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보화를 찾는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월요일 아침, 오늘도 어린이집 차량 운전을 하면서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오늘은 다섯 살 아이가 위의 노래, ‘천국은 마치’를 부른다. 나는 이번 주간에 묵상할 노래를 이것으로 정했다.
한 아이가 부르기 시작하자 차 안에 있는 다른 아이도 따라 부른다.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은 모두 이 노래를 안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중간에는 이런 가사도 나온다.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 거야~’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동승한 교사가 이렇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 헌 냉장고 누가 살까?”
맞다. 누가 그 냉장고를 살까?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그 노래를 계속해서 부른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의 장면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호산나’를 부르면서 뛰어다녔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8편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아이들의 말에도 권능이 담길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아이들의 노래로 선화공주를 얻는 백제의 왕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아이들이 부른 노래가 서동요이며, 그 노래를 가르쳐준 이는 훗날 백제의 무왕이 되었다. 예로부터 가식이 없는 아이들의 노래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 아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 아마 우리 어린이집 차에서 ‘천국은 마치’를 부른 그 다섯 살 또래의 아이가 아닐까?
오늘 아침 아이들이 부르는 그 노랫말이 나의 마음속에 큰 바윗돌처럼 묵직하게 굴러온다.
너는 이 노랫말에 담긴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느냐?
그래서 나는 익히 알고 있는 이 성경구절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천국은 마치 ~과 같다’고 하셨다. 천국이 무엇이길래 그런 식의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하신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교회에 다니면서 천국에 대하여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내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국의 이미지는 또 하나의 노래인 ‘저 높은 우주에 천국을 만들고 주 믿는 자들 오라네~’로 표현된다.
그리고 내가 교회에서 배운 노래 중에는 이런 곡도 있다.
‘황금집 하늘나라 눈물 걱정 없는 곳~’
그렇게 교회에서 배운 천국은 하늘 위에 있는 집이며 하늘의 세상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천국에 대해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이라는 말은 사실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기에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 말씀이 잠언의 지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화목하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17:1)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 25:24)
천국은 늘 다투는 부잣집에 있지 않고 서로 화목한 가난한 사람의 집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천국은 까다로운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사는 큰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씨 착한 아내와 오손도손 살아가는 움막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히 행복한 가정이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잠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작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천국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현실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이다.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그런데 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누구나 보화를 갖기 원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먼 세상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어떤 경우에 나는 행복과는 너무 먼 삶을 살았다.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되었고 내 삶은 무언가 무거운 바윗돌이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교회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마음에 큰 위로를 얻었다. 마음씨 따뜻한 선생님을 만났고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어쩌면 그만큼 나의 인생은 외롭고 힘들었나 보다.
하기야 섬마을에서 온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도시로 유학을 떠나왔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찌 없었으랴?
생각해 보면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에 빠진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바치는 이유도 거기서 무언가 위로를 얻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무언가 두려움에 매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사기꾼에게 집도 땅도 냉장고도 다 갖다 바친다.
어떤 사람은 비슷한 이유로 교회에 재물을 바친다.
예수님의 천국 이야기에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그 천국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금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늘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바치는 것이라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천국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조금 가난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이 말씀을 생각해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천국을 얻으려면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의 이야기일 수 있다.
보화를 발견하기 전에는 그 밭이 평범한 밭이었다. 그러나 보화를 발견한 순간 그 밭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판다.
집도 팔고 땅도 팔고 냉장고도 판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그 보화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이야기를 논어의 한 구절로 생각해 보게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신앙생활은 진리를 배우고 깨닫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진리 때문에 기뻐하는 이유는 그 진리가 자신을 어둠과 고통에서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삶이 오히려 나를 포박하여 하나님 앞에서 주눅 들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나는 너무 기뻤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2014년 1월 폴 엘리스의 책 『열 가지 키워드로 쓴 복음』(The Gospel in Ten Words)을 읽고서 이 진실을 발견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개척교회의 시름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보화, ‘은혜의 복음’이었다.
그 후에 나는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내가 발견하고 누리는 이 자유와 기쁨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런 탐구를 하던 중에 나는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진리를 발견했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더 충만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
신앙생활은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30여 년을 살았다.
그렇게 청춘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도 외면하고 전도활동에 힘을 쏟았다. 학업보다 신앙생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착각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채무의식에 짓눌리며 살았다. 대학시절에는 학사경고도 받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신앙생활은 이 세상을 버리고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야말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세상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그것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은 진실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살리고, 서로를 돌보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인생의 밭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람은 그 보화를 발견한다.
그리고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와 어딘가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구도의 길을 걷는다.
구도는 진리(道)를 찾는 여정이며 모험이다.
나는 천국을 다 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계속 찾아가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는 또 어떤 보화가 발견될까?
오늘도 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