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초원에서 풀을 뜯던 말이 저녁 어둠에 서서히 지워지듯이 인생이 그렇게 소멸하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에서 머리가 새하얀 그 노인이 굽은 허리로 유모차 같은 것을 밀고 다니는 걸 봤다. 아무도 그 노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노인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노인들 중에는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아니면 그 두꺼운 벽 안에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 노인의 얼굴에서 구십년 가까이 살아온 거친인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얼굴에는 새끼를 위해 밥 한덩어리를 가지고 이빨을 드러내고 이웃과 싸우는 악착같고 메마른 삶이 주름살이라는 무늬가 되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의 한 사람이 조용히 내게 말을 해주었다.
“저 할머니 성격이 고약해요. 친구들 몇 명이 같이 실버타운에 들어왔는데 싸워서 그 친구들을 하나하나 다 내쫓았어요. 그리고 실버타운 안에서 혼자 겉돌고 있어요.”
그 노인은 친구를 잃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혼자였고 휴게실에서도 혼자였다. 실버타운의 한 사람은 내게 도 이런 말을 했다.
“저 할머니 딸이 있어요. 어쩌다 딸 집에 불려 갈 때가 있는데 어떤 경우냐 하면 딸이 휴가를 가서 개 밥을 주지 못할 때 가요. 그 개를 돌보기위해서죠. 그리고 돌아오죠.”
딸에게 그 엄마는 무엇이었을까. 혼자 실버타운의 구석에 정물처럼 있는 그 노인에게 이따금씩 눈길이 갔다. 숲 속에서 혼자 눈을 맞고 서 있는 겨울나무였다. 어느날 내가 실버타운의 텅빈 피씨방 안을 무심히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칸막이를 한 구석에서 컴퓨터화면의 빛이 약하게 흘러나왔다. 그 옆에는 그 노인이 밀고 다니던 밀차가 놓여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어깨넘어 뭘 하는지 살펴 보았다. 그 노인이 어눌한 손으로 키보드를 천천히 만지고 있었다. 화면에서 포커의 패가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그 노인은 기계와 놀고 있었다. 재미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노인은 시간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노인과 딱 한번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심히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그 노인이 타고 있었다. 내려가려고 하는 데 내가 올라가는 버튼을 먼저 눌러버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저한테 남는 게 시간 뿐이랍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대화이기도 했다. 남은 건 시간뿐이란 말이 어떤 의미가 되어 내 마음속에서 물결쳤다. 노인은 백색의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말년에는 다시 시간이 그렇게 늘어지는 것일까.
시계가 빨래같이 축 늘어져 나뭇가지에 걸린 미술작품이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그러나 밧데리가 다 소진되듯 그 노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 노인이 마지막 남은 시간을 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의 책갈피 속에서 젊었던 날 좋았던 일들을 되새김하기도 하고 실버타운의 아침이면 넓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빛이 들끓는 동해바다와 붉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들을 장식하면 어떨까. 끝나가는 지구여행에서 망막에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더 찍어 가라고 권하고 싶었다.
어느 날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데 그 노인이 벽 아래 놓인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울음이었다. 나오지 않는 메마른 눈물을 노인은 얼른 훔치고 아닌 척 하고 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꿈이 사라지고 돈과 친구가 없고 건강을 잃은 노년은 지옥인 것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 서 있는 겨울나무가 떠올랐다. 수액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는 어느 순간 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못 견디고 옆으로 쓰러지게 마련이다. 그 순간 하늘에 있는 그 분이 “아가야 수고했다”하고 포근하게 안아주면 좋을 것 같다.
어느 순간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피씨방에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 노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어제 실버타운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앞에앉은 나와 친하게 된 칠십대 노인이 말했다.
“그 돌아가신 양반 나하고 전부터 인연이 있어요. 내가 도와드리려고 다가가면 괜찮다고 하면서 한사코 거절하셨어요. 성격이 강한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멀리서 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