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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간에 제가 동참하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과 이사야서 6장 8절 말씀을 보면
특별히 제가 ‘이사야서 6장 8절’ 말씀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제가 82년도에 꿈을 갖고 마라톤을 할때,
(그리고 저희 케비에스하고 많이 연관이 있습니다.
혹시 건강달리기를 기획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그 때 제가 여의도를 한바퀴 5킬로를 돌면서 꿈을 많이 키웠습니다.
82년도에 주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부르세요.
저의 꿈은 어떤 꿈이었냐 하면,
‘내가 월계관을 쓰고 난 다음에 전세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
이런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말씀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이때 제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서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일어났는데, 제 꿈이 현실로 안 나타났기 때문에 다시 폭삭 주저 앉았습니다.
왜요?
지금 나가면 나를 몰라봐요.
월계관도 안 썼죠, 우승자도 아니예요. 전혀 모르니까
제가 가봤자 깨지겠다 그래서 주저앉은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또 좇아갔어요.
세상의 월례관은 썩는데 하나님 주신 월계관은 영원히 썩지 않고 빛나리라.
이 말씀에 다시 도전돼서 제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주님, 오늘부터 평생 어린이 선교사로, 복음 마라톤 선수로 뛰겠습니다.”
그때 제가 두 번째로 많이 울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열일곱살 때 ‘주님 만나던 그날’ 산에 한 두시간을 걸어 올라갔어요.
그런데 옆에서 바스락소리만 나도 제 온몸이 다 짓눌려 지는 것 같았어요. 너무 무서워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드리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은 죄들이 영화 보는 것처럼 앞에서 돌아갑니다.
눈물, 콧물밖에 흘릴 수가 없었어요.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으니까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알게 됐구요.
그날, 제가 인생최고의 날이 바로 그날이라고 전 표현을 해요.
그날 제가 기도드리고 나서 몇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제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제 개인의 구주로 만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산에서 일어났는데,이게 왠일이에요.
올라갈 때 그렇게 무서웠던 장면들이 다 사라졌고,
모든 산천초목이 자기를 창조하신 주를 너울너울 춤추고 찬양하고 있었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기뻐해주고 있는 모습, 지금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산에서 내려왔어요.
예배시간 되어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제가 코로 숨쉬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여러분, 지금 코로 숨쉬세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17살 될 때까지 코로 숨쉬어본 적이 일년에 한두번입니다.
축농증이 너무 심해서, 코로 숨쉬면 화장터에서만 냄새나던 그 냄새를 제가 맞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거절을 했어요.
입벌리고 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 만나고 딱 내려왔는데, 코로 숨쉬고 있는 걸 발견하고 제가 어떻겠어요.기가막힌 사건이 벌어졌어요.
“권사님,집사님 제가 코로 숨쉬고 있어요.”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됐죠, 갑자기.
자초지종을 얘기하니까 모두 일어서서 기뻐하는 그 모습..
이런 일들을 겪기 전에 저는 불교신자였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내장산 절 주지스님이 저희 삼촌이었어요.
그러니까 빽이 좋았지요. 제 이름이 다 올라가 있었어요.
저희 삼촌 목표는 뭐였냐면은,
“석봉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이 아이는 좋은 스님 만들겠다.”이게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대웅전에 가보면 제 이름이 특별히 기록돼 있어요.
그런데 저희 누나가,
저희 소개를 하면 8남매입니다. 6남 2녀.
누나나 형님은 돈벌러 나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명절 때 왔는데 누님이 이상하고 손에 든 걸 보니까 검정책을 들었어요.
근데 음식을 안 만들어요. 제사상에 올라간다고
저를 붙들고 간 곳이 교회였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여기서 한 가지만 표현한다면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는데..
지옥을 왜 그렇게 설명하는지 몰랐어요.
있는 그래도 설명하겠대요. 그래 설명을 하는데..
제가 시골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구더기입니다.
화장실 그냥 파잖아요.
땅묻고 딱 걸쳐놔요. 앞에 거적떼기 하나 가려놓으면, 그게 화장실이에요.
여름에 고약하지만 더 고약한 것이 있습니다.
밑에서도 올라옵니다. 구더기들이, 조금 오래 앉아 있으면 발등상에 와 있어요.
펄펄 뛰다가 올라올려다가 빠지는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젤 싫어하는 것이 그건데.
지옥에서 손가락만한 구더기들이 온몸을 뒤덮고 파먹는데요. 그것도 영원히 끝이 없도록.
제가 만약에 선생님 설교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는 지옥가는 사람이에요.
이날 천국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신기하던지..
동화 속에서도 읽지 못했던 그런 천국이 묘사됐어요.
제가 젤 맘에 드는게 딱하나 있습니다.
천국에는 배고픔이 없대요. 저는 맨날 배고픈데..
밀가루를 정부로부터 배급받지 못하면 제가 살길이 없었는데..그걸 먹고 살았어요.
포대를 물들여서 만들여주면..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그 때 결정한게 뭐였냐면,
지금 아버지 어머니에게 가서 “예수믿자”하면 내 다리몽뎅이가 분지러질 것 같고.
삼촌한테 가서 “그거 빼주세요, 나 이제 예수 믿을래요” 이렇게 했다간 전 뼈도 못추립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뭐냐면, '얘기는 안하지만 나는 믿어야되겠다'
그때부터 기도하면서 총 열식구를 놓고서 제가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불쌍해서.
그 기도가 칠년만에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다 가족이 믿습니다.
명절 때만 되면 기타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데..
갈 줄을 몰라요. 집에, 헤어지기 싫대요.
여성들이 그렇게 고민하잖아요? 음식준비
먹고나면 남자들이 다 일어나서 설거지 합니다. 이제 전통으로 됐어요.
고민이 해결됐어요. 제가 결혼하면서부터 바꿔졌습니다.
불교가서 어느 정도 얻어지는 게 있었는데, 늘 눌려있는게 뭐였냐면,
‘이거 안하면 당하지’예요. 늘 사로잡혀 있는게.
예수 믿고 나서 보니까 ‘자유’입니다.
이 평안함을 저만 누릴 수 없어서, 기도 7년만에 이루어진 기도가 전체 믿고 있어요.
막내동생은 목회하고 있고요. 누나는 ‘기도원 원장님’으로 계시고, 저는 ‘어린이 선교’고.
이게 기적이 아닐까요? 제가 믿고 있는게 기적입니다.
오늘 이 내용을 보면서 제가 많은 감동을 받고,
또 한번 제가 의정부에서 오면서, 급하고 발은 동동 구르지만 제 가슴속에 움직이는게 있잖아요.
시간 좀 늦었지만, 그리고 여러 가지 보았을 때 아무것도 보잘것 없는 내가 지금 살아서 움직이고 있구나
이 자체가 저는 감격이었어요.
4년전에 위암수술을 했어요. 75%위를 잘라냈어요. 25%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6끼를 안먹으면 제가 힘들어해요.
항암제 3번씩 투입했어요.
젤 괴로운게 뭐였냐면, ‘살안찐다’ ‘피부 까매진다’ ‘머리 빠진다’
제가 놀라는 건 지금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저 10킬로 쪘구요. 피부까매요? 탄력이 더 있다고해요, 요즘에는.
머리 더 납니다. 지금
그때 일을 되돌아보면 암흑하지요.
연봉 1억 버는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어가 손 쓸길이 없어요.
제가 세 번째 아이를 낳고, ‘전도사가 탑차를 몰고 나간다?’ 용납하시겠어요?
근데 저희 담임 목사님이 허락해 주셨어요. 기도해 주셨어요.
왜냐하면 제가 교회에서 사례를 안받았으니까, “그거라도 해라”
제가 그때 왜 트럭을 몰고 나갔냐면,
96년도까지 제가 공부를 마쳤어요. 87년도에 했던 공부가
야간공부시작했어요.
제가 14살 때 아이스케키 통 붙잡고, 5원에 2개 짜리 팔기 시작하면서 안해본게 없습니다.
제가 키에 비해서 손이 커요. 잔뼈가 많이 굵었지요?
이유는 안 만져본게 없어요.
그러다 결국 제가 이것저것 다 하다가 “나는 안돼”라고 하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주님만나고 나서 180도로 바뀐일이 저의 큰 감동이었어요.
주님 때문에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겁니다.
만약에 세 아이 놔두고..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유치원 졸업하는 아이.. 놔두고, 제가 암에 걸렸는데,
제 아내는 8개월 째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아이.
그날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예수님 못 만났더라면 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은 안됐을거예요.
고민을 많이 했던게 뭐냐면,
‘아내한테 가서 뭐라고 말하지? 지금까지 고생한 내 아내한테?’
그래서 제가 기도하다가 얻은 소리 하나..
“여보, 빨리 수술하면 괜찮대” 이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밤에 아이들 다 불러놓고 고백했습니다.
“아빠 상태 이런데 너희들 기도 좀 해줘라”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다 들어가서 자는데..
아내와 함께 제가 자고 있었어요. 근데 둘이 잠이 오나요? 상황이 지금 이런데?
부둥켜 안고 한바탕 울었어요.
근데 제 아내가 제 손을 꼭 붙잡고 하는 말
“여보 죽지마, 나 두고 떠나지마” 제 가슴이 다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날 밤에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저 한번만 더 살려 주시면 안돼요? 한번만 더 살려주세요.
그리고 아이들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기회 한번만 더 주세요.
아빠의 모습 정말 보여주고 싶어요”
두 번째는 제가 처음에 탑차 몰고 나갔을 때 우리식구 먹고 사는 것 괜찮고,
나머지는 적금이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이웃 돕는데 쓰겠다고..
그래서 고아원 찾았고, 독거어르신들 찾기 시작했고,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 찾기 시작했어요.
연봉1억 벌었지만 우리것 생활외에는 다 이웃을 위해 썼기 때문에 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시간에
제가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제게 꿈이 있습니다.
82년도 헌신하고 곧장 왔던 그길..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20만평 넘는 대지에 정확히 구별해서 아이들 예수 만나게 하고 꿈심어주겠다.
“석봉 토스트 당신 왜 하세요?”
“예, 캠프장 지어서 아이들에게 꿈 심어줄래요”
“당신 평생 뭐할래요?”
“예, 어린이들에게 꿈 심어주다가 꿈에 ’아버지‘소리 듣는게 저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하루하루 달라지는데요.
1년에서 5년사이에 제가 회복이 된거예요.
큰일났습니다.
12월달에 수술하고 나왓는데 13킬로 다운된, 뼈에 가죽 밖에 안 입힌 저,
1월달에 네 번째애가 때어났어요.
그것도 기적으로 태어났어요.
이미 태변먹고 있는 아이, 큰 병원 가야 되는데..
그걸 안은 채 급하게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아이 탯줄을 잘랐습니다.
아이태를 자르고.. 저는 앞으로 수술이 너무 길기 때문에..꾸분러진채로
그 아이와 제 아내를 처음으로 기도하는 순간, 새 생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루하루 살고 있는 자체가 저는 너무 감격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서 움직이고 있구나!’
제가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근데 제가 왜 가난한 가 봤더니, 가난 조건 3가지가 있었어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난’ 저 싫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난 되물림할 수밖에 없다.
발견한게요.
‘잠’ ‘게으름’ ‘거지근성’ 이거 가지고는 ‘가난 ’헤쳐나갈 수 없다.
‘애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없어도 이 3가지 정리해서 아빠의 모습 주자’
제가 결심을 했어요.
“아빠, 이렇게 살래” “여보, 나 이제 이렇게 살래”
지금까지 실패한 것이에요.
끝까지 못가면 “당신, 그럴 줄 알았어” “끝까지 간게 뭐야?” 이 소리 맨날 들어요.
그래서 제가 결심한 게 뭐냐면 ‘내 자신하고 한 번 싸우겠다’
그래서 제 자신하고 싸우기 시작했어요.
10시간 자던 잠 5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지금 성공했어요.
‘게으름’
너무 널널한 시간이 많았기에, 이것을 24시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해서 관리했더니, 이제 정리가 되었어요.
지금까지는 얻어먹었는데 이제부터는 ‘베푸는 삶’ 살아보자.
그래서 이제 11년째 오다보니까 ‘거지근성’이 사라졌어요.
제가, 제 비서처럼 여기고 있는 ‘플래너’, 이것이 저를 게으름 없게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삶을 여기다 다 묻어요. 제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까지.
3일동안 무주, 진주, 광주, 영광, 수원을 거쳐서 오니까 어제 밤11시가 되더라고요.
3일동안 직접운전을 하면서 가맹점들을 다 방문했어요.
다 감동이지만. 저에게는 어머어마한 큰 감동 또 먹고 왔습니다.
2007년도 목표를 주님이 다시 세워주셨어요.
할일을 맡겨주신거죠.
이렇게 다니면서 시간을 철저히 쓰게 된 저,
‘시간이 금이다’ 몰랐어요.
이제 금을 넘어서 저는 ‘다이아몬드’같아요.
주님을 못 만났다면 저의 인생은 곤두박질 쳤을 겁니다.
비난하고, 비관하고, 친구들이 똑같이,선배들이 똑같이 했던 행동 제가 하고 있었어요.
부자들 엄청 욕했습니다. 말만나오면 속된말로 씹었습니다. 맛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3년만에 깨달은 것,
‘저분들은 부자답게 살고 있다, 부자답게 살 수 밖에 없어서 부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할 수 밖에 없이 살았기 때문에 난 가난했다‘
그걸 알면서 주님께 감사드리기 시작했어요.
이 3가지를 딱 정리하고 나니까 딱 달려오는 문구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세상에 공짜없다’
‘댓가 지불없이는 얻어지는 것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가장 맘에 드는 것 하나는,
‘나도 이제 할 수 있다’ 이거였어요.
왜요? 탑차 끌고 나가면, 상인들 좇아 오지요, 깡패오지요, 파출소 오지요.
계속 오다보니까, 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3년동안 버티다 보니까, 요령을 알아요.
그래서 연봉 1억신화 벌었잖아요.
사람들 만나는데 너무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오자마자 “토스트 하나 줘요, 아~ 빨리줘요”
IMF터지고 나니까 스트레스를 저에게 다 해소해.
그리고 빵파는 사람이 지금 죄가 있습니까?
그리고 끝났서 내 얼굴 보니까 완전히 울상이에요, 제가..
‘오늘은 왔는데 다음날은 못오겠다. 저분들’ 왜? 내 얼굴보니까..
그날 고민 들어가다가, 일주일만에...
‘내 얼굴만 봐도 좋은 아침 될 수 없을깡’ 미소연습 했어요. 거울보고. 웃는연습
그리고 내 얼굴을 다 만들어봤는데,
가장 사람들이 봤을 때 친근감 있는 얼굴이 어느걸까?
‘위의 이 드러내고 살짝 미소짓는거’
거울 보자마자 그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짐도 옮기고 일을 하다가 계속 웃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빨리 줘요~” 이 소리를 조금씩 절제를 해요.
근데 또 하나 찾았어요.
‘내 톤보다 한톤만 높이자’
‘어서 오세요, 네 뭐 드릴까요, 네’ 이렇게 했던 목소리,
변해서
“네! 손님 어서오세요”
아침부터 기분 좋아지죠.
“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쎄용~”
“어머, 손님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오늘 넥타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어머 헤어스타일 바뀌셨네요. 정말 멋지세요”
이 한마디에, 미소 띤 얼굴 하면서
“빨리 줘요~” 이 소리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이분들이 “아~ 잘먹었어요. 내일 또 올게요”
마케팅 전략이 100%성공했습니다.
첨에 너무너무 쪽팔려가지고, 모자 눌러쓰고 작업복 입었는데,
어느날 손님 와가지고...
“어머머머~ 쪽 팔리지도 않나봐, 저런 사람이 토스트 팔고 있네”
이 소리에 감동이 아니라 완전히 제 마음을 다 헤집어 놨어요.
‘나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지’ 돌아오다가 고민했어요.
‘나 이거 안하면 뭐하지?’
‘프로가 되자, 토스트에는 프로가 돼야지, 한국에 토스트 하면 김석봉, 김석봉하면 토스트’
이때 모자 벗어 제끼고, 작업복 벗고, 남대문 시장 가서 까운 사입고, 조리사 모자 쓰고 딱 나갔어요.
그 다음날 나갔는데 일들이 또 벌어집니다.
“어머머, 아저씨 너무 너무 멋져요” 하는데,,
한쪽에서 “어머머, 쪽 팔리지도 않나봐, 이제 길거리에서 까운까지 입었따아~”
이소리 들리는데요. 제가 어떻게 되겠어요.
막 홍당무에다가 ~앞에다 내팽개치면서~
이렇게 제가 하고 싶었지만 제가 참았습니다.
어제 내가 프로가 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래, 난 꼭 토스트에 프로가 되고 말거야,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 결심이 마케팅 전략 하나하나 세워가면서 진행했어요.
웃고 있었더니, 외국인들이 와요.
첨에는 제가 웃지 않고 있을 때는 몇 번 이렇게 망설이다 그냥 가요.
‘저분이 왜 왔지?’ 그랬어요.
나중에 웃고 있으니까, 그냥 쑥 들어와요. 그래 웃고 서있어.
“이것, 드릴까요?”, 못 알아들어.
그래서 한국방식, “으윽~윽으으~ 에~에에에, 윽~윽~ 에~에에에”
아~ 이렇게 파는데, 팔고 나면 기분 좋은데 어떤일이 생기냐면,
제가 고민을 했어요.
이분들이 자기나라 돌아가서 ‘한국에서 토스트 파는데 낑낑대면서 팔더라’
이러면 저는 한국의 서울에 먹칠하는 사람으로 될 것 같아서,
중심가인 무교동에서,
‘어떻게 하지? 그들의 말로 해주자’
그래서 영어와 일어 중국에 이거 해야 되는데, 학원 다닐 시간도 없고, 비싸고..
서점에 가서 책을 3권사다가 여기서 쓰는 문장 몇 개 인가 봤더니, 20문장밖에 안돼요.
그래서 60문장을 자기전에 넣고, 일어나서 넣고, 운전하다 넣고 나서 보니까,,
용기가 생겨요.
일본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아 고자이마쓰 이라싸이마세”
반 이상은 “하이! 온고싸마쓰” 이렇게 들어와요. 특히 여성들이..
20단어 다 씁니다.
“여기서 드실래요? 가져 가실래요? 이거 만들까요 ,저거~이건 얼마고요”
“안녕히가세요” 까지 일본어로 다 해주니까 이분들이 안가.
왜 안가는가 봤더니, 사진 한번 찍고 가는게 소원이래.
그래서 저는 10분이 드시고, 뒤에 줄이 많게는 40명까지 줄 섭니다.
“제 손이 빨라야 되겠어요? 안 빨라야 되겠어요?”
급속도로.. 마음은 정리해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정성껏 드리겠습니다”하면서 손은 안 보이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어느분들은요, 단체로 오면 기립박수가 나와요. 묘기대행진 본다고
일본 사람들이 줄서서~~ 시킬 동안요 얼굴 내밀고 있으면요, 두개 세 개 못팔아요.
“아 준비할게요”그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이찌마셍..”하고 나가면..
아침마다 찍어오는 게 열곽에서 많게는 30곽까지 찍어와요.
이분들이 자기 어떤 뭐 앨범~줄 알았는데, 사이트에 다 올렸어요.
동경신문에서 인터뷰해달라고~~
NHK왔어요. 가이사이 TV왔어요.
일본의 대표적인 가이드북 만든다고 기자를 파견했어요.
“맞아요? 노점상”
..그래서 인터뷰했습니다. 그걸 들고 왔는데, 저는 퇴근했어.
비행기 타고 오니까, 제가 11시까지거든요, 아침했다가.
이 분들이 꾀를 냈습니다.
무교동 8시만 되면 줄이 끝이 안보이니까 미리 와서 호텔에서 자고
8시전에 와서 드시고 몇 개 싸가지고 다시 가요.
어디로? 일본으로?
“관광오셨나요?”
“아니요”
“어떻게 오셨나요?”
“토스트 먹으려고요”
“이해되세요?”
나는 이분들에게 최고의 서비스 하겠다고 20문장밖에 쓴 적이 없는데...
..이런일들이..에피소드가 너무 많습니다.
제가 다른 회사에 강의 요청하면 두시간에서 세시간을 할애해요.
그런데 오늘은 좀 줄어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시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그대로는 ‘어린이 선교’도 못하고, ‘잠’ ‘게으름’ ‘거지 근성’ 가지고는 이일들을 못하기 때문에 탑차로 내모셨고,
청계천 2005년 5월달에 복원되면서 제 자리가 정리됐어요.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길을 내주셨어요.
프랜차이를 내라고요.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분이..준비할 수 있는 것 1억인데..
제 통장에 1억을 소리없이 내주셨습니다.
그걸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귀한 형제 자매들이 보도해 주신 덕분에, 많은 분들이 오셨고,
그리고 전국에 지금 체인이 300개 나가 있습니다.
그 일은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저를 쓰고 계시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에 지금 시호입니다.
그런데 늘 아침마다 제 자리를 비워드려요.
“주님, 오늘 이곳에 좌정하사 제가 오늘 뭐 할까요? 도구로 써주세요. 저 청지기잖아요”
목요일날 함께 드리면서 저의 기도제목 나누고요.
제가 처음엔 혼자 시작했는데, 전국에 1500명이 넘는 가족이 생기다보니까, 제가 이제 혼자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필리핀에 곧 나갈거고요. 2010년도까지 1000개 매장 국내에 세울 계획을 하고 있고,
10년까지 외국에 10개 나라 나갈 계획하고 있고요.
로열티 나오는 것, 일부 옥외지만 그걸로 그나라 영혼들을 책임지는 일들에 쓸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를 불렀는가? 알게 됐어요.
제가 이런 생각하면 감격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쓰임 받고 있구나, 4년전에 제가 떠날 수도 있었는데, 연장해 주셔서 지금 살고 있구나’
늘 감사해요. 마칠게요. 기도 드릴게요.
첫댓글 이 간증 들으며 동감되고 눈물이 나던지요. 또 도전받았어요. 이분도 마지막엔 결국 목이메여..'석봉토스트'?가 궁금하네요.'holykbs.com'에 가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