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빗소리가 너무 좋다. -
권다품(영철)
책을 읽다가 비오는 소리가 나길래, 의자를 창문가로 옮겨놓고 빗소리를 듣는다.
새벽 2시가 가까워 온다.
저기 집으로 들어오는 자갈길이 가로등 불빛에 참 예쁘게 보인다.
원래는 대문이 집 가운데를 안방을 보도록 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풍수들마다 "집 대문이 집 정침을 바로 치면, 그 집은 안 풀린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말도 아닌 소리를 하고 있어."하며, 서양 교육이 신식 교육이고, 여태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우리를 이끌어왔던 어른들의 말은 미신이라 몰아붙이며 똑똑한 놈 흉내를 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는 '풍수학'에 관한 몇몇 책들을 읽었다.
'세상에는 꼭 눈으로 보이고,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만한 놀라운 일들을 바로 주위에서 보기도 했다.
'혹시, 이 대문 때문에 우리 엄마 아버지가 그렇게 싸우고, 나는 공부보다는 항상 그 무서운 불안에 떨어야 했고, 내가 그렇게 사고를 치며 산 것도 그 대문과 무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혹시 내 자식들의 앞날이 안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래서, 대문을 밭 오른 쪽 귀퉁이로 옮겨서 집을 치지 않도록 옮겼다.
안마당까지 대충 7미터에, 폭을 1.5미터로, 양 쪽가에는 큼직큼직한 돌들을 조옥 놓았다.
비가 오면 흙길이 질퍽할 것 같아서, 마당에처럼 자갈을 두툼하게 깔았다.
그 길 오른 쪽에는 봉숭아를 심고, 왼 쪽에는 촛불맨드라미를 조~옥 줄을 세워 심었다.
담 아래는 작년에 접시꽃들을 심었더니, 올해는 2미터도 넘어 보이는 키로, 담밖을 넘어다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텃밭에는 토마토들도 싱싱하게 달리고, 몇 개는 벌써 익어서 입맛을 돌게 하고, 오이랑 가지도 제법 열렸다.
내가 젊을 때 집 담장에 심은 벗꽃 나무들이 이젠 어른 한아름이 넘는 큰 나무로 자라서, 봄에는 벗꽃 향연을 벌이더니, 지금은 가지를 마당 가운데까지 뻗은 두 나무가 잎이 무성해서 그늘을 기가 막히게 내려준다.
벗꽃나무 그늘 아래다 작은 아들이 돌식탁을 놓았더니, 봄에는 봄나물 묻히고 삼겹살 구워서 상추나 머위쌈에 싸먹으면 기가 막히고, 여름에는 거기서 수박도 먹고, 냉국수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비가 오면 마당에 깔아놓은 자갈에서 차르르르 차르르르 키 큰 여인의 샤워 소리가 들린다.
호우주의보가 내려 굵은 비가 쏟아질 때는 소리가 다르다.
마당 자갈에 비 쏟아지는 소리, 집 주위 벗꽃나무 감나무 뽕나무 오가피나무 등 온갖 나무들이 내는 소리, 저 산비탈 숲에서 내는 소리들, 쒸~잉하는 바람 휘몰아 치는 소리 따라 '쩌~억 쩍' '뚜두둑' 가지들이 찢어지고 부러지는 소리들.....
자연 소리들의 그 묘한 어울림!
어떤 교향곡도 흉내내지 못할 정말 멋진 소리다.
집수리를 한 이후부터는 오래된 집이라, 호우경보 때마다 걱정이 돼서 시골 올라왔다가 몇 번 들어본 소리다.
은근한 두려움과 함께 자연 현상에서 느끼는 저릿저릿한 긴장감!
묘한 매료감도 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두려워한다고 안 올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부 지방에 비가 150 밀리나 온다기에, 이번에도 고향 집도 둘러볼겸 올라왔다.
만반의 비 설거지를 미리 해놓고 은근히 5일을 기다린다.
창문을 다 열어놓았는데도 아직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린다.
저수지에 통발을 던지는 건 어릴 때 추억을 되새기기 위함이고.....
2023년 7월 3일 아침 7시 39분,
시골에서 대충 잡아온 초안을 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