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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37편 11절 하나님을 즐거워하라-화평케 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여러분 세계의 질서는 누가 잡아나갈까요? UN일까요? 미국일까요? 아니면 유럽일까요?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자기가 먹고 살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 이상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남을 해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해치지 않을거야”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 신경 안쓰고 오직 자기 일에만 신경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이 성경 사사기를 보면 단 지파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시달리다 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서남쪽 살던 단지파는 북쪽으로 땅을 참지하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 이름은 라이스입니다. 사사기 18장 7-10절을 보면 그들에 대하여 단지파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라이스 사람들은 평온했고, 안전했으며, 평화로웠고, 땅은 넓고 매우 좋았습니다. 그 땅에서 그들은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어서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갖추고 살 정도로 부를 누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기들 외에는 주변의 그 어떤 사람들과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변 부족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소식을 들어도 그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평안하고 안전하며 풍요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상관하지 않는데요. 하지만 이들의 삶의 내면에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교회, 다른 지방, 다른 나라에 대한 무감각이 이에 속합니다.
물론 라이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사랑을 나누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만의 세상을 산 것입니다. 단지파 정탐꾼들이 보았을 때 이 라이스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좋게 보였습니다. 마치 천국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도 역시 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겔 16장 49절을 보면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빗대어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앨의 죄가 소돔의 죄와 같았고, 어떤 것은 소돔보다 더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죄악이 뭐냐하면 자기들은 풍요롭고 태평하게 잘 사면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과 화평하게 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6.25때에 북한이 밀고 내려왔는데 그때 북한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소작농들이었습니다. 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일은 죽어라고 하면서도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을 해야 했고, 자녀들은 그 지주의 집에 종으로 팔아야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북한군의 앞잡이가 되어 지주들을 고발하고 그 가족들을 다 죽게 만들고 그 재산을 털어갔습니다. 누가 죄인이며 누가 악인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둘 다 죄인이고 둘 다 악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을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때인가 그것을 반드시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어느 쪽을 심판하십니까? 두 쪽 다 심판하십니다.
지주들은 자기들이 빼앗았던 사람들을 통해 망함을 받게 되었고 그것을 빼앗겼다고 공산당들의 편에서서 학살을 저질렀던 그들은 후에 대한민국의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도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들의 지파는 작은 땅에 블레셋 사람들로 인해 항상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서 겨우겨우 사는데 이 라이스 사람들은 너무나 풍요롭고 안일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변과의 화평이 없었습니다.
단지파는 이 라이스를 단지파의 땅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뽑고 뽑은 사람들 600명이 무기로 무장해서 라이스를 기습했습니다. 그로인해 안일하게 행복을 누리던 라이스 사람들은 제대로 저항한번 못해보고 무너졌고 모든 남자들은 몰살을 당했습니다. 물론 약속의 땅을 정복한 것이었지만 단지파는 이 과정에서 미가의 집에서 강제로 빼앗은 드라빔 우상을 가지고 올라가 자기들의 지파가 섬길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로인해 단지파는 하나님의 영적인 상속에서 제외되어 요한계시록의 택한 자들의 수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역시 나라 안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려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기독교가 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그렇게 다른 나라를 돕는 일에 앞장서는 기독교의 선교헌금에서조차 세금을 매기겠다고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일들을 눈감고 모르는 척하는 것입니다. 만일 6.25때 다른 나라들이 지금의 우리 나라처럼 다 외면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가 되어서 지금 김정은 밑에서 지금 북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처럼 온갖 불의한 일들을 당하고 또 갖은 착취를 당하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민족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역시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뭐든지 하고,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뭐든지 합니다. 그리나 주변에 있는 가난과 극도의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지는 않습니다. 이가삼 때문에 전혀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 역시 사랑하셔서 여러분들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역사이며 또한 화평케 하시는 역사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는 거기에 병자와 귀신들린 자, 그리고 약한 자들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눌린자, 갇힌 자등 사회적인 약자들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볼 때 영적으로 죽은 자나 병든 자들도 포함됩니다. 이들이 교회인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돌볼 대상들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나 우리 교회가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사람들에게만큼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과 같이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화평의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그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움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인도하시고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일에 자신을 산제사로 드리신 결과로 인해 자신이 이루실 화평의 날이 전세계적으로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화평을 깨치는 악인중의 악인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역사에는 훼방자인 사탄도 따라다니면서 훼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다가 멈추는 이유가 바로 이 사탄의 훼방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귀의 훼방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화평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부터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잘되면 하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서 맡시신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아직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날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온 세계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위한 나라의 실체를 드러내실 때가 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개인과의 화평, 그리고 교회와의 화평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시편 37편을 보면 악한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악을 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 때문에 신경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떻게 신경쓰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다만 그들로 인해 불평하게 되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점점 그 악인에 대한 미움과 보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하신 그 은혜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7-8절의 권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다윗은 이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터득했습니다.그래서 1-2절을 보면 이렇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말은 그런대로 이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그 배후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고 불의한 자들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저것은 분명한 죄이며 또한 악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아무 심판이나 보응도 하지 않으셔서 악인들이 잘 나가고 전혀 막힘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오히려 어렵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오히려 권세도 잡고 부귀영화를 다 잡은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고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난 뒤부터 생긴 그리스도인들의 의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고난을 받고, 반대로 엉뚱한 것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복을 비는 사람들은 잘먹고, 잘 살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죄악이 점점 관영해지는 세상을 방치해두고 계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의 후예는 하나님을 떠났는데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벨대신 주신 셋이 후예는 태어나고 결혼하여 살다가 아이를 낳고 죽을 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인의 후예는 온갖 것을 만들며 재주를 다 부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당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의로운 노아가 만드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볼 때 아무 쓸모도 없이 보이는 방주 뿐이었습니다.
방주는 현실성도 없어 보였고 그 당시 생활하는데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헌 셋의 후손조차도 먹고 입고 사용하며 즐기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더 많이 쫓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이루실 공의로운 심판을 대비하여 자신의 성령을 통하여 구별하신 거룩한 성도들에게 영적인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구원의 방주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단순히 교회라고 보기에는 교회에게 주신 비젼은 엄청나게 크지만 개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다만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전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구원의 방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그러나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 가운데 임하시면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지구에서의 긴 역사를 통해 확장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누군가를 통해 새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에녹에 대한 이야기와 노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경건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브라함 밖에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주셨고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신 하나님 나라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원한 나라를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세우려고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인 이스라엘을 이 땅에 세우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보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계속해서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녀를 만들기 위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부모님들의 그 어려운 수고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께서고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이삭을 택하셨고, 또 야곱을 택하셨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시도 그들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시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가 바로 하나님의 고민이며 근심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비롯한 많은 법들을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배워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화평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며 또한 이웃과의 화평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의 화평을 깨뜨리기 위해 시도합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한 죄를 계속해서 참소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왜곡시키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죄는 지식이 있어도 그 지식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죄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부딪친 것입니다. 자기들은 자식적으로 하나님을 안다도 하면서 예수님을 공격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로 연합되어 화평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대한 것처럼 이스라엘과의 친밀한 사랑을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복만을 원했습나다. 회평은 종교적인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아들과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화평케 된자가 얻게될 화평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땅에 머무시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 거기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 성 우물 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시면서 자신의 진정한 양식이 무엇인지를 보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있던 사마리아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우셨을까요? 오늘 본문인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이다”하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뵙는 화평의 사람인 여러분들에게 다윗은 권고합니다. 4-6절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의 길을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의 길을 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밝히 드러내십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아뢰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행하기 의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의 의를 따라 행하신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들의 의와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밝히 빛나게 해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옳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이 믿을 때도 있습니다. 악한 자가 자기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분들의 말이나 행동을 왜곡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 억지와 허위증언들이 많이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지 않은 말도 만들어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진리만을 선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어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판결하시기 위해 보좌에서 일어나시는 날이 있습니다. 또한 보좌에서 일어나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진리로 세상의 불의를 밝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때는 그 누구도 자신의 불의를 숨기지 못합니다. 감취었던 진실들이 밝히 드러납니다. 그때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여러분들이 진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여러분의 의와 공의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자들은 사란들 앞에서도 역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악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불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9-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집니다. 죽음을 당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얻기를 추구하던 모든 것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이 땅에서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으로부터 끊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그렇게도 그들이 얻고 싶었던 것의 대부분의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그들의 손에서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일평생 달려왔을 지라도 자기들이 빈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인생의 가장 큰 허무가 자기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만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상과 화평한 줄로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의지했던 것을 잃었을 때 세상도 떠나간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고 다른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할 때 혼자서 그렇게 아버지의 많은 돈을 탕진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달라붙어서 그 돈의 혜택을 누리려고 했던 친구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탕자는 그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자기가 가진 돈을 그들을 위해 많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돈이 다 없어진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친구라고 하면서 함께 즐겼던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먹고 살길이 없었던 그는 돼지 우리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탕자 자신의 인생을 돼지 우리에 던진 것이 누구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아니면 돈을 보고 달려든 세상 친구들입니까? 아무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돼지 우리로 몰아간 것입니다. 다행히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으면서 아들의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언젠가 돌아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아들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 가운데는 복음을 듣고 안 믿은 사람들도 있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안 믿은 사람은 자기 책임이지만, 복음을 듣지 못한 것은 교회가 전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큰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한 사람은 늘 쫓기는 삶을 살며 순간의 즐거움은 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공허하고 허무하여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외로움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가까이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다란 담을 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로워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쳐놓은 담으로 인해 혼자 고립된 삶을 삽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알아주는 듯한 사람을 보면 오직 그 사람과만 지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사람만 자기의 친구로 여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지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꾸만 자기에게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니까 그럴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그 사람을 비판하면서 마음 문을 닫아버립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평하십시오. 진정으로 큰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맞는 일을 해주시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통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복이 그 사람들에게도 역시 넘쳐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편 37편 11절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애동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세상의 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음으로 인해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계십니까? 사도행전 10장 36-38절을 보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화평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과도 화평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과 화평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든지 하나님은 화평을 누리게 하십니다.
로마서 5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진 사람들은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로마서 14장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9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 중에 즐거워하며 에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알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이는 내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자신과 세상에 화평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바로 화평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화평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어 성령받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시는 화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온 세계 가운데 확장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들 역시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즐거워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즐거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서로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화평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의 욕심도 역시 끊어내지 못합니다. 자기들의 명예를 지키느라고 정작 가난한 자들의 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워낙 높여 놓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잡지는 못합니다. 물론 가끔 흉내는 내기는 합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벨탑의 또 다른 모형일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만이 이 세상에 화평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으로 세계 질서를 잡아가시며 그것은 진리에 입각한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일에 십자가를 질 사람들을 찾고 계시며 십자가를 질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교회가 살면 나라가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할 때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나라의 영광을 여러분들과 우리의 뒤를 잇는 믿음의 사람들, 곧 제석교회의 후예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