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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공단지 야사 ! 외 3편 (콩트 모음집)
작가:백화 문상희
*자랑 같아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유튜브에
올린 소설 작품들이 조회수를 20만을 훌쩍 넘어
독자들과 김인희 작가님의 원고 청탁으로 이어져
이번엔 콩트 3편을 유튜브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이 제작되면 바로 올려드리겠습니다.
1) 농공단지 야사
2)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요?
3) 절간에 길손
(3) 농공단지 야사 (콩트)
작가: 백화 문상희
한적한 시골마을 외곽에 다섯 동의 농공단지가
있었다.
그중에 한 곳인 대농위생이라는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은 농약 흡입 방지 마스크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공장이있다.
농공단지는 기업의 부가창출과 동시에 농어촌
일자리 돕기 등 두마리 토끼를 잡는것이다.
대농위생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중에 코로나
재난이 불어와서 공장에 대박이 터진것이다.
전국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 주문이 산더미같이
밀려들어 야근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공장엔 거의가 빈농집 아낙들로 채워져
농촌 가정에도 실질적인 도움이되는 것이었다.
대원위생 공장엔 남자라고는 공장장 이도원과
트럭 배송기사 김태원과 사장님 뿐이었다.
아주머니 열명 중 일곱 명은 남편이
퇴근시간에 차로 태워가고
남은 과부 세명은 기숙사에서 머물렀다.
무료 숙식제공이 되었기에 쉬는날 아니고는
궂이 집으로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네 세명은 나이가 한두 살 차이였으며
친 자매처럼 지냈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였다.
사십 대 후반의 여우같이 생긴 이명자와
동갑내기 호박씨 잘 까는 조혜순은 청춘과부였다
두 살 위인 오십 세 주기숙은 주식투자로 재산을
날려먹고 삼 년 전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어느 날 주기숙은 주간일을 끝내자마자
동창생인 영미에게 카톡이 온 것을 보았다.
기숙이는 일하는 시간에는 하루종일 서있어야
했기에 구석지 자리에서 카톡을 열어보았다.
"기숙아 잘 지내고 있니?
내가 너에게 주식투자를 권유해서 재산을 전부
날리게 만든 죄책감에 나는 할 말이 없단다 기숙아!
그래서 그 일로 인해 이혼을 한 것도 알고 있단다!
나도 너와같이 주식투자로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이혼을 당하고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단다!
어쨌거나 미안하다 기숙아!
이미 엎질러진 일이나 마음을 다독이며 살자꾸나!
너나 나나 과부 신세니까 야한 동영상이나 자주
보낼 테니 그것을 보면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여하튼 잘 지내고 염치없지만 동창회 때나
보도록 하자. 친구 영미가."
기숙이는 귀가 얇아서 주식투자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친구 영미의 꼬드김에 넘어가 큰돈을 잃었다.
그래서 남편과 대판 싸우고 이혼을 당한 것이다.
기숙이는 주식투자 사건 이후 영미와는 관계가
소원해져서 한동안 연락이 없었었다.
기숙이는 저녁 식사 전 궁금증에 막간을 이용해서
영미가 카톡으로 보내온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기숙이는 구석지에서 동영상을 열어보니 물건 좋은
양 것들 교미장면에 홀딱 빠져버렸다.
기숙이는 생전 처음 보는 동영상이라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동영상에는 서서 쏴, 엎드려 쏴, 앉아서 쏴, 뒤로 쏴,
등, 동물들의 교미자세까지 담겨져 있었다.
기숙이는 오랫동안 남녀관계를 못해 침을 꿀꺽 삼키며
동영상을 보느라 속옷까지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에이! 영미 가시내야!
이렇게 좋은 것이 있으면 진작에 보내줄 것이지!
여하튼 고맙다 영미야 히히히!"
기숙이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온몸이 달아올라
신음소리까지 내가면서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기숙이가 동영상에 빠져있을 때 퇴근을 하려던
김기사가 지나가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보았다.
기숙이가 쪼그리고 앉아있던 곳은 후문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 김기사가 그 장면을
보게 된 것이었다.
역시 오십 대 중반의 홀아비인 김기사는 칸막이
너머로 살며시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명자와
혜순이가 기숙이에게 말을 건넸다.
순간 김기사는 급하게 몸을 아래로 숨겼다.
"언니~, 저녁 안 먹고 뭐해요?
언니가 안 보여서 우리끼리 저녁 먹었잖아!
문 닫기 전에 얼른 가봐요!"
"응, 알았어 고마워!"
"나는 공장장님이 드라이브시켜 준데서 갑니다!"
공장장과 눈이 맞은 불여우 명자가 그렇게 말을
하고 사라졌다.
호박씨 잘 까는 혜순이는 유원식 사장의 현지
애인이었다.
유사장도 처음엔 집이 멀어도 퇴근을 하였으나
혜순이가 꼬드기는 바람에 애인이 되었고
혜순이와 어울리다 보니 주말에만 퇴근을 했다.
오십 대 사장님은 30km 떨어진 시내 아파트에
집이 있었다.
유사장은 혜순이와 애인이 되고부터 부인과는
주말부부가 된것이다.
유사장은 혜순이와 눈이 맞아서 거의 동거를
하다시피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혜순이는 사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에는 모두 퇴근을 해서 아무도 없었고
김기사와 기숙이 둘 뿐이었다.
기숙이는 김기사가 칸막이 너머에서 지켜보는 줄도
몰랐고
동영상을 보다가 오르가슴의 절정에 도달해 버렸다.
삼 년 이상 독수공방을 했으니 양 것이 들어오는
착각에 홍콩에 도쿄를 찍고 마카오까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세계일주를 한 것이다.
명자와 혜순이가 사라지고 그때서야 시장끼를
느낀 기숙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숙이가 일어나며 그제서야 동영상을 훔쳐보고
있던 김기사를 발견했다.
"어머, 김기사님!
기척도 없이 훔쳐보시면 어떡해요!
아이고, 창피해라 어떡해요 김기사님!"
"걱정 마세요 기숙이 아주머니!
주식투자로 인해서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비밀을 지켜드릴것이고 또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기숙이는 동영상을 보면서 손으로 자위한 것을
들켜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김기사 역시 예전부터 기숙이에게 교제를 하고픈
마음이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김기사는 이미 공장에 불을 끄고 기숙이에게
다가와 뒤에서 꼭 껴안고 있었다.
"기숙 씨, 창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아내를 잃고 나서 수시로 자위를 한답니다!
그러니 그런것은 걱정하지 마시고 저하고
치맥이나 한잔하러 갑시다!"
김기사는 어쩔 줄 몰라하는 기숙이를 부축하듯
않고 트럭으로 향했다.
김기사는 1km 남짓한 집으로 기숙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필요가 없었기에 김기사는
기숙이를 않고 침대로 향했다.
기숙이는 동영상을 보고 이미 기분이 고조되어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기숙이는 김기사가 하는데로 따랐고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홀아비와 과부는 그렇게 침대에서 화끈하게
몸을 불살랐다.
일이 끝나고 나자 기숙이는 부끄러워 김기사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저~, 김기사님!
불 켜지 마세요!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답니다!"
"아이고 기숙 씨, 무슨 말씀을요!
인간은 누구나 자위를 할 수 있는 다 똑같은 동물입니다!
저 역시 혼자된 지가 오 년이 됐답니다!
솔직히 기숙 씨만 괜찮다면 저는 여기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정말로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답니다!"
"그나저나 기숙 씨도 저녁을 못 먹었으니
잠시만 앉아계세요!
늦어서 배달이 안되니까 제가 가서 뭐 좀 사 올게요!"
"예, 알겠습니다 태원 씨!"
기숙이는 잠자리도 했겠다, 그래서 김기사를
태원씨라고 불렀다.
김기사는 방에 불을 꺼둔 채 차를 몰고 장터로 갔다.
기숙이는 김기사와 오랜만에 잠자리를 했다지만
혼자 있기도 무료해서 보던 동영상을 다시 보았다.
"어떻게 이런 장면을 이리도 실감 나게 찍었을까?"
기숙이는 중얼거리며 동영상을 보다가
차소리에 얼른 동영상을 껐다.
"기숙 씨, 이제는 방에 불 켜겠습니다!"
김기사는 치킨 상자와 맥주가 든 봉투를 들고
들어오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참, 이제 얼굴 들어도 됩니다!
우리는 이미 한 이불속에서 뒹굴었는데 도대체
뭐가 창피합니까?
자~, 홀아비와 과부댁이 오늘 합방한 기념으로
치맥파티를 합시다!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기숙 씨!"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기숙이는 거실 쪽으로 나왔다.
"저를 공장에서는 그냥 김기사라고 부르지만
정식으로 인사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오십 오세 홀아비 김태원입니다!"
"네~, 그러몃 저도 똑같이 대답을 할게요!
저는 오십 세 과부 유기숙입니다 호호호!"
"자~, 그러면 홀아비와 과부가 이렇게 만났으니
축배를 듭시다 건배!"
그제야 기숙이도 배시시 웃으며 건배를 했다.
"저는 오 년 전에 아내가 간암이 폐로 전이되어
저세상으로 갔답니다!
어쩌다 보니 벌써 오 년이 지났네요!"
"네~, 그러셨군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이고 벌써 오 년이나 지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누라 죽으면 변소 가서 키득키득
웃는다는데 저는 그래도 삼년상까지 치러줬으니
그만하면 됐지요, 안 그렇습니까?"
"네~, 그건 그러네요!"
"아이참, 이제 그런 말 집어치우고 한잔 합시다!"
두 사람은 허기도 채울 겸 치킨과 맥주 세병을
게 눈 감추듯 비워버렸다.
"기숙 씨,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살림을 합치도록
합시다!
기숙 씨 먹여 살릴 정도의 재산은 있으니 걱정 마세요!
솔직히 나도 공장에 세분 과부댁 중에 기숙씨가
마음에 들어 이런 말을 하려고 기회를 노렸답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요 이 사실이 공장에 알려지면
공장 사람들이 뭐라고 흉을 볼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저도 사실은 태원씨는 어떤사람일지 궁금했답니다!"
"아이고 기숙 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홀아비와 과부가 만나서 재혼을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그런답니까?"
"그러면 저는 모른 척하고 있을 테니 김기사님이
알아서 진행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기숙 사모님, 하하하!"
두 사람은 그렇게 협의를 끝내고 술기운에
침대로 가서 2차 러브씬을 펼쳤다.
이튿날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김기사는 곧장 사장실로 들어가서 재혼 소식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실은 저도 홀아비로 살고있는데 과부인 주기숙
씨를 만나서 저들 둘이 결혼을 하기로 했답니다!"
"아이고~, 김기사!
재주도 좋구먼요, 세명 과부 중에 제일 예쁜 분을
꼬드겼네요 하하하!
여하튼 축하드립니다!
이참에 우리 공장 홍보도 할 겸해서 우리 공장에서
결혼식을 하도록 합시다!"
"예~, 고맙습니다!
사장님이 허락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시내에서 7080 주점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밴드도 올 수 있도록 부르겠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여우 닮은 명자와 호박씨
잘 까는 혜순이는 부러워서 죽는시늉을 했다.
"아이고 기숙이 언니!
날 보고 호박씨 잘 깐다면서 언니가 호박씨는
더 잘 까네요 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날 보고도 백여시 닮았다고 하더만요!
기숙이 언니가 진짜 백여시네요 뭐!"
"그래, 그러고보니 나도 할말이 없어졌네 호호호!"
기숙이는 그렇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토요일 오후
대농위생 공장에서 헌랑 김태원과 헌부 유기숙의
성대한 결혼식이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결혼식 하객으로는 공장 아주머니들과 남편도
동행하였고 주례는 면장이 서 주었다.
"에~, 신랑 김태원 군과 신부 유기숙 양의
결혼을 축하드리는바 이며
음~! 각설하고, 힘 좋을때 부지런히 밤일을 해서리
참외밭에 노란 참외가 주렁주렁 열리듯이 줄줄이
늦둥이 탄생을 기원드리며 이만 주례를 마침니다!'
면장의 주례사에 폭소가 터져나왔고
두사람 다 재혼이었기에 결혼식은 간단하게
마무리 하고 바로 피로연 파티로 이어졌다.
이어서 사장님 친구가 연주하는 전자올겐 축하
무대에서 공장 아주머니들과 하객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생음악 연주가 흘러나오자 바로 즉석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다.
백여시 명자는 공장장과 찰싹 달라붙어 보란 듯이
춤을 추었다.
또한 조혜순은 눈치도 모르고 사장님 옆에서
춤을 추었으니
멀리서 지켜보던 사장 사모님은 불쾌한 표정을 지우며 얼굴을 찌푸렸다.
김기사 김태원과 주기숙의 결혼식 이었지만
사실은 대농위생 공장의 축제가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농공단지 야사에 기록될 홀아비와
과부의 재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ㅁ
(2)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요~?"
오늘은 용천골 부농인 하서방네 타작하는 날이었다.
하서방 생긴 것은 영락없는 생쥐꼴이었으나
부친에게 물려받은 땅이 백 마지기 천석꾼이었다.
하서방은 어릴때부터 난청으로 귀가 잘 들리지않아
주로 혼자서 말을 하였고
상대의 입을 보고 대충 알아들었다.
그런 이유로 하서방은 동네 아이들과 구두쇠라고
흉보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오늘은 동네 장정들을 불러서 하서방네 타작을
하는 날이었다.
하서방 집 널찍한 마당엔 나락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장정들이 타작을 하고 있었다.
위이잉~위이잉~! 탈곡기는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놈의 탈곡기 차암 실하게 돌아가는구먼!
농땡이 부리지 말고 빨리빨리 하드라고 잉?"
하서방은 뒷짐을 지고 일꾼들을 독려했다.
머리에 수건을 불끈 동여맨 장정 일꾼이 네 명이었고
그중에 돌쇠 그놈의 힘이 장사였다.
"돌쇠야~, 딴전 부리지마라잉~?
해지기 전에 마당에 있는 것 다 털어야 한다 알었제?"
"알었어라~, 주인어른!"
하서방은 서너가닥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머슴인 돌쇠에게 훈수를 두고 있었다.
"임자, 나는 마실 가네 잉~!
그랑께 일꾼들 잘 다독이시오 잉~?"
"아이고, 또 장터 과부댁 선술집에 가누만!
적당히 드시고 오시오 잉~?"
마님은 잔소리꾼인 하서방이 없는게 더 속 편해서
하서방이 마실 나가는 것을 속으로 내심 반겼다.
하서방은 볼품없는 생쥐 꼬락서니에 물려받은 땅이
백마지기라니 어깨에 힘을 줄만도 했다.
하서방이 자주 들리는 장터 과부댁 주모는
하서방을 호구로 삼아 야금야금 돈을 빼먹었다.
주모는 사십대 초반으로 예쁘장하게 생긴 작은
얼굴에 색기가 줄줄 흘렀고
하서방은 다른데 쓰는 돈은 아까워 하면서도
과부댁 주모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 하지않았다.
하서방이 과부댁 주모에게 들리는 날은
가게문을 닫고 하서방을 특별 손님으로 모셨다.
주모는 온갖 재주로 잠자리에서 하서방 몸뚱아리를
부들부들 떨게만들어 돈을 빼 먹었다.
하서방이 장터 과부댁 주모에게 간것을 확인하고
이내 마님은 부엌으로 들어가서 일꾼들이 먹을
점심 준비를 했다.
"아따따, 빨리빨리 들 하랑께!
일꾼들 배고픙께 빨리빨리 점심상 차리드라고 잉~!"
부엌 한켠에서는 시끌벅적 부억떼기를 밀치고 마님은
요리에 열중이었다.
이윽고 점심상을 멍석에 내어주니 야단법석이었다.
일꾼들은 식모에게 궁둥이를 붙이고 시시덕거렸고
식모는 어떤 놈이 더 좋을지 간을 보고 있었다.
식모 미정이는 고아로자라 다섯 살 때부터 하서방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
"미정아!
너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십오 년이 되었응께
시집갈 때가 되부렀네 잉?"
"예~, 마님!
나가 시집갈 때 마님이 한 살림 내어준다고 했응께
그 약속은 꼭 지키겠지라 잉?"
"그려 그려, 미정아!
춘식이, 종신이, 기주, 저놈들 중에 어떤 놈이 좋을지
골라봐라 잉?
올해 농사일 끝나면 내년에 시집 보내줄팅께!
그 대신 돌쇠는 우리 집 대들보 머슴잉께
돌쇠는 빼놓고 알아보거라 알었제?"
미정이는 마님과 돌쇠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할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마님 알겠어라!
나가 이때만 기다리고 죽은 듯이 일을 했지라 잉?"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일꾼들 세 사람은 식모 미정이
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아양을 떨었다.
"돌쇠야, 너는 언능 이쪽으로 오랑께!
여기 바짝 붙어 앉아봐라 잉~?
너는 우리 집 대들보 머슴잉께 뭐든지 잘 먹고
건강히야 되는기여 알었제?"
마님은 돌쇠에게 고기 한 점을 김치에 척 걸쳐서
막걸리 한 대접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귓속말로 돌쇠에게 소곤거렸다.
돌쇠야 눈치껏 해라 잉~!
오늘이 그날이여~!
힘을 쪼까 아껴야 한다 알겠지라?"
"아따따 , 마님 알겠어라!
돌쇠의 대답이 끝나자 마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가 힘대가리가 없어 애가 안들어섯제
나는 돌쇠 저놈 거시기 생각만 해도 물이 철철
넘쳐나는구먼, 흐흐흐!"
점심을 먹고 두어 시간 지나서 타작이 얼추
끝나갈 때쯤 마님은 또 막걸리 새참을 내왔다.
"자~, 춘식이, 종신이, 기주 총각들 막걸리 새참
먹고 하드라고 잉!"
막걸리 소리가 끝나자마자 일꾼들은 달려와서
오이소박이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들이마셨다.
일꾼들은 막걸리가 들어가자 얼큰한 술기운에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아이고, 막걸리라면 언제든지 고맙지라 마님!
그래도 용천골에선 마님 인심이 최고로 좋탕께요?"
그랑께 나를 이 집 사위로 삼아 주시오 잉?"
춘식이가 그렇게 말을 하자 종신이 기주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했다.
"아따따,
키 크고 잘생긴 이 종신이를 빼먹으면 서운하제 잉?"
"뭔 소리여?
이 용천골에서 부지런하다고 소문난 놈이
바로 나 기주랑께, 안 그렇소 마님?"
"그려그려, 자네들이 있응께 우리집 타작을 쉽게
하잖응가?"
"야~, 그라지요,
그것을 알아중께로 고맙지라 잉?"
마님은 하서방이 없는 것을 알고 돌쇠에겐 마루에
따로 더덕 안주를 내다가 술상을 차려주었다.
일꾼들은 얼큰한 술기운에 힘을 내서 마당에
쌓여있는 나락 타작을 끝냈다.
"자~, 타작이 다 끝났응께 나락 가마니를 헛간으로
빨리빨리 들여놓으랑께!
마님은 허서방 대신에 일꾼들을 진두지휘 했다.
돌쇠야~, 너는 이리 와서 마당이나 쓸어부러!
마님은 돌쇠를 따로 불러서 쉬운 일을 시켰다.
"이따가 힘써야항께 무거운 가마니 들지 말고
너는 마당이나 쓸어라 잉?"
마님은 돌쇠에게 귓속말로 그렇게 말을 했다.
타작도 끝나고 저녁상도 물렸으니 모두 다 피곤하여
일찌감치 깊은 잠에 들었다.
하서방은 장터 과부댁 주모에게 돈다발 같다 바치고
되지도 않는 힘을 뺏으니 술냄새 진동에 큰 대자로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방안 분위기를 이리저리 살핀 마님은 하서방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살금살금 뒷방으로 나갔다.
"돌쇠야, 나 왔어!"
"어메~, 마님!
언능 들어오시랑께요!
나가 지금까지 안 자고 기다렸당께요!"
마님과 돌쇠는 귓속말로 소곤거렸고
마님은 곧장 돌쇠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마님은 마님대로 날마다 청상과부 신세였고
돌쇠는 이십 대 중반 장정으로 욕구를 풀 곳이 없어
자위로 젊음을 달랬었다.
돌쇠는 식모 미정이에게 마음이 있었으나
마님은 미정이 근처에도 못 가게 막아섰다.
그것은 마님이 돌쇠를 독차지하려고 했던것이었다.
드디어 삼십 대 후반 마님과 이십 대 중반 돌쇠와의
뜨거운 밤이 시작되었다.
"돌쇠야, 팍팍 굴러봐 잉~!
어메 좋은거~!
나가, 애 들어서면 꿍쳐둔 돈으로 한살림 내어줄랑께
팍팍, 힘 좀 써보랑께 잉~?
돌쇠는 낮에 먹은 고기 힘으로 방아깨비 저리 가라며
힘차게 거시기를 들이밀었고
마님은 비비 꼬는 콧소리에 몸을 뒤틀며 학학,
거친 숨을 몰아쳤다.
"어메요,너무좋응께 몸이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여!
돌쇠야, 고마워 잉~!"
마님과 돌쇠는 행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해서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일을 끝냈다.
마님은 허서방이 장터 과부댁 주모에게 가는 날은
돌쇠에게 귀띔을 하고 그렇게 밤을 불태웠다.
타작이 끝나고 가을겆이도 끝난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마님은 밥상 앞에서 우웩, 하고 입덧을 했다.
"아따 뭔 일이여 밥상 앞에서!
어험!"어험!"
하서방은 헛기침을 하며 마님을 흘겨보았다.
"나가 두 달째 거시기가 없어라,
아무래도 애가 들어선 모양이랑께?"
"아, 그것이 참말이여 참말~?
나는 십 년째 아가 없어서 포기를 했는디
어메~, 이제야 자식구경 해보겠구먼?"
하서방은 십 년째 임신 소식이 없어 아예 임신은
기대를 하지도 않았었다.
해가 바뀌어 춘삼월이 되었고 부억떼기 미정이는
동네 총각 종신이와 눈이 맞아서 시집을 가겠다고
날마다 마님을 졸라댔다.
마님은 어쩔 수 없이 종신이 총각을 부억떼기
미정이와 혼인을 시키기로 했다.
마님은 두 사람을 불러 앉혀놓고 다짐을 받았다.
"미정이는 다섯 살 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살았응께
딸자식이나 마찬가지여!
그랑께 혼인을 해도 바깥에 내보낼 수는 없당께!"
"아니, 마님 그 말이 무슨 말 이어요?"
"아, 가을추수 끝나면 돌쇠가 이 집에 온 지
꼭 십년이랑께!
우리 서방님이 돌쇠 아비에게 그렇게 약조를 한 문서에
도장을 찍어서 올해는 꼭 내보내야 한당께!
그래서 말인디, 저기 아랫채가 비어있으니
아랫채에서 살도록 하랑께!
나가 집세는 일절 안 받고 또 매년 두 사람 세경은
꼬박꼬박 줄 테니 종신이 자네 생각은 워띠여?"
"아이고 마님!
역시나 마님 인심이 최고랑께요! 히히히
마땅히 신혼집도 없는디 저는 고맙지라 마님!"
"그려 그려, 미정이 너는 생각이 워띠여?"
"아이고 마님!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고맙기가 한이 없어라 마님!"
"그려 그려,
그라먼 나가 면서기 이무영 씨에게 부탁해서
문서를 만들어 왔응께 여기에 셋이서 지장을
찍어불고 약속을 허는기여 잉?"
"예~, 알것어라 마님!"
하서방은 여불이고 집안에 모든 일을 마님이 했다.
마님은 기다리던 임신도 했고 또 올해는 돌쇠를
내보내야 했기에 그렇게 단도리를 했다.
세월은 흘러 흘러 만삭이 된 마님은 산달이 되었고
들판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는 어느 여름날
하서방 대문 앞 새끼줄에 빨간 고추가 내걸렸다.
하서방은 입이 귀에 걸려서 백일이 지난 아들을 않고
동네방네 자랑질을 하고 다녔다.
"하서방은 하나도 안 닮고 돌쇠를 닮았더구먼, 호호호...!"
동네 아주머니는 귀머거리 하서방을 그렇게 놀려댔다.
귀가 어두운 하서방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눈만 멀뚱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 후 머슴살이를 접고 떠나는 돌쇠에게 마님의
서운 섭섭한 인사말이 이어졌다.
"돌쇠야, 너가 간당께 나가 서운해부러 잉!
나는 분명히 너에게 약속을 지켰응께
가끔씩 너그집에 들러도 되지라 잉?
빈손으로 는 않갈팅께 가끔 나를 한 번씩 안아주라 알었제?"
"어메, 걱정 말더라고요 마님!
나는 힘이 남아돈께로 언제든지 오시오 잉!"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느냐구요?
돌쇠는 십 년 치 세경에다 하서방 몰래 웃돈까지 보태서 큰 뭉칫돈을 받았다.
돌쇠는 건너마을에 떡~ 하니 널찍한 집을 장만했고
밭떼기 너 마지기 계약서에 손도장을 꾹 찍고 돌아서서
포효를 했다.
"하하하! 나, 돌쇠!
천하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소이다~!"
돌쇠가 마님 집을 나간 이후로는 전세가 역전되었다.
돌쇠에게는 동네 처녀들이 서로 시집을 오겠다고
줄을 서는 바람에 돌쇠는 마님을 쳐다볼 여가도 없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장날이었다.
장터 튀밥집 앞에 마님과 다섯 살 베기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고 마님!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구먼이라!
그 참, 도련님이 차암 튼실하게 생겼소 잉?"
마님은 돌쇠에게 냉대를 받아 섭섭한 눈치를 보였고
도령은 아비를 앞에 두고도 아비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이 요지경이라 피임약도 없었던 시절,
남의 씨를 키우고 있는 집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허허 참.ㅁ
(3) 절간에 길손
해 질 녘에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진수였다.
진수는 벌써 몇 년째 백수로 방황을 하고 있었다.
한 때는 잘 나갔던 진수는 예전에 중소기업 규모의
인쇄소를 운영했었다.
명예도 富(부)도 누렸건만 IMF 여파로 꼬꾸라져
출판사 문을 닫은 진수였다.
진수는 집에만 들어가면 백여시 닮은 마누라
극성 바가지에 주눅이 들었다.
진수 마누라도 한때는 사모님 소리 들어가며 살았다.
풍요를 누리다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가야 하니
헤프게 쓰던 습관이 쉽게 변할리도 만무했다.
사치스럽게 살던 그 습관에 지니고 있던 패물까지
팔아 살림에 보탰다 하니 마누라 심통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진수는 각방 쓰면서 가끔 생각날 때 애걸복걸 빌고서
돈 벌어 온다고 다짐을 해야 겨우 합방을 할 수가 있었다.
어젯밤에도 객고 한번 풀려고 큰돈을 마련하겠다며
큰소리를 쳤으니 뒷감당이 안 되는 진수였다.
진수는 잘 나가던 시절 어려운 친구에게
빌려준 돈이나 되돌려 받을까 하고 결심을 했다.
동창들에게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친구 세호는 옛날부터 도 닦는다고 도사 흉내를 내고
남루한 승복 차림에 처사 행사를 하고 다녔었다.
그 마누라도 젊어서는 꽤나 유명세를 떨치던
무당이었다.
그러나 세호 마누라도 나이 들어 무당 생활을 접고
강원도 정선 근처 산골에 들어가서 세호와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수는 이른 새벽에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동서울터미널
매표소로 향했다.
생전 처음 가보는 동서울터미널이 진수에게는
생소한 느낌이었고
한참을 헤메고서야 정선행 표를 끊었다.
국도를 달려 네 시간이 걸려서야 정선에
도착을 했다.
주소만 달랑 들고 왔으니 참으로 난감한 진수였다.
진수는 정선 터미널 경비 아저씨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길을 물었다.
"저~, 선생님!
이 주소지를 찾아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나요?"
"네~,그 주소대로 가려면 마도령 가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 동네는 인구가 적어서 아침 10시에 들어가고
오후 4시에 나오는 1회 왕복 버스뿐입니다!
그리고 백학골 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으니까
마도령에서 내려 거기서부턴 걸어가야 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마도령 가는 버스 출발 십 분 전이니까
빨리 서두르셔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진수는 버스를 타고 또 내려서 큰 재를 넘어서 가야 한다는
말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동서울에서 첫차를 탔기에 망정이지
이 버스를 놓쳤으면 큰일 날 뻔했구먼!"
버스는 비포장길을 한 시간이나 달려서 마두령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는 종착역이 어딘지 몰라도 흙먼지를 날리며
휙 하고 지나가버렸다.
진수는 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또 길을 물어야 했다.
"저~, 아주머니 백학골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저씨 무슨 일로 가는지는 몰라도 저기 큰 재를
넘어가야 한답니다!"
"네~, 그러면 그 동네는 마을이 큰가요?"
'아이고 아저씨 아마도 지금은 네댓 가구만 살 겁니다!
그 동네는 모두가 화전민 마을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진수는 들녘 한복판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가을 들판 썰렁한 곳에는 참새들 이삭 줍기 잔치판이었고
허기진 나그네 갈길은 멀고 난감한 일이었다.
어스름 해 질 녘에 바람마저 싸늘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걸렸으니 갈길 바쁜 진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진수는 가쁜 숨 몰아가며 겨우 백학골 고개를 넘었고
저 멀리 마을에 불빛을 보고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진수는 어디 폐가라도 찾아 하룻밤을 묵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진수가 마을로 향하던 내리막 오솔길로 접어드는 그때였다.
산 중턱 바위 아래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진수는 반가움에 당연지사 그쪽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허기진 진수의 코끝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진수는 그쪽으로 달려가서 궁금증에 일갈을 날렸다.
"이보시오 주인장 있소~?"
진수가 몇 번을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암자 비슷한 외딴 초가에 돌부처가 앉아있었고
땡그랑 하는 풍경소리 뿐이었다.
진수는 우선 배고픔에 허겁지겁 정지간을 찾아
문을 열었다.
조금 전 구수한 냄새는 바로 이 가마솥의 백숙 냄새였다.
진수는 앞 뒤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염치 불고하고
양푼 한가득 퍼서 주린 배에 허겁지겁 채워 넣었다
진수는 외딴 산골에 고기라니 대박이라고 생각을 했다.
진수가 배부르게 먹고 돌아 나오는 순간이었다.
벽에 매달린 곡차병이 진수의 눈에 띄었다.
진수는 기름기 가득한 입에 곡차 병나발을 불었다.
굶주림에는 먹는 게 우선이요 배부름이 최고였다.
절간도 아니고 무당집도 아닌듯한데 주인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진수는 배부름과 취기에 일단 불 켜진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엔 향이 타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했고
상단엔 어렴풋이 목좌 부처님이 보였다.
진수는 응겹결에 냉큼 엎드려 넙쭉 절을 해버렸다.
"부처님!
소인 배고픔에 정지간에 요기를 했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부처님 계신 신성한 법당에
백숙에 곡차까지 가득 있더이다!
제가 굶주린 터라 허겁지겁 배는 채웠으나
노자가 떨어져 시주를 못해 죄송하옵니다!"
진수는 되지도 않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삼십리 길을 걸어왔기에 지칠대로 지친 진수였으니
진수는 술기운에 또 배부름에 큰 대자로 잠들고 말았다.
"네이놈~~!"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진수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진수는 비몽사몽에 방문을 열었으나 바깥은
어두컴컴한 밤이었고
열린 방문 앞에는 지게 작대기를 든 승복차림의
늙은이가 진수를 노려보았다.
" 이런 돼먹지 못한 놈!
어디서 음식에 곡차까지 다 먹어?
빨리 나오지 못할까!"
옆에 붙어 선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도
말을 거들었다.
"우리 서방님 드실 보약을 다 처먹었네 이놈이!"
진수는 그 영감탱이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죽일 듯이 설쳐대는 것을 피해
밖으로 도망을 나오다 보니 진수는 결국 신발도
못 챙기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아니, 부처님 계신 곳에 웬 백숙에 곡차요?
여하튼 잘 먹었소이다!"
진수는 도망치는 주제에 그래도 일갈을 날렸다.
허겁지겁 혼비백산 도망쳐 이리저리 헤매다가 진수는
남의 집 헛간에서 볏짚을 이불 삼아 하룻밤 보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머리에 옷에 지푸라기를
묻힌 진수는 영락없는 거지꼴이 되었다.
진수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길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이 주소로 갈려면 어떻게 가는겁니까?"
"어떻게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그 주소는 저기
산 중턱에 있는 암자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는 진수의 행색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수는 동네 아주머니의 대답을 듣고
대경실색을 했다.
"아뿔싸, 그러면 어젯밤 그 늙은이가 바로
내 친구 세호라는 말인가?"
어젯밤 어둠 속에서 진수와 세호는 서로 알아보지를 못한 것이었다.
진수는 작심을 하고 맨발로 다시 그 오두막을 찾아 나섰다.
어제 도망치듯 내려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백주대낮 절간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쳤다.
"어, 너는 진수 아니냐?"
"그래 세호야!"
"어쩐 일로 여기까지 찾아왔냐?"
둘이는 서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어젯밤 사건의
당사자임을 깨우쳤다.
"야, 이사람아!
이 먼곳을 오려면 편지라도 하고 올것이지!"
"그래, 세호야!
그럴 경황도 없이 물어물어서 무작정 와 봤더니
무지하게 멀구나!
어젯밤에 삼십리를 걸어왔더니 배도 고프고
너무 힘들어서 일이 그렇게 됐단다 세호야!"
"아이고 진수야!
영월읍으로 왔으면 백학리를 지나가는 버스가 있는데
괜히 고생을 했구나 쯔쯔쯔!
온다고 기별을 했으면 내가 길을 알려줄텐데 말이야!"
"아이참, 나는 주소가 정선군이라서 그냥 정선읍으로
왔지뭐!"
"그래, 어쨌거나 잘 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진수야!"
진수와 세호는 초등학교 동기동창 친구였다.
돈거래로 인해 멀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산속에서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인연이 악연이 되고 그 악연이 다시 인연이 되어
그렇게 마주친 두 사람이었다.
진수는 막상 마주치니까 그래도 반가움이 앞섰다.
진수는 한때 잘 나가던 출판사 사장님이었고
친구들에게 부자라고 소문이 났었다.
동창인 세호의 귀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고
이를 이용한 거머리 같은 세호는 마누라 암 치료비 운운하였다.
세호는 그런 감언이설로 진수를 꼬드겨 큰돈을 빌려갔다.
마음 약한 진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돈을 빌려주었으나
세호는 그 뒤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진수는 혼쭐을 내고 돈을 받겠다고 작심을 하고
내려왔으나
막상 세호와 마주치니까 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그제야 모든 것을 눈치를 챈 세호 마누라였으니
어떡하든 말로 구슬려서 돌려보내려고 작심을 했다.
세호 마누라는 갖은 아양을 떨며 술상을 내왔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맛나게 드세요~!"
진수는 오랜만에 세호 집에서 거나하게 취해
집 걱정은 잊은 채 회포를 풀었다.
진수는 연속적으로 퍼마신 주독에 이튿날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세호 마누라가 끓어준 북어 해장국으로 속은 풀었다지만
마음씨 너그러운 진수는 빌려준 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주머니에 차용증만 만지작거렸다.
진수는 그동안 망한 인쇄소와 빛 잔치로 거지꼴 된 사연을 말했지만
세호와 마누라 둘이는 죽는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세호는 산속 암자에 무슨 돈이 있겠는가 하면서 말을 돌렸다.
"내가 몇 년 전 뒷산에 삼 씨를 뿌려 놓았네!
내년이면 장뇌삼 수확을 한다네!
그러니 올 한 해만 말미를 주면 꼭 그 돈을 갚겠네!"
세호의 감언이설에 또 한 번 속아 넘어간 진수였다.
진수는 봉투 속에 달랑 십만 원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원금에 일할도 안 되는 여비에 불과했다.
"잘 가게나 진수 친구!"
"안녕히 가세요~!"
진수는 두 사람의 마중을 받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진수는 세호가 가르쳐준대로 이번에는 영월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빈손으로 올라가면 마누라에게는 또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되나!
내년이면 진짜로 돈을 받을수나 있을까?"
허허, 이거 참 큰일이로다!"
진수는 털컹거리는 버스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ㅁ
첫댓글 운좋게 벽화 사진을 찍었답니다.
벽화도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낙도 카페지기님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