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마음이 맑은 사람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한 조각으로도 구만장천을
달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며, 하늘 아래 이슬 머금은 풀잎 하나의 떨림에도
가슴은 공명으로
함께 떨리고 손끝은 다가가 쓰다듬어 주고 싶어하리라.
그러나 영혼이
혼탁한 사람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재리와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이 세상의 명예와
돈과 권력을 거머쥐는데
몰입해 있을 뿐이다.
먹고 마시고 씹고
들이 부어서 배가 산더미처럼 솟아올라도 만족함이 없이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두리번거릴 때,
여기서! 예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라는 말씀에 쾌재를
부르며 호재를 만난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내 예수, 자나깨나
내 예수,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시험에 패스하게 해주세요. 출세하게 해주세요.
쌓을 곳이 없도록 부자되게 해주세요.
뭇 사람들 사이에서 꼬리가 되지 말고 꼭대기 머리가 되어 거느리는
리더가 되게 해주세요.
땅 아래로 꺼지지 말고 팔짝 뛰면 머리가 하늘까지
닿게(머리가 깨지든 말든^^) 해주세요.”
라고 장황한 기복기도를
늘어놓는 게 오늘날 기독교단과 기독인들의 현실적
기도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세상 탐욕에 썩을대로 썩어서
온갖 부정축재의
비리와 염문으로 악명을 날리게 되자
세상사람들로부터
짓밟혀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몰골로 추락해 있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이는
사실 태초부터 예정된 시나리오이며 멸망받을 기독인의 운명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시행하리라 했는데
과연 예수님이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으로서 천국을 구하도록 하셨지 이 세상 임금이 되라고
아니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지 가이사의 것을
구하라고 하지
아니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명예, 돈, 권력 등, 세상 것을 구하라고 하시지 아니했다.
그런데 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리라고 하셨는가?
이게 무슨 말씀인가?
예수님은 천국비유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들어 말씀하지 아니했던가?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밭은 눈에 보이게
드러나 있고, 보화는 그 밭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 있다.
눈에 보이게 드러나
있는 밭은 세상 것이라면
그 속에 감추어
있는 보화는 천국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듣기로는 마치 그 개념상 세상의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지만, 그 본질적 실상의 내용인즉
밭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추인 보화(천국)를 말씀하신 것이 된다.
감추인 보화는 천국이다.
따라서 천국에서의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의
무엇이든지는 무엇이기에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가?
사실 엄밀히 말해서
천국에서의 무엇이든지는 없다.
엄밀히 말해서
천국에서는 천국 하나면 무엇이든지 완성으로 충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 하나를 구하면 그 천국을 이루어 주신다는
그 말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구태어
무엇이든지 라는 말씀을 삽입하셨을까?
이는 그만큼 세상적
관념에서 도입된 언어적 표현방식에서다.
즉 예수님은 말씀을
쉽게 하시지 아니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깨달을 것이고
미련한 자들은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어 하신 말씀이 되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사실 무엇이든지는
완성된 “하나의 천국” 에서도 해당이 된다.
그러면 이제 천국에서는
왜? 천국 하나면 무엇이든지 완성이 되는지
그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남녀의 인생일생을 살펴보자.
우리는 흔히 아기가
태어날 때 “고고의 울음을 터뜨리고” 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고고의
울음이 아니라 엄마의 좁은 산도를 뚫고 나온 아픔의 울음이다.
엄마의 출산의
아픔과 아기의 출생의 아픔은 동일하다 하겠다.
예수께서는 영생의
부활 때에는(천국에서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간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선 이런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아픔이고 영생의 천국에서는 이아픔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신생아로 새 몸을
받았기 때문에 아픔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성장하면서 계속
온갖 선.후천적 질병과 약골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으며
정상의 성인에
도달하지만, 성인에 도달하자마자 먹고 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리며 인생의
프레임은 하향곡선으로 내리 꽂이게 마련이다.
(이것은 세상의 아픔이고 영생의 천국에서는 이아픔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청장년의 성인에서
노화가 촉진되어 늙어가는 몸이 될 때 그 비참함을 아는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은 쭈글쭈글하게 비쩍 마른 몸뚱아리에
아프지 않는 곳이
어디 있던가?
꼬부라진 작대기
모양 생기 마른 수수깡이 되어 눈도 먹고 귀도 먹고
정신도 먹어 치매까지
곁들여진 상노인의 갈곳은 무덤뿐이다.
(이것은 세상의 아픔이고 영생의 천국에서는 이아픔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누가 아프고 싶고,
누가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싶고, 누가 고통으로 자살하고
싶고, 누가 불의의
사고사를 당하고 싶고, 누가 악한 세상살이에서
상처받고 싶고,
누가 늙고 싶고, 누가 늙고 병들어 죽어 무덤에
묻히고 싶은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 세상살이에서는 불가피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것들이었다.
왜인가? 그것은 창조가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미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 때분에 생노병사가 온 게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아직 미완성에 있기 때문에 생노병사가 있었던 것뿐이다.
인간의 죄 때문에
생노병사가 있다는 말은 창조주하나님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즉 하나님의 진리를
까뭉개려는 악마나부랭이들의 악다구니들이다.
옛뱀 바울이 그
악마의 선두주자이며, 범기독인 모두는 그 추종자들이 된다.
그리고 고통의
세상살이라고 해서 마귀가 지은 게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셨다.
악한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미완의
처음 하늘 처음
땅이 된다.
창조미완의 세상이기
때문에 온갖 고통과 악과 늙음과 사망이 있었다.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알파(창조의 시작)” 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알파세상임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왜? 세상에
악이 있고, 전쟁이 있고, 환난이 있고, 사망이 있도록
버려두는가? 라고
맹비난하며 창조주
하나님과 성경과 진리를 저주하고 있다.
겸손히 차분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교만한 목을 치켜세우고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질탕으로 저주하면서
하나님과 성경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마치 최고 문화문명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드름
피우니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자들이 아닌가?
이러한 맹비난과
저주를 종식시키고,
다시 말해 창조미완의
세상의 모든 악한 근본과 현상을 종식시키고
창조완성의 새
하늘 새 땅 천국에 대한 약속을 선포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저 이천년
전, 그 당시에 천국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고
오늘날 재림 때
이루실 것을 미리 선포하고 예언하러 오신 분이다.
오늘에 이루실
것을 미리 선포하신 그 말씀인즉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였다.
예수님은 오늘날
재림하셔서 마침내 창조완성의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영생을
주시고 모든 아픔을
멸하실 터이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신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이 오메가 하나님이 되신다. 오메가란 창조완성을 뜻한다.
창조 미완성이
먼저 있었고(알파), 창조 완성은 나중에 오게 되는 것이다(오메가).
창조완성(오메가)의 천국에서는 영생이 주어지고 영생 안에는 그야말로
상술했듯이 모든
인류의 소원성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가
성립된다.
독자들이여! 아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