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일까 아닐까
자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있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는 임금의 명령을 욕되이 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그 다음 등급을 묻고자 합니다.” “일가 친척들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마을에서는 어른께 공경스럽다고 칭찬받는 사람이다.”
“감히 그 다음 등급을 묻고자 합니다.” “말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면, 완고한 소인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 다음 등급은 될 만한 사람이다.”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몇 말의 녹봉을 받기 위해서만 일하는 사람들이야 어찌 선비라고 할 수 있겠느냐!”
子貢問曰: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자공문왈 하여사가위지사의 자왈 행기유치 사어사방 불욕군명
可謂士矣。曰:敢問其次? 曰: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曰:敢問其
가위사의 왈 감문기차 왈 종족칭효언 향당칭제언 왈 감문기
次? 曰:言必信, 行必果, 硜硜然, 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曰:今
차 왈 언필신 행필과 갱갱연 소인재 억역가이위차의 왈 금
之從政者何如? 子曰: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지종정자하여 자왈 희 두소지인 하족산야
앞에서 선비를 이르는 ‘사’士의 개념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고대에서 말하는 ‘사’士를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말은 매우 막연합니다. 고대에는 반드시 내적인 도덕과 외적인 학식이 다 훌륭해야만 ‘사’라고 칭할 수 있었습니다. 자공은 여기서 어떤 사람을 선비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첫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行己有恥)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움이 있다’(有恥)는 것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기의 인격과 도덕에 오점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이는 자신에 대한 요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수십 년을 살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 중에는 부끄러움이 아주 많은 사람도 확실히 있습니다. 일을 잘못할까 두려워하고 난처한 일이 생길까 두려워합니다. 자기 체면이 깎일까, 거북스럽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진정 체면을 생각하는 이 마음을 길러 가면 훌륭한 도덕이 됩니다.
그 다음은 “사방에 사신으로 가는 것”(使於四方)입니다. 사방에 사신으로 간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외교에 편중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공자에게는 많은 민간 외교 사업이 있었으며 나아가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 사업이 있었는데, 모두 자공이 맡아 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의미에서의 외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있는 것”(行己有恥)이 매우 중요합니다. 외교관 이외의 사람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있는” 외교관으로 외국에 가서 그 직책과 임무를 즐겁게 감당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을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왜 외교에 치중한 대답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공자가 처했던 춘추전국시대가 지금 우리 시대처럼 매우 혼란스럽고 분열된 시대라서 각국의 제후들이 제 나름대로 정치와 외교를 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으면 지금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늘 말합니다. 지금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확대라는 것이지요.
이 점을 이야기하자면 다시 역사 철학과 관련됩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반대 의견으로 역사는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 철학에서의 논쟁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을까요? 먼저 당나라 때 두공竇鞏의 시 한 수를 읽어 봅시다.
상심해서 묻지 말게나 전 왕조의 일을, 傷心莫問前朝事,
강물은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네. 惟見江流去不回。
날 저물자 동녘바람 부니 봄 풀은 푸르고, 日暮東風春草綠,
자고새는 월왕대 위로 하늘 높이 나누나. 鷓鴣飛上越王臺。
이 시는 전체가 철학 사상입니다. 동쪽으로 흘러간 강물은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강물은 영원히 동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의 원칙도 불변하는 것이므로,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국제 정세를 이해하려면 역사를 읽어야 하며, 특히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어야 합니다. 그 속에 나오는 대원칙은 틀림이 없지만, 자신이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
이 단락을 읽고 나면,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생각한 훌륭한 ‘선비’란 재능이 있고 외교적인 임무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공이 “선비도 각양각색인데, 그 다음은 어떠한 사람을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가문에서는 효자로 불리고 이웃 사이에서는 우애롭다고 불릴 때, 역시 선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공은 “또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하면 선비가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공자는 “어디서나 신용을 중요시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유가사상을 연구하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어떤 사람들은 전통 문화의 유가사상을 타도하려고 할 뿐 활용할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지난날 우리가 공부할 때는 어떤 아이가 공부하여 이치를 통했는가만 물었지, 학력이 어떤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학문은 이치를 통해야 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공자가 여기에서 말한 “언필신”言必信은 일단 한 말은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필과”行必果는 일단 일을 시작하면 꼭 결과가 있어야 한다, 즉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괜찮겠지요? 그러나 공자는 그런 사람을 “소인이다!”(小人哉)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사람됨에는 쓸모가 있지만, 국가 대사는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도 선비라 할 수 있다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이상은 인재를 세 가지로 분류한 것입니다.
자공은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보시기에 지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모두 쌀 몇 말의 봉급을 얻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 말할 필요도 없다.”고 공자는 대답하였습니다. “두소지인”斗筲之人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밥줄이 끊기지 않기 위해 일자리를 찾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이 어찌 국가와 천하의 일을 마음에 둘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찮은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레에 싣고 말(斗)로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보통 사람들인데, 너무 많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논어별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