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도 박원순도 모델인 싱가포르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비즈니스워치|원정희|2022.08.05.
1. 마리나베이샌즈, 마리나원
싱가포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마크이다. 직접 보면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이런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왜 없을까하는 아쉬움이 자연스레 생긴다.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오 시장뿐 아니라 싱가포르를 방문한 역대 서울시장들은 이곳을 방문하면 각종 개발구상을 쏟아낸다.
2. 오세훈 시장은 '화이트 사이트'에 꽂혔다
오 시장은 이번 싱가포르 방문에서 '화이트 사이트(White site)'를 언급했다. 이는 용도지역 등 토지이용규제를 완전히 풀어 유연한 개발을 유도하는 포용적인 도시계획을 말한다. 이 덕분에 마리나베이샌즈나 마리나 원과 같은 창의적인 건축물이자 초고밀 복합개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를 용산이나 세운지구 개발에 적용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화이트 사이트는 오 시장이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하 서울플랜)'의 '비욘드죠닝'과 비슷한 개념이다. 용도지역제(건물의 높이, 용적률 등을 규제)를 전면 개편, 용도 도입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화이트 사이트는 비욘드 죠닝보다 훨씬 더 유연한 제도라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협의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도해 봄직한 제도라고 전문가들도 보고 있다.
3. 박원순 전 시장, 여의도 통개발하려다?
'싱가포르식 개발구상'은 오 시장이 처음은 아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8년 7월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의도 통개발 구상을 밝혔다. 여의도를 통개발하고 용산일대까지 묶어 한국의 맨하튼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당장 집값이 요동을 치면서 중단된바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싱가포르 구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0년 1월 시무식에선 "궁극적으로 집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집이 제공되는 그런 나라가 돼야 한다"며 "싱가포르는 공공임대주택이 92%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박 전 시장은 재임기간 여러차례 싱가포의 공공주택 공급비율을 언급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선 90%대에 달하는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공급비율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4. 오 시장, 고품질 임대주택에도 꽂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우며 '고품질 임대주택' 공급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해법 역시 싱가포르에서 찾은 듯하다. 싱가포르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PLH(Prime Location Housing)이다. 중심업무지구 인근에 직주근접이 가능한 저렴하고 품질 좋은 공공주택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중·저임금 근로자를 대상으로 말이다
오 시장도 이같은 정책을 빗대어 "자산이 부족한 신혼부부, 청년, 사회초년생 등도 직주근접 고품질 아파트에 살수 있도록 도시 외곽이 아닌 도심, 역세권에 집중 공급하겠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세대통합 주거단지인 '캄풍 애드드미럴티', 친환경 스마트시티 '풍골 에코타운' 등도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공공주택 모델로 소개했다.
5. 정말 우리나라에서 가능?
참 좋죠. 문제는 서울시장들이 꽂힌 싱가포르식 구도심 복합개발이나 공공주택 모델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역대 서울시장들이)싱가포르에 가서 건물만 보고 온다"며 쓴소리를 한다. 개발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결국 행정 거버넌스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지자체)이 유기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미 여기서부터 삐그덕거리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시청-구청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오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발표한 구상중 은평 '골드빌리지'에 대해선 은평구청장이 바로 반대입장을 내놓기도 했다.비욘드 죠닝의 근거를 담은 '국토계획법' 개정이나 특례법 재정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에서 컨트롤하는 상위법과의 충돌문제도 발생한다.
6. 싱가포르는 많이 달라요.
싱가포르는 인구 590만명의 도시국가이다. 중앙과 지방의 개념이 없다. 60년대초 리콴유 초대총리부터 그의 장남 리셴룽 현 총리까지 사실상 단일정권이 이어지면서 국가 주도의 개발이 가능했다.
토지의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는 점은 대량의 공공주택 공급을 가능케 했다. 싱가포르는 60년대초 대부분의 토지를 국유화했다. 이 토지에 주택개발청(HDB·Housing&Development Board)이 주택을 지어서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다. 90%대의 공공주택 공급율은 결국 땅이 국가소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3기 신도시만 해도 토지보상에 수년이 걸리는 상황이다. 보상가에 따른 반발도 크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유무형의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저렴한 주택공급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 안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7. 우린 땅도 없고 주민 반발도 심해요.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은 "SH가 반값아파트 공급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SH나 LH가 감내해서 혹은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면서 "결과적으론 재정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경우 사후정산 개념으로 주택을 짓고 이에 대한 재정지원을 보장하기 때문에 고품질의 공공주택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사전에 표준형건축비 등으로 공사비를 미리 정해두고 하기 때문에 고품질의 주택을 짓기에 애초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층고밀의 직주근접 입지에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데 대해서도 여전히 상반된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부 교수는 "싱가포르도 공공주택을 민영화(민간에 매각)하는 구도로 가고 있는데 프라임 로케이션 하우징을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여러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고층고밀로 막대한 돈을 들여 공공주택을 지어 저소득층이 살게 되면 공공자금의 누수현상이 심하고 군집이 만들어내는 외부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며 "이런 이유로 소셜믹스를 하지만 이 경우 반대로 공공자금으로 돈 있는 사람에계 혜택을 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고민을 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는다.
싱가포르식 개발구상을 앞세우기 이전에 패스트트랙을 통해 도시개발에 소요되는 의사결정을 단순화하고 수명이 다한 준공업지역 등 땅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일관되게, 중장기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조언은 지속해서 나오는 상황이다.
원정희 (jhwon@bizwatch.co.kr) 기사 내용을 보완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