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계시에 절묘한 요소가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 실제 발생한 인생사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다룬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낭만주의와 거리가 멀다. 냉혹하리만치 사실에 근거해 있고 그 사실을 폭로하는 일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무죄한 의인이시면서도 십자가형을 당하신 이면에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작용한 사실은 흥미롭다. 예수님의 활동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됐던 것이다. 그 사회는 오늘날로 말하면 신정국가였다. 하나님의 법이 곧 그 나라의 법이 돼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당시 이스라엘 국가의 대제사장 그룹을 포함한 사두개인들, 헤롯당과 함께 세속의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더욱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 등장하신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해석해 가르치시면서 백성에 참된 삶의 길을 보여 주셨다. 곧 종교적 지도자가 되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자연히 정치적 지도자가 되신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필연적으로 유대 사회의 정치 권력에 맞서게 되신 것이다.
구약 성경 자체가 하나의 종교 경전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 현상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줬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가르치셨으므로 자연히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정치와 경제 같은 모든 문제에 관해 가르치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기득권층의 잘못을 지적하시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대안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였으니 기득권층에서는 ‘예수가 혹시 반란을 획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했다.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예수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함께 담당하고 있음이 그들 판단이었다. 민중도 예수님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 흔적이 요한복음에 등장한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민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한 사실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기득권층은 결국 예수님을 자기들 특권을 향한 위협으로 간주할밖에 없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기득권층도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해 부를 획득했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누린 호화로운 생활은 그들이 소유했던 목욕탕 규모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다른 삶을 사셨고 그 삶 자체가 그들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런데 가르침은 더했다.
만약 군중이 예수님께 무관심했다면 예수님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든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군중이 예수님께 열광했고 추종자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이건 그들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고 다양한 까닭을 찾았다. 예수의 존재가 로마를 불편하게 해 이스라엘 국가의 안위를 위협한다는 까닭부터 성전을 모독했다는 까닭까지 다양한 까닭 들이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예수가 율법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죽이려면 법을 어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법을 생각해 냈고 예수님께서는 결국 사법 살인을 당하신 것이다.
그 모든 것 배후에 당시 기득권 질투가 숨어 있었음을 노회한 빌라도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때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
그들 시기는 절대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질투였다.
그 이후 역사에는 이렇게 한 사회의 개선을 추구하다가 기득권층에게 사법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기득권층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착취당하면서도 그들에게 협력한 어리석은 민중이 있었던 것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첫댓글 기득권층에게 착취당하면서도 그들에게 협력하는 어리석은 민중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역사적으로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이러니 한 사회의 개선이 이토록 어렵네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