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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창세기 28:10-22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pO93v13VmBY&t=402s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이 그만큼 장자의 자리를 사모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곱은 자라면서 장자권이 합의에 의하여 옮겨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이 사냥을 하고 돌아와 심히 배가 고플 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늙어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할 때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기도를 가로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곧 발각되어 에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야곱은 형의 눈을 피해 하란 땅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야곱은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가 ‘루스’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루스에서 밤을 맞았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돌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야곱의 신세가 처량했습니다. 이때가 야곱의 인생에서 첫 번째 고비였습니다.
여러분! 고비라는 말 아시죠? ‘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긴요한 기회나 막다른 때의 상황.’을 말합니다. 고비는 몽골과 중국 사이에 걸쳐 있는 고비사막 지대를 말합니다. 이곳에서 매년 황사가 발원해서 우리나라 쪽으로 불어옵니다. 우리들이 가끔 사용하는 ‘고비를 못 넘겼다’는 표현은 몽골족이 중국을 공격할 때, 거대한 고비사막을 넘지 못하고 우회했다는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누구나 한 평생을 살다보면 인생의 고비를 많이 만납니다. 야곱에게는 본문이 첫 번째 고비였습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는데 ‘주가 일하시네’라는 찬양이 생각났습니다. 그 찬양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날이 저물어 가고 빈들에서 걸을 때는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한 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본문도 그런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147년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든 때였을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라는 제목으로 야곱이 고비를 만나서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라.
이때 야곱은 외로웠을 것입니다. 가족 곁을 떠나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들길을 혼자 걸어야 했습니다. 주변에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도 없고, 친구도 없이 그는 혼자였습니다.
이때 야곱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루스까지의 거리는 약 90Km입니다. 일반인들이 걷는다면 약 사흘 길입니다만 아마도 야곱은 에서를 피하느라고 하룻만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에서가 어떤 사람입니까? 에서는 대단히 혈기 왕성하고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에서는 짐승을 만나면 끝까지 추격하여 잡았을 것입니다. 익숙한 사냥꾼은 발자국만으로도 상대를 추적할 만큼 사냥에 능합니다. 지금 야곱은 이 능숙한 사냥꾼의 추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90km 정도의 먼 거리를 하루 만에 도망쳐 왔을 것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야곱이 잠든 곳은 낯선 땅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야곱이 살던 브엘세바는 평지였는데 루스는 가파른 산들로 둘러싸인 산악지역입니다. 그는 아무런 방비 없이 위험에 노출된 채 그 험한 산악지역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 낯선 환경은 야곱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약 3년 정도, 매주 토요일마다 산기도를 했습니다. 산기도를 할 때 무서운 생각이 들면 기도에 집중이 안 됩니다. 등골이 오싹오싹합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한 번은 선배들과 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혼자 산을 오르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귀신이 저를 쫓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귀신이 제 목덜미를 확 낚아챌 것 같았습니다. 너무 무서우니까 발걸음도 빨라지고 찬송을 부르는데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얼마나 무섭든지 바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도착해서도 덜덜 떨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저를 덮칠 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얼마 쯤 있다가 선배 한 명이 오니 얼마나 든든한지... 제가 볼 때 야곱도 그때의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많이 피곤했을 것입니다. 형이 추격해 올까봐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걸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거기다가 야곱은 가진 게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기름 한 병이었는데 그것마저 아침에 야곱은 돌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부어버렸습니다. 이젠 야곱은 빈손이 되었습니다.
이 때 야곱의 처지는 한심했습니다. 여러분! 이때 야곱이 몇 살이었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야곱이 젊은 청년일 것 같은데, 학자들은 이때 야곱의 나이가 77세였다고 합니다. 나이가 77세나 된 사람이 그동안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서 살았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는 40세에 결혼을 했는데 야곱은 이때까지 결혼도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형의 장자권을 탐하다가 형이 무서워서 도망친 것입니다. 참 한심한 인생이죠.
그런데 이때 그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만남이 그의 인생을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깬 후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던 브엘세바에만 계시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체험을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시며 자기가 있는 루스에도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정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고비에 하나님을 만나면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고비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고비를 만나면 하나님을 찾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셔서 인생의 고비를 잘 넘기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닥다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주시기 위하여 보내신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이 사닥다리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와서 보라”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주님이 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야곱이 본 사닥다리가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요 1:51입니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야곱의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닥다리를 통하여 오르락내리락 하였는데, 이것은 곧 인자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장이니 우리도 그렇게 믿습니다. 요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길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행 4:12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절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딤전 2:5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따라 합시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예수님만이 천국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오직 한 길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은 생명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사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렵고, 지치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그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고비를 넘어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첫째는 지금 야곱이 누워 있는 땅을 야곱과 야곱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야곱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은 야곱이 혼자지만 나중에는 수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진짜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갈 3:16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신 복의 근원이 될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야곱에게 복을 주셨고 야곱과 한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지난 2001년 1월 2일, 일본에 있는 ‘오카다야 모아즈(岡田屋 Mores) 백화점’ 앞에 영업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손에 신문지 크기의 광고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들고 있던 광고지는 10년 전, 1991년 1월 2일 신문 신년호에 실렸던 백화점의 광고였습니다. 그 광고 한쪽 구석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10년 후 2001년 첫 영업일에 이 광고 전단을 갖고 오시면 선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이 날 10년 전의 약속을 믿고 광고지를 들고 백화점을 찾은 사람은 1,200명이나 되었습니다. 백화점 측은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선물을 미처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줄 것을 약속하고 약속된 선물 외에 1,000엔짜리 상품권과 과자를 사과의 선물로 주었습니다. 약속을 지킨 백화점도 훌륭하지만 그 약속을 믿고 10년 동안 광고지를 보관한 1,200명도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왕상 8:56입니다.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모든 약속을 다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시거나 빈말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고비를 만났을 때, 야곱에게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으로 고비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비를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셔서 고비를 이기게 하시는 분입니다. 시 107:20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치료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위경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구원이 필요한 사람은 영혼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병고침이 필요한 사람은 병고침의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가난에서 구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난에서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므로 고비 때마다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지금 카타르에서 2022월드컵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대한민국 대표팀과 강팀인 남미의 우루과이가 0:0으로 비겼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2002년처럼 4강 신화를 이루기 원합니다. 여러분! 월드컵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가장 큰 적이 있습니다. 불안감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가슴을 누르고 긴장하게 합니다. 불안감은 운동선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늘 불안해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감만 없어도 인생은 훨씬 행복해지고 더 높고 많은 것을 성취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문교는 높이 67M, 길이 2,789M로 준공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사 기간 중 첫해에는 23명의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공사장 밑에 안전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망 사고가 없어졌습니다.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니 인부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이 나의 안전망이 되신다는 믿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믿음을 가지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면 우리의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체험을 한 후에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는 믿음으로 산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는 담대하게 산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는 하는 일이 잘 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이 합력해 선을 이룰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 전 남극 탐험을 떠났던 영국의 탐험대원들이 혹독한 추위와 극도의 피로로 인해 거의 절망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도 대원의 숫자보다 늘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들 곁에 늘 함께 있었던 그 한 사람의 환상 때문에, 죽음의 절망을 딛고 남극탐험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탐험을 무사히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기자회견을 하며 그 한 사람에 대한 이상한 체험을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 간증에 깊은 감명을 받은 T.S. 엘리어트(Eliot)라는 시인은 그의 대표적인 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 삼자는 누구인가요?/ 세어보면 언제나 당신과 나 둘 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곁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갈색 망토를 휘감고 소리 없이 걷고 있네./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러분은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는 그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는데 풀무불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신 것과 같은 역사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고비를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께 헌신하라.
어떤 장로님이 간증입니다. “저는 저의 지식과 저의 능력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열심히 일해 곡간을 채웠습니다. 저는 지금껏 제가 흘린 땀으로 인하여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 남들보다 우뚝 서서 어깨를 활짝 펴고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저는 더 높이 올라가려고 까치발까지 하면서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어 쉬고자 발밑을 보니 예수님이 엎드려서 저를 지탱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낮아지어 아래를 바라볼 때까지 묵묵히 저의 발밑의 반석이 되셨던 것입니다. 저의 걸어온 모든 길을 예수님이 인도하여 주셨음을 알고 저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제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은혜를 대하는 2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테니까 내 멋대로 해도 돼.”라고 은혜를 악용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면 점차 은혜의 줄이 가늘어지다가 결국 끊긴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으니까 더 잘해야 돼.”라고 은혜를 선용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면 점차 은혜의 줄이 굵어지고 더 튼튼해진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더 겸손하게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야곱은 인생의 최대 고비 중에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몇 가지 신앙고백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18절부터 보면 먼저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의 서원기도를 좋지 않게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시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조건부적인 기도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는 너무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욕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이렇게 섬기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야곱은 몇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먼저 야곱은 예배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18절에 보면 자기가 밤새 베고 잤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야곱이 돌기둥에 기름을 부은 행위는 무슨 뜻일까요? 야곱에게 있어서 이 기름은 더없이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기름이 중요한 물물 교환의 수단이었습니다. 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이 형에게 미움을 받아 황급히 도망치는 상황에서 챙긴 것이 바로 기름입니다. 이것으로 먹을 양식도 구하고 노잣돈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기름은 자신의 생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기름을 돌 위에 쏟아 부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는 기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기름으로, 물질로 살았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기름을 부어드릴 수 있는 예배 말입니다. ‘나는 더 이상 기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그렇게 일생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히 11:21입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야곱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힘이 없어서 혼자서는 설수 없으니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예배로 마무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일생 예배자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했습니다. 야곱은 십일조로 하나님과 거래를 하여 축복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복 주시고 인도해 주시겠다는 여호와를 잘 섬기겠다는 표시로 십일조를 약속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십일조는 축복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사람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조금 올려드려도 하나님은 넘치도록 주십니다.
②십일조는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음을 믿고 감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만 가지 은혜 받았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서 thank you하는 것입니다.
③십일조는 조공의 의미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바치는 것이 조공입니다. 작은 나라는 혼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큰 나라의 보호를 받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호해 주는 대신 작은 나라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큰 나라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십일조가 적정한 수준의 조공으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시니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충성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십일조라는 조공을 내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을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처음으로 고비를 만난 야곱이 어떻게 그 고비를 넘겼는지를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라.
2.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4. 하나님께 헌신하라.
첫댓글 감사^^*
"인생의 고비에(1)(2)"