음에 의문들이 일어나도록 몰아가는 힘의 작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소리없는 변질이 일어나도록 세포나 기억장치들이 가동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나라가 무너지는, 국민들의 마음이 나라와 정부로부터 멀어지고 무너지는 소리 없는 기반 균열이 발생 되고, 의심이 가득차는 나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는 결코,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 갈수록 대립과 파괴가 강성해 질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산도란 영화를 만들어서 위대한 우리 장군의 입을 빌려서 어떤 장면과 의미를 연출하고자 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거 이순신장군 영화와 요즘 상영되는 장군의 영화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와 연관해서 항일 투쟁 관련 영화나 드라마들의 차이점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금번 영화 “한산도”, 우리 장군님의 입을 빌려서 어떤 장면과 의미를 연출하고, 스크린을 통해서 무엇을 어필하고자 했던가? 바로 전향한 일본 장수였고, 그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장군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전쟁이란 무엇입니까?” “왜, 전쟁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장군께서 답하기를,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의와 불의에 대한 전쟁이니라” 도대체 장군께서 언제 이런 말을 했는가? 역사 공부를 하고, 그 장면을 골백번 읽었고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신청했어도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번 “한산도”를 클로즈업해서 내 놓은 영화에서 이 장면과 의미를 부여하여 내놓고자 한 것이다. 바로 전향한 일본 장수의 역할을 통해서 오늘 현대 한일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는데,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한파들이 있다는 것, 얼마나 한일 가까워지기에 개인적으로 일본인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것이 우리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일으키는 재료가 되는 문제인가?
이것은 일본이 깔아 놓았는데, 이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일본화 되어진 감성들이 된 것이다. 이것의 재료(材料)와 연계(連繫)되도록 하는 과거 실현된 역사로 일치시키도록 영화가 각색되어서 연출되는 것이다. 이 일본인 장수는 평소 의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중국의 성인을 흠모하는 자로 의와 예를 숭상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조선에 왔다가 포로로 잡혀가는 중에서도 의복을 갖추어 입고서도 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가는 조선 선비의 숭고한 자세 앞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유교 정신에 얼마든지 가능한 모습을 대치시킨 문학적 장르가 아닌가? 거기에 감동되어 전쟁 7일 만에 전향을 하여 조선 군대에 귀의를 한 것으로 묘사를 했다.
오늘날 현대 문학적 배경과 얼마든지 결부되어서 각색될 수 있음이다. 그리고서 이순신장군과 독대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도록 각색을 하여 크게 부각을 시킨 것이다. 왜? 전쟁을 해야 합니까?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도록 하고, 이에 대한 장군의 입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쟁 문제가 아니라 의와 불의라는 근원적인 답을 통해서 한일 관계의 은원(恩怨)관계로부터 떠나도록 해놓는 문학적 장르가 가미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진화가 우리의 진짜 역사와 현대에 연결되는 장에서는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오로지 우리 현재와 미래에 발전과 교훈이 되는 그러한 역사로 다가올 뿐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개입될 때, 혹은 다른 힘이 우리사회와 국민들의 정신적인 문제에 영향을 주고자 할 때, 즉 인식을 바꾸고 우리의 기반을 노릴 때, 과거 실현된 우리 역사 내용이나 장면, 인물들은 얼마든지 진화 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40년 전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 이용되었다. 이미 실현된 역사적 사실이 다시 영화로 살아나서 우리 사회에 조명되었다. 그런데 일어난 사실대로 조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힘을 가진 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진화 된 그 관점이 작용되는 힘이 영화화 되어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는 것이다.
광주민주화 운동과 3년 후 일어났던 미얀마 아웅산에서 일어났던 폭파 사건이 진화되어 영화로 살아나서 우리의 기억을 다시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직접 관련된 인물도 사라졌다. 이 사건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관련자들도 많이 갔다. 국민 층도 많이 떠나고, 온 나라적으로 관심도 사그라들고 있다.
이런 때에 슬그머니 진화되어 영화 스크린을 통해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온 사회를 의심과 불신, 즉 정부 자체를 믿지 못하도록 해버리는 힘의 작용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자기 사회 파괴적 경향성이다. 이런 경향이 당연시되는 바람몰이가 되는 것이다. 충분히 미국 등지에서 발화된 그 불길의 힘이 우리 사회를 살라버리는 힘의 경향성이다.
4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먹고, 자라고, 준비되고 영화로 진화되어 우리 사회 문제로 던져지는데 나라 안 가장 핵심 기관인 정보부가 나라 무너트리는 문제의 대상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온 나라와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의심하도록 하고, 정부가 조금만 잘못하여 분노들이 폭발할 때, 이런 문제들이 떠오르도록 할 소제가 되도록 하여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정부가 정권을 잡자마자 나온 영화들이 바로 이러한 문학적 장르로 통용되고 있다. 이들은 정권을 잡고자 할 때부터 정부 산하 곳곳에 빨갱이들이 침투해 있다고 여론 몰이를 해오며 온 나라 안에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적극성을 가해오고 있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러한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러한 환경으로 내몰고자 하는 운동이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이다. 언제 이런 영화들이 제작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동시에 급격하게 종합되어 진행되려 하는 움직임들을 볼 때, 서두른다는 것이다. 시간을 단축하고자 함이다.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해진 목적이기에 정권 초기부터 계획대로 발 빠르게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는 조직적이고 종합적으로 진행하는 에너지적 현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현대 사회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 지식과 사상체계와 정신계를 주도하는 지식층이나 문학작가 예술인, 언론인 전문가들을 통한 운동이나 교육적인 영향들과 이들이 주는 영향력들이 자기 사회와 국민들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삶과 지성, 의지와 신분은 많은 점에서 본이 되지 못하고 방향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식의 힘으로 자국과 자국 국민들에게 선한 의지가 되고 바람직한 영향력으로 마땅하게 나라와 정부에 함께하고 같이하는 사회 환경과 국민적인 지지가 되지 못하도록 몰아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들의 신분이 살아가는 실존 중에서 무엇을 중점으로 2차 적인 신분이 형성되었는가? 이 문제가 개입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안에는 비밀리에 미국이나 일본에 또 다른 신분을 가진 인물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비밀리에 미 CIA 요원도 많다고 한다. 이들이 우리 사회 주요한 위치로까지 들어가서 우리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두운 지대까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서, 혹은 현재 이들이 어떤 신분의 대상들인가? 어떤 힘에 소속되어 지배를 받는가? 이에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 사회 안에서 이중신분의 역할자들로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우리 사회 종교, 사상계, 문학 예술계의 장르, 역사적 서술들이 얼마든지 달라지고 우리를 근본적으로 해치고 망가트리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되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가운데서 역사, 사건, 사실들이 얼마든지 재설정되고 그 힘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각색하고 조절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감독, PD, 작가, 예술가들을 준비시켜서 조금이라도 허툰 수작 못하도록 수시로 비참하게 몰아가거나 동물처럼 취급하며 자기 사회를 유린하는 도구들로 써먹고, 그 역할을 다하면 언제라도 사라지게 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있고, 우리를 둘러싸고 도는 우리네의 삶의 정황(情況, Sit im Leben)의 문제이다.
이러한 삶의 정황이 우리나라 국가적 공간을 재설정하고, 그 방향대로 얼마든지 몰아가고자 각색, 즉 새로 고치는 힘이 작용되는 정황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나라 구조를 말함이다. 우리 사회 학자들이 이를 고발하는 능력자들로 펜대를 놀려야 하는데, 그럴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심각한 병폐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자기 사회를 이롭게 하는가, 아니면 해롭게 하는가? 그냥 영화일 뿐이고, 흥미나 상업 추구 차원에서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이들은 우리 사회를 속이는 방어벽을 또한 쳐 놓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마비시키는 작살 장치를 잘 펼쳐 놓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 국민들의 역사관과 인식을 바꾸어가는 작가와 감독들의 의도적인 정신계가 우리를 유린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얼마나 귀가 얇은가? 예로부터 소문처럼 몰아가는 소리에 잘 혹하는 것이 군중들이 아닌가? 하물며 영화와 드라마는 오죽하겠는가?
이에 따라서 헌트와 같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사회 내부를 더욱 혼란과 불신으로 몰아가는 영화를 내놓고서 이것으로 우리 사회를 새롭게 정신을 깔아가며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가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노무현대통령 시절에 중요한 영화 두 편이 기억된다. “괴물”, “한반도” 이 영화들은 우리가 처한 나라 정황의 문제를 제대로 각성시키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영화들이었다. 즉, 우리 입장과 관점에서 우리 현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가? 즉, 우리 사회 삶의 정황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영화였던 것이다.
이때 이후로 교묘하게 반대적인 영화들이 줄을 이어서 나왔다. 즉, 우리 사회를 어떤 힘이나 관계에 순응하도록 하는 우리를 속이는 영화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영화의 장르들이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정권이 다시 외세의 힘에 의존하고자 하는 부류들이 나라 권력을 잡았던 것과 일맥하는 현상이었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나 이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살고자 한 그 충성심이 어떻게 왕조와 그 당대의 정치적 배경에 의해서 비참해 졌는지?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 스크린을 통해서 살아나면서 다른 각도에서, 그것은 나라가 소용없고, 그래봐야 개죽음 밖에 안 되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의문을 갖지 시작하면서 나라나 정부, 지도자들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고, 의문을 갖도록 하는 각도에서 영화나 드라마들이 국민 마음과 안방으로 공략하고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는 한산도와 헌트이다. 우리 사회 환경, 국민들 마음들을 철저히 둘로 나뉘게 몰아가고 대립하는 사회가 되도록 조장하는 힘의 작용이다. 그런데 헌트는 북한 빨갱이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동시에 같은 부류로 취급하여 새롭게 몰아가는데, 우리나라 정부의 가장 핵심 기관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현대 역사, 그것도 가장 문제점들이 많았던 지난 40년 간의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삼아서 나라 안에 더욱더 강한 의심의 힘, 즉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해서 의심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그러한 영화를 줄거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사실처럼 역사적 소재를 삼았지만 픽션으로 몰아서 의심하지 않도록 복잡함으로 내몰아서 업(up)된 장르(genre)로 우리 국민들을 새롭게 자극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독스럽게 안 좋은 사회적 환경 깔기이다. 우리 주위에 우리나라 환경을 이렇게도 지독스럽게 대립과 불신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지금도 우리에 대한 지배를 꿈꾸는 일본의 국가적 공격성은 세계 속에서 오로지 우리를 힘들게 해오고 있는 옆 나라 침략적 배경이 되어오고 있다.
그것이 외교 관계와 이웃 나라라는 허울로 가리어지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야욕을 우리 사회 내에서 보호하고 선한 이웃 나라로 받아들이도록 협력하는 자들이 있고, 자유 민주주의와 우방이란 한미일 관계로 인해서 일본의 늑대근성이 가리어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일본의 행보는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이들의 대한국에 대한 공격성은 더욱더 노골적인 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언론의 여론몰이는 우리 사회 극우 보수나 국힘당의 주장들과 일치되어 강조된다. 일본과 우리 사회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들은 한국 사회 빨갱이 몰이이다. 일본은 얼마나 남북한이 대립하는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지, 이들의 노골적인 이간질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 또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공산주의 대립 구조가 강하게 형성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좌우 대립 사회로 서로가 불신하여 반목(反目)하고, 이질적인 사회 환경으로 치닫는 대립적이고 혼란 사회가 되어줘야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서 되어지는 현 사회적 복잡 상황은 이런 배경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자의적 의식들이 깨어날 시기에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사건들이 40년이 되어서 현대사 주요한 영화로 재구성되어 살아나는데 이제껏 전달 되어진 통상적인 사건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를 통해서 40년 어간에 실현된 역사적 사건들이 살아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욱더 불신을 조장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판도라 상자 역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 사회 현실이 갈수록 종북 좌빨 몰이로 이들 조직들이 지능적으로 지속해서 몰아오며 그런 환경을 조성해 오고 있는가?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 국민들이나 사회 조직들, 심지어 정부나 고위층 곳곳까지 종북 좌빨 몰이로 우리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자신들과 한 통속이 되어 있는 기성 언론 구조의 지원 사격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 안에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깔아 왔다. 그와 함께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영화로 전국적인 새로운 국민적인 인식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영상화 작업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오고 있는 종북 좌빨 몰이, 그것도 광주 민주화 항쟁까지 뒤엎어버리고자 하는 영상 장르로 이런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 나라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운동이다. 정권을 잡으면 계획대로 하고자 미연에 조직적으로 우리 사회 안에서 그러한 환경을 조성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정사실처럼 하고자 조직적으로 세미나, 교육과 같은 학술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오늘 현대인들의 정신사를 유도하고 지배하는 영상 매체와 언론의 여론몰이를 통해서 대중적인 운동들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채널 방송국에 극우 논객이 나와서 우리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 곳곳에 이런 주사파 세력들이 전국몰이로 퍼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극우 보수진영은 이런 환경을 깔아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행동대들이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저변에서 노골적으로 몰아가는 소문들을 입에 개버끔을 물어가면서 열변을 토한다. 이런 분위기 조성을 IMF 이후부터 지난 25년 동안 줄기차게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욱 더 둘로 갈라놓으면서 종북 좌빨몰이를 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 극단성은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언어적 막말로 무식한 면들을 드러내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빨갱이 좌파 세력들이 우리 사회 전국 곳곳에 합법적인 제도권으로 진입하여 우리 사회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이런 극우 집단들의 극단적 빨갱이 몰이가 이제는 안기부 자체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가장 핵심 기구인 안기부 안의 가장 최상의 두 핵심 인물들이 북한 빨갱이로 우리 사회 안에 숨어 있는 제1호 인물로 동림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군인 출신 불만자, 즉 이 둘 다 모두 자신들에게는 불순분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이들을 북한 공산정권으로 연결해서 우리 사회로하여금 몰아버리도록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확실히 일본이 바라고 원하는 한국 사회 토종들을 죽이는 파괴의 힘이 작용되는 에너지적 운동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 반 일본적인 한국적 모든 배경들은 빨갱이요 불만자들이 되어야 하는 광주 민주화 항쟁인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는 자신들이 꿈꾸는 일본 지배하의 한반도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빨갱이가 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불순자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노리고 각색되어진 영화, 즉 새롭게 고쳐져서 우리 앞에 살아나는 지난 과거 역사적 소재가 되어 오늘 우리 사회를 자기들 중점으로 진단하고 칼을 들이대는 작업으로써 이런 영화들이 스크린으로 우리 사회와 국민들 앞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위대한 인물로 받드는 이순신 장군을 영화로 살려서 우리 현대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도구로 활용하는 역사 재구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현대 정부와 사회 온 국민들을 둘러싸고 도는 삶의 정황(情況, Sit im Leben) 문제이다. 외관상 우리의 기반, 주권, 자유, 인권 모두 그대로 두고서 보이지 않는 외교라는 합법적인 장(場)을 국민들 앞에 똑똑히 보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들 지배하에 있는 언론 구조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도록 하는 펜의 작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자주와 주권이 무용지물 되도록 하고, 우리 국익 중심으로 나라의 방향이나 힘이 되지 않도록 몰아가고, 이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라와 국민들 사이가 갈리는, 정치, 경제, 모든 사회적 구조가 불신 대립으로 골이 깊어지는 힘의 작용이 주도되는 정황의 문제이다.
앞으로 이 정황의 문제는, 일본처럼 미국을 따르면 지구에서 함께 힘을 갖게 된다고 몰아가면서 결국, 속 빈 깡통처럼 만들어버리는 나라적 현실로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외관상 미국에 선택받는 나라로 모든 것이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여 우리 정신을 마비되도록, 즉 스스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게 하면서 가는 세월 속에서 나라의 진액(津液)이 다 빠져버리도록 하는 세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정황의 문제이다. 이때 우리 사회 안의 문화적 배경들이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 요즘, 정권이 바뀌자마자 올라서기 시작하는 영화들의 실현 된 역사 살리기는 바보 국민들로 몰아가는 작용의 문제로 문화, 예술의 정황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마치면서......
이 영화는 우리 사회 40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한 순간에 스크린에서 빠르게 전개되도록 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서 전개되도록 해 놓았다. 사실이 아닌 허구로 다루었는데 사실처럼 느끼도록 했놓은 것이다. 박정희시해사건, 신군부 세력들의 반란 사건, 안기부, 보안사, 장영자 이철희 어음 사기 사건, 북한 장교 이웅평 귀순, 아웅산 테러 사건,
이것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진화되어 오늘 우리 현대 사회를 새롭게 조절하고자 했다. 국민들 심지에 의혹을 갖게하고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내몰아가는 작업이 집중 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파고드는 속삭임이고, 자기 사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도록 하는 스크린 마술 부리기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이 상영된 후에 그러한 후속 노력들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감지 되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작업들이 기자들의 언론 보도 몰이로 소리 없이 진행됨을 알려 왔다. 영화, 한산도 이후 당시 항왜들이 조명되고, 특히 대표적인 인물인 사성 김해김씨 김충선에 대해서 집중 조명되며 한일 관계 가까워지기 분위기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일본이 이 인물을 잘 활용하는지 모른다.
이런 운동이 앞으로도 어떻게 진행 될 것인가? 우리 사회 안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는 이런 운동들이 있어서는 안 돼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본인의 경험담을 중점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이 얼마나 지능적으로 우리 사회 안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가? 어쩌다 본인이 엮이는 계기가 되었는가? 기가찬 경험담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 만큼 우리 사회 안에 일본 관련 구멍이 크게 뚫려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김충선, 즉 임진왜란 때, 조선 왕실에 전향했던 일본군 장교로 혁혁한 공을 올린 인물로 역사는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인정되어 당시 선조에게 성을 하사 받았다. 종 2품까지 품계를 받을 정도로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한 15년 전쯤 본인의 호적에 이 사람이 본인 조상으로 본관이 바뀌어 있었다. 이 분은 충성도가 당시 우리 임금에게 인정이 되어 김해김씨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김해김씨 성을 하사 받았는데 김해김씨 본관과 구별하고자 사성 김해김씨가 된 것이다.
그런데 15년 전 어느 날 본인도 모르게 나와 내 자녀들이 이 김충선의 사상 김해김씨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김해김씨 70대 손인데 이 김충선의 후손으로 호적이 바뀌어 있다니! 당시로써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고향 출장소와 면 사무소에 전화해서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그 연유를 구체적으로 묻는 과정이 있었다. 이때를 통해서 임진왜란 때의 전향한 왜국 장수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월남전으로 고엽제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돌아가신 형님 가정이나 누님들은 문제없이 그대로 본관이 되어 있는데 유독히 본인과 우리 가정만 이렇게 바껴 있었다. 출장소나 면에서는 잘 모르겠다고 딱 잡아떼고, 어느 누가 이렇게 해 놓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당시 어떻게 우리나라 안에서 국민들 호적자체가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가? 이상한 경험을 함으로써 크게 의아하게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 정부 안에 기록물들도 이렇게 소리없는 변화가 작용될 수 있구나!
지금도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이 시기 직전 또 묘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본 강제노무자와 관련해서 보상 문제가 불거졌다. 작은 금액이지만 보상이 나올 수 있다고 하면서 절차를 진행하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와서 명단을 확인하고 보상 진행을 하라는 전화와 공문이 있었던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전표도 태우는 것이 기억되었고, 간혹 아버지에게 강제 노무자 이야기를 들어서 알았기 때문에 돌아가신 양반이 생각하지 못하게 이렇게 도움을 주는가 싶어서 진행을 했었다. 아버지 성암이 특이했기에 여지 없이 이름은 맞는데 주소지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되어 있었다. 그곳은 본인이 19세 때 어머니와 1년 동안 살았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주소가 일치되는가는 모르겠고, 당시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셨던 고향 어르신 몇 분 중에 아직 한 분이 생존해 계셨기에 그 분의 증명을 받고자 만남을 가지려고 하는데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꼭! 무엇에 의해서 막히는 것 같이 만남이 어려웠다.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고, 고향에서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하는데, 기가 찬 것은, 우리 호적이 모두 검게 먹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숱하게 서류를 발급받으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강제노무자 보상 서류 발급 과정에서 호적이 먹칠되어 있었다. 확실히 인위적으로 먹칠을 한 호적이었다.
몇 해 전 서류를 발급 받을 때도 멀쩡했고, 서울에서 관공서 일을 볼 때마다 호적 등본을 발급 받을 때도 멀정했 던 호적이, 글씨들이 번진 것도 아니고 검은 먹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호적 부분은 아예 완전 100%가 먹칠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수작업으로 다시 복원이 되었는데, 미리 수작업으로 해놓았는지, 아직은 별도로 복사를 해 두었던지, 다시 수작업으로 된 호적이 정상이 되어 있었다. 원래의 호적은 사라져 버렸고, 수작업 된 호적이 되었다. 이런 경우 어디서 이런 문제의 진실 여부를 확인 받아야 하는지?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그 와중에 19세에 죽었던 누님의 이름이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등재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또한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것은 어떤 문제가 될 수 있을지, 지금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먹칠을 한 과정에서 잘못 옮겨 적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작용이 가해져서 그렇게 잘못 기재되도록 한 것인지? 정부 관리하의 호적부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말이되는가?
중국에 우리나라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이런 잘못 기재되어 있는 이름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사용할지, 너무나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안보 문제로 엮어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더욱이 우리처럼 나라와 민족이 둘로 갈리고, 이를 미국이나 일본이 길들이기로 활용하고, 국민들을 억울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악조건의 나라 환경 하에서 말이다.
특히 일본의 작용 말이다. 본인 본적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일어나 있으니, 더욱이 본인은 중국 선교사 삶으로 25년의 세월을 살아오고 있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인물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사회를 지킨다는 국민정신에 의해서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돌면서 우리 현대를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오고 있는 그런 조건들을 대항하여 글로 국민적인 시민 운동을 하는 대상이 아닌가?
아무리 오래 전에 죽은 누님이라 할지라도 이름이 바뀌어서 기록되었고, 더이상 바뀌지 않고 그대로 등재되어 있으니, 도대체 어떤 자들에 의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우리 정부 산하 국민 신분을 관장하는 관공서의 호적부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그러니 대통령 기록관이나 중요기관들의 주요 서류들이 정치적 배경에 의해서 얼마나 유린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할 것인가?
혹시 이 이름으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인물들이 살아가나 싶어서 그런 위험이 있지 않는가? 물어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가? 면과 고향 출장소에 따지는 절차를 진행해 보았지만, 모르겠다고 잡아 떼고 바로 잡는 문제는 전혀 고려치 않으니 우리 공공기관의 허점만 알게 되었지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일본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 안에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 이러한 배경이 우리 사회 공권력을 이들 일본에 협력하는 권력자들과 그 아류들이 우리 사회 공권력을 유린하고자 한다면, 이런 호적부가 소리 없이 공략되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지 않을까 이 당시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우려가 되는 이상한 경험의 때라고 기억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안에 일본과 직결되는 이중 서류나 작용이 통용되는 기반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은행에 비밀의 계좌들이 흘러다니고 있다고 하듯이, 홍콩에서 내 통장으로 1억의 돈이 들어왔다가 10 분 후에 빠져나가는데,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정부 안에 일본으로 직결되는 그런 관공서의 은밀한 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은밀한 조직들이 구축되어서 우리 관공서 안에서 이중적으로 일을 보는 무리들이 조직되어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일본의 지배가 경제적으로 통용되던 사회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과거 일제 강점기가 아직도 은밀하게 작용되는 그런 이중구조가 흐르는 사회가 아닌가? 이것을 하늘이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짓을 은밀히 자행하는 무리들이 공존하는 이중구조의 사회 말이다. 이들이 바로 소시어패스 군단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서 살면서 별 짓을 다하는 그룰들 말이다.
북한 공산주의의 영향도 위험하지만, 이런 은밀하게 움직이고 활동하는 소위 우방들이란 파괴자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공무원들이나 공직자들을 사로잡게 되면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자리를 보장하고 엄청난 자금을 내민다면, 말이다. 만일 이것이 나라가 무정부 상태와 같이 중앙 정부 역할이 다하는 혼란 환경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치안이나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때, 더욱더 외세의 영향력이 강해질 때, 이런 배반자들의 파괴력은 우리 사회 공적 자료들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들이 될 것이고, 현재까지의 사회 안전성은 거대한 균열과 함께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정신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미 검찰이나 경찰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지 않는가? 너무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고, 자국 중심이 아니라 이상하게 바뀌어가는 움직임들이 역력하지 않는가? 이 이상한 경험은, 우리 현대 사회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공공의 기반이 얼마나 위험해 져 있는가? 아직은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풍선이 터지듯이 터질 때, 우리 공적구조는 폭발하며 정부 전복에 앞장 설 것이다. 이를 알게 해주는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벌써 현정부는 이런 공무원들을 건들기 시작했다. 어떤 인물들이 우리 공적 기반에 세워져 있는가? 국가와 나라에 대한 충성도를 점검해 보고,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 보상 사건을 날아갔고, 이 사건이 있고 난 1년 인가 지난 후에 본인 가족 호적과 아이들이 바로 이 김충선의 후예로 둔갑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해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지금은 바로 잡아 놓았지만,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아마도 이런 짓을 하려고 우리 호적을 먹칠을 해 놓았고, 아버지의 강제노무자 사건도 부각 되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당시 구청 담당 직원이 일본 주도의 강제노무자 보상 문제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할 때 하면서 보상 문제를 끄집어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못 들은 척했더니 그 뒤에 이상한 정도로 진행이 안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 안에 이 정도인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한일 가까워지기 운동이 우리 사회 안에서 공적 기반 자체에 소리 없는 공작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어떻게 각색되어 오늘 우리 현대 사회 안에 진화되어 언제라도 우리 사고와 마음을 노리는 문학적 작용이 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방이란 강한 위치에서 우리를 집어삼키는 힘의 작용으로써 우리나라, 사회, 국민들의 정황의 문제이다.
그래서 금번 정부가 우리 정부임을 알면서도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언론들이 또 다시 여론몰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더욱더 못하고 문제점들이 들어나는데 대통령의 긍정도 국민 평가가 소폭 상승한다고 몰아가고 있지 않는가? 이런 언론의 농간에 의해서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가슴은 멍들고 눈과 귀가 병들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각성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사회는 위기가 더욱더 강하게 형성되어 질 것이다. 얼마나 힘들어지는 때인가?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더욱 힘든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 대기업들은 모두가 미국으로 투자 방향을 잡아서 그곳에 자금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만이 우리 GDP 보다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은, 중국 투자를 거두어들이고 본국으로 기업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대만 내 경제 효과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해외로 너무 많이 빠져나간 대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와야 한다. 동시에 중국 시장을 대처하는 정책을 펴야 하고, 더 이상 중국을 기대하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일본과의 관계 복원에만 몰두하는 정부 행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경제 문제 해결에 온 나라 국정 동력을 집중해야 하는 때이다. 일본 챙길 때가 아니다. 이는 일본과의 상생 관계로 다시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이고, 은행들 이자 올리기도 국내에 자리를 잡고 우리 토종 은행들보다 자금력이 더 좋은 일본 은행들 이자 놀이를 위해서 멍석깔아주기 작전 몰이인가?
시장 구조에 대한 정책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중국을 떠나고자 하는 대기업들은 모두가 미국으로 옮겨서 미국에 집중 투자를 하는 데도 정부는 딴짓만 하려하고,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나라의 대통령인 냥, 국회를 농락하는 짓을 즐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도는 우방이란 몰이의 정황이 우리 정부와 사회를 어떻게 몰아갈지 모르는 이런 때에 안일하게 내부 싸움에 함몰되려고만 하는가?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 정황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 코로나19는 결코, 선한 경향성이 아니다. 온 지구를 안 좋은 방향으로 몰아가는 인간들의 인위적인 혼란 몰이이다.
이는 지구의 최악의 패를 가동하는 과정이다. 이때는 여기에 앞장서서 이것이 자연발생적인 바이러스인냥 입을 놀리는 지식적인 행동가들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로부터 근본적으로 대처하고자 힘을 합쳐야 하는 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국민들과 정부를 편 가르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무리들이 있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모든 국민들이나 공직자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나라 환경을 미연에 조성해놓고 그것을 사실인 냥 영화로 몰이를 하는 부류들이다. 이런 정황의 운동들을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 삶의 정황 문제는 우리 온 사회를 몰아가는 최악의 에너지임을 각성하는 국가적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 한 때이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지금의 지구적 혼란기에 가장 안정된 사회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모든 문화적 요소들을 우리가 주도하여 지구상에 건강한 정신을 함양하는 역할을 하는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는 때이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 자체를 몰아가고 있는 나쁜 정황의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한다. 그 어떤 힘도 우리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나라를 굳건하게 만들어가는데 온 나라 국력을 하나로 집약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IMF 체계의 잔재인 대기업 자본 문제를 회복해야 하고, 통일을 지향하여 하나의 국가와 국민들로 연합되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하며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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