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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59회>
씬 1 금성산성(밤)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어둠속 가득히 고려의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다.
홍유가 중앙을 돌파하고
있고, 그 좌우로 김언,
김락,종회,배현경,환선길 등이 군사를 몰아가고
있다.
씬 2 동 산성안
성루에서 수달이 보고 있다. 군사들이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끓는 물을 나르고, 돌덩이와 나무덩이들을 준비한다. 궁수들이 몰려오는 적을 보고 있고, 부장들이 이리저리 뛰고 있다.
부장2 적이 오고 있사옵니다. 장군.
수달 도대체 언제 저렇게 많은 고려군들이 있었단 말이냐?
부장2 수천의 고려군과 더불어 각지역의 호족들이 합세한 것으로 아옵니다.
수달 우리 백제를 배신한 그 놈들을 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두고보아라! 내가 다시 관아를 되찾게 되면, 제일 먼저 이 땅을 배신한 저 놈들의 목부터 효수하여 관아에 내 걸것이니라.
부장3이 다급하게 달려오며 또 소리친다.
부장3 장군, 적군이 성밑까지 이르고 있사옵니다.
수달 조금 더... 조금 더, 기다리거라. 성밑까지 바짝 왔을때에 일제히 내리 퍼부어라.
부장3 좌우측면에도 고려군들이 벌떼처럼 달려오고 있사옵니다.
수달 알고있느니라. 너희들이 목숨을 다해 막아라. 저것들을 막아야 한다. 이틀이니라.. 이틀만 버티면 저것들은 다 무용지물이 될 것이니라.
다가온다.
고려군은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만큼 어둠속 수많은 횃불사이로 선봉을 선 홍유의 모습이 보여온다.
홍유는 잠시 군사들을 정지시킨다.
그리고, 큰소리로 이른다.
홍유 수달은 듣거라! 나는 금성정벌군 총사이신 왕건 장군의 막하 홍유라 하느니라.
수달 .... (보고만 있고)
홍유 이미 전세가 기울었느니라. 항복함이 어떠할꼬?
수달 하핫하하하하하..... 항복이라 하였느냐? 어디서 잠꼬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 네 놈은 수달이라는 함자를 들어보았느냐?
홍유 익히알고 있느니라. 허나, 이미 온 금성고을이 고려의 영토로 들어왔느니라. 항복하여, 목숨을 보존하라.
수달 하핫하하하...쥐새끼 같은 놈들 나 수달이가 있는 한은 결코 이 성을 넘지 못할것이니라. 어서오너라. 이놈들!
씬 3 그 성밖
홍유가 성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명령한다.
홍유 전군, 성을 함락하라!
부장 성을 함락하랍신다.
홍유 성을 공격하라.
명령일하, 함성을 지르며 고려군이 흩어져 밀려간다. 대접전이 시작된 것이다.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수많은 군사들이 희생되면서 성밑으로 달려들고 있다.
수달 막아라! 끓는 물을 퍼부어라. 돌을 굴리고, 활을 쏘아라! 놈들을 성에 올려놓아서는 아니된다.
그렇게 분전하는 수달의 모습과 어지러운 전투상황의 모습에서 카메라 뒤로 빠진다.
씬 4 왕건의 진영
먼 앞에서 홍유의 군사들이 성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치열한 전투와 함성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어지럽다.
그 어지러운 전투상황들을 왕건이 침착하게 보고 있다.
유금필 주군, 공격이 시작되었사옵니다.
왕건 ....
능산 성 안에 병력이라고 해야, 고작 오육백정도라 들었사옵니다. 제아무리 수달이라 한들 얼마나 버틸수 있겠사옵니까?
박술희 그러게말이옵니다. 홍유장군이 선봉을 섰고, 환선길, 이흔암 같은 장수들이 측면을 맡았사옵니다.
도영 그래도 그리만만히 보지는 마십시오. 수달이라는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서남해에서 이름을 날려온 사람입니다.
이치 그렇습니다. 저자는 또한 견훤왕의 의형제이기도 하지요.
왕건 (그제서야) 저 수달이가 견훤의 의형제였소이까?
이치 예, 소장은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도영 사실이옵니다. 장군. 견훤왕이 얼마나 저 자를 사랑하였으면, 의형제를 삼고 이 넓은 서남해 일대를 모두 맡겨놓았겠습니까?
왕건은 끄떡인다.
전장터의 소리들은 계속해 들려오고 있다.
씬 5 그 산성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홍유가 쏟아지는 화살을
방패로 막으며, 목이 쉬도록 독전하고 있다.
홍유 물러나지마라! 계속 성벽으로 오르라. 무엇들하느냐? 성문을 부수어라. 전사자가 있으면 속히 그 자리를 메꾸어라.
포차가 성문 앞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
희생자가 속출한다.
방패로 하늘을 덮지만,
그러나 워낙 많이 쏟아지는 통나무와 뜨거운 물, 뜨거운 기름을 당할 수가 없다.
곳곳에 불길이 일고 있다. 성문을 공격하던 포차가
통채로 불타기 시작한다. 그 위로 한꺼번에 성위에서 장애물들이 쏟아져 내린다. 군사들이 떼로 죽어가고
있다.
홍유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이곳저곳에서 전사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홍유가 그 한쪽을 본다.
홍유 좌우측면은 어찌되었느냐? 환장군과 이장군은 어찌되었어?
씬 6 그 좌측
환선길이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운제들이 성벽에 계속 걸쳐지면, 그 운제들은 곧 불에 타거나 군사들이 오르다가 속속 떨어져 나뒹군다.
이곳도 참패다.
어떻게 해보지를 못하고 있다.
환선길 (보고있다가) 지독한 놈들. 이렇게 많이 당할 수가 있단말인가. 올라라! 올라야한다. 우리가 이쪽을 부서주어야 저쪽에서 성문을 열수 있느니라. 올라라. 어서들 올라라.
그러나, 공격은 계속되지만 번번히 좌절된다.
화살하나가 날아와 환선길의 어깨에 박힌다.
환선길은 그것을 꺽어 들며 계속 소리친다.
환선길 올라라. 성벽을 올라야 한다.
씬 7 다시 중앙
홍유들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시체가 마치 낙엽처럼 깔려 있다.
이흔암이 달려오고 있다.
이흔암 홍장군, 아니되겠소이다. 너무 타격이 큰것같소이다.
홍유 ....
이흔암 우리쪽은 많은 군사들이 다쳤소이다. 성이 철벽이올시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소이다.
그때 또한쪽에서도 김언과 종회가 달려온다.
김언 장군, 적이 너무 완강하오이다. 작전은 다시 세워서 오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홍유 믿기지가 않소이다....(도리질)...어떻게 우리의 절반도 아니되는 병력을 가지고 저렇게 버틸수가 있단 말이오?
이흔암 소장도 그렇소이다. 일단 잠시 군사를 물리십시다. 이대로는 아니됩니다.
홍유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입을 앙다문다.
현실은 믿기지 않고, 마음은 답답하고 초조한 것이다. 김언이 재촉한다.
김언 장군, 퇴각령을 내려주시오. 이대로는 아니됩니다.
종회 그렇사옵니다. 퇴각해야 하옵니다.
홍유 ....
씬 8 동 산성
수달이 미친 듯이 독려하고 있다.
어쩌다가 한둘 성벽을 오르는 고려군을 그가 밀어내거나 칼로 치고 있다.
수달 고려군은 아무것도 아니다! 막아라.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백제의 철기군이다. 저놈들을 막아라. 막을 수 있다. 모두 없애 버려라.
아우성이다.
고려군은 간신히 성벽에
몇몇 오르기는 하지만 번번히 죽거나 떨어져 내린다. 혈전이다.
참으로 치열한 싸움이다.
그 어둠속에서 소라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대북 소리가 둥둥 들려온다.
수달이 그 소리나는 쪽을 보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씩- 웃는다.
씬 9 그 어둠속
고수가 북을 치고 있고, 군사하나가 소라를 분다. 그 옆에서 홍유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다.
홍유 퇴각하라! 전군 퇴각하라. 전령은 퇴각을 알려라. 좌우전선에게 가 퇴각하라 이르라.
전령들이 대답하며 말을 타고 달려간다.
홍유는 다시 입을 앙다문다. 그리고, 분해서 가슴을 친다. 그런 홍유의 모습에서....
씬 10 다시 산성안
군사들이 퇴각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수달이 성루에 우뚝서서 어린애처럼 좋아서 웃고 있다.
수달 하핫하하.... 그러면 그렇지. 네 놈들이 나를 당해낼수있단 말이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너희들은 이 성을 결코 넘지 못할 것이다. 부장들은 듣거라.
부장2,3 예, 장군.
수달 저 놈들은 또 몰려올 것이다. 군사들을 정비하라.
부장2 장군, 하오나... 아군의 피해가 막심하옵니다. 군사가 삼백도 채 아니남았사옵니다.
수달 희생이 없는 전쟁이 어디있다더냐? 아직도 반이 남았어. 우리는 버틸수 있느니라. 가서 정비하라.
부장2 예, 장군.
수달은 먼 곳을 본다.
전선은 어느새 모두 조용해졌다.
그저 바람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비로소 수달도 피곤한 모습이다.
그런 수달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11 그 새벽
새벽의 여명이 밝고 있다. 성밑과 넓은 벌판이 어지럽다. 수많은 시체들과 꺽여진 깃발들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있다.
그 한켠에 홍유를 비롯한 환선길, 이흔암, 김언, 김락 등이 모여서 성을 보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환선길 (한참만에) 지독한 놈들이올시다. 내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 보았지만, 저런 지독한 놈은 처음 보았소이다.
이흔암 과연,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올시다. 수달이라... 허허.. 물에서만 잘 싸우는 줄 알았더니, 아주 물건인 것 같소이다.
홍유 ..... 총사께 면목이 없게되었소이다. 허허. 이것참..
그런 말들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왕건과 도영 그리고 세 가신이 오고 있다.
모두들 군례를 올린다.
왕건 다 보았소이다. 수달의 금성산성은 참으로 견고한 것 같소이다.
홍유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장군.
왕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올시다. 적장이 워낙 뛰어난 인물이올시다.
도영 이제서야 모두들 저 수달이라는 사람의 정체를 이해하시는가 보옵니다. 하지만, 저 성을 오늘 밤안으로 함락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옵니다. 견훤왕이 가까이 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다시들 작전을 숙의해보십시다. 묘수를 찾아보아야지요. 수달이라..수달이라....
도영 저 수달이라는 사람이 성격이 아주 급하옵니다. 유인책을 한 번 써 보시오소서.
왕건 유인책이라...
도영 자존심을 몇 번 건드리면 효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 ......
그런 왕건을 보며, 도영이 웃는다.
산성을 보고 있는 왕건의 답답한 표정에서...
디졸브.
씬 12 동 전장(낮)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다. 양쪽 모두 소강상태로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다.
수달이 성루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고, 그때 아득히 성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온다. 그는 홍유다.
수달 누군가 했더니, 홍유라는 그 어린아이가 아니더냐? 웬일로, 이 형님에게 왔느냐?
홍유 지난 밤에는 우리가 너에게 졌다. 참으로 너는 대단한 장수임에는 틀림이없다. 허나, 애써 군사들을 희생시키기 보다는 우리끼리 한 판 어우러짐이 어떠한가?
수달 뭐라? (한 참 보고 있다가 껄걸 웃는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네 어머니 젖이나 더 먹고 오너라.
홍유 그렇게 기고만장할 것 없다. 실력은 겨뤄보면 알것이 아닌가? 겁이 나서 못나오는 모양이구나!
수달 뭐? 겁이 나?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감히 이 수달이를 보고, 겁을 낸다고 하였느냐? 썩 돌아가거라. 혼나기 전에.
홍유 그렇다면 왜 나오지 못하느냐? 썩 나와서 나와 한 판 겨뤄 보자꾸나.
수달 돌아가라고 하였다!
수달은 딴전을 피운다.
홍유는 계속 약을 올린다.
홍유 이름뿐이구나. 너는 겁쟁이다.
부장2 (수달에게) 장군, 속지마시오소서. 장군을 끌어내려는 술책이옵니다.
수달 알고 있다.
홍유 (다시) 이 겁쟁이야! 왜 나오지 못하느냐? 한 판 어우러줘보자고 하지 않느냐? 내 말이 들리느냐? 수달아!
부장3 (다시 수달에게) 넘어가지 마오소서.
수달 허지만, 저놈이 나를 보고 겁쟁이라 하지 않느냐?
부장3 속지마시오소서.
홍유 이 겁쟁이 수달아! 왜 나오지 못하느냐?
수달 (슬슬 열 받는다) 네 이놈 자꾸 중얼거릴 것이느냐? 혼 좀 나보겠느냐?
부장2 나가지마시오소서.
홍유 깨끗이 겨뤄보자꾸나 어서 나오너라.
수달 오냐, 이놈아! 정그렇다면 기다리거라.
부장들 (놀라서) 장군.
수달 아니다. 저 놈들이 나를 유인하려는 모양인데, 내가 그렇게 미련하지 않다. 몸이나 좀 풀고 오겠느니라.
부장들 장군.
수달 이 놈 홍유야, 기다리거라!
수달이 달려나간다.
씬 13 동 성
성문이 열리면서, 수달이 말을 타고 나온다.
홍유가 기다리고 있다.
홍유 저만치 뒤로 멀리서 제장들과 군사들이 보고 있다. 성 입구에도 급히 쫓아나온 부장들과 군사들이 보고 있다.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홍유 가까이서 보니 과연 인물이로다! 잘 나왔도다.
수달 오냐, 오늘 혼 한 번 나보거라.
두사람의 말이 전속력으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검이 부딪치고 접전이 치열하게 이루어진다. 양쪽 장졸들이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다.
홍유의 실력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역시 수달이다.
홍유가 몰리기 시작한다. 점차 말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가려고 한다.
수달 어디로 가느냐?
홍유 궁금하면 따라오너라!
수달 네 이놈 감히 나를 기만하려 하느냐? 어딜 도망가느냐?
홍유가 도망친다.
수달이 쫓아 간다.
홍유는 그를 유인하려 하였지만, 그러나 수달의 말이 더 빨랐다.
그대로, 칼이 번쩍하자 홍유가 말 밑으로 나뒹군다. 양쪽 진영에서 우-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수달이 홍유의 목을 베려고 칼을 쳐들면, 배현경, 김락이 달려나간다.
배현경 기다리거라, 수달아! 여기 배현경이가 있다.
김락 내가 바로 고려의 김락이니라.
수달이 홍유의 목을 베려다가 그들을 본다.
다시 말머리를 돌린다.
수달 또 왔느냐? 그래, 모두 한꺼번에 오는게 좋다. 해보자꾸나.
그 사이에 홍유는 부축을 받아가고, 두 장수는 한꺼번에 수달에게 달려든다. 접전이다. 그러나, 해결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장수가 몰리고 있다.
다급하게 막기에 급급하고, 수달은 제 마음대로 칼을 휘젓는다.
수달 하핫하하하하...오늘 뭐처럼 몸 한 번 푸는구나. 좀 더 센 놈은 없느냐? 왕건이가 해 볼만하든데, 왕건이는 어디갔느냐?
접전은 계속이어진다.
배현경의 투구가 반쪽으로 갈라지면, 아슬아슬하게
땅에 떨어진다.
다급하다.
협공도 소용이 없다.
씬 14 그 한 쪽 , 왕건의
진영
왕건이 보고 있다가 한숨을 내쉰다.
장수들이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다가, 탄성을 내지른다.
그들이 위험해 보인다.
왕건 (한숨) 아하- 처음보는 장수로다. 참으로 놀라운 무예로다. 배장군들을 불러들이게. 위험해 보이네. 유인책도 먹히지를 않는구먼.
유금필 북을 쳐라. 우리 장수들을 돌아오라 하라. 북을 쳐라!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씬 15 다시 그 싸움터
치열한 접전, 그리고 계속해서 몰리는 두 사람.
북소리가 울리고 있다.
두 사람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수달 어딜가느냐? 어디들을 그렇게 가느냐? 허허허- 좀 더 놀지 않고 어디들 가느냐? 하핫하하하하..... 가소로운 놈들!
수달은 그렇게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그의 웃음 소리가 온 벌판을 메아리치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16 왕건의 진영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다. 모든 장수들이 다 모여 있다.
왕건 수달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명장 중에 명장이요.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같은 장수요.
이치 소장이 말씀올리지 않았사옵니까? 대단한 장수이옵니다.
도영 견훤왕이 저 사람을 얻을 때 세 번을 싸워 세 번을 이겼사옵니다.
환선길 (놀라서) 그렇다면.. 수달이 견훤왕에게... 세 번을 졌다는 것이오?
도영 그러하옵니다. 견훤왕은 수달의 자존심을 세 번을 꺽고 또 용서하고 함으로써 진심어린 항복을 받아낸 것이옵니다.
왕건 오, 그렇다면 도대체 견훤왕의 힘은 어느정도란 말인고? 놀라운 일이로다.
홍유 쉽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장수같사옵니다.
능산 그렇다하더라도, 이제 시간이 촉박하옵니다. 머지않아 해가 질것이고, 밤이 올것이옵니다. 이 밤안에 끝을 보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것이옵니다.
왕건 어찌한다...? 어떻게 저 성을 함락시킨다... 우린 수천의 병력인데, 저들 몇 백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어. 이럴수가...
고민하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17 다시 금성산성
성루에 걸린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해를 보고 있는 수달.
바람소리가 극성스럽다.
수달 또 하루가 가고 있어. 오늘 밤이다. 오늘만 잘 넘기면.... 내일은 폐하의 군대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부장2 ..... 하오나. 장군, 저들의 병력은 너무나 막강하고 많사옵니다.
수달 해낼수 있느니라. 하루만 더 참아보자꾸나.
부장3 다시 고려군이 부딪쳐온다면 전원 옥쇄를 각오해야 할 것이옵니다.
수달 옥쇄라..? 좋은 말이다. 죽음으로 나의 과오를 씻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사내다운 일이겠느냐. 죽자꾸나. 여기서 죽어나가자꾸나.
수달이 훌쩍거린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수달 내가 어찌 군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만하다가 이꼴이 되었단 말인고. 금성이 어떤 곳인데, 저 곳을 다 내주었단 말인고. 도대체, 폐하는 어떻게 뵐 수 있단 말인고. (울며) 폐하! 이 수달이가 참으로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폐하....
씬 18 길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끝없는 백제군이 오고 있다.
그 앞에는 견훤과 최승우, 능환, 그리고 태자 양검과 장수들이 뒤를 잇고 있다. 의욕이 없다.
그들 군사들은 피곤한 모습으로, 황토길을 가고 있다. 가다가 견훤이 묻는다.
견훤 여기가 어디쯤인고?
최승우 하동, 승평(승주)군을 지나 보성 가까이 이르고 있사옵니다.
견훤 답답하구먼, 언제 금성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최승우 금성까지는 하루 밤 낮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하루 밤 낮... 어떻게 만 하루를 더 가야 한단 말인가?
모두들 ......
견훤 다른 전선들을 어찌되었는가?
능환 이미 전령들을 각지에 띄워 비상사태를 알리고 경계 태세에 돌입해있사옵니다.
최승우 신라군의 움직임은 별로 없사옵니다. 하옵고, 고려군 또한 금성이 주 전장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위험한 곳은 더 이상 없사옵니다.
견훤은 한숨을 쉰다.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두 필의 말이 달려온다.
그들은 곧 다가와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린다.
견훤 어디서 오는 전령들인고?
전령 금성과 강주에서오는 전령이옵니다.
최승우 무슨 일들인가 아뢰어라.
전령1 금성은 이미 모든 고을들이 고려군에 함락되거나 투항하였사옵니다.
견훤 .....(눈을 감다가) 수달! 수달이는 어찌 되었느냐?
전령1 수달장군께서는 모든 관아가 함락 당하자, 산성으로 가시어 폐하께서만 오시길 학수고대하고 계시옵니다.
견훤 오, 그래도 아직 산성을 고수하고 있단 말이냐? 아직까지..?
전령1 예, 폐하. 하오나, 오늘이 고비가 될 것이옵니다. 적은 수천의 병력이고 아군은 고작 수백에 불과하옵니다.
견훤 가야지. 우리가 빨리 가야지. 가서 도와주어야지. 수달아......조금만 더 버티거라. 내가 갈 것이니라.
최승우 강주의 일은 어찌되었느냐? 그곳에 계시는 태자마마와 능애장군은 어찌 되었느냐?
전령1 성이 함락된 이후 폐하께서 황도로 돌아가시라 하여, 그리하신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금성.... 금성을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이리 걸음들이 더딘고, 하루 반나절이면 어찌되는 것인고? 과연, 수달이가 그 성을 지킬수 있을까? 오늘 밤을 넘길수 있을까?
최승우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지금껏 잘 버텨왔는데, 하루를 더 못 참겠사옵니까?
견훤 가세. 서둘러. 시간이 없네. 걸음들을 재촉하라 하게.
능환 서둘러라. 행군별감은 군사들을 재촉하라. 서둘러라!
군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행군별감이 서둘러라,하는 명을 계속 전달하며 가고 있다.
견훤의 얼굴은 그렇게 초조하게 있고.
씬 19 다시 금성, 그 전장
전장은 정막이 감돌고
있다.
계속되는 바람소리와 이들의 긴장과 초조를 더하고 있다.
씬 20 그 곳 왕건의 진영
군막 안
제장회의가 열리고 있다.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왕건 해가 저물어 가고 있소이다. 이 밤 안으로 저 산성을 다시 함락시켜야 하오이다. 이 번에는 누가 선봉을 서겠소이까?
제장들 ....
환선길 (보고 있다가) 소장이 한 번 나서보오리다.
종회 총사, 소장에게도 기회를 주시오소서.
왕건 .....
유금필 아니옵니다. 이 번만은 소장들에게도 기회를 주시오소서.
이흔암 하긴 그렇소이다. 거기 세분은 왕장군의 직계이시기 때문에, 사실 별로 기회가 없었소이다. 형님, 이 번에는 양보를 하시지요.
환선길 허허- 양보라? 선봉을 어찌 양보하겠는가?
김락 그리하시지요. 이 세분은 지난 양길의 전투에서도 상당한 무공을 보여 주시었습니다. 이번에도 기회를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건 좋습니다. 허면, 이번에는 세 부장들로 하여금 선봉과 좌우를 맡겨, 성을 공격해보기로 하겠소이다. 세 부장은 군사를 준비하라!
세가신 예, 장군.
왕건 나머지 장군들은 좌우측면과 예비부대를 뒤에 대비시켜, 작전에 따라 총 공격을 감행하도록 하십시다. 모두 군사를 점검하고 대기토록 하시오.
일제히 예, 장군.
왕건 저 성을 함락시킴으로써 대 금성작전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오. 저 산성이야 말로 폐하께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결연한 왕건의 표정에서...
씬 21 철원 길
궁예의 행렬이 오고 있다. 긴 강변을 궁예와 아지태 그리고 은부와 금대, 장일들이 군사를 이끌고 보좌하고 있다.
그들은 산수를 그렇게 돌아보며 온다.
은부 폐하, 하루종일 쉬지 않고 먼 길을 돌아보시었사옵니다. 좀 쉬었다 가심이 어떠하시올지...
궁예 마음이 급해서 쉴 겨를이 없네 그려. 참으로 많이 돌았네. 많이도 걸었어. 아니 그렇소이까? 아학사.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허허허. 폐하, 오늘은 무리를 좀 하신 것 같사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소이다. 만년 제국의 터를 세우는 일인데, 짐이 어찌 피곤할 리가 있겠소이까?
아지태 돌아보시니 어떠하시옵니까?
궁예 보면 볼수록 이 철원은 좋은 기업의 터인 것 같소이다. 볼수록 새로워요.
아지태 그러하시다면, 다행이옵니다.
궁예 황궁의 터도 잡았고, 궁궐에 자리와 주변의 축성자리 또한 대충 알 것 같소이다. 이제부터 할 일이 많게 생겼소이다.
아지태 당연할 일이옵니다. 제국의 중심이 서는데, 어찌 일이 많지 않겠사옵니까? 하오나, 이 철원은 폐하의 존성대명과 더불어 길이길이 천추에 기록되고, 후세에 남겨질 것이옵니다.
궁예 암... 자 저쪽에서 쉬어 가십시다. 짐이야 괜찮지만, 수행들이 피곤한 것 같구료.
은부가 대답하고 물러나며, 영을 내린다.
은부 내군들은 페하를 뫼셔라. 저곳에 임시 행궁을 준비하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궁예와 아지태는 그 한쪽으로 간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고, 그야말로 계곡 물이 옥수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그 주변을 둘러보는 궁예.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씬 22 그 곳 계곡
계속에 서서 흐르는 물과 단풍을 보는 궁예.
아지태와 은부가 배석해 있다.
아지태 폐하, 조금 전에 전령이 왔다고 들었사옵니다만은...
궁예 그렇소이다. 송악에 있는 내원이 보내온 전령이오. 금성에서 소식이 왔는데, 왕건 장군이 금성일대를 모두 장악했다는 구료.
아지태 그렇사옵니까?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은부 믿기지 않는 일이옵니다. 과연, 천하가 놀랄 만한 일을 해낸것같사옵니다.
궁예 왕건 장군은 내 아우일세. 자랑스러운 아우야.
은부 하옵고, 폐하. 또 다른 일들도 내원께서 상의를 해오셨사옵니다만은...
궁예 그랬었지. 어린 두 태자에게도 이제부터는 사부가 있어야한다는 게야. 당연한 말이지. 나도 그리 말을 했었고.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허면, 그럼 누가 그 소임을.... 맡으려는 지요?
궁예 글세, 내원은 누군가를 데려온다고 하였는데. 허월대사께서 천거를 해 올렸다는데.. 이름이.... 그렇지 박유라고 했든가?
아지태 (꿈틀하며) 박유라 했사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왜요? 그 사람은 아시오, 아학사?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대단한 학인이옵니다. 공부를 참으로 많이 한 사람이옵지요. 허허허. 한때는 소신과 더불어 동문수학을 했던 사이기도 하옵니다.
궁예 그렇소이까? 허면, 아학사만큼이나 대단한 학사가 아니겠소이까?
아지태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이 어찌 대단하다 하겠사옵니까? 하오나, 박유는 고집이 좀 세옵니다. 알고 계심이 또한 좋으실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맞아요. 자고로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집이 세지. 어쨌든, 학문을 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가 부강하고 튼튼해진다는 징조요. 좋은 일이올시다.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하옵고, 이번에 천하를 놀라게 한 대 금성공략은 폐하의 위엄을 다시 한 번 세상에 드러내는 쾌거이옵니다. 이때를 더욱 소중히 살려, 폐하께서 세상을 구하시는 대 미륵 부처님이심을 백성들에게 알게 하여야 하옵니다.
은부 이미 알고 있소이다. 어찌, 백성들이 그것을 모른단 말이오?
아지태 새로운 제국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옛날보다도 더욱 큰 믿음과 절대적 위엄을 백성들에게 보여야 하오. 옛날보다도 더 강하고 큰 힘 말이오. 폐하께서 홀로 우뚝 서시는 그 강력한 힘 말이오. 나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이외다.
궁예 일리가 있는 말이오.
아지태 모든 것이 기회이옵니다. 왕장군이 승리를 했사옵니다. 그 힘에 더불어 제국의 발판을 굳히시오소서.
은부 .....
궁예 그리 할 것이오. 짐은 반드시 그리 할 것이오. 이미 천하가 그리 돌아가고 있소이다. 대 동방국에 꿈이 실현되고 있소이다.
껄껄껄 웃는 궁예의 그 강한 표정에서...
씬 23 황궁 외경
씬 24 황궁 내원
박유와 종간이 서로 마주 앉아 있다.
종간이 두루마기를 읽고
놓으며 정중하게 말한다. 박유는 마치 신선처럼 보인다.
종간 참으로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이올시다. 존함이 박씨 성에 유라하셨습니까?
박유 그렇습니다. 박유라 하옵니다.
종간 허월대사께서 지난 번에 말씀을 해주셔서, 여러번 사람을 보내어 청해올렸습니다. 이제서야, 뵙게 되니 참으로 반갑소이다.
박유 미천한 몸을 그토록 환대해 주시니, 고맙사옵니다.
해설 왕유, 본래의 이름은 박유이다. 광해주, 즉 지금의 춘천사람인데, 훗날 왕건의 즉위이후 성을 사성받고 해주 왕씨의 시조가 된다. 당대의 큰 학자로써, 이때에 궁궐에 들어와 동궁기실이라는 벼슬을 받는다. 즉, 두 태자의 스승을 뜻하는 것인 것이다. 종간은 아지태의 등장 이후 어렵게 수 없이 사람을 넣어 그를 청했고, 지금에서야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종간과 박유가 계속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종간 박학사께서는 작금의 이나라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유 어리석은 사람이 감히 어찌 국론을 평할 수 있겠습니까?
종간 어허허허..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한말씀 해주십시오.
박유 오래 산 속에만 살다보니, 아는 것이 별로 없사옵니다만은... 이 나라에 지금 큰 어려움이 있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말씀하시지요.
박유 청주의 학자, 아지태라는 사람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만은...
종간 사실이 그러하외다.
박유 아지태라는 사람은 학문의 깊이가 분명 큰 인물이옵니다. 허나, 그의 사상은 대단히 고집스럽고 독선적이며, 현실보다는 이상에 너무 치우셔있사옵니다.
종간 (너무 정곡을 찌른다) 그렇소이다. 정말 잘 보셨소이다. 지금도 폐하를 뫼시고, 도읍을 옮긴다 하며 철원에 가 있소이다.
박유 그 사람의 이상은 너무도 커서, 이 삼한을 마치 작은 연못처럼 보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종간 맞아요. 아주 그 사람을 훤히 읽고 계시는 구료.
박유 한때는 당나라에 있을 때, 같은 스승을 뫼신적이 있었소이다. 그 재주가 뛰어났으나, 때로는 과격하고 위험하여 스승께서는 네 뜻을 펴기 전에 목숨을 먼저 잃을까 걱정되노라, 하신 적이 있었사옵니다.
종간 ..... 그렇소이다. 지금 그 사람이 온 조정을 뒤 흔들고 있소이다.
박유 경계를 하시면서, 앞뒤를 잘 살피셔야 할 것이옵니다. 그 속과 깊이를 아무도 알수 없으니깐 말이옵니다.
종간 그렇소이다. 정말 그래요. 앞으로 나와 함께 내원에 머물면서 많은 일을 해보십시다. 우선, 두 분 어리신 태자마마의 모든 교육을 좀 맡아 주셔야겠소이다. 아직 너무도 어린 두 분이십니다만은..
박유 그러나, 교육은 어릴때부터 실은 중요한 것이지요. 오랜 노력과 습관이 좋은 결과를 낳사옵니다. 대학에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일찍부터 끊임없이 공부함으로써 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하면, 결국은 명군의 길에 이르는 길을 터득하게 되실것이옵니다.
종간 옳은 말씀이시오. 이번일을 폐하께도 상달해 올렸으니, 모두들 반가워하실것이외다. 잘 해보십시다.
박유 기대가 크시니 참으로 두렵사옵니다. 허허허...
웃는 박유의 얼굴에서...
씬 25 황후전 복도
재조상궁들이 서있다.
연화 (E) 태자들이 이제 돌을 지났는데, 스승을 두다니요?
씬 26 동 황후전 앞
연화와 강장자 부부가 함께 해있다.
진내관이 말하고 있다.
연화 이 갓난 아기들이 무엇을 안다고....
진내관 폐하께오서, 하명을 하신 일이라 하시옵니다.
강장자 나도 들었네. 박유라는 학자가 왔다는 그 말 아닌가?
진내관 그러하옵니다.
백씨 도대체 어떻게.... 무슨 교육을 시킨다는 것인가?
진내관 소인이 대충 듣기로는 앞으로 태자마마를 뫼시는 전각을 새로 마련하고, 유모와 그 스승을 함께 뫼신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화를 내며) 유모라니? 그리고, 전각을 따로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아이의 어미가 있고, 부족한 것이 없는데 어린 것을 데려간단 그 말이 아닌가?
진내관 그런 것 같사옵니다.
연화 무서운 일이로구나. 절대로 그 일만은 아니될 것이다. 나는 옛날에 보았다. 폐하께서는 북원부인에서 낳은 아이를 명주성에 버렸고, 결국은 어디론가 사라졌느니라. 나는 그리 못하느니라. 그리는 못해!
슬이 황후마마, 고정하시오서소. 아직 그런 영이 떨어진 것이 아니옵니다.
연화 이미 태자의 스승 될 사람이 궐에 들어왔다고 하지않느냐? 폐하께서는 능히 그러실 분이시다. 한때는 황후전에 가까이 하시더니, 어느새 또 멀어지고 계시지 않느냐? 그분은 그런 분이시니라. 이 일만은 아니될 것이다. 이 일만은 그렇게 아니될 것이야.
씬 27 송악 왕건의 집
외경(저녁)
왕건의 집 정원이 노을
빛에 잠겨 있다.
씬 28 동 집 사랑
왕평달과 왕식렴, 왕신,
그리고 두 사부가 함께 있다.
왕평달 금성의 일이 뜻대로 잘 되고 있는 모양이야. 아무튼 이만한 다행이 없네.
변사부 아니될 턱이 있사옵니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그곳에 기울였사옵니까? 잘 될 것이옵니다.
마사부 주변에 여건도 좋았지만, 우리 주군이 누구시옵니까?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형님만 하시니깐 그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고 계시는 것이옵니다.
왕신 아직까지 금성이 완전히 함락된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왕평달 그야 그렇다만은...
변사부 무엇보다도 이번 금성의 일은 정주의 유장자의 힘이 결정적이었사옵니다. 참으로 엄청난 도움을 주셨사옵니다.
마사부 물론 그렇소이다. 허나, 주변의 호족들도 상당수 도왔지요.
왕평달 암, 암....
유장자 그 분의 덕이 크고 말고....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장수장 (E) 나으리, 손님이 오셨사옵니다.
씬 29 동 침 사랑 중문
유장자가 막 들어서며 사랑쪽을 보고 있다.
장수장이 다시 아뢴다.
장수장 나으리, 정주의 유장자 어른께서 오셨사옵니다.
문이 열리면 왕평달과 그 일행들이 모두 일어서서 맞는다.
왕평달 아니, 방금 전에 유장자 어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렇게 오시다니.. 허허..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어서.
유장자 허허허.. 이렇게 연통도 없이 불쑥 찾아 뵈어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왕평달 어인 말씀을.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얘들아! 주안상 좀 올려라.
하인들 예.
왕식렴 하오면, 저희들은..
왕식렴과 두 사부들은 예를 표하고 그곳을 물러난다. 유장자가 안으로 들면..
씬 30 동 사랑 안
주안상을 사이로 왕평달이 술을 따르고 있다.
왕평달 자, 한 잔 하시지요. 다 늦은 저녁에 어인 왕림이시오이까?
유장자 허허허. 그저 적적하고 또 금성의 일도 답답하고 그래서 들렸소이다. 별고 없으시지요?
왕평달 (마시며) 별고라니요?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금성에 가 있는 조카가 걱정이지요.
유장자 연일 승전보가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걱정이 할 것이 더 무엇이겠소이까?
왕평달 우리집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한 번 장자 어른의 그 전폭적인 지원에 경의를 표합니다.
유장자 어인 말씀을. 왕장군이 누구이옵니까? 우리와 같은 패서인이올시다.
왕평달 허허허. 그야 그렇습니다만은..
유장자 많은 사람들이 왕장군을 임으로 양으로 돕고 싶어 합니다. 저는 그 중 제일 앞을 섰을 뿐입니다. (술을 마시며)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보아왔소이다. 왕장군을 말이오.
왕평달 허허허.. 그리 하셨지요.
유장자 그리고.... (참아 말을 못꺼내고 있다)... 드릴 말씀이 좀 있소이다만은...
왕평달 말씀하시지요. 무엇이든지.
유장자 지난 날 이 사람은 지금 황후마마가 되신 강장자 댁 따님과 왕장군의 정혼을 지켜보고 있었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론 그러했습죠.
왕평달 ...?
유장자 그때는 정말 안타까웠었지요. 이 사람 또한 이 곳 송악과 사둔을 맺고 싶었기 때문이올시다.
왕평달 그야... 이미 지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유장자 그렇지가 않지요.
왕평달 예?
유장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집안의 정혼이 틀어진 이후 저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적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왕평달 허허허, 장자 어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유장자 이실 직고를 하리다. 이 사람은 왕장군에게 출전하기 전 날 딸아이를 시침케 하였소이다.
왕평달 (크게 놀라며) 아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침이라니요? 그..그게 말이나 되옵니까? 시침이라는 것은...
유장자 이 마음이 그러했다는 것이올시다.
왕평달 그래서요?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유장자 다행스럽게도 왕장군은 딸아이의 장래를 약속해주었소이다.
왕평달 세상에...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 조카가 그런 일이..?
유장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찾아 뵈었소이다. 송악의 왕장자께서 어찌 생각 하실까 하고.
왕평달 어찌라니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야말로 제가 큰 절이라도 올려야 할 일이옵니다. 허허. 이럴수가... 혼례를 올려주어야지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사옵니다. 그 일로 하여 제가 더 답답해하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이 고맙습니다.
유장자 허허허. 허면, 우리가 사돈이 돼도 되겠습니까?
왕평달 이를 말입니까. 제가 고마워한다지 않습니까. 이야말로 경사올습니다. 집안의 큰 경사예요. 허허허. 이런 일이 있었다니, 아니 조카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니... 세상에 이야 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닌가? 조카가 장가를 간다.... 조카가 장가를 간다. 허허허허...
씬 31 정주 유장자의 집
외경(밤)
씬 32 동 집안
부용이와 부용모가 앉아 있다.
부용모 아버님이 송악으로 가셨다. 네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말이다.
부용 ....
부용모 우리 집도 왕장군이 올아오면, 즉시 혼례를 올릴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단다.
부용 금성의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 아니옵니까?
부용모 그렇기는 하다만, 그리 오래야 가겠느냐? 빨리 빨리 서둘러서, 이 일을 매듭지어야지.
부용 왕장군께서 금성 일을 잘 해내시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부용모 그렇다는구나. 이 애미는 금성이고 뭐고 하나도 정신이 없다. 그저 어서 어서 두 사람 혼례만 올린다면 뭘 더 바라겠느냐?
부용 그 분께서 약조를 하신 일이옵니다. 너무 초조해 하지 마시오소서.
부용모 너는 그저 만사가 태평이로구나.
부용 그 분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사옵니까? 이제 그만 마음을 놓으시오소서. 어머님. 잘 될것이옵니다. 그렇구 말구요.
씬 33 금성 산성 그 전장
달빛은 만월이다.
왕건이 도영과 함께 성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 이치를 비롯한 제장들이 모두들 긴장하여 말이 없이 영을 기다리고 있다.
도영 장군, 밤이 깊었사옵니다. 공격 영을 내리실 때가 되었사옵니다.
왕건 ...
도영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옵니까?
왕건 저 수달이란 사람말이오, 저런 장수가 우리에게 와 준다면 참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도영 그렇사옵니까? 지금껏 그 생각을 하시었습니까?
왕건 싸움터에서 세월을 보내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금방 서로가 서로를 알아봅니다. 사내다운 사내는 서로를 인정하고, 가까이 있고 싶어합니다.
도영 마치 사모하는 남녀처럼 말이옵니까?
왕건 (비로소 미소지으며 돌아본다) 그렇소이다. 그보다 더 할 수 있지요.
도영 그래서, 지금까지 혼자이셨습니까?
왕건 ....글세올습니다.
왕건이 천천히 가신들이
있는 쪽으로 간다.
모두들 왕건을 바라본다. 왕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 가신을 본다.
왕건 준비들 되었는가?
세가신 예.
왕건 때가 된 것 같으이. 기회는 이 밤 뿐일세. 목숨들을 중히 여기게나. 그리고, 반드시 성을 함락시키게.
유금필 이를 말이옵니까.
왕건 가게. 성을 공략하게.
유금필 예, 장군.
유금필이 칼을 높이 빼어 든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치며 말을 달려 나간다.
유금필 전군 공격하라. 성을 함락하라!
와-하는 함성과 함께 지축을 울리며 수 많은 기마병이 앞을 서고 , 그 뒤로 군사들이 따르고 있다.
왕건과 제장들이 긴장하여 보고 있다.
그렇게 지나치는 장졸들의 모습에서..
다시 왕건의 표정을 잡으면 도영도 굳은 표정으로 보고 있다가 중얼거린다.
도영 장군, 이 밤이 끝나면 천하의 판도가 바뀔 것이옵니다.
왕건 ....
도영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전쟁의 양상이 송두리째 다시 정리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을 강렬히 보며) 그리고, 장군의 이름이 이 금성과 더불어 세상에 우뚝 설 것이옵니다. 바야흐로, 장군의 날이 올 것이옵니다.
도영이 왕건을 본다.
그런 도영을 왕건도 본다. 강렬한 두 사람의 눈빛에서 .... 스톱모션.
<끝> (10.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