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사의 행방
반양장 강헌국 저자(글) 문학동네 · 2024년 11월 11일
책 소개
이광수와 김동인, 염상섭을 ‘서사학’으로 새롭게 읽다 국문학자 강헌국의 연구서 『근대 서사의 행방』을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근대 서사의 행방』은 한국 근대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세 작가,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의 소설을 ‘서사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서이다. 시인으로 등단해 『다시 쓸쓸한 날에』 등의 시집을 펴내기도 한 강헌국은 그 이력을 살려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자신의 본령인 ‘소설 연구자’로서의 길을 깊게 파고들기 위해 시쓰는 일을 접고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그후 강헌국은 한국소설의 서사 구조와 담론 특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 바로 『근대 서사의 행방』이다. 강헌국은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경향이 주제론에 편중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소설에서 주제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서사론적으로 접근한다. 그렇다면 강헌국은 왜 수많은 근대 소설가 중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의 소설을 연구의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일까. 이에 대해 강헌국은 세 작가가 근대소설사 초창기를 이끈 주역이며, 이들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 소설가의 작품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근대 서사의 행방』은 그간의 연구에서 등한시되어온 서사론적이고 방법론적인 분석을 통해 작품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저자(글) 강헌국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1년 ‘강윤후’라는 필명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연구서 『서사문법시론』 『활자들의 뒷면』,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머리말 5 서론 15
제1부 이광수, 상상의 서사화
- 1. 상상의 발견 41
2. 욕망과 환상 71 3. 계몽과 연애, 그 불편한 관계에 대하여 93 4. 민족 계몽의 이론과 실천 114 5. 인류애의 이상과 현실 134 6. 기억의 연금술 154
제2부 김동인, 지각의 서사화 1. 반재현론 反再現論의 의미 181 2. 지각의 현상학 208 3. 액자식 구성의 가능성과 한계 227 4. 탈역사적 역사소설 254
제3부 염상섭, 개념의 서사화 1. 새로운 소설을 향하여 285 2. 재현과 논설 319 3. 음모와 기만 347 4. 모순과 지양 374 5. 시대적 당위와 소설적 한계 398 6. 통속화의 경로 425
결론 방법론의 계보학을 위하여 451
부록 이상, 방법의 서사화 돈, 성, 그리고 사랑 477
참고문헌 511 색인 523 발표 지면 529 책 속으로
이광수의 초기 논설들과 「소년의 비애」는 배우자 선택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재래의 인습이 지닌 모순과 폐해를 성토했다. 개인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전제인 자유연애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했다. 재래의 인습에 맞서 계몽의 이름으로 전개한 전면전에서 이광수는 연애를 최전선에 내세웠다. 연애는 재래의 인습에 확실한 타격을 입히는 계몽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계몽에게 연애는 유용성 못지않은 위험성을 지니기도 했다. 이광수의 정 개념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연애는 그 본성상 계몽에 포섭되기 어렵다. 계몽이 집단적이고 공적인 동향인 데 반해 연애는 개인의 내밀한 정서이다. 연애가 그 본성을 분명히 할수록 ‘계몽적 사유의 타자’로서 위치하게 되어 있었다.(43쪽)
인류애를 증명하는 과정의 이면에는 비천하고 열등한 존재들을 멸시하고 추방하려는 의도가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빈의 회갑을 맞아 열린 좌담회는 승자들의 뒤풀이 자리처럼 보인다. 인류애가 우승열패의 제국주의적 사고와 연결될 가능성이 거기에서 읽히기도 한다. 이광수가 친일로 향하는 논리가 그렇게 마련된 것은 아닐까?(153쪽)
김동인의 소설론에는 다양한 술어들이 등장한다. 그 술어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필요에 따라 채택되고 사용되었기에 개념의 면에서 경계와 수준이 일정치 않다. 임의로 설정된 사례도 보인다. 산만하고 어지럽게 전개된 그 술어들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김동인의 소설론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난관에 빠지게 된다. 그 술어들을 일반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여 범주화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인형 조종술과 지각론과 효과론을 기본 범주로 설정한다. 인형 조종술의 범주는 참소설과 참인생, 인형 조종술 같은 어휘를 포함한다. 지각론의 범주에는 시점, 단순화, 통일, 구성 등이 속한다. 사실, 리얼리즘, 실재미, 작가로서의 화가 등은 효과론의 범주로 정리된다. 추후의 논의는 그 세 범주에 따라 전개된다.(185쪽)
김동인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발상에서 인형 조종술을 주장한다. 따라서 인형 조종술의 의미는 신의 전지전능과 세계의 완벽한 질서라는 관계에서 유추되어야 한다. 그 관계에서 세계를 임의대로 조종하는 신의 작용이 인간에게는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신의 임의가 인간에게 완벽한 질서로 현현하는 사태는 인형 조종술의 이해에 그대로 옮겨 적용되어야 한다.(190쪽)
김동인의 인형 조종술은 ‘소설가=신’의 등식에 입각한다. 그 등식의 이면은 ‘소설가의 작품=신이 창조한 세계’이다. 소설가는 그의 작품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응될 만한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 ‘소설가=신’의 등식에 내포된 온전한 의미이다.(208쪽)
김동인이 그랬던 것처럼 염상섭도 소설 창작에 착수하면서 내면과 고백이라는 일본 근대문학의 제도적 장치를 직수입했다. 근대 초창기 문인들에게 문학이란 곧 당대의 일본문학을 의미했다. 소설의 경우 당대 일본 소설의 경향에 근접할수록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 김동인과 염상섭이 파악한 당대 일본 소설의 경향은 서술의 주체나 작중의 주체가 그의 내면을 고백하는 이른바 고백체였다.(290쪽)
새로운 소설을 향한 염상섭의 의지는 서정적 주체로서 기분을 진술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분을 진술하여 서사를 형성하는 일이 문제였다. 서사가 성립하자면 사건이 필요한데 기분 자체는 사건이 아니다. 기분은 사건과 반응이라는 방식으로 관계된다. 따라서 기분의 원인인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서사를 향한 길이 열린다.(300쪽)
문학 본문(text)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본문은 화자와 청자를 전제한 담론의 상황에 위치하여 의미 작용을 벌인다. 담론의 상황이 가변적인 만큼 본문은 유동성을 띤다. 해석 행위가 거듭되면서 담론의 상황은 갱신되고 본문의 의미는 계속 번식한다. 새로운 해석은 다시 담론의 상황에 포섭되어 해석적 맥락을 풍요롭게 하므로 제출된 해석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본문의 의미가 고갈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적된 해석들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그래서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간주되는 본문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논의가 얼마든지 재개될 수 있다.(477쪽)
출판사 서평
“상상과 지각과 개념은 문학을 성립시키는 기본 요소들이다. 문학의 일반적 정의는 인식과 형상의 결합인데 개념은 인식의 단서가 되고 지각은 형상의 조건이 된다.” _본문에서
강헌국은 근대적 개인 주체로서 이광수와 김동인과 염상섭이 취한 태도가 각 소설의 주제 면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이광수가 ‘계몽적 이상주의’를 지향했다면 김동인은 ‘예술적 이상주의’를, 염상섭은 ‘사실주의’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제에 대한 각기 다른 지향이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강헌국이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사학적으로 소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상상’과 ‘지각’, 그리고 ‘개념’이다. 강헌국은 세 요소가 소설의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 풍부한 인용문을 통해 차근히 설명한다. 1부에서는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 격인 이광수의 소설이 주인공이다. 이광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소설에 풀어내는 대신 상상을 통해 서사를 전개했다. 그의 소설은 그가 처한 식민지 조국이라는 비루한 현실에서 자신이 소망하고 기대한 바를 구현하기 위한 상상의 장이었다. 그렇기에 강헌국은 이광수의 소설을 ‘상상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2부에서는 재일 조선 유학생들이 벌인 ‘신문학운동’의 시초이자 평론가로도 활동한 김동인의 소설을 다룬다. 작가가 소설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여긴 김동인은 자신이 인지한 범위 내에서 인물이 움직이고 기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때문에 김동인의 소설은 작가의 지각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전개될 수 있었다. 강헌국은 김동인의 이런 특징을 ‘지각의 서사화’로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염상섭을 다룬다. 앞서 분석한 이광수, 김동인에 비해 뒤늦게 창작을 시작한 염상섭은 자신의 소설이 이전에 발표된 소설들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의지는 그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소설을 창작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향을 소설 안에서 이뤄내고자 한 이광수와도, 자신이 지각한 범위 내에서 소설을 창작하던 김동인과도 구분되는 소설을 집필했다. 그는 소설에서 과장과 가공을 배제하고 현실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염상섭은 현실의 객관적 파악을 위해 소설에 논설을 전면적으로 사용했는데, 논설은 추상적인 논리로 전개되기 때문에 때로 세속적인 현실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논설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강헌국은 염상섭의 이러한 특징을 ‘개념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이처럼 강헌국은 각 소설가의 서사론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그 특성에 맞는 개념을 제시하며 연구를 이끌어나간다. 그는 작가가 어떤 주제를 구현하고자 했는지, 주제와 방법론이 작가의 삶과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는지 섬세하게 살핀다. 이런 연구 방식은 작가론적 방법과 작품론적 방법 모두를 포괄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진 서사론적인 뼈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이기에 기존의 연구들을 보완한다는 의미가 있다.
서사론을 뿌리로, 한국 근대소설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다
강헌국은 세 소설가를 분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록을 통해 이상을 다룬다. 그는 앞의 세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는 이상의 서사를 ‘방법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강헌국은 이상의 「날개」를 주요한 예시로 들며 이상이 위트와 패러독스, 아이러니와 같은 ‘포우즈’를 사용하여 자신을 위조하고 그 방법을 소설에서도 구현한다고 분석한다. 강헌국은 이상이 다른 세 소설가보다 한 세대 뒤의 소설가이지만 그의 서사가 소설사에서 별도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의 서사를 추가로 다루는 것이 소설사 연구에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강헌국이 소설사의 계보를 주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헌국의 연구가 최종적으로는 ‘방법론적 계보학’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서사의 행방』에서 사용된 개념들은 후세대 소설가들의 서사를 분석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김동리와 황순원의 소설은 상상이 서사를 추진하기에 ‘상상의 서사화’로, 감각 묘사가 두드러지는 박태원의 소설이나 소설의 배경을 일상에 한정시키는 이태준의 소설은 ‘지각의 서사화’로 분석할 수 있다. 사회주의 이념을 소설로 형상화한 이기영과 김남천의 소설들은 ‘개념의 서사화’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상상, 지각, 개념 중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서사를 형성한 작품들, 또는 이상처럼 별도의 서사 계보를 형성한 작가들을 연구해볼 수도 있다. 강헌국은 한국소설의 서사학적 면모를 분석하기 위한 기틀을 세움으로써 기존의 ‘주제론적 계보’와는 다른 ‘방법론적 계보’의 형성을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소설의 빛나는 출발점이다. 이번 연구서를 통해 한국소설의 출발점을 다시 조명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소설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다 안다고 여겨온 소설가들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여 더욱 깊이 있는 독서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광수와 김동인과 염상섭은 그들에 관한 선행 연구가 방대하게 누적된 상태여서 연구 대상으로서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이 들러 샅샅이 살펴보고 떠난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의미의 면에서 계속 증식하고 갱신되는 미결정적 현재성이 문학 본문의 본질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설령 많이 연구된 대상이라도 새로운 논의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_「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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